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정신분석

설득력 없는 설득

프로이트 구하기 (라깡은 덤으로?) (aleph님)

aleph님께서 정신분석학을 둘러싼 이런저런 지형을 아주 잘 정리를 해주셨다. 아래 대목은 나로서도 평소 체감하고 있던 점인데..

하지만 철학, 사회/문화 비평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정신분석은 현대적이고 매우 설득력이  있는 담론이 된다. 이 분야의 이론가들이 정당화와 근거보다는 설득력이라는 기준에 더  치중해 있기 때문에 정신분석에 대한 과학적 비판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듯 보인다. 정신분석이 더 발전해서 해결될 문제라는 식으로 유보하거나 혹은 "마음의 과학"로서의  심리학적 이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철학이라는 식으로 슬쩍 도피하거나 말이다. 이쪽 노선을 따르게 되면 경험적인 이론이라기보다는 선험적인 이론, 과학이라기보다는 담론의 수사학에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는있는  듯 보이는데, 그렇다면 정신분석 자체를 어떤 근거 위에서 정당화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강조는 인용자)

강조한 대목을 보니까 짤방 하나가 떠올랐다.

나머지 포스터랑 TV 화면까지 다 바꾸려다 귀찮아서 중단..

어쨌거나 저 '이론가'들의 태도가 성립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근거도 없고 정당화도 안되는데 설득력은 있다는 게 말이지. 이 블로그를 눈팅하는 라캉주의자들의 '설득력'있는 설명을 기대해보겠다.

by 아이추판다 | 2009/07/24 01:25 | 트랙백 | 덧글(9)

라캉 위에 그어진 선

라캉을 모르면 막장인가효?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이 아닌가?
정신분석학과 심리학(한윤형)
일관성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재론(한윤형)
프로이트, 융, 라캉

1.

한윤형님은 일관성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신게 아닌가 싶다. "신약에 대한 임상실험 프로토콜을 폐지"라는 말을 어떻게 "신약개발을 금지"한다고 읽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다시 설명하자. 모든 치료는 철저한 경험적 검증, 다시 말해 자연과학적이고 통계적인 검증을 요구한다. 어떤 치료법에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고, 아무런 효과가 없는 치료법으로 돈과 시간을 낭비하다가 올바른 치료를 받을 기회를 놓쳐 건강을 해치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약의 경우 정해진 프로토콜에 따라 임상실험을 거치고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검증이 끝난 후에야 식약청의 허가를 받아 환자에게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약에 대한 경험적 검증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심리치료에 대한 경험적 검증도 당연하다. 한윤형님은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에서 심리학이 포용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말하지만, 당연한 검증을 포기하는 것은 포용성이 아니라 무원칙에 지나지 않는다.

2.

"한국 라캉과 현대정신분석학회"라는 곳이 있다. 한윤형님이 여러 차례 언급한 홍준기씨도 여기 회원이고 임원을 여러 차례 지낸 걸 보니 적어도 이쪽에서는 나름 명망있는 집단일 것이다. 이 '학회'의 회칙 2조는 다음과 같다.

라깡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현대 정신분석의 이론과 치료요법을 연구함으로써 정신의학, 심리학, 문학, 문화학, 사회학, 사회복지학, 언론학, 문예 및 영화비평, 미학, 법학 등 학문의 지평을 비판적으로 포괄하고, 현대의 사상 흐름에 연계하여 인간과 문화의 분석을 위한 새로운 이론과 방법론의 창출, 나아가 정신질환의 치료기술의 개발에 기여하고자 한다.

한윤형님은 한 댓글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라캉이 유행한 과정으로 볼 때, 라캉 모른다고 막장이라고 했던 그분이 라캉의 임상의로서의 유능함을 근거로 내세웠을 것 같진 않"다고 했지만 적어도 이 학회에 한정하자면 치료의 수단으로서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비평의 수단으로서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그렇게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라캉에게는 철학과 심리학이 한 몸이므로 심리학 쪽에서 창으로 찌르면 철학 쪽까지 꿰뚤릴 수 밖에 없다. 한윤형님의 말대로 지성세계의 지도에 선을 정확히 그으면 그 선은 라캉의 이론 위에 그어질 것인데, 그렇다면 라캉을 심리학 쪽으로 차주던지, 철학 쪽으로 데려가든지 아니면 임상과 비평을 두동강 내어 비평만 가져가든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라캉이 임상의 권위를 들고 철학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한 번 환영한 다음에 심리학을 들고 그 길을 뒤쫓아 가면 반칙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일관성도 설득력도 없다.

by 아이추판다 | 2008/03/14 02:47 | 트랙백 | 핑백(2) | 덧글(5)

프로이트, 융, 라캉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재론(한윤형)에 대한 답변.

