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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 것 없는 이론

'학생'님이 필사적 반복학습의 절망적 결과에서 소개한 실험의 출처를 물어보셔서 답변. 원래는 Anderson의 Cognitive Psychology and Its Implications에서 읽은 내용인데 내가 가진 6판에는 나오지 않길래 도서관에서 가서 원래 봤던 옛날 번역판을 봤더니 역시 있다. 해당 내용을 전재한다.

우연 대 의도 학습

하이드와 젠킨스(Hyde and Jenkins) 실험은 우연 학습과 의도 학습을 비교한 연구에서 반복 증명된 주요 발견을 예시한다. 사람이 학습하고자 하는 의도 여부는 정말로 중요하지 않다(Postman, 1964의 개관 논문을 참조할 것). 중요한 것은 재료의 제시 기간 중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만일 피험자가 의도하지 않은 경우에도 의도 학습에서처럼 같은 심적 활동을 하면, 그는 두 조건 모두에서 같은 기억 성과를 보인다. 사람들이 학습을 의도하면 기억에 도움이 되는 암송이나 정교화 처리를 많이 하므로 대체로 좋은 기억을 보여준다. 젠킨스와 하이드 실험에서 의도적 피험자들이 보인 적은 이득은 처리상 약간의 가변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처리의 통제에 세심한 주의를 한 실험들은 학습 의도 또는 동기의 양이 별로 효과가 없음을 발견한다(Nelson, 1976)을 보라).

사실상, 처리가 면밀히 통제되지 않은 실험들에서 피험자들은 실제 우연 조건에서 더 잘한다. 이러한 연구 중 앤더슨과 바워(1972)의 문장 기억에 관한 실험이 있다. 두 집단의 피험자들에게 문장을 제시하고 여기에 이어지는 짧은 글을 생성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한 피험자는 '목사가 집주인을 때렸다'를 보고 '십자가로'라는 구절을 첨가했다. 한 집단의 피험자들은 기억 검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고, 다른 집단은 그렇지 않았다. 의도 집단은 문장의 48.9%를, 우연 집단은 56.1%를 회상했다. 나중에, 피험자들을 면접한 결과, 의도 집단 피험자들은 문장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과 같은 별 효과 없는 기억 방략을 사용하는 데 몰두했기 때문에 빈약한 수행을 보였음이 밝혀졌다. 우연 집단의 피험자들은 문장들을 단순히 정교화했고 어떻게 하면 기억이 잘되는가에 관한 보잘 것 없는 이론들로 인해 방해받지 않았다. 브라운(Brown, 1979)도 아동들이 기억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학습 상황에서 곤란을 받는다고 보고했다.

존 R. 앤더슨, 이영애 역, "인지 심리학", 을유문화사, 1987.

필사적 반복학습의 절망적 결과에서 내가 두 개의 실험을 하나의 실험으로 얘기했는데 그냥 읽게 시킨 경우와 시험 볼테니 공부하라고한 경우를 비교한 실험은 두 번 째 문단에 있는 앤더슨과 바워의 실험이고, 문제 출제를 시킨 경우와 그냥 읽게 시킨 경우를 비교한 실험은 책의 다른 부분에 나오는 프레이즈의 실험이다. 이들 각각의 서지사항은 아래와 같다.
  • Anderson, J. R. & Bower, G. H. (1972). Configural properties in sentence memory. Journal of Verbal Learning and Verbal Behavior, 11, 594-605.
  • Frase, L. T. (1975). Prose Processing. In G. H. Bower (Ed.), The Psychology of Learning and Motivation (Vol. 9, pp.1-47). New York:Academic Press.
간만에 이 얘기를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도를 거스르는 '보잘 것 없는 이론'들을 또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을런지.

by 아이추판다 | 2009/09/04 00:23 | 트랙백 | 덧글(9)

행동에서 분자까지

기생말벌과 식물의 공생 (byontae님)
'작은 동물들'의 학습 (漁夫님)
'작은 생물들'의 학습 (byontae님)

얼마 전 과학밸리를 달궜던 작은 동물/생물 학습 시리즈.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지 군소의 예를 들어서 한 번 설명해보자.

