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정신분석학

철학적 정신분석학과 평론

방명록에 어떤 분이 비밀글로 질문을 남겨주셨다.

아이추판다 님 안녕하십니까? 여쭤볼 게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에 관한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의 '학문'으로서 위치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치료법'인지 아니면 객관적으로 검증된 '학문'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고 싶구요.
요즈음 소설이나 영화 평론에서 정신분석을 들먹이는게 짜증이 나서요.
대부분의 필자들이 정신분석과 상관없는 비전공자(대부분 인문학)인데 평론마다 정신분석 안나오는데가 없으니 저 같은 무지렁이들은 읽기도 어렵고 평론에 신뢰를 가지기도 어렵습니다.
대부분 얼치기라는 심증이 있으나 객관적 물증이 없어서^^

우리는 아직 많은 정신장애의 원인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효과적인 몇 가지 치료법들이 있는데 정신분석학도 '그 중에 하나'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침소봉대해서 정신분석학 '이론'의 경험적 근거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잘못이다. 그건 정신분석학이 다른 치료법보다 더 효과적일 때나 가능한 소리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정신분석학의 이론이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그냥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효과적"이라는 게 정신분석학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가장 관대한 평가일 것이다. 이건 다른 치료법도 마찬가지다.

임상심리학이나 상담심리학과 같은 실천적 분야에서는 정신분석학이 치료법으로서 의의가 있지만 지각심리학이나 인지심리학과 같은 과학적 분야에서는 별 비중이 없다. 발달심리학 교과서에 프로이트의 발달 이론이 '잘못된' 이론으로 소개되고, 언어심리학 교과서에서 말실수에 대한 설명을 소개하면서 프로이트의 이름을 잠깐 언급하는 정도다.

프로이트는 원래 신경과학자였다가 먹고 살길이 없어서 의사로 개업을 한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정신분석학은 19세기판 이공계 위기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뇌든 마음이든 거의 알려진게 없었기 때문에 프로이트는 당시의 과학적 지식과 자신의 임상적 경험을 버무려서 어떻게든 최선의 이론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1890년대에 카밀로 골지는 신경세포 주위의 돌기에는 표면막이 없어서 신경세포들은 거미줄처럼 연결된 신경망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은 골지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골지가 만든 은 염색법을 이용해 뇌가 독립된 신경세포들로 이뤄져있음을 보였다. 이 업적으로 1906년에 골지는 은 염색법을 만든 공로로, 카할은 신경망의 기본구조를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다. 골지는 자신이 반대한 주장을 증명한 공로로 노벨상을 탄 셈인데, 그는 노벨상 수상연설에서도 자신의 이론을 옹호하면서 라몬 이 카할의 발견을 비난했다고 한다.

여기서 연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가 자신의 대표작인 "꿈의 해석"을 출간한 것은 1900년이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뇌의 기본단위가 신경세포라는 것조차 아직 확실치 않았던 시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프로이트의 오류에 대단히 관대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상대성 이론을 몰랐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게다가 프로이트는 라몬 이카할의 이론을 정신분석학과 조화시키기 위해 "과학적 심리학 초고"라는 논문을 쓴다. 여전히 말은 안되지만 나는 그가 노력이라도 했다는 데 크게 점수를 주고 싶다.

문제는 프로이트를 '철학'으로 재포장한 사람들에 있다. 이 사람들은 프로이트가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 역사적 맥락과 마음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려고 했던 그의 노력을 모두 날려버리고 정신분석학을 사변적 이론으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그런 지적 난동을 "프로이트의 '생물학적 편향'을 제거했다"며 우쭐해한다. 밥벌이 때문에 생물학을 손에서 놓아야 했지만 끝까지 그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프로이트가 들으면 밥숟가락을 집어던질 일이다.

