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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값을 계산하지 말라

1994년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6살이던 세르히오 히메네스(Sergio Jimenez)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채로 엄마가 모는 크라이슬러 미니밴의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그의 엄마가 신호를 위반하고 교차로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자동차가 시속 24Km로 옆을 들이받았고 미니밴은 전복됐다. 차의 뒷문이 열리면서 세르히오는 도로로 튕겨나갔고 죽었다. 세르히오의 가족은 뒷문에 결함이 있었다며 크라이슬러를 고소했다.

크라이슬러는 뒷문 잠금장치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 결함을 수정하려면 공정 비용이 10만 달러(1억원)가량 추가 지출되는 반면 탑승자를 위험에 빠트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분석 결과를 토대로 결함을 내버려두기로 했던 것이다. 배심원들은 문의 결함만이 아니라 크라이슬러의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비열한 경제적 분석을 문제 삼아 2억 5천만 달러(2천5백억원)의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부과했다.

위험은 적을 수록 좋다. 하지만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무제한의 비용을 감수할 수는 없다. 자동차에 에어백을 설치하면 사망 확률을 감소시킬 수 있다. 하지만 에어백 가격이 몇 백 만원씩 한다면 설치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기도 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추가 수당을 받기도 한다. 미국 정부는 이런 비용이나 수당을 토대로 사람들의 '목숨값'을 계산하는 데 대략 한 명 목숨에 3백만 달러(30억원), 1년 목숨에 10만 달러(1억원)라고 알려져있다. 예를 들어 죽을 확률이 0.001%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30억원X0.001%=3만원을 지출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목숨값'은 공공정책을 수행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비용 사이에 균형을 맞출 때 근거가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크라이슬러가 실시한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이 그렇게 냉혈한 행위로 비난받을만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런 분석은 크라이슬러만이 아니라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다 하는 것이고 심지어 정부도 한다. 그런데 크라이슬러는 비난을 받았다. 이외에도 여러 사건에서 배심원들은 제품의 결함을 알고도 비용편익분석에 따라 방치한 회사들에 거액의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부과했다.

한 실험에서 서로 다른 참여자들에게 다음의 사례를 제시했다. 1년에 4명 정도의 사망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해보자. 한 기업은 내부적으로 위험 방지 비용을 1인당 1천만 달러(100억원)까지 책정하고 있는데 이 위험을 방지하는데 드는 비용이 1억달러(1천억원)로 추정되서 위험을 방치했다. 또 다른 기업은 별 이유없이 이 위험을 방치했다. 실험 참여자들은 전자보다 후자를 비용편익분석을 한 기업을 더 심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기업의 안전 기준은 미국 정부 기준(30억원)보다 3배 이상 높았는데도 말이다.

요약하자면 목숨값 계산은 성욕과 같다. 누구나 하는 것이고, 다들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공공연히 드러내면 도덕적 혐오와 지탄의 대상이 된다. 설령 그 계산이 대단히 보수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말이다. 이런 연구들은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몇 가지 교훈을 던져준다. 한국 정부의 한 '고위 공무원'은 국민들이 위험성을 우려하는 식품에 대해 "싸고 맛있다"는 등등의 발언을 태연하게 해서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이 말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그 식품 1Kg을 먹고 죽을 확률이 0.001%보다 낮고 기존 식품보다 3만원 이상 싸다면 이 식품을 기꺼이 사먹는 게 다른 종류의 위험에 대한 태도와 비교할 때 일관성이 있다. 하지만 정부당국자라면 그것도 선출직 공무원이 그런 소릴 하면 안된다.

직업 관료나 전문가들이 내리는 판단과 일반 국민들의 판단 사이에 생길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괴리를 메꾸는 게 선출직 공무원의 중요한 임무다. 이 '고위공무원'은 그 임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면서 자기 정치 생명 깎아먹는 거야 보고 있기 즐거운데, 이 '고위공무원'의 임무 방기로 인한 혼란상은 보고 있기 영 찝찔하다.

by 아이추판다 | 2008/05/07 11:12 | 트랙백(2) | 핑백(1) | 덧글(7)

'국개론자'들을 위한 해결방법

6월17일 인민봉기가 일어난 뒤

작가 연맹 서기장은 스탈린 가(街)에서

전단을 나누어주도록 했다.

그 전단에는, 인민들이 어리석게도

정부의 신뢰를 잃어 버렸으니

이것은 오직 2배의 노동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다고 씌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부가 인민을 해산하여 버리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을까?