군소(Aplysia)는 바다 달팽이의 일종으로 뇌가 2만 여개의 세포로 이뤄져있어서 아주 단순한데다가, 신경세포가 맨눈으로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커서 신경과학에서는 상당히 인기있는 동물이다. 아래 사진처럼 생겼는데 토끼하고 닮아서 '바다 토끼(lepus marinus)'라고도 불린다.

파블로프는 세 가지 형태의 학습을 연구 했다. 습관화, 민감화, 고전적 조건화. 습관화는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무시하는 것이다. 민감화는 강한 자극이 주어졌을 때 다른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전적 조건화는 '파블로프의 개'로도 잘 알려있다. 이 세 가지 학습은 군소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군소를 뒤집어보면 위의 그림처럼 생겼다. 실제로 저렇게 색깔이 있는 건 아니고 구별을 위해 넣은 것이다. 군소의 수관을 건드리면 아가미 수축 반사가 나타난다. 수관을 자꾸 건드리면 이 반사는 약해지는 데 이것이 습관화다. 반대로 꼬리에 충격을 주고 수관을 건드리면 아가미는 강하게 수축한다. 이것이 민감화다. 꼬리를 맞고 놀라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누가 수관을 건드리니 식겁할 수 밖에 없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꼬리를 먼저 살짝 만져서 예고를 해준다음에 수관을 건드리면 나중에는 꼬리만 만져도 아가미 수축반사가 나타난다.

이 세 가지 학습은 최소한 단기적인 기억은 있어야 가능하다. 아까 수관을 만졌다는 걸 기억해야 습관화가 될테고, 방금 꼬리를 맞았다는 걸 기억해야 민감화가 될 것이다. 그럼 이런 단기기억은 신경 수준에서 어떻게 이뤄질까.

군소에서 수관의 감각 뉴런은 아가미의 운동 뉴런과 연결되어 있다. 수관을 만지면 감각 뉴런이 활성화되고, 감각 뉴런은 다시 운동 뉴런을 활성화시킨다. 운동 뉴런은 아가미의 근육을 움직여서 아가미를 수축시킨다. 민감화의 경우, 꼬리를 때리면 꼬리의 감각 뉴런이 활성화되고, 꼬리의 감각 뉴런은 중간 뉴런을 활성화시킨다. 중간 뉴런은 수관의 감각 뉴런에 '어떤 작용'을 해서 운동 뉴런을 더 강하게 활성화시키도록 만든다.

여기서 알 수 있지만 민감화를 위해 필요한 건 단 4개의 신경세포 뿐이다. 습관화는 수관 감각 뉴런과 아가미 운동 뉴런 2개만 있으면 된다. 물론 군소의 경우에 실제로는 좀 더 많은 뉴런이 있다. 예를 들어 아가미를 수축시키는데 필요한 운동 뉴런은 6개다. 하지만 원리상으로는 군소의 행동을 4개의 신경세포에 가둘 수 있다. 군소가 없어도 뉴런 네 가닥만 떼내서 실험해도 똑같은 학습이 가능하다.

그럼 여기서 한 수준 더 내려가서 중간 뉴런이 수관 감각 뉴런에 무엇을 하는지 분자 수준에서 살펴보자.

뉴런과 뉴런이 만나는 부분을 시냅스라고 한다. 영화에서 보면 뉴런 사이에 스파크가 튀는데 실제로는 시냅스 전 뉴런이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해서 시냅스 후 뉴런을 흥분시킨다. 초록색 삼각형은 감각 뉴런의 시냅스 전 말단인데 여기서 글루타메이트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운동 뉴런에 방출한다. 중간 뉴런은 여기에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한다.

세로토닌을 받으면 감각 뉴런은 cAMP라는 물질을 합성한다. cAMP는 단백질 키나아제A를 활성화하고, 단백질 키나아제 A는 칼륨 이온통로를 닫아 감각 뉴런의 흥분 상태를 더 오래 유지시키고, 글루타메이트의 방출을 촉진한다.

우리는 앞서 군소의 행동을 신경 수준에 가두었다. 이제는 신경 활동을 다시 분자 수준에 가둘 수 있다. 뉴런 네 가닥도 필요없고 감각 뉴런 하나만 있으면 된다. 감각뉴런을 활성화시키고 시냅스 전 말단에 세로토닌을 주면 역시 똑같은 학습이 가능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은 유비가 성립한다.