1880년대에 헤르만 에빙하우스는 PAQ와 같이 무의미한 철자들을 외우고 일정 시간 후에 시험을 보는 방식으로 망각의 속도를 측정했다. 그래서 망각이 초반에는 빨리 이뤄지지만 후반에는 천천히 이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890년대에 윌리엄 제임스는 이러한 발견으로부터 기억은 1차 기억과 2차 기억으로 구분된다는 주장을 펼쳤고, 1900년에 뮐러와 필체커는 에빙하우스가 사용한 것과 비슷한 실험을 통해 1차 기억에서 2차 기억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기억은 무척 취약해서 그 시점에 다른 정보를 학습시키면 1차 기억이 2차 기억으로 전환되지 못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후에 심리학자들은 1차 기억을 단기 기억, 2차 기억을 장기 기억, 단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고착화로 명명했다. 이제는 단기기억, 장기기억, 고착화에 대해 신경 수준에서 행동 수준까지 방대한 사실들이 밝혀져있다.

프로이트는 1925년 "신비스런 글쓰기판에 대한 소고"라는 글에서 당시 유행하던 '신비스런 글쓰기판'이라는 장난감을 비유로 들어 기억의 이런 이중적 구조를 설명한다. 이 글은 프로이트의 대표적인 저작 중에 하나이고 철학적 정신분석학자들이 많이 인용하는 글이다. 그런데 조금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프로이트의 이 글을 읽기 전에 에빙하우스로부터 시작되어서 프로이트를 지나 현대에 이르는 기억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대해 먼저 공부할 것이다. 아마 프로이트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안 한다. 아마 에빙하우스나 제임스의 이름도 모를 것이다.

서울대 철학과의 김상환 교수는 라캉과 같은 철학적 정신분석학을 한국에 퍼트리려고 애쓰는 사람인데 기본적인 기억의 원리도 모르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라캉주의적 오바질) 이건 김상환이 한국의 얼치기라서 그런 게 아니다. 프랑스 '본토'에 가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 맹정현도 마찬가지의 헛소리를 한 적이 있다. (환각의 생리학) 역시 프랑스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김석은 심지어 학부 발달교과서에 있는 내용도 모른다. (18개월) 이들의 글을 읽어보면 기본 지식이 없다는 게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읽는 내가 당황스럽다.

고등학교 때 배우기로 평론은 시, 소설, 수필, 희곡과 함께 문학의 장르 중에 하나라고 한다. 평론에서 정신분석학을 동원하는 것, 문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평론도 어렵고 소설도 어려운데 평론과 환타지 소설을 크로스오버하니 얼마나 어렵겠나. 학부 교과서 수준의 지식도 없는 분들이 무의미한 단어만 조합해서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 글을 쓰니 그야말로 예술이다. 대단한 분들이다. 그러니 이런 분들의 글을 읽거든 짜증내지 말고, 도장 하나 파서 꾸욱 찍어주자. "참 잘했어요"라고.

by 아이추판다 | 2009/06/25 22:55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9)

살인의 해석

어제 와플이 맛있어서 한 입 베어물면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 같다는 카페를 찾아갔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긴 하더라. 날씨가 맑아서. 원래는 와플에 커피시켜놓고 된장질하면서 논문이나 읽으려고 했는데 가게 서가에 "살인의 해석"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출간될 때 언론에서 친 설레발이 기억나 꺼내서 좀 읽다가 결국 집에 오는 길에 사서 오늘 다 읽었다.

이 책은 간단히 말해 "20세기초 뉴욕에서 프로이트가 살인사건의 해결에 개입한다는 설정을 장식으로 덧붙인 아마추어 미국 작가의 밀실살인 추리소설"이다. 이 장식이 주는 소소한 재미도 있고 추리소설로서도 시간 때우기엔 괜찮지만 그 정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이 단 한 구절 때문이었다.

