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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와 존중

이상한 홍준기
35년전

라캉쟁이를 까면 어디선가 "나는 라캉쟁이가 아니지만.."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존중해야 하고 대화가 필요하다는 근엄한 훈계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뭔가 상황을 잘 모르거나 아니면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홍준기의 다음과 같은 말을 보자.

앞에서 필자는 특정한 원인을 기계적으로 찾으려는 자연과학적, 상식적 사고방식에 대해 말했는데, 이러한 사고방식은 공교롭게도'미신적인 사고방식'과 통한다. 상세히 논할 여유는 없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과학자들의 자생적인 이데올로기'라는 알뛰세르(L.Althusser)의 표현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알뛰쎄르의 이 표현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학문성을 인정받는 많은 이론 중 상당수가 사실은 일반인의 상식적이고 막연한, 신비적이고 근거없는 '이데올로기적'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저 문장이 뜻하는 것은?

1) 대화와 존중
2) 싸우자!

by 아이추판다 | 2008/10/26 14:08 | 트랙백 | 핑백(1) | 덧글(7)

35년전

이상한 홍준기에서 언급했던 홍준기의 그 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들이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더 확실한 원인을 발견하기 위해 생물학적, 생리학적 요인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도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인간의 '심리' 문제의 원인을 '육체'에서 찾는 것만큼 인간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조작 가능한 기계로서의 인간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인간의 존엄을 유린했는지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통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 정신 혹은 심리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정신과 무의식이 어떤 '특정한 원인'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유, 달리 말하면 어떤 특정한 과학체계에 완전히 포섭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보편자가 아니라 개별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라깡은 과학이나 보편적 이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의 특수성, 개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주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라깡에게 주체는 근대의식철학에서처럼 과학적 진리, 절대적, 형이상학적 진리를 보증하는 '신적' 지위를 갖는 것이 아니라, 환원할 수 없는 인간의 특수성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중략)

왜 우리는 프로이트, 라깡 정신분석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프로이트, 라깡 정신분석학만큼 인간에 대해 철저하게 탐구했던 학문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으로서 프로이트, 라깡 정신분석학만큼 우리들의 삶과 학문,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걸쳐 깊은 영향을 끼친 분야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중략)

정신의학이나 심리학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정신의학 분야나 심리학과에서 정신분석학이론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최근에 국내의 정신의학 분야에서도 프로이트가 활용되기 시작했으나 출판된 저작들을 살펴보면 사실 제목만 프로이트이지 내용은 전혀 프로이트와 상관없는 책이 대다수이다. 심리학 분야에서 프로이트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에 소개되었으나 구색을 맞추기 위해 형식적으로 몇 페이지 정도 지면을 할애해 도식적으로 소개할 뿐,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심리학 책은 찾아보기힘들다.

 ACT-R이라는 마음의 구조를 설명하는 모형이 있다. 이런 종류의 모형을 인지 아키텍처라고 한다. ACT-R을 돌리면 0.05초 간격으로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다. 아래 그림은 이 시뮬레이션 결과를 변환해서 뽑아낸 뇌 활동 예측(실선)과 fMRI로 촬영한 실제 뇌 활동(점을 연결한 선)을 비교한 그래프이다. 참고로 ACT-R은 1973년부터 개발된 뇌과학과는 전혀 무관한 순수한 심리학적 모형이고 그 시절에 fMRI 따윈 없었다.

Anderson, J. R.,  Finchama, J. M., Qina, Y., & Stoccoa, A. (2008). A central circuit of the mind.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12(4), 136-143 .

간단히 코멘트.

(1) 마음을 연구하는 것과 뇌를 연구하는 것은 다르지만 마음을 제대로 연구한다면 뇌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2) 1973년은 아직 라캉이 살아서 활동하던 시절이다. 그 시절에 이미 격차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지금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3) 언제부터 '철저하다'가 "말도 안되는 '은유'나 늘어놓으면서 사기나 친다"라는 뜻이었지?

(4) 나를 가르친 어느 교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소리치곤 했다. "지식이 없는 열정은 쓰레기라고!" 백 번 맞는 말이다.

by 아이추판다 | 2008/10/11 03:30 | 트랙백 | 핑백(2) | 덧글(18)

이상한 홍준기

라캉주의식 설명법?