개체 수준: 충격 -> 꼬리 -> 수관 -> 아가미
신경 수준: 꼬리 감각뉴런 -> 조절뉴런 -> 수관 감각뉴런 -> 운동뉴런
분자 수준: 세로토닌 -> cAMP -> 단백질 키나아제A  -> 글루타메이트

여기서 설명한 학습은 지나치게 단기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학습과 좀 차이가 있다. 연습은 완벽을 만든다는 말은 군소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장기기억을 위해서는 뉴런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시냅스를 더 강하게 더 많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뉴런의 구조를 바꾸려면 단백질이 필요하고, 단백질을 만들려면 DNA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 첫 단추는 역시 cAMP에 의해 활성화된 단백질 키나아제 A가 담당한다. 나름 바쁘신 몸이다. 이온통로 열랴, 글루타메이트 방출 촉진하랴, 이제는 핵으로 출장도 간다. 그러면 여차저차한 과정을 거쳐서 DNA가 활성화되고 그 정보는 mRNA에 담겨서 각 시냅스 말단으로 전달된다.

뉴런은 여러 다른 뉴런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장기기억을 형성하려면 특정한 뉴런과 연결만 강화되어야 한다. 이 경우엔 아가미 운동 뉴런과 시냅스를 강화해야지 다른 엉뚱한 운동 뉴런의 시냅스를 강화하면 안된다. mRNA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정확한 시냅스 전 말단에 가서 단백질을 합성할까?

여기서 작년 한국을 뒤흔들었던 생물학 용어가 하나 등장한다. 그거슨~ 두둥. 프.리.온. 잘 알려져있다시피 프리온은 무척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자가증식하는 특징이 있다. 멀쩡하던 프리온도 미친(?) 프리온을 만나면 같이 미쳐버리는 식인데 이 메커니즘이 장기기억에 기여한다고 알려져있다. 시냅스 전 말단에는 CPEB라는 단백질이 있다. 이 단백질은 프리온과 비슷해서 우성 CPEB가 열성 CPEB를 만나면 우성으로 바꿔놓는다. 시냅스 전 말단의 CPEB는 평소에는 열성 상태로 있다가 세로토닌 신호를 전달받으면 우성으로 바뀌고 다른 열성CPEB들을 우성으로 바꾼다. 이런 과정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해당 말단에는 우성CPEB들이 바글바글하게 되어 마침내는 뇌에 구멍을 뚫..는 게 아니고 시냅스 전 말단에 도착한 mRNA를 활성화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뉴런은 정확히 강화시켜야할 시냅스만 강화할 수 있다.

이런 신경세포의 작동방식은 군소만이 아니라 초파리나 사람에서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재미있게도 cAMP는 뉴런에만 존재하는 게아니라 다른 종류의 세포나 단세포 생물에서도 세포 내부의 신호 전달에 사용된다. CPEB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두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첫째, 학습의기본적인 메커니즘은 분자 수준의 시스템에 바탕을 둔 것이다. 둘째, 이런 분자 수준의 시스템은 신경세포가 진화하기 오래 전부터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단순한 생물도 학습과 기억을 위한 기본적 시스템은 우리와 꼭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학습을 한다고 이상한 일은 아니다.

모든 종류의 학습이 이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개체, 신경망, 세포와 분자의 각 수준에서 대칭적인 것은 아니다. 좀 더 복잡한 학습은 신경망 수준 이하에서는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조엘 스폴스키의 말대로 모든 쓸만한 추상화에는 어딘가에 구멍이 존재한다. 단적인 예가 정신질환이다. 많은 정신질환은 분자 수준의 시스템에서 말썽이 시작된다. 이것은 세포, 그리고 신경망의 작동 방식을 바꾸고 마침내는 개체 수준까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유전적으로 cAMP 합성에 말썽이 생긴 초파리는 냄새와 전기충격을 연합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멀쩡할 때는 상관없지만, 무언가 뒤틀리기 시작하면 바닥까지 내려갈 수 밖에 없다.