내 인생에서 그 세 시간만큼 생생했던 순간은 없었다. 호객꾼들, 소리치는 아이들, 재미를 찾아 코니 아일랜드에 온 관광객들 틈에서 오직 우리 넷만이 인간의 자기 인식에 대한 지식의 최전선을 넘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땅으로 들어가서는, 이제껏 아무도 걷지 않은, 그렇지만 언젠가는 전세계가 따라올 길을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 - 꿈, 의식, 가장 비밀스러운 욕망들 -은 영원히 변해버릴 것이다. - 67쪽.


by 아이추판다 | 2008/06/24 01:22 | 트랙백 | 덧글(3)

라캉, 과학, 철학 관련글 목록

너무 글들이 많아서 일단 목록 정리. 빠진 것, 순서 잘못된 것 있으면 댓글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한동안 최상단에 표시됩니다)
  1. 라캉을 모르면 막장인가효?(아이추판다)
  2.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이 아닌가?(아이추판다)
  3. 정신분석학과 심리학(한윤형)
  4. 라캉 논쟁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노정태)
  5. 일관성(아이추판다)
  6.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재론(한윤형)
  7. 논쟁의 효과, 그리고 인문학과 과학(한윤형)
  8. 프로이트, 융, 라캉(아이추판다)
  9. 라캉 위에 그어진 선(아이추판다)
  10. 라캉과 정신의학, 그리고 관념론(노정태)
  11. 라캉을 읽지 않겠다 - 한국라깡학회 저널을 보고(새로운 세상)
  12. 1000명(아이추판다)
  13. 라캉적 임상 진단 및 치료(노정태)
  14. 과학학은 반과학주의인가?(아이추판다)
  15. 메타 이론, 과학, 물리주의(한윤형)
  16. 과학인 것과 과학이 아닌 것(노정태)
  17. 쿤, 과학학, 김재권, 그리고 해킹(아이추판다)
  18. 라캉과 심리학의 화해 가능성(이상한 모자)
  19.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 - 아이추판다 님과 노정태 님에게 답변(한윤형)
  20. 과학과 철학에 대한 논쟁을 넘어(노정태)
  21. 콰인 가라사대(아이추판다)
  22.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하늘빛마야)
  23. 라캉 논쟁에 대한 생각 정리(한윤형)
  24. "과학에서 인증받지 못한 정신분석학이 철학적 이론을 구성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 - 하늘빛마야 님께(한윤형)
  25. 쪼가리 : 라캉의 학문이 철학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하늘빛마야)
  26. 쪼가리 : 딱히 끼어들 생각은 없었거늘(하늘빛마야)
  27. 내성을 믿지 말라(아이추판다)
  28. 아리스토텔레스와 귀머거리 곤충(노정태)
  29.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1)(하늘빛마야)
  30. 철학 오타쿠 (아이추판다)
  31.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2)(하늘빛마야)
  32. 성공하지 못한 라캉 토벌 작전 (한윤형)
  33.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3)(하늘빛마야)
  34. 독해 (아이추판다)
  35. 완전한 몰이해 (노정태)
  36.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4) (하늘빛마야)
  37. 대륙철학의 존재 근거와 '라캉 논쟁'의 후반전 (노정태)
  38. 라캉 논쟁 정리글 (한윤형)
  39.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5) (하늘빛마야)
  40. 프로이트가 옳았다 (아이추판다)
  41. 알기 전에 결정하기 (아이추판다)
  42. 설득력을 계산하기 (아이추판다)

이후에 작성한 라캉 관련 글들
  1. 라캉주의식 설명법?
  2. 이상한 홍준기
  3. 35년전
  4. 대화와 존중
  5. 인문학적 제어론 (2)
  6. 아기들의 시야 : 라캉의 거울단계에 대해
  7. 18개월
  8. 한 편의 만담 : 라캉의 인용
  9. 생의학/보건 저널인 Medline
  10. 때려달라면
  11. 라캉주의자들과 조중동
  12. 라캉주의자들과 창조론자들
  13. 전기장의 신호
  14. 라캉주의자들에게 필요한 것
  15. 서로를 바보로 만드는 짓거리
  16. 환각의 생리학

by 아이추판다 | 2008/04/13 23:59 | 트랙백(2) | 핑백(4) | 덧글(17)

프로이트가 옳았다

마음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블로그에 올리는 짤막한 글 하나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방대한 지식들을 요구한다. 괴델의 정리에 대해 댓글로 설명해달라는 대답만큼이나 이 질문에 답변하라는 요구는 좀 터무니 없는데가 있다. 하지만 목록으로 정리한 것만으로도 40개에 가까운 글을 주고 받은 이 논쟁을 지켜본 관전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이 논쟁과 무관하게라도 이 문제는 한 번 쯤 거론할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몇 편의 글로 나눠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첫 번째 글이다.