알기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프로이트 당시 히스테리자들은 대부분 아버지 병간호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프로이트가 분석치료했던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 병간호를 오래하면 히스테리에 걸린다'고말하곤 했다.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이 '특정한' 원인을 찾으려는 사고방식이다. 즉 아버지 병간호라는 원인이 히스테리 발병이라는 결과를 낳는다는 '직선적 인과론'에 근거한 '단순한' 사고방식이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생각을 비웃으면서 아버지 병간호를 했기 때문에 히스테리자가 된 것이 아니라, 히스테리자이기 때문에 병간호를 한다고 설명했다. 아주 단순한 예이지만 이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단순한 과학적, 상식적 사고는 어떤 '확실한' '특정한' 원인을 찾기를 원하므로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다가 히스테리에 걸렸다고 말하지만, 정신분석학은 그들이 히스테리자이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매력적인 남성'의 구애를 뿌리치고 아버지 병간호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뒤집어 말한다. 위의 예는 병간호라는 단순한 원인 - 혹은 어떤 다른 '특정한' 원인이라도 마찬가지인데 - 에 의해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보았던 히스테리가 사실 더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상태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문제를 이해하기위해서는 상식적, 과학적 사고가 막연히 가정하는 '직선적 인과론'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글에는 무척 잘못된 점이 많다. 아버지 병간호 때문에 히스테리에 걸리는가 아니면 히스테리 때문에 아버지 병간호를 하는가? 이건 과학적 문제다. 과학적 문제를 과학적 사고로 풀면 안된다고 주장하니 이것부터 잘못이다. 과학적 사고가 '확실하고 특정한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도 현대 과학의 확률론적 세계관과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리다. 게다가 프로이트야말로 실수 하나에도 원인을 일일이 찾아내려고 한 사람인데 도대체 누가 직선적 인과론에 빠져있다는 것인지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다. 그런데 이런 잘못 쯤은 눈감고 넘어갈 수 있다. 나는 관대하다.

댓글 중에 아버지 병간호가 히스테리를 일으킨다는 주장이나 히스테리가 있어서 아버지 병간호를 했다는 주장이나 그게 그거라는 의견을 주신 분이 많았다. 홍준기가 그만큼만 되었어도 내가 '이상하다'라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홍준기가 쓴 문단만 근거로 한다면 프로이트의 주장은 아버지 병간호가 히스테리를 일으킨다는 주장보다 설명력이 떨어진다.

홍준기는 이 문단에서 제시하는 유일한 사실은 "프로이트 당시 히스테리자들은 대부분 아버지 병간호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프로이트가 분석치료했던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뿐이다. 홍준기도 그렇고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도 그렇지만 여기서 '대부분'이라는 말을 간과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아버지 병간호를 하려면 그 이전에 아버지가 병에 걸려야 한다. 병에 걸리지 않은 아버지를 간호할 수는 없다. 따라서 히스테리에 걸린 여성들의 '대부분'이 아버지 병간호에 많은 시간을 보내려면 먼저 그 이전에 히스테리에 걸린 여성들의 아버지 '대부분'이 병에 걸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도 병간호에 많은 시간이 필요할 정도의 그런 병에 걸려야 한다.

그렇다면 19세기말~20세기초 비엔나에 살던 결혼적령기 딸을 둔 남성들이 하나같이 중병에 걸려 병석에 누워있었거나 아니면 딸의 히스테리와 아버지의 발병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어야 한다. 당시 비엔나 중년남성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 없지만 아무래도 40~50대 남성들이 하나같이 병석에 누워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남는 가능성은 하나 뿐인데 히스테리와 아버지의 발병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벌써 매우 이상하다.

아버지의 발병 때문에 히스테리에 걸렸다고 하면 아버지 병간호가 히스테리를 일으켰다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그러면 딸의 히스테리 때문에 아버지가 병에 걸렸거나 아니면 제3의 원인이 딸의 히스테리와 아버지의 발병에 관계해야 한다. 그런데 딸의 히스테리 때문에 아버지들이 중병에 걸려 픽픽 쓰러진다는 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하필 히스테리에만 아버지가 발병하는 것도 이상하고, 어머니는 어쩌고 아버지만 병에 걸리는 것도 이상하다.