덧. 프리온과 CPEB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김우재님이 사이언스타임즈에 연재하신 "광우병을 넘어" 3부작을 보시면 되겠다.
광우병으로 얼룩지는 ‘프리온’ 연구
최초의 생명 혹은 기억의 입자 ‘프리온’
‘프리온’ 발견이 생물학에 끼친 변화

by 아이추판다 | 2009/06/30 15:50 | 트랙백(1) | 덧글(11)

지나치게 기발한

mahlerian님께서 양신규 교수가 쓴 글을 링크해주셨는데 한 가지 코멘트 할 게 있다.

아들이 지금 6 학년인데 시험을 봐서 들어가는 중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뭘 가르치는가 봤더니, 수학시간에 탐정소설을 읽고 분석하고, 탐정 단편 소설을 쓰게 한다. 논리를 가르치는 것이란다. 그걸 친구들한테 읽히고 서로 점수를 주고 평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 평을 수학선생이 또 채점을 한다. 크리스마스 방학이 일주일인데 뭔가 하는 것 같아서 뭐 하느냐고 물어 봤더니 작년 고어-부시 선거 결과를 주별로 분석하는 숙제를 한다. 방학이 끝나면 Excel 로 표를 만들고 chart 를 만들고, powerpoint 로 슬라이드를 만들어서 자기들이 생각한 결론 어느 주에서 어떤 이슈 때문에 어떤 후보가 되었는가를 통계적으로 분석해서 발표하는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다. 이걸 개인이 하는 게 아니라 3 명이 한 조가 되어서 팀으로 한다. 소위 Collaboratory Learning 을 실습하고 있었다. 언제 문제 푸는 산수는 하느냐고 물어 봤더니, 그런 건 자기들은 일년에 두 달만 하면 다 안다고 한다.

양 교수가 말하는 것과 같은 활동 중심의 교수법은 한국에서도 이미 하고 있다. 오히려 활동이 과다해서 문제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활동들은 교육과정평가원 보고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개념이 충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피상적이 되기 쉽다.

활동 중심의 교육을 할 때는 재미있거나 기발한 활동에 치우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인용한 문단에서 "탐정 소설 읽고 쓰기"가 그렇다. 한 영역에서 습득한 지식이나 기술을 다른 영역에 적용하는 것을 전이(transfer. 정신분석에서 '전이'는 transference)라고 하는데 전이는 두 영역이 멀어짐에 따라 급격히 감소한다.

지식이 전이할 수 있는 폭이 얼마나 좁은 지 한 가지 연구를 보자. 1985년 Carraher 등은 노점상을 하며 학교를 다니는 브라질 소년들에 대해 연구를 했다. 이 아이들한테 길에서 35원짜리 레몬 5개가 얼마인지는 98%가 암산으로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데, 실험실로 데려와 35 곱하기 5를 시키면 37%만이 정확하게 대답한다. 재밌게도 '실험실'에서 35원짜리 레몬 5개가 얼마냐고 물어봐도 74%만이 정확하게 대답한다.

브라질 아이들은 거리에서 배운 지식을 학교 맥락으로 전이시키는데 실패했지만 우리 같은 경우에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현실적 맥락으로 전이시키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러 가지 맥락에서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게 할 필요가 있다. 대선 결과를 가지고 통계적으로 분석해서 발표하게 하는 것과 같은 활동은 학생들이 통계적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매우 좋은 활동이다. 그러나 탐정 소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탐정 소설에서 나오는 '논리'는 수학은 고사하고 법정에서도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35 곱하기 5와 35원짜리 레몬 5개 사이의 전이도 쉽게 이뤄지지 않는데 탐정 소설의 논리를 가지고 수학의 논리를 가르치는 건 무리라고 본다. 굳이 뭔가 재미있고 동기부여될만한 거라면 수도쿠라든지 논리 퍼즐도 있는데 탐정 소설은 지나치게 '기발'하다.

