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성행동

우리 할머니들의 노출 패션

패션의 진화심리학

댓글을 보면 '무의식'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진화심리학은 '무의식'에 관한 학문이 아니라 '진화'에 관한 학문이다. 여성들의 노출 패션 선호가 진화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에조차 남자를 유혹하려는 목적을 남겨둬야 할 이유는 없다. 고통을 느꼈을 때 몸을 웅크리는 것은 척수반사인데 이것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지만 무의식적으로라도 몸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척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만 몸을 보호할 뿐이다.


척수 반사: 어디에 무의식이?


앞의 글에서는 패션 전반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노출 '패션'이 아니라 '노출' 패션으로 초점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확실히 남자들은 여자들의 패션에 둔감하다. 따라서 여자들의 패션이 남자들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노출 패션만으로 한정한다면 어떨까? 구두나 핸드백은 남자들하고 상관없지만 치마의 길이만큼은 남자들과 관련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을 포함해서 많은 동물들에서 수컷이 암컷에게 선물로 환심을 사려고 한다. 선물 하는 것 자체는 진화된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사마귀처럼 선물의 내용이 딱 정해진 동물이 있는가하면 인간처럼 선물의 내용이 가변적인 동물이 있다. 구석기의 우리 할아버지들은 할머니들에게 싱싱한 고기를 선물했겠지만 현대의 남성들은 꽃이나 보석을 선물한다. 다시 말해 진화는 개체에게 "고기를 선물해라"고 정해줄 수도 있고 "선물해라. 내용은 네가 결정해."라고 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남성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출 패션을 한다면 역시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진화를 통해 여성들은 "노출 패션으로 남자를 꼬셔라"고 프로그램되었을 수도 있고, "남자를 꼬셔라. 방법은 알아서."라고 프로그램되었는데 하필 선택한 방법이 노출 패션일 수도 있다.

파랭이와 빨갱이: 색상 선택은 특정한 이념과 관련이 없음.

노출 패션으로 남자를 꼬시도록 프로그램되려면 다음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두 종류의 인간 여성들이 50:50으로 존재했다고 하자. 한 종류의 여성들은 긴 옷을 선호하고, 다른 종류의 여성들은 짧은 옷을 선호했다. 물론 이런 선호의 차이는 유전적인 것이었다. 이 두 종류의 여성들은 위의 그림에서 파랑과 빨강으로 표시했다. 편의상 파랭이들과 빨갱이들이라고 하자.

남자들은 당연히 빨갱이를 더 좋아했다. 따라서 빨갱이들은 파랭이들보다 더 잘난 남자와 더 많은 자식을 낳았다. 옷에 대한 선호는 유전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빨갱이 딸 빨갱이들은 엄마를 닮아 역시 짧은 옷을 선호했고 또 역시 남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하여 파랭이 딸 파랭이들보다 더 잘난 남자와 더 많은 자식을 낳았다. 다시 빨갱이 딸 빨갱이 손녀 빨갱이들은.. 이 과정이 수 십 수 만년동안 반복되어 결국에 현생 인류에서는 빨갱이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빨갱이들만 남게 되었다.

물론 빨갱이 손녀들은 남자를 꼬실 생각은 여전히 없을 것이다. 이들은 남자를 꼬시려고 노출 패션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출 성향의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를 꼬시는 데 성공해서 그 유전자를 물려줬기 때문에 노출 패션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가자. 여성들의 노출 패션 선호는 남자들을 유혹하는 결과를 낳고 그래서 해당 유전자가 확산되는 방식으로 진화했을까? 그전에 생각해야할 점이 한 가지 있다. 어떤 유전자가 선택압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자연선택이나 성선택을 통해 진화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천연두가 창궐할 때는 천연두에 유전적으로 내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잘 살아남고 그 결과 천연두 내성 유전자가 확산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천연두가 사라진 상황에서 자연은 어느 쪽의 유전자도 선호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노출 패션 선호가 나타날 기회가 없다면 그러한 유전자는 반대 경향의 유전자를 제치고 확산될 수가 없다. 그럼 우리의 구석기 시대 할머니들은 그런 선호를 나타낼 기회가 있었을까? 나는 없었다고 본다. 그 이유는 아래 사진이 말해준다.