베르톨트 브레히트, '해결방법'.
- 1953년 6월 17일 동독 인민봉기 후에 쓴 시

by 아이추판다 | 2008/04/21 17:37 | 트랙백 | 덧글(4)

결국은 실력 문제

최장집과 총선에 대한 의견들

선거 이전에 이뤄진 사회, 문화, 경제, 정치에 걸친 '총체적 권력 투쟁'의 결과가 선거의 구도를 결정짓고, 그 구도가 선거 결과로드러나는 것이다. 국민들이 '근시안적 개발 환상'에 빠져있다면 '뉴타운 선거'가 되는 게 민주주의다. 그게 싫으면 '영도자'에게운명을 맡기는 길 밖에 없다.

"정당정치의 활성화,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당 구조 개편"과 같은 과제는 어차피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그러니 이번 총선에 대한 평가에 고려할만한 요소가 못된다. 그리고 정당정치가 활성화된다면 현재로서 그 기반은 '계급'보다는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진보신당이 의석을 못 얻은 건 그 당의 실력이 없는 탓이지 민주주의 탓이 아니다. 진보신당의 이념이 '실질적 민주주의'의 내용을 구성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는 3%도 되지 않는다. 진보신당을 지지하지 않는 97%의 유권자에게 진보신당은 친박연대의 민노당 버전 밖에 안된다.

노원과 고양의 유권자들은 '지역적 이해'에 따라 투표했다. 그 '이해'가 '환상'일 가능성은 농후하지만 앞의 그 97%에겐 '계급적 이해'가 '환상'으로 비춰질 것이다.

한 줄 요약: 결국은 실력문제

한국 민주주의의 현황과 '속류 최장집주의'

17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단독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18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153석으로 단독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집권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게 문제라면 둘 다 문제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가지고도 우왕좌왕한 것을 보면 꼭 의석이 많다고 실제로 그만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꼴로 보면 한나라당도 썩...

한 줄 요약: 이것도 결국은 실력문제

by 아이추판다 | 2008/04/16 12:51 | 트랙백 | 덧글(3)

대단히 만족스러운 선거 결과

한국의 민주주의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보더라도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다. 프랑스의 국민전선 같은 극우정당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야심차게 추진한 영어몰입교육이 '오해'가 되어 스러지는 과정은 적어도 한국의 민주주의가 건강하다는 걸 보여준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례를 들어 "이래도 이게 정상이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민주주의로서' 건강하고 정상적이라는 말이다. 역사상 등장했던 민주주의는 언제나 시궁창이었는데 그나마 고여서 썩는 물보다는 흐르는 시궁창이 낫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다. 항상 이상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면 그건 이미 인간계의 일이 아니다.

통합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행정부와 입법부를 계속 장악하고 있어야할만한 충분한 이유를 보여주지 못했다. 한나라당이 말아먹을 것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미래의 일이고, 열린우리당이 말아먹은 것은 이미 확실한 현재의 일이다. 뭘 말아먹었는지 얼마나 말아먹었는지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겠지만 집권여당이 정권말기에 당 간판을 내렸다면 하여간 무엇이든 심각하게 말아먹었다는 건 분명해보인다. 통합민주당은 확실히 말아먹었고 아직까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이렇다할만큼 말아먹은 일도 없다면(말아먹을 시간도 없었지만) 권력이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넘어가지 않는것이야말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딘가 고장나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2007~2008년의 경험은 폭발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시작했다가도 '말아먹으면' 한 순간에 정권이 날아가고, 당이 박살나고, 당 중진들이 낙엽처럼 선거에서 떨어지며 반대로 열렬한 지지자도 없고 심지어 대표적 공약마저 온 국민이 싫어하는 사람도 전 정권이 '말아먹으면' 정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이야말로 어느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결코 '말아먹을' 수 없게 만드는 민주주의 강력한 힘이라고 본다. 이명박이나 한나라당이 민주주의의 이 위력을 확실히 체감하고 있다면 그들이 어떤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고 속으로야 무슨 생각을 하든지 간에 운신의 폭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국가일 수록 투표율이 낮은데는 누굴 뽑아봐야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그 '마찬가지'라는 말에는 누굴 뽑아도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도 있지만 '나빠지지 않는다'는 것도 포함된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민주정 하에서 각각의 정치세력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또 유지하려고 하는 이상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 몇 안되는 선택지 중에 나쁜 것만 줄곧 고를 수도 있겠지만 1~2년 간격으로 선거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그런 악수의 연속은 그리 오랫동안 허용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누가 정권을 잡든지 그럭저럭 평균적인 국정 운영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는 정치체제다. 섣불리 평균 이상을 바란다면 '영도자'에게 운명을 맡기는 도박을 감행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이번 총선 결과는 '조금의 역겨움'만 참는다면 대단히 만족스럽다.

by 아이추판다 | 2008/04/10 23:39 | 트랙백(3)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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