무엇보다도 정신분석을 가르치고 배우는 데 어려움이 따릅니다. 여러분들은 의학 강의에서 <보는>데만 익숙해져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해부학 표본을 보거나 화학 반응에서 나타나는 침전물, 신경을 자극했을 때 일어나는 근육 수축 등을 관찰해왔습니다. (중략)

우리 환자의 가족들 중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들은 - 그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만이 깊은 인상을 주며, 그들을 감동시키는 최상의 방법은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중략)

여러분들이 정신 의학 강의를 듣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역사학 강의를 들으러 왔다고 한 번 가정해 보십시오. 교수가 여러분들에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생애와 전쟁 중의 위대한 행동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대체 어떠한 동기로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의 진실성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처음 보기에는 그런 일을 설명해서 이해시킨다는 것은 정신분석학의 경우보다 더 힘든 일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역사학 교수라는 사람도 여러분들처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쟁에 참가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략) 여러분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관한 모든 보고가 반드시 믿을 만한 것은 아니며 그 세세한 사실들 하나하나는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실재(實在) 자체를 의심하면서 그 강의실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판단은 주로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고려하고 나서 내려질 것입니다. (중략) 두번째로, 구해볼 수 있는 모든 역사학 문헌들이 그 사건을 대략 비슷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또 오래된 문헌들을 검증해 보려고 할 때도, 그렇게 증언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을만한 그럴듯한 동기와 그 증거들이 서로 일치하고 있는가 하는 두 가지 요소를 고려해볼 것입니다. (중략)

여러분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객관적인 확인이라는 것도 없고 그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가능성도 없는 것이라면 정신분석학을 도대체 어떻게 배울 수 있으며 그 주장의 진실성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배운다는 것은 실제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중략)

정신분석은 정신을 감정, 사고, 의지와 같은 과정으로 정의하며 무의식적인 사고나 무의식적인 의지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입장 때문에 냉정한 과학성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의 호감을 잃어비리게 되었고 정신분석은 어둠 속에서 집을 짓고 흐린 물속에서 낚시를 하려는 공상적인 신비론일 뿐이라는 의심을 사게 되었습니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강의", 임홍빈, 홍혜경 역, 열린책들, 2003, 19-27쪽.

프로이트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만을 실재적인 것으로 고려하는 태도를 비판하면서 정신분석적 작업을 역사가의 작업과 비교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만나본 사람은 더이상 살아있지 않고 그에 대한 기록이나 유물들에도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런 기록이나 유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실재했다는 전제를 통해 잘 설명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당대의 과학관에 썩 잘 부합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의 일부 영역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곧 축출되었다.

흔히 사람들은 마음을 과학적으로 탐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마음은 어떤 규칙에도 종속되지 않는 완전히 자율적인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 위에서는 마음은 과학이 아니라 어떤 학문적 방법론도 적용될 수 없다. 또 하나는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만이 '객관적'인 검증을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과학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특히 이 두번째 이유는 한때 과학자들이 프로이트를 축출했던 논거였고, 이제는 라캉을 과학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논거로 사용되고 있다.

둘째, 라캉 이론이 인간 정신의 일부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잘 설명한다고 생각해요. 제 마음도 분석되고, 남의 마음도 분석되고, 그걸로 드라마 비평도 하고 영화 비평도 하고 그러는 걸요. 다만 문제는, 임상의 영역에서 (라캉을 포함한) 정신분석학적 접근이 마음의 병을 고치는데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아마도 어떤 이론이 마음의 구조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실험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병을 고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을 거라는 사실에 저 역시 동의합니다. 동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요. 그러나 비록 병을 고친다는 것이 가장 강력한 잣대일지라도, 그 잣대가 그 자체로 전부는 아닌 만큼, 그것만으로 "라캉 이론은 마음에 대해 전혀 설명하고 있는 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과하지 않겠냐는 생각입니다.