1930년대 수단의 어느 부족 여성들

여전히 구석기 문명에서 살아가는 부족들의 옷차림(?)은 대체로 이러하다. 아마 우리의 구석기 시대 할머니들의 옷차림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구석기 시대 여성들 사이에 노출 패션에 대한 유전적 선호에 차이가 있었다고 해보자. 노출 패션을 남보다 덜 선호하는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노출 패션(?)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왜? 옷이 없으니까! 그 시절엔 노출 패션을 싫어했던 여성들도 노출 패션을 좋아한 여성들만큼이나 노출로 남자를 유혹해서 유전자를 후세에 물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노출 패션에 대한 유전적 선호는 성선택의 압력을 받을 기회를 잃게 되고 노출 패션 그 자체에 대한 선호가 진화했을 가능성은 낮다.

두번째 가능성, 즉 진화는 여자들에게 남자를 꼬시라는 명령만 남겼는데 현대의 여성들이 찾아낸 방법이 노출 패션일 가능성은 있다. 이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데 야한 네글리제를 입고 침대에서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는 누가 봐도 이런 경우일 것이다. 노출 패션이 유행인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지는데 왜냐하면 유행을 따라 간다는 것은 워낙 강력한 동기라서 남자를 유혹하는 목적이 없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패션의 진화심리학에서 얘기했지만 여성 패션의 유행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가기도 하고 싫어하는 방향으로 가기도 하는데다가 남자들은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유행 자체가 남자들을 유혹하는 게 주목적인 건 아닌 것 같다. 루이비통 가방 든 여자를 보면 막 숨이 헐떡헐떡 넘어가는 남자분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시기 바란다. 유행의 주목적이 유혹에 있다면 미니스커트보다는 교복이나 메이드복이.. (후다닥)

by 아이추판다 | 2009/06/08 11:18 | 트랙백(1) | 핑백(2) | 덧글(108)

패션의 진화심리학

여름이 다가오니 여성들의 노출 패션(?)을 두고 여러 가지 말이 많다. 여기에 진화심리학 떡밥이 좀 있는데 일단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있다. 진화심리학은 데이비드 마의 구분에 따르면 계산적 수준(computational level)의 설명을 제공하기 위한 학문이고 다른 심리학은 알고리듬적 수준(algorithmic level)의 설명을 제공한다. 따라서 진화심리학적 설명은 일반적인 심리학적 설명과 같은 수준에서 취급하면 안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단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당분을 많이 섭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런 입맛은 진화심리학적으로 '적절한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 선택된 것이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건 몇 만년 밖에 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모든 사람들이 단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100년도 되지 않았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영양과잉보다 영양결핍이 항상 문제였고 단 음식, 즉 당분이 풍부한 과일은 구하기도 보관하기도 어려웠다. 따라서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는 게 현명했다. 따라서 진화적으로는 뇌에 '1일 영양권장량 계산장치'를 만드는 것보다 '달아? 먹어! 고기? 먹어!'와 같은 단순한 시스템을 설계하는 쪽이 더 가능성이 높게 된다. 물론 이 시스템은 현대 사회에서 전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됐다. 즉, 마음의 어떤 특성이 진화해온 과정이나 이유는 실제로 그 특성이 작동하는 방식과 전혀 다를 수가 있고 심지어는 상황에 따라 작동 방식이 진화한 이유를 거스를 수도 있다. 인간을 바다에 던지면 몇 초 못가 숨이 막혀 죽는다. 그렇다고 인간의 호흡기가 진화한 이유는 숨쉬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만약 여성들이 패션에 신경을 쓰고 또 노출이 심한 옷을 즐겨입는 진화적 이유가 남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고 해도 실제로 여성들의 뇌나 유전자 어디에 남자들에게 잘 보이라는 구체적 명령은 없을 수 있다. 심지어 '단맛 선호'의 경우처럼 진화한 이유와 실제 작동 방식이 서로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진화심리학을 가지고 "그러니까 결국 니네가 그렇게 입고 다니는 건 다 남자들한테 잘 보이려는 거 아냐!"라고 다그치는 건 별 소용이 없다. 진화생물학적으로 우리가 늙어 죽는 건 기존 개체를 유지하는 비용보다 새 개체를 만드는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인데 그건 유전자 레벨의 얘기고 늙어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 전체적으로 볼 때 여성들의 패션은 남자들하고 큰 관련이 없는 것 같다. 식물이 씨앗을 달고 수분이 많은 과육으로 감싸서 땅에 떨어트리는 건 동물이 그걸 먹고 멀리 가서 배설하게 만들어 자신의 씨앗을 퍼트리기 위해서다. 따라서 동물에게 단맛 선호가 없다면 식물도 과일을 만들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여성들의 패션에 대한 선호가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서라면 남자들이 그런 패션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다 알다시피 남자들은 여자들이 헤어스타일을 바꾸거나 새 옷을 입더라도 잘 알아보지 못한다. 잘 보지 못하는 데 어떻게 잘 보이나. 따라서 여성들의 패션을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하려면 남자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다른 목적을 찾아야 한다. 내 생각엔 동성간 지위경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성에게 잘 보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동성의 경쟁자들을 이기는 것이다. 군집 생활을 하는 동물에서 수컷들이 지위 경쟁을 하는 건 잘 알려져있다. 보통 지위가 높은 수컷은 군집 내의 암컷을 독차지하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더 많은 짝짓기 기회를 누린다. 하지만 암컷들도 자기들 나름의 방식으로 지위 경쟁을 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지 않다. 지위가 높은 암컷은 꼭 짝짓기를 더 많이 하는 건 아니더라도 먹이를 먼저 먹을 수 있다든지 등등의 이익을 누린다. 점박이 하이에나의 경우 어미의 지위가 새끼에 세습되서 결과적으로는 아들을 통해서 지위가 높은 수컷의 이익까지 같이 누릴 수 있다.