일단 논점이 두 개기 때문에 하나만 먼저 짚고 넘어가자. 프로이트, 융과 라캉을 구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시대가 다르다. 심리학의 주류는 모두 4세대로 나눌 수 있는 데 1세대인 분트는 1832년생이다. 프로이트는 1856년생, 융은 1875년생이다. 2세대 게슈탈트 심리학의 베르트하이머는 1880년생. 코프카는 1886년생. 쾰러는 1887년생이다. 3세대 행동주의 심리학의 창시자인 파블로프는 1849년생이고, 그 마지막 대표자인 스키너는 1904년생이다. 1904년은 파블로프가 노벨생리학상을 수상한 해이기도 하다. 라캉은 1901년생이다. 4세대 인지주의 심리학에서 대표적인 인물인 사이먼은 1916년생, 촘스키는 1928년생이다. 요컨대 프로이트와 융은 심리학의 1, 2세대와 동시대 인물이고 라캉은 3, 4세대와 동시대 인물이다. 덧붙여, 촘스키가 스키너의 "Verbal Behavior"에 대한 서평을 출판한 것이 1959년. 라캉이 "프로이트로 귀환"을 주창한 것이 1953년이다. 다른 시대 사람이니 다른 기준으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다.

by 아이추판다 | 2008/03/13 18:26 | 트랙백 | 핑백(2) | 덧글(8)

일관성

라캉을 모르면 막장인가효?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이 아닌가?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한윤형)

한윤형님의 글에 답변하자면 이건 아주 간단한 문제다. 요컨대 일관성.

첫째.

WHO의 보고에 따르면 우울증은 협심증, 관절염, 천식,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보다 더 건강을 악화시키는 문제다. 심리적 건강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 상황이다. 임상심리학의 목적은 이런 상황 속에서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윤형님을 비롯해서 내가 만나본 정신분석학에 우호적인 심리학 비전공자들에게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부족해보인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의학시장 활성화를 위해 앞으로 신약에 대한 임상실험 프로토콜을 폐지하고, 의사의 개인적인 '철학'에 따라 환자를 치료할 수 있게하며, 그 근거는 몇 가지의 '사례연구'로 충분하다고 선언한다면 이 분들은 그때도 정신분석학에 보이는 것과 똑같은 우호적 태도를 취할까?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정신분석학/정신역동적 접근법의 치료 효과는 결코 다른 접근법보다 높지 않다. 임상적인 입장에서 라캉의 성과를 논의하려면 프로이트에서 뭘 빼고 뭘 넣었다는 구구한 얘기를 할 필요없이 치료 효과 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구체적인 내용은 효과를 확인한 다음에 할 일이다. 정신분석학이 환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 자체는 좋다. 만약 이것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면 그만큼 치료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치료효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정신분석학은 "관심은 있지만 실제로는 못하는" 무능한 관심에 지나지 않는다.

심리학이 인문학적 접근을 배제하기 때문에 정신분석학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지각, 인지, 생물 등 딱딱하고 건조한 하위분과와 달리 사회, 성격, 임상 등 말랑하고 축축한 하위분과들에서는 인문학적 접근이 상당히 많이 활용된다. 임상심리학에서 인본주의적 접근 같은 걸 자연과학적이라고 하기는 곤란하지 않은가. 심리학에서 정신분석학이 차지하는 위상은 정신분석학이 보여준 치료효과에 비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신분석학 스스로의 무능탓이지 남탓이 아니다. 문제는 정신분석학자들이 종종 자기들의 무능을 인문학으로 위장하려는 데 있다. 만약 인문학적이라고 해서 임상적 무능함이 용서될 수 있다면 신체적 건강의 문제에도 똑같은 일관성을 보여야 한다.

둘째.

라캉을 비롯해 정신분석학이 철학이나 예술 비평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알고 있고 그 자체로는 문제 삼을 생각이 없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황당무계한 동화지만 온갖 철학자들이 즐겨 인용하고 자기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쓰듯이, 라캉이 임상적으로 의미가 없더라도 철학이나 비평을 위해 인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임상적 문제를 제기했을 때 철학과 비평에 속할 뿐이라고 대답하는 사람 중에 라캉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정확히 똑같은 태도로 읽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또, 문제를 반대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철학이나 비평을 위해 라캉을 읽는 사람들 중에 몇 명이나 칸트를 이해하기 위해 프린키피아를 읽고, 서양철학 전반을 위해 성경을 읽었을까? 이런 일관성이 없다면 "라캉 읽기"라는 행위가 말해주는 것은 둘 중 하나를 의미할 뿐이다. 그걸 진심으로 믿고 있거나, 아니면 겉멋이거나.

by 아이추판다 | 2008/03/13 10:36 | 트랙백(1) | 핑백(2) | 덧글(5)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이 아닌가?

라캉을 모르면 막장인가효?

정신분석학이 심리학이 아니라는 댓글에 대해

첫째, 마음을 다루는 학문을 심리학(psychology)이라고 한다면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이 마음 외의 다른 무엇을 다루지 않는바에야 그 일부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신분석학이 심리학의 주류 경향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학문 수준에서 분립될 수는 없다.

둘째, 미국 심리학회 APA에는 모두 56개 분과가 있다. 이중 임상 영역에 속하는 분과학회는 임상심리학회(제12분과), 건강심리분과(제38분과), 정신분석분과(제39분과), 임상신경심리분과(제40분과)이다. 적어도 APA가 규정하고 있는 심리학의 범위에는 정신분석학이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권석만 교수의 글에서도 볼 수 있지만 APA만이 아니라도 임상심리학자들은 정신분석학 또는 정신역동적 접근법이 임상심리학의 한 부분이라고생각한다.

넷째, 결정적으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 자신은 정신분석학을 심리학의 한 부분으로 정의했다.

심리학자 중에 정신분석학이 심리학의 일부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있다. 이 사람들은 정신분석학이 다른 학문이라는 것이 아니고 그냥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중에 정신분석학이 심리학의 일부가 아니라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도대체 뭘 분석하는 걸까?

by 아이추판다 | 2008/03/12 01:07 | 트랙백(2) | 핑백(3)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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