참고문헌

Carraher, T. N., Carraher, D. W., & Schliemann, A. D. (1985). Mathematics in the streets and in the schools. British Journal of Developmental Psychology, 3, 21-29.

by 아이추판다 | 2009/04/13 10:41 | 트랙백(1) | 덧글(35)

"슬램덩크"로 보는 교육

학급 규모와 교육의 생산성
학급 규모 감축: 역사적 경험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남들이 다 해놓은 걸 일단 배우는 것이다. 요즘 창의력 중심의 교육이라든지 토론 중심의 교육이라든지 이런게 유행인데 이런 것들은 공부에서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만 하더라도 2천년이 넘는 수학 연구의 산물인데 피타고라스, 아르키메데스, 뉴턴, 가우스, 오일러, 페르마가 한 반에 있지 않고서야 학생들이 '창의적'으로 '토론'한다고 스스로 알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스럽게도 남이 해놓은 것을 배우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연구가 잘 되어 있어서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정도인지는 분명히 답이 나와 있다. 그 답을 만화 "슬램덩크"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지역 예선을 통과하고 전국 대회를 1주일 앞둔 북산고. 그러나 북산고의 다크호스(?)인 강백호는 뛰어난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풋내기인지라 할 줄 아는 것은 리바운드, 골밑 슛, 레이업 슛, (가끔) 덩크슛 정도 밖에 없다. 따라서 골밑을 벗어나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는 게 강백호의 약점. 안 선생님은 1주일 안에 강백호에게 2점 슛을 가르치려고 한다. 그렇다면 강백호는 무엇을 해야할까?

남들이 해놓은 걸 공부한다는 것은 곧 남들이 해놓은 걸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가 어떤 방식으로 학습하고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지에 대해서는 광어와 도다리와 함께 신경망의 꿈을에서 설명한 바 있다. 어떤 정보를 접하면 우리의 뇌는 반드시 이를 기억한다. 다만 주의, 처리의 깊이, 다른 지식과 관계 등에 따라 기억의 강도가 다를 뿐인데 약하건 강하건 같은 정보에 반복적으로 노출이 되면 기억은 점점 강해지게 된다. 따라서 학습의 제1원리는 '반복'이다.

어떤 학습법도 이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학습법이란 반복을 효율적으로 하거나 덜 지겹게 해주는 것 뿐이지 반복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반복학습은 신경망 자체의 특성이기 때문에 뇌를 직접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이라도 있지 않는한 우리는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가 번역되고 나서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사실 이 '법칙'은 매우 오래전부터 관찰된 것인데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역시나 '반복'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반복만 많이하면 될까? 그렇지 않다. 강백호가 2만 번의 슛을 연습하는 동안 안선생님과 친구들이 무엇을 했는지 보자.

안선생님과 친구들은 수행에 대한 측정, 기록, 평가(동영상 촬영, 슛 성공 기록), 즉각적인 피드백("팔꿈치가 벌어지면 모두가 주의를 줘요"), 잘못된 부분의 교정("이렇게.. 조이면") 그리고 그림에는 없지만 적절한 칭찬이나 목표 제시("북산의 비밀병기"), 경쟁(서태웅)을 통한 동기부여로 강백호의 슛 연습을 보조 한다. 이런 형태의 반복 학습이 가장 효율적인 학습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프레임으로 현재의 한국 교육을 바라보자.

안선생님이 슛을 던지고 강백호는 구경만 한다 (교실강의)
강백호 혼자 슛 연습을 한다. 기록도 평가도 피드백도 없다 ('자율'학습)
시험을 보아 골의 개수만 세서 보상이나 처벌을 한다 (내신, 수능)


그러면 흔히 사교육에 대한 저렴한 대안으로 여겨지는 EBS 수능강의와 같은 정책은 어떨까?

안선생님이 슛하는 모습을 녹화해서 보여준다 (EBS 수능강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강백호의 슛 연습을 도와주는 사람은 6명(안선생님, 소연이, 호열이, 해동중학 트리오)이나 된다. 그렇다면 효율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어쨌든 학급 규모를 줄이는 게 선행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아니 꼭 그렇지 않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이 학급 규모 감축에서 핵심은 '학급 규모' 자체가 아니라 '개인 교습'에 있다. 그리고 이 '개인 교습'이란 단순히 1:1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측정, 기록, 평가, 피드백, 교정, 동기부여 등등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위해 꼭 학급 규모가 감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 연구에 따르면 학급 규모를 30명에서 15명으로 줄이나, 학급 규모는 그대로 두고 교사를 2명으로 늘리나 학업 성취도에는 별 차이가 없다. 학급 규모 감축 정책에서 예산의 대부분은 시설 확충에 소요되는데 돈을 생각하면 교사를 늘리는 편이 효율적이다. 물론 좁은 공간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탁한 공기는 학급 규모를 줄여야만 해결되지만 여기서는 일단 제쳐두자.

