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을 모르면 막장인가효?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이 아닌가?정신분석학과 심리학 (한윤형)한윤형님의 글에 답변하자면 이건 아주 간단한 문제다. 요컨대 일관성.
첫째.
WHO의 보고에 따르면 우울증은 협심증, 관절염, 천식,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보다 더 건강을 악화시키는 문제다. 심리적 건강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 상황이다. 임상심리학의 목적은 이런 상황 속에서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윤형님을 비롯해서 내가 만나본 정신분석학에 우호적인 심리학 비전공자들에게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부족해보인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의학시장 활성화를 위해 앞으로 신약에 대한 임상실험 프로토콜을 폐지하고, 의사의 개인적인 '철학'에 따라 환자를 치료할 수 있게하며, 그 근거는 몇 가지의 '사례연구'로 충분하다고 선언한다면 이 분들은 그때도 정신분석학에 보이는 것과 똑같은 우호적 태도를 취할까?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정신분석학/정신역동적 접근법의 치료 효과는 결코 다른 접근법보다 높지 않다. 임상적인 입장에서 라캉의 성과를 논의하려면 프로이트에서 뭘 빼고 뭘 넣었다는 구구한 얘기를 할 필요없이 치료 효과 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구체적인 내용은 효과를 확인한 다음에 할 일이다. 정신분석학이 환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 자체는 좋다. 만약 이것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면 그만큼 치료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치료효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정신분석학은 "관심은 있지만 실제로는 못하는" 무능한 관심에 지나지 않는다.
심리학이 인문학적 접근을 배제하기 때문에 정신분석학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지각, 인지, 생물 등 딱딱하고 건조한 하위분과와 달리 사회, 성격, 임상 등 말랑하고 축축한 하위분과들에서는 인문학적 접근이 상당히 많이 활용된다. 임상심리학에서 인본주의적 접근 같은 걸 자연과학적이라고 하기는 곤란하지 않은가. 심리학에서 정신분석학이 차지하는 위상은 정신분석학이 보여준 치료효과에 비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신분석학 스스로의 무능탓이지 남탓이 아니다. 문제는 정신분석학자들이 종종 자기들의 무능을 인문학으로 위장하려는 데 있다. 만약 인문학적이라고 해서 임상적 무능함이 용서될 수 있다면 신체적 건강의 문제에도 똑같은 일관성을 보여야 한다.
둘째.
라캉을 비롯해 정신분석학이 철학이나 예술 비평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알고 있고 그 자체로는 문제 삼을 생각이 없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황당무계한 동화지만 온갖 철학자들이 즐겨 인용하고 자기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쓰듯이, 라캉이 임상적으로 의미가 없더라도 철학이나 비평을 위해 인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임상적 문제를 제기했을 때 철학과 비평에 속할 뿐이라고 대답하는 사람 중에 라캉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정확히 똑같은 태도로 읽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또, 문제를 반대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철학이나 비평을 위해 라캉을 읽는 사람들 중에 몇 명이나 칸트를 이해하기 위해 프린키피아를 읽고, 서양철학 전반을 위해 성경을 읽었을까? 이런 일관성이 없다면 "라캉 읽기"라는 행위가 말해주는 것은 둘 중 하나를 의미할 뿐이다. 그걸 진심으로 믿고 있거나, 아니면 겉멋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