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책들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고전이다. 그런 의미들 중에 하나는 낡고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만약 "정신분석학 강의"나 "꿈의 해석"이 철학이나 문학에 속한다면 오래되었다는 것이 아무 문제가 안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로이트 자신이 여러 번 강조했다시피 정신분석학은 마음의 문제를 탐구하는 과학적 작업이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문제가 된다.
아리스토텔레 스의 자연학을 지금에 와서 읽는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리한 관찰이나 놀라운 통찰에 감탄하기도 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거기 나온 내용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이후로 과학과 담을 쌓고 지낸 사람이라도 그 후로 많은 과학적 발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로이트의 경우엔 그 내용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좀 많은 듯 하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현대 과학의 발전을 염두에 둔 경우는 흔치 않다. 솔직히 심리학에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외부에는 거의 잘 알려져있지 않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책을 넘겨가면서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연구가 어디까지 와있는지 살펴보는 몇 편의 글을 써보려고 한다.
프로이트는 정신과 의사고 현대 심리학의 분과 체계에 따라 구분하자면 임상심리학에 속하는 연구를 했지만 그 외에도 인지심리학, 발달심리학, 언어심리학 등에 해당하는 저술도 많이 남겼다. 여기서 살펴보려는 내용은 특히 인지심리학에 해당하는 부분들이다.
인지(cognition)란 좁게는 지각, 판단, 기억, 의사결정, 언어, 학습 등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기억과 언어는 특히 프로이트가 많은 관심을 가진 문제다.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인지는 계산(computation)과 같은 말이다.
계산을 엄격하게 정의하자면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이니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자. 계산은 영어로 calculation과 computation 두 가지가 있다. 이 두 말의 차이는 calculator와 computer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calculator는 흔히 볼 수 있는 덧셈 뺄셈하는 계산기고 computer는 뭐 말 그대로 컴퓨터다. 우리가 컴퓨터로 덧셈 뺄셈만 하는 게 아니라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블로그도 읽고, 악플도 달고 온갖 일들을 하는 데 이런 일들을 모두 계산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계산=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이다.
프로이트의 시대에 마음에 대한 과학적 연구란 곧 뇌 연구를 말했다. 정신분석학이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받은데에는 사례의 해석이라는 연구방법론의 문제도 있지만 마음의 내용을 과학의 대상으로 삼는데 거부감이 컸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은 많은데 예전에 라캉과 관련한 토론에서 어떤 분은 "심리학은 물리주의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다"라고 했고(물리주의란 간단히 말해 마음=뇌라는 것), 또 어떤 분은 "뇌를 뒤져본다고 의식이 어디있는지 알 수 없다" 했는데 모두 이런 태도를 반영한다.
그런데 잠시 컴퓨터를 생각해보자. 컴퓨터에서 가장 기초적인 부품은 트랜지스터다. 트랜지스터는 들어오는 전기 신호가 일정한 조건을 만족하면 전기 신호를 방출한다. 트랜지스터로 이뤄진 회로는 이런 조건들을 조합해서 복잡한 처리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컴퓨터를 연구한다고 하면 이런 트랜지스터 회로보다(이건 차라리 전자공학과에서 많이 한다) 그 회로를 통해 하는 계산이 관심사다. 결국에는 그 계산도 회로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지만 같은 계산이라도 컴퓨터 칩 회사마다 다른 방식으로 회로를 만들기 때문에 계산의 문제는 회로의 문제와 독자적인 영역이다.
뇌는 뉴런이라고 부르는 신경세포들로 이뤄져있다. 뉴런들이 작동하는 방식은 트랜지스터와 똑같다. 전기 신호를 받고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전기 신호를 방출한다. 세부적인 작동방식은 물론 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다. 뉴런들로 이뤄진 회로가 바로 뇌이다. 우리가 뇌를 컴퓨터와 같은 방식으로 바라본다면 뇌에서 이뤄지는 계산이 바로 마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인지다.
요즘 같으면 뇌가 멀쩡하더라도 마음에 문제가 생긴 경우를 "하드웨어는 멀쩡한데 소프트웨어에 바이러스에 걸리거나 버그가 생긴 경우"라고 비유하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시대에는 컴퓨터가 없었고 늘 비유들기를 좋아했던 프로이트도 이렇게 마춤한 비유를 들 수 없었다. 사람들이 마음을 분석한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얼마 전 대통령 기록물을 두고 일어났던 소란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여전히 소프트웨어라는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2008년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소프트웨어는 매우 자연스러운 개념이다. 그리고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구분에 따라 뇌/마음의 관계를 이해하기도 어렵지 않다. 즉 컴퓨터를 경험하고 나서 우리가 뇌와 마음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이 근본적인 변화를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이라고 한다.
인지혁명으로 마음은 뇌와 구분되는 과학적 대상으로 성립할 수 있었다. 또, 마음=계산이라는 관점은 마음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방법론적 바탕을 마련해주었다. 이 결과 심리학, 컴퓨터과학, 뇌과학, 언어학, 인류학 등 여러 학문들이 마음의 문제를 공동으로 연구할 수 있는 학문적 틀이 만들어졌는데 이 틀을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라고 한다.
그렇다면 프로이트가 던졌던 의식/무의식, 기억, 전이 등의 문제에 대해 인지과학은 어떤 대답을 내놓고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여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