한 걸음 더 나가면 굳이 교사를 늘리지 않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교육은 가능하다. 강백호의 경우도 교사를 늘리는 대신 친구들이 교사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토론 학습이나 협동 학습의 경우 토론이나 협동에 어떤 마술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학생들이 서로에 대해 개인 교습의 기능을 수행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것이다. 그런 기능이 없다면 토론이나 협동 학습은 시간 낭비다.

이런 학습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할 수도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같은 문제집을 반복해서 풀어라"거나 "오답노트를 만들어라" 같은 충고를 한 번 쯤 들어봤을 텐데 이것도 같은 이유다. 다시 말해 원리는 하나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교육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교육을 둘러싼 인센티브가 변하지 않아서이고(학벌주의 등), 또하나는 교육에 대한 선입관에 얽매여있기 때문이다. 이런 선입관 중에 제일 큰 문제가 교육을 강의로 등치시키는 것이다. 사교육에 대응하기 위해 EBS 수능강의를 한다는 발상이 왜 나오겠는가? 그러나 강의는 아주 비효율적인 교육 방법이다. 개인교습의 효과에서 말했다시피 전통적인 교실 강의로 50% 수준인 학생을 개인교습을 하면 2%까지 상승한다. 동영상 강의는 좀 더 좋은 강의일 뿐이지 전문 과외 선생을 이길 수는 없다.

보통 교육정책에 대해 우파는 경쟁의 강화, 좌파는 재정의 확대를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쪽이든 교육의 질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핵심과는 동떨어져있기는 마찬가지다. 경쟁은 동기를 부여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지 모든 것이 될 수는 없다. 재정 확대는 이미 여러 번 얘기했지만 일단 들이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지만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학업 성취도 향상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이런 수단들이 아니라 앞에서 설명한 근본적 원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핀란드 교육 방법이 큰 관심을 끌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언론 등을 통해 일별한 바로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의 걸 베끼더라도 원리를 알고 베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오바마 한국 교육 따라하듯"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원리 없이 그저 베낀 교육 정책의 한 가지 사례가 바로 "수능"이다. 수능은 미국의 SAT를 베낀 것이고, SAT는 지능검사다. 일반적으로 지능, 특히 수능에서 측정하려는 유동지능은 언어 지능과 수리 지능으로 나누고 수능도 이 틀을 그대로 받아들여 언어 영역-외국어 영역과 수리탐구I-수리탐구II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수능이 처음 시행되었을 때 "이게 무슨 IQ검사냐?"와 같은 비판을 받았다. 아닌게 아니라 원래 지능검사인데 말이다. 그 결과 수능은 점점 산으로 가서 이제는 "학교 수업을 잘 들으면 잘 볼 수 있는 시험"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결국 문제 유형만 조금 바뀐 학력고사로 돌아간 것이다.

다시 원래의 얘기로 돌아와서 학습에 대한 기본적 이해 없이 핀란드식 교육을 베낀다면 내 예상으로는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된 미국의 구성주의 교육이나 일본의 유도리 교육, 또는 한국의 '이해찬식' 교육의 재탕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글이 길었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효율적인 학습이란 측정, 기록, 평가, 피드백, 교정, 동기부여 등이 이뤄지는 가운데 무수히 반복을 하는 것이다. 학급 규모를 꼭 줄이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런 교육은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교육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요즘 핀란드식이 뜬다니 그걸 베끼자"라는 태도로는 안된다. 이런 원리의 교육을 실현시키기 위해 '저렴한' 수단들은 얼마든지 있으며 이런 수단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 블로그의 방문자들 중에 IT 쪽에 발을 담그고 있거나 관심있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님 말고) 보통 IT를 활용해 교육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하면 동영상 강의를 생각하는데 앞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것처럼 원리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더 좋은 교육 방법이 가능하다. 다음 글에서는 보론 격으로 이러한 방법에 대해서 다뤄보고 이 시리즈를 마치도록 하겠다.

by 아이추판다 | 2009/04/05 20:28 | 트랙백(3) | 핑백(5) | 덧글(78)

광어와 도다리와 함께 신경망의 꿈을

간밤의 기괴한 꿈 (2017님)
"저" 꿈 얘기에 대한 내 생각 (2017님)

2017님의 꿈 이야기를 보고 꿈에 대해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기억을 더듬어 쓰는 거라 좀 부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중간부터 '어떤'이라는 말이 난무할텐데 그건 세부사항이 잘 기억이 안나서 그렇다. 일일이 찾아보기는 좀 귀찮고.. 하여간 대강 이렇다.

