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에서 노정태님이 단 댓글 중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창조과학같은 사이비 과학이 미국에서 판치는이유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단의 '열심'을 제어할만한 인문학적 소양이 그 사회에 부족하기때문이라고. 창세기의 창조 설화가 '우화'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아우구스티누스 시대부터 상식이 되어있습니다만, 그게 진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느냐 아니면 '현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의 유물'로 취급되느냐는 다른 문제죠.
이와 같이 인문학이 무엇을 제어해야 한다 또는 제어할 수 있다는 관점을 '인문학적 제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제어대상으로 손꼽히는 것이 아마 과학일 것이다.
이런 제어론에는 인문학이 '해독제'라는 발상이 깔려있다. 그런데 인문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그것이 과학 스스로 주장하는 것만큼 무색무취하지 않다고 비판하는 그 잣대를 인문학에 그대로 되돌린다면 인문학은 과학보다 더욱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이 조롱하곤 하는 프랑스 철학 특유의 문장에 대해 얘기해보자. 프랑스 철학의 옹호자들은 이런 '스타일'에 대한 집착이 프랑스 철학의 고유한 전통이며 프랑스 철학의 생산성을 가능케하는 특징이라고 변명하곤 한다. 이 변명을 받아들이더라도 이 '스타일'에는 아주 심각한 정치적 문제가 있다.
예전에 천규석이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라는 책을 썼을 때 이정우는 "프랑스어로 읽어보고 찌질대시지?"로 요약할 수 있는 신랄한 서평을 썼다. 이정우가 싸가지가 없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철학자들의 글을 제대로 읽으려면 프랑스어로 읽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그들의 '스타일'이 대단히 번역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거니와, 이 '스타일'은 프랑스 철학의 옹호자들이 말하는 대로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핵심 요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용과 스타일을 엮어버림으로써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프랑스 철학에 대해 논의할 자격을 박탈당한다. 그것도 그냥 조금 하는 수준으로는 안된다. 미묘한 뉘앙스를 읽어낼 정도로 잘하지 않으면 안된다. 네이처나 사이언스에서 매주 발행하는 파드캐스트를 들어보면 도저히 듣기 힘든 영어로 말하는 비영어권 과학자들의 인터뷰가 빠지지 않는다. 세계 수준의 학술지에 실릴만한 과학 논문을 쓰기 위한 영어 수준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스타일이 중요하게 되고 나면 역시 엄청난 프랑스어 실력을 갖추지 않고서야 저 바닥에는 낄 수 없다.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쯤되면 프랑스 철학에서 말하는 급진적 내용들에 대해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말하는데로 언어가 모든 것이라면 "그들의 언어"에 철저히 굴종할 것을 강요하는 철학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이 그렇게도 "서구-백인-남성-중산층의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해 마지않는 과학판에는 동양인이 버글거려서 "M.I.T.는 Made In Taiwan의 약자"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정작 철학판이야말로 "서구-백인-남성-중산층"의 전유물로 남아있다.
사정이 이쯤되고 보면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느니 과학에도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느니하는 '인문학적 제어론'에 대해서 "이쪽은 됐으니, 니들 앞가림이나 잘하라."는 말 밖에는 더 할 얘기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