제3의 원인이라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와 딸에게 동시에 전혀 다른 질병을 발병시키는 그런 원인이 뭐가 있을까? 유전이라고 해도 이상하고 환경적 요인에서 찾기에도 이상하다. 아버지와 딸에게는 영향을 미치는데 어머니와 아들에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가장 이상한 건 홍준기다. 히스테리자 대부분이 아버지 병간호에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아버지 병간호가 히스테리를 일으킨다고 말하기엔 증거가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이상한 건 아니다. 그런데 홍준기는 영 딴 소릴 하고 있다. 만약 히스테리가 있기 때문에 아버지 병간호를 했다고 말하려면 당대 비엔나에서는 아버지가 병에 걸려도 딸들이 오랜 기간 병간호 하는 일은 드물었다든지 그런 얘기를하든지 아니면 아버지와 딸이 동시에 다른 병에 걸리는 이상한 현상에 대해 뭔가 설명을 해야 한다. 홍준기는 자신이 반대하는 가설에 유리한 증거만을 내놓고 자신이 지지하는 가설에 유리한 증거는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은 홍준기가 과학적이고 상식적인 사고를 줄곧 비판하다보니 비과학적이고 몰상식적인 사고를 하게된 탓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실수 행위들에 대한 프로이트의 분석을 따라 홍준기의 무의식 속에 프로이트에 대한 적대감이 도사리고 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홍준기는 프로이트의 주장을 지지하면서 프로이트의 주장에 반대되는 글을 쓴다. 정말 이상하다.

덧. 프로이트의 첫 히스테리 환자로 유명한 안나 O.의 아버지는 1880년 7월에 늑막 주변 농양에 걸려 10개월 이후인 1881년 4월에 죽었다. 안나 O.도 아버지 병간호를 했으나 1개월만에 히스테리가 도져 병간호를 그만두었다. 10개월이든 1개월이든 어느 쪽이나 "히스테리자이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매력적인 남성'의 구애를 뿌리치고 아버지 병간호를 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말할만한 '오랜 세월'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홍준기가 인용한 프로이트의 주장이 어디에 나오는 얘기인지는 모르겠는데 프로이트 자신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했을까?

by 아이추판다 | 2008/10/04 18:45 | 트랙백(3) | 핑백(6) | 덧글(13)

라캉주의식 설명법?

옆 사람 자리에 "라깡의 재탄생"이라는 책이 있어서 몇 쪽을 슬쩍 넘겨봤다.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어서 여기에 옮겨본다. 다음은 편자인 홍준기가 책의 서론에 해당하는 글로 쓴 '자크 라깡, 프로이트로의 복귀'의 한 문단이다. 강조는 원문 그대로 옮겼다.

알기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프로이트 당시 히스테리자들은 대부분 아버지 병간호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프로이트가 분석치료했던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 병간호를 오래하면 히스테리에 걸린다'고말하곤 했다.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이 '특정한' 원인을 찾으려는 사고방식이다. 즉 아버지 병간호라는 원인이 히스테리 발병이라는 결과를 낳는다는 '직선적 인과론'에 근거한 '단순한' 사고방식이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생각을 비웃으면서 아버지 병간호를 했기 때문에 히스테리자가 된 것이 아니라, 히스테리자이기 때문에 병간호를 한다고 설명했다. 아주 단순한 예이지만 이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단순한 과학적, 상식적 사고는 어떤 '확실한' '특정한' 원인을 찾기를 원하므로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다가 히스테리에 걸렸다고 말하지만, 정신분석학은 그들이 히스테리자이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매력적인 남성'의 구애를 뿌리치고 아버지 병간호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뒤집어 말한다. 위의 예는 병간호라는 단순한 원인 - 혹은 어떤 다른 '특정한' 원인이라도 마찬가지인데 - 에 의해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보았던 히스테리가 사실 더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상태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문제를 이해하기위해서는 상식적, 과학적 사고가 막연히 가정하는 '직선적 인과론'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문단엔 단순히 틀렸거나 잘못된 걸 넘어서 아주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찾아들보세요! (정답은 내일)

by 아이추판다 | 2008/10/03 15:54 | 트랙백 | 핑백(2)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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