우리의 뇌는 신경들로 이뤄진 네트워크고 이 네트워크가 하는 일은 수학적으로 공간을 분할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림으로 친절하게 설명해보자. 2차원 평면 위에 빨간 점과 파란 점이 있다. 당장 생각나는 게 광어와 도다리인데 뭐 그거라고 해보자. 빨간점이 광어, 파란점이 도다리. 그러니까 아래 그림은 광어와 도다리의 속성을 가지고 2차원 표현한 것이다.
열심히 회를 쳐먹으면서(어감이 이상하지만 패스) 나름대로 광어와 도다리를 구분할 줄 알게된다는 것은 저 공간 어딘가에 선을 긋는 것과 같다. 주어진 데이터만 가지고는 아래 그림처럼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공간을 자를 수 있지만 대충 보기에 중간쯤에 까만 선처럼 긋는게 제일 그럴싸해보인다. 원래는 좀 수학적인 이유가 있지만 여기선 대충 그럴싸하게 보이는 방식으로 계속 공간을 분할하기로 하자.
그런데 만약 오늘 또 횟집에 갔는데 광어를 시켰더니 웬 도다리 같은 게 나왔다고 해보자. 점선으로 표시한 진한 빨간점이 새로 맛본 광어다. 오오.. 광어의 새로운 세계.
그러면 이제 새로운 경험에 발맞추어 학습이 이뤄지고 신경들 사이의 연결 강도가 변화한다. 자연히 2차원 공간 상에 표시한 광어와 도다리의 경계도 달라진다.
공간 상에 선 긋는거야 아무렇게나 그어도 그만이지만 사람의 신경이 그렇게 연결 강도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는 없다. 새로운 경험에 둔하다면 선이 천천히 이동할 것이고 민감하다면 빨리 변할 것이다. 그런데 어느 쪽이든 문제가 있다.

새로운 경험에 둔하면 학습이 이뤄지는 시간이 너무 오래걸린다. 그렇다고 새로운 경험에 지나치게 민감하면 아래처럼 기존의 경험을 싹다 무시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걸 파국적 간섭(catastrophic interference)라고 한다. 이래서야 모듬회 한 판만 시켜먹어도 수 십 년의 회 인생이 뒤집힐 것이다.

이런 딜레마에 대한 한 가지 대안은 두 종류의 학습 시스템을 다 가지는 것이다. 하나는 새로운 경험에 민감하고 하나는 둔감하게. 이것은 기억에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존재한다는 심리학적 관찰과도 일치한다.

RPG 게임은 처음엔 양한테 들이 받혀도 죽는 캐릭터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러다가 경험치를 계속 쌓으면 용도 때려잡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경험치 쌓는 게 좀 지겹다보니 똑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경험치를 자동으로 쌓아주는 프로그램도 나오고 그런다. 우리의 뇌도 비슷한데 일단 새로운 경험에 민감한 단기 기억에 먼저 학습이 되고 그 다음에 그 정보를 새로운 경험에 둔감한 장기 기억에 연타로 보내서 적당한 속도로 학습이 이뤄지게 만든다.

뇌에서 이런 기능을 하는 부위가 해마(hippocampus)다. 그저께 세상을 떠난 H.M.은 간질 때문에 측두엽 절제술을 받았고 그 결과 해마를 잃어 단기 기억만 있고 장기 기억으로 정보가 넘어가지 못하는 순행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incoming 폴더에 다운 받은 파일을 한 번씩 분류별로 폴더에 나눠 저장도 하고 안 볼 파일은 지우기도 하듯이 잠을 자는 동안 해마도 비슷한 작업들을 한다. 낮동안 학습한 정보들을 뇌의 각 부위로 전송해서 장기 기억에 저장하는 것이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 수면 주기를 겪는데 각 주기에 따라 뇌의 각 부위에서 해마로 정보가 전송되기도 하고 그 반대로 전송되기도 한다. 그래서 낮에 공부를 많이 하면 수면 주기의 비율도 달라지고, 특정 주기에 잠에서 깨우면 학습 효율이 저하되기도 한다.

