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쓰레기

18개월

아기들의 시야 : 라캉의 거울단계에 대해

Michael Lewis와 Jeanne Brooks-Gunn(1979)은 영아의 코에 입술 루즈를 바른 다음, 영아를 거울 앞에 세워 자기의 모습을 알아보는 지를 조사함으로써 자기 인식(self-recognition)의 발달을 연구했다. 만약 유아가 자기 얼굴에 대한 도식이 있어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의 것임을 인식한다면 그는 곧 새로운 붉은 점에 주목하고 팔을 뻗어 콧등을 닦아 낼 것이다. 9~24개월된 영아에게 이 검사를 했을때 어린 영아일 수록 자기에 대한 인식은 없었다. 영아는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 마치 "다른 영아"의 얼굴인 것처럼 대했다. 자기 인식은 15~17개월 된 소수의 영아에게서 나타나지만 18~24개월 경이 되면 대부분의 걸음마기 유아는 분명히 얼굴 위에 낯선 표시를 알아보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코를 만졌다(Asendorph, Warkentin, & Baudonniere, 1996).

흥미롭게도 유목민의 영아는 거울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도시에서 양육된 영아와 같은 시기에 루즈 검사에서 자기 인식을 보이기 시작한다(Priel & deSchonen, 1986). 그리고 18~24개월 된 영아는 사진 속의 자신을 인식할 수 있으며 사진의 모습을 명명하기 위해 자기의 이름이나 또는 대명사("me")를 종종 사용하기까지 한다(Lewis & Brook-Gunn, 1979).

- David R. Shaffer, 송길연 등 옮김, "발달심리학", 시그마프레스, 451-452쪽.


아기들은 18~24개월 경이 되야 거울 속의 모습이 자기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챈다는군요. 6~18개월이 아니라.

물론 6~18개월에도 자기 자신인 줄 알아보기는 하지만 얼굴에 뭐가 묻었든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든지 아니면 운동 기능이 불완전해서 코를 만지는 게 힘들다든지 이럴 수도 있다. 반대로 18~24개월에 알아보진 못하지만 그냥 눈앞에 있는 애의 코에 뭐가 묻었길래 자기 코를 만져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실험으로 검증되어야 할 문제다.

이 모든 것이 "은유"라면 "6~18개월"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또 만약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고 "6~18개월" 같은 말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한다면 중요하지도 않고 사실일 필요도 없는 말은 왜 하는 것일까?

한 번 따라 해보자.

"라캉과 그의 추종자들은 쓰레기다." 물론 이 말은 은유이며,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루즈 검사에 대해선 아래 동영상 참조.

by 아이추판다 | 2008/11/16 12:32 | 트랙백 | 핑백(4) | 덧글(4)

아기들의 시야 : 라캉의 거울단계에 대해

라캉은 여기서 분열을 봐요. 왜냐면 6~18개월 된 아이는 아직 자기 몸에 대해서 완벽하게 통제를 할 수 없는 아이입니다. 아직운동신경이 발달하지 못한 아이죠. 뭐 조금 일어서서 걸어 다니긴 하겠지만. 1년 정도 되면. 아직 완전하게 자기 몸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오히려 단편적인 운동자극과 감각에 덩어리 이런 것들이 아이의 신체적인 현실이라고 할 수 있죠.근데 거울에 비쳐진 모습은 완벽한 상으로 다가옵니다. 바로 이렇게 완벽하게 다가오는 상. 이상적인 이미지와 실제 거기에 도달하지못하고 있는 몸의 분리 간격. 이게 바로 거울단계에서 겪게 되는 경험이죠. 이게 아이는 어떤 식으로 겪게 되냐면 완벽한 이미지에대해서 굉장히 열광을 하고, 저게 나라는 것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김석, "개념으로 만나는 라캉" 中

이글루스에서 검색하다보니 아트앤스터디에서 하는 강좌를 녹취한 것 같은 글을 찾았다(녹취한 사람에 대해 뭐라 하고 싶은 건 아니기 때문에 출처는 명기하지 않았다). 나는 위의 문단이 도대체 어딜봐서 '철학적 대상'을 다루고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완벽한 상으로 다가온다.", "거울단계에서 겪게 되는 경험", "열광하고 안도"와 같은 문장들은 경험적 검증의 대상이다. 그런데 김석은(물론 라캉도) 아무런 근거 없이 저런 소릴 하고 있다.

아기들은 시야가 무척 좁다. 아래 사진은 18~20개월 유아들의 머리에 카메라를 부착해서 촬영한 것이다. 엄마의 시야와 비교해보라. 이렇게 시야가 좁은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애들의 몸 자체가 작아서 그렇고 또 하나는 애들이 물건을 눈 가까이 놓고 보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Yu, C., Smith, L.B., Christensen, M. & Pereira, A.F. (2007) Two Views of the World: Active Vision in Real-World Interaction . In D. S. McNamara & J. G. Trafton (Eds.) Proceedings of the 29th Annual Conference of the Cognitive Science Society (pp. 731-736). Austin, TX: Cognitive Science Society.

아래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baby mirror로 검색해서 찾은 동영상이다. 우리가 외출하기 거울을 볼 때는 거울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본다. 왜냐하면 거울에 가까이 붙어있으면 몸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김석이 인용하는 라캉의 주장대로 아기들이 거울에서 완벽한 자신의 신체상을 발견해서 열광하고 안도한다면 아기들도 거울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자기 몸 전체를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래 동영상에 나오는 아기는 반대로 행동한다.


검색된 동영상이 여럿 있지만 위의 동영상을 고른 이유는 다른 동영상은 처음부터 아기를 거울 바로 앞에 앉혀놓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직접 검색해서 보면 알겠지만 거울 바로 앞에 앉혀놓은 경우에조차 아기들은 허리를 숙여 거울 쪽으로 더 바짝 다가간다. 만약 자기의 완벽한 신체상에 안도하는 거라면 도대체 왜 자기 얼굴조차 볼 수 없는 거리로 다가가는 걸까?

라캉의 주장을 좀 더 자세히 검증하려면 오목 거울이나 볼록 거울처럼 상을 왜곡시키는 거울에 대해서도 평면 거울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스티커 사진 찍는 기계처럼 다른 상을 합성시켜서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실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실험을 해보지 않고서 저런 소릴 한다. 그러면서도 과학은 틀렸다고 말하지. 그럼 라캉은 무슨 신적 직관이라도 있어서 경험을 초월한 지식이라도 가지고 있는거냐. 거참 기괴한 인식론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라캉의 거울단계는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일종의 은유로서.." 뭐 이따위 변명을 늘어놓을 것 같은데 그럼 처음부터 아기들 얘기는 하지 말았어야지. 왜 얘네는 맨날 뻘소리해놓고 까이면 은유라고 발뺌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나도 '은유'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 좋아하시네. 너네는 그냥 쓰레기야.

by 아이추판다 | 2008/11/14 11:04 | 트랙백(1) | 핑백(4) | 덧글(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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