- 라캉 논쟁에 대한 생각 정리(한윤형)

한윤형님이 라캉을 옹호하는 방법은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옹호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과 똑같다. 차이점이라면 프로이트는 이것이 과학적이라고 생각했고, 한윤형님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프로이트가 살았던 시대라면 과학자들은 한윤형님에게 동의했겠지만, 오늘날이라면 프로이트에게 동의할 것이다.

"경험주의의 두 독단"에서 콰인은 논리학의 스콜렘-뢰벤하임 정리부터 "과소결정 테제"를 제창한다. 동일한 경험을 설명하는 무한히 많은 이론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경험은 단독적으로 이론을 결정하지 못한다. 따라서 보고 만질 수 있는 대상에 대해서도 우리는 '객관적' 증명을 할 방법이 없다. 피상적인 생각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심각한 공격으로 비칠지도 모르겠지만 콰인 자신의 의도도 그렇지 않거니와 실제로도 그렇게 될 수 없다.

현대 과학은 더이상 카르납이나 포퍼가 말하는 방식의 검증/반증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 20세기 초반 확률혁명을 경험하면서 통계적 스타일이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확률적 진술은 검증이나 반증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동전의 앞뒷면이 나올 확률은 같다."라는 진술에 대해 동전을 100번 던져 앞면만 나왔다고 해도 '반증'할 수는 없다. 아주 낮은 확률로라도 그럴 가능성은 앞의 진술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르납이나 포퍼의 주장은 특정한 해석을 거쳐서만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설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뭐든지 객관적 검증이 불가능하다면 과학은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 과학은 주어진 자료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찾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과소결정 테제를 생각해보라) 이런 수많은 이론들 중에 가장 좋은 이론을 고르는 것이다. 이것은 자료(D)에 대한 이론(M)의 조건부 확률 P(M|D)에 바탕을 둔다. 다시 말해 현재 가진 자료들에 대해 가장 확률이 높은 이론을 고르는 것이다. P(M|D)를 직접 구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것만 알면 통계학의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베이즈 정리를 이용해서 아래처럼 새로운 식을 구성하게 된다.

P(M|D) = P(D|M)P(M)/P(D)

여기서 P(M|D)를 사후확률(posterior probability), P(M)을 사전확률(prior probability)이라 하고 이론에 대한 자료의 조건부확률 P(D|M)을 우도(likelihood)라고 한다. 확률은 객관적 확률, 주관적 확률, 공리적 확률 세 가지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이중 주관적 확률 해석에 따르면 확률은 우리의 믿음을 나타낸다. 이렇게 볼 때 베이즈 정리는 우리가 자료 이전에 가지고 있던 믿음(사전확률)을 경험을 바탕으로 수정하여 새로운 믿음을 얻는 합리적 과정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베이즈 정리를 경험에 따른 믿음의 체계적 수정 과정으로서 과학의 모형으로 받아들이는데는 과학철학자들이나 통계학자들이나 별 이견이 없다.

사전확률은 이전의 관찰에서 얻은 사후확률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 단 한 번은 아무런 자료 없이 믿음을 결정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믿음을 합리적으로 개선해나갈 수는 있지만 그것이 비합리적인 믿음에 기초해있을 수 있다. 직관적으로는 대단히 심각한 결함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래 그림을 보자. 왼쪽열은 우도, 가운데열은 사전/사후확률분포, 오른쪽 열은 자료공간을 나타낸다. 왼쪽과 가운데에서 붉은 색에 가까울 수록 높은 확률을 가리키고 파란색에 가까울 수록 낮을 확률을 가리킨다. 자료공간에서 붉은 선은 믿음의 확률분포에서 임의로 추출한 이론들을 가리키고, 파란원은 관찰한 자료를 나타낸다.
처음에는 온갖 이론들이 다 가능하지만 관측된 자료가 증가하면서 믿음은 점차 특정한 범위의 이론들로 수렴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림이 작아서 잘 안보이지만 하얀 십자 표시는 자료를 산출하고 있는 이론을 나타내는데 베이즈 정리는 얼마나 긴 기간이 될지는 몰라도 어쨌든 장기적으로 우리가 올바른 이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한다.