이런 정보 정리 과정에서 우리는 꿈을 꾸게 된다. 따라서 주기에 따라 뇌에서 정보를 정리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꿈의 내용도 다르다. 어떤 주기에는 비현실적인 꿈을 꾸고 또 어떤 주기에는 현실적인 꿈을 꾼다. 이걸 어떻게 아냐하면 일단 재우고 뇌파를 보다가 깨운다. (나 같으면 이런 실험 절대 참여 안한다 --; )

뇌의 특정 부위가 손상된 사람들은 사람 얼굴을 혼동한다. 이런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다른 남자 얼굴을 자기 여동생 얼굴로 알아보고 "왜 너 얼굴에 수염이 났니?" 이런 경우가 있다. 꿈에서 겪는 일도 비슷한 게 아닐까하는 얘기가 있다. 꿈 속에서 어떤 남자 얼굴에 대한 정보가 정리되는 중인데 이 정보가 정상적인 얼굴 인식 프로세스를 따라가지 않으면(정리가 목적이므로 따라갈 필요도 없다) 꿈 속에서는 여동생 얼굴로 알아보고 그 결과 "여동생 얼굴에 수염이 난 꿈"을 꾸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확인된 가설은 아니지만 그럴싸하다.

하옇든 이런 이유로 꿈의 내용은 정리되는 정보의 내용들과 방식 등등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기억에서 꺼내는 과정은 항상 재구성된다. 예를 들어 미국 백인 대학생들에게 아주 낯선 아메리카 원주민 전래설화(대충 사냥을 갔다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배를 타고 따라갔다가 전쟁을 같이하고 집에 돌아왔다가 검은 것을 토하고 죽었다는 이 뭥미? 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좀 있다가 물어보면 헐리우드 영화처럼 완전히 재편집된 얘기를 한다. 또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상황(레스토랑 가서 밥먹고 뭐하고 집에 오는 아주 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해주지 않은 이야기(예를 들면 밥먹고 계산한 이야기)를 중간 중간에 끼워넣는다. 방금 들은 이야기도 이 모양이니 꿈 이야기도 별로 다르지 않거나 더 심할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말하는 그리고 듣는 꿈 이야기는 낮동안 경험한 것을 장기 기억에 저장하기 위해 수면 중에 온갖 정보가 들락날락거리면서 정리되는 와중에 생긴 찌그러기들을 가지고 잠이 깬 후에 그럴싸하게 재구성한 것이다. 그런 내용들이 아주 무의미하진 않고 어쨌든 일정한 경향을 띄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침대 맡에 공책을 놓고 자다 깨서 꾼 꿈의 내용을 적게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해보면 미국 사람들은 네덜란드 사람들보다 불안한 정서의 꿈을 더 많이 보고한다. 아마도 미국이 네덜란드보다 뭔가 살기 불안한 동네인 탓일 듯도 한데 그렇다고 이걸 과대해석해서 "깨어있을 땐 불안하지 않지만 불안한 정서의 꿈을 꾸는 건 무의식적으로 불안하다는 증거"라는 식으로 말해버리면 그건 좀 곤란하다. 컴퓨터에서 휴지통을 열어보니 파일이 다섯 개 있는데 파일명 첫글자만 따서 읽어보니 "문근영 만세"라고 해서 컴퓨터 주인이 문근영 빠라고 하면 좀 웃긴 거 아닌가!(응?).

어쨌든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꿈의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해석한다는 건 무리고 근거도 없다. 누군가는 프로이트를 들어 뭐라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도대체 "꿈의 해석"이 언제적 책이라고.. 차라리 지하철 송풍기에 발전기를 달고 말지.

by 아이추판다 | 2008/12/05 23:32 | 트랙백 | 핑백(3)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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