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평론

철학적 정신분석학과 평론

방명록에 어떤 분이 비밀글로 질문을 남겨주셨다.

아이추판다 님 안녕하십니까? 여쭤볼 게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에 관한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의 '학문'으로서 위치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치료법'인지 아니면 객관적으로 검증된 '학문'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고 싶구요.
요즈음 소설이나 영화 평론에서 정신분석을 들먹이는게 짜증이 나서요.
대부분의 필자들이 정신분석과 상관없는 비전공자(대부분 인문학)인데 평론마다 정신분석 안나오는데가 없으니 저 같은 무지렁이들은 읽기도 어렵고 평론에 신뢰를 가지기도 어렵습니다.
대부분 얼치기라는 심증이 있으나 객관적 물증이 없어서^^

우리는 아직 많은 정신장애의 원인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효과적인 몇 가지 치료법들이 있는데 정신분석학도 '그 중에 하나'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침소봉대해서 정신분석학 '이론'의 경험적 근거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잘못이다. 그건 정신분석학이 다른 치료법보다 더 효과적일 때나 가능한 소리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정신분석학의 이론이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그냥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효과적"이라는 게 정신분석학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가장 관대한 평가일 것이다. 이건 다른 치료법도 마찬가지다.

임상심리학이나 상담심리학과 같은 실천적 분야에서는 정신분석학이 치료법으로서 의의가 있지만 지각심리학이나 인지심리학과 같은 과학적 분야에서는 별 비중이 없다. 발달심리학 교과서에 프로이트의 발달 이론이 '잘못된' 이론으로 소개되고, 언어심리학 교과서에서 말실수에 대한 설명을 소개하면서 프로이트의 이름을 잠깐 언급하는 정도다.

프로이트는 원래 신경과학자였다가 먹고 살길이 없어서 의사로 개업을 한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정신분석학은 19세기판 이공계 위기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뇌든 마음이든 거의 알려진게 없었기 때문에 프로이트는 당시의 과학적 지식과 자신의 임상적 경험을 버무려서 어떻게든 최선의 이론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1890년대에 카밀로 골지는 신경세포 주위의 돌기에는 표면막이 없어서 신경세포들은 거미줄처럼 연결된 신경망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은 골지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골지가 만든 은 염색법을 이용해 뇌가 독립된 신경세포들로 이뤄져있음을 보였다. 이 업적으로 1906년에 골지는 은 염색법을 만든 공로로, 카할은 신경망의 기본구조를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다. 골지는 자신이 반대한 주장을 증명한 공로로 노벨상을 탄 셈인데, 그는 노벨상 수상연설에서도 자신의 이론을 옹호하면서 라몬 이 카할의 발견을 비난했다고 한다.

여기서 연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가 자신의 대표작인 "꿈의 해석"을 출간한 것은 1900년이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뇌의 기본단위가 신경세포라는 것조차 아직 확실치 않았던 시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프로이트의 오류에 대단히 관대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상대성 이론을 몰랐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게다가 프로이트는 라몬 이카할의 이론을 정신분석학과 조화시키기 위해 "과학적 심리학 초고"라는 논문을 쓴다. 여전히 말은 안되지만 나는 그가 노력이라도 했다는 데 크게 점수를 주고 싶다.

문제는 프로이트를 '철학'으로 재포장한 사람들에 있다. 이 사람들은 프로이트가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 역사적 맥락과 마음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려고 했던 그의 노력을 모두 날려버리고 정신분석학을 사변적 이론으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그런 지적 난동을 "프로이트의 '생물학적 편향'을 제거했다"며 우쭐해한다. 밥벌이 때문에 생물학을 손에서 놓아야 했지만 끝까지 그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프로이트가 들으면 밥숟가락을 집어던질 일이다.

1880년대에 헤르만 에빙하우스는 PAQ와 같이 무의미한 철자들을 외우고 일정 시간 후에 시험을 보는 방식으로 망각의 속도를 측정했다. 그래서 망각이 초반에는 빨리 이뤄지지만 후반에는 천천히 이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890년대에 윌리엄 제임스는 이러한 발견으로부터 기억은 1차 기억과 2차 기억으로 구분된다는 주장을 펼쳤고, 1900년에 뮐러와 필체커는 에빙하우스가 사용한 것과 비슷한 실험을 통해 1차 기억에서 2차 기억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기억은 무척 취약해서 그 시점에 다른 정보를 학습시키면 1차 기억이 2차 기억으로 전환되지 못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후에 심리학자들은 1차 기억을 단기 기억, 2차 기억을 장기 기억, 단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고착화로 명명했다. 이제는 단기기억, 장기기억, 고착화에 대해 신경 수준에서 행동 수준까지 방대한 사실들이 밝혀져있다.

프로이트는 1925년 "신비스런 글쓰기판에 대한 소고"라는 글에서 당시 유행하던 '신비스런 글쓰기판'이라는 장난감을 비유로 들어 기억의 이런 이중적 구조를 설명한다. 이 글은 프로이트의 대표적인 저작 중에 하나이고 철학적 정신분석학자들이 많이 인용하는 글이다. 그런데 조금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프로이트의 이 글을 읽기 전에 에빙하우스로부터 시작되어서 프로이트를 지나 현대에 이르는 기억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대해 먼저 공부할 것이다. 아마 프로이트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안 한다. 아마 에빙하우스나 제임스의 이름도 모를 것이다.

서울대 철학과의 김상환 교수는 라캉과 같은 철학적 정신분석학을 한국에 퍼트리려고 애쓰는 사람인데 기본적인 기억의 원리도 모르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라캉주의적 오바질) 이건 김상환이 한국의 얼치기라서 그런 게 아니다. 프랑스 '본토'에 가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 맹정현도 마찬가지의 헛소리를 한 적이 있다. (환각의 생리학) 역시 프랑스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김석은 심지어 학부 발달교과서에 있는 내용도 모른다. (18개월) 이들의 글을 읽어보면 기본 지식이 없다는 게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읽는 내가 당황스럽다.

고등학교 때 배우기로 평론은 시, 소설, 수필, 희곡과 함께 문학의 장르 중에 하나라고 한다. 평론에서 정신분석학을 동원하는 것, 문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평론도 어렵고 소설도 어려운데 평론과 환타지 소설을 크로스오버하니 얼마나 어렵겠나. 학부 교과서 수준의 지식도 없는 분들이 무의미한 단어만 조합해서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 글을 쓰니 그야말로 예술이다. 대단한 분들이다. 그러니 이런 분들의 글을 읽거든 짜증내지 말고, 도장 하나 파서 꾸욱 찍어주자. "참 잘했어요"라고.

by 아이추판다 | 2009/06/25 22:55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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