여기까지의 논의에서 통계적 사고는 이론 M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있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다시 말해 이론 M안에 라캉의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와 같은 진술이 포함되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 현대 과학을 지배하는 통계적 스타일은 이론적 대상의 관찰 가능성을 더이상 염두에 두지 않는다. 결국, 프로이트가 옳았다.

한윤형님은 라캉의 이론으로부터 우리가 가진 몇 가지 자료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라캉의 이론을 충분히 믿을 수 있다고주장한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한윤형님은 라캉의 이론을 과학의 영역 안으로 밀어넣고 있는 것이다. 라캉의 이론을 과학의 영역에서 빼내는 방법은 라캉의 이론이 현실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고 하거나 아니면 데카르트의 송과선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처럼 역사적 주장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윤형님에 따르면 라캉이 "무의식은 의식에 포착된 순간 더 이상 무의식일 수가 없다"라는 주장했다는데, 그러면 라캉 자신이 무의식에 대해 내놓은 수많은 주장들은 다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든다. 의식에 포착된 것은 아닐테니 그럼 무의식적으로한 주장이란 말인가? 한윤형님이 라캉의 이론을 바탕으로 자신이나 타인의 마음을 분석할 때 그 분석의 대상인 무의식은 또 뭔가? 한윤형님도 정신분석을 무의식적으로 하는가? 한윤형님이 쿤, 콰인, 김재권에 대해 보여준 기이한 인용의 또 한 가지 사례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든다.

어쨌든 라캉의 이론이 현실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라캉의 이론을 믿어야할 충분한 이유가 될까? 콰인의 과소결정 테제에 따르면 어차피 마음을 설명하는 무수히 많은 이론이 있을 수 있다. 한윤형님의 주장을 듣자마자 우리가 대면하게되는 문제는 마음을 설명하는그 많은 이론들 중에 왜 하필 우리가 라캉의 이론을 믿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계속)

본문의 그림은 Christopher M. Bishop (2006). Pattern Recognition and Machine Learning. Springer.의 Figure 3-7에서 인용.

by 아이추판다 | 2008/03/28 21:41 | 트랙백 | 핑백(2) | 덧글(6)

촌평

현장에 있는 임상심리학자가 쓰신 글을 보았다. 논쟁을 원치 않으신다하고 나도 그 분과 논쟁을 해야할 이유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링크는 하지 않겠다. 찾으실 분들은 따로 찾아보시기 바란다. 대신 몇 가지 촌평만 하겠다.

1. 정신분석학 일반이나 "치료만 잘 되면 어떤 치료적 개념도 사용할 수 있다는 통합-절충주의"에 대해 내가 쓴 것과 그 분이 쓴 것에서큰 차이를 찾지 못하겠다. 혹시 다르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찾아서 적시해주시길.

2. 한국 심리학계에서 라캉이 존재감이 없는 이유를 미국 vs. 유럽의 구도로 볼 수 없다. 독일심리학계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라캉주의는 프랑스 정신분석학계에서조차 '듣도 보도 못한' 수준은 아니지만 주류가 아니다.
 
3. 라캉주의자들에 따르면 라캉의 철학과 임상 이론은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라캉 이론에 대한 임상심리학적 평가는 필요하다. 그런데  PubMed를 비롯해서 가능한 논문DB를 모두 찾아봤으나 라캉 이론의 치료 효과에 대해 경험적으로 검증한 연구를 찾지 못했다. 다만, 정신분석학자인 오토 컨버그(Otto F. Kernberg)가 라캉의 치료기법에 문제가 있다고 언급한 것과 "라캉 정신분석사전"을 쓴 딜런 에반스(Dylan Evans)가 "환자를 치료하면서 라캉의 이론이 임상장면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라캉을 떠났다"고 언급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상태로는 임상 이론으로서 적절성은 주장하기 힘들다고 본다.

by 아이추판다 | 2008/03/25 15:22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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