암컷들이 동성간 지위경쟁을 하는 방식은 종마다 다른데, 인간의 경우에는 패션이 그 한 가지 방식인 것 같다. 파티나 부부동반 모임에서 다른 여자들의 패션이나 악세사리를 예민하게 탐지하는 것은 남자보다 여자 쪽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탐지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강한 정서적 반응까지 동반한다. 다른 여자의 다이아 반지를 알아보고 집에 와서 씩씩거리는 건 여자 쪽이다. 보통 남자들은 누가 뭘 했는지 기억도 못한다.

이런 지위 경쟁 자체가 남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시도의 부산물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남자들한테 예쁘게 보이자 -> 예쁜 건 뭐지? -> 옆에 있는 여자보다 한 술 더 뜨면 되겠지. 이런 식이라면 실제로 남자들이 좋아하거나 말거나 옆에 있는 여자보다 무조건 한 술 더뜨는 방식으로만 치장할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해 네가 마스카라를 하면, 나는 스모키 화장을 해주겠어! 네가 여름에 미니스커트를 입는다면 나는 겨울에도 입어주지. 단, 추우니까 레깅스도 입고. 그런데 이럴 가능성은 좀 낮다. 이런 방식이 계속 진화하려면 단맛 선호의 경우처럼 환경적 제약이 적정한 수준에서 한계를 그어주던지 아니면 공작의 꼬리처럼 이런 경쟁의 결과가 이성에게도 어필하는 쪽으로 나타나야한다. 인간 여성의 패션은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면 아주 먼 옛날에는 이런 이유로 시작되었으나 지위 경쟁의 방식으로 편입된 이후에 원래 목적은 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그냥 이 현상 전체가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하기에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장관리'의 경우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하기에 아주 딱 들어맞는 현상이지만 그런 설명과 잘 일치하지 않는 실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어장관리의 심리학(남성편): 그들은 왜 낚이는가?

재미있게도 링크한 글에서 소개한 실험을 보면 남자들은 상대방의 마음을 파악하는 능력이 낮아서 친밀감과 유혹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옷차림에 따라 편향된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다. 간단히 말해 남자들은 여자가 짧은 옷을 입고 친절하게 굴면 "이 여자가 나를 꼬신다"고 생각하고 긴 옷을 입고 유혹을 하면 "이 여자는 나한테 친절하군"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 재미있게도 지금 이글루스의 상황과 딱 들어맞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by 아이추판다 | 2009/06/07 16:34 | 트랙백(5) | 핑백(3) | 덧글(93)

어장관리의 심리학 (남성편): 그들은 왜 낚이는가?

애정 표현에 해당하는 행동들은 우정이나 친밀감 또는 예의상 하는 행동들의 연장선 상에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을 구분하는 건 연애에서 중요한 문제다. 상대방이 단순히 친밀감에서 한 행동을 애정 표현으로 오해하면 쓸데없는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수 있고, 반대로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걸 눈치채지 못하면 사랑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흔히 말하는 '어장관리'는 주로 여자가 '낚고', 남자가 '낚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여자가 의도적으로 모호한 행동을 해서 남자를 낚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자의 친밀감 표현을 남자가 애정 표현으로 오해해서 제풀에 낚이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남자가 잘 낚인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

한 조사에 따르면 여자 대학생 중 67%가 단순한 친밀감의 표현을 애정 표현으로(정확히 말하면 성적 관심으로) 오해받아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23%는 그런 오해를 최근 한 달 내에 경험한 적이 있다고 보고했다. 이것은 남자들이 여자들의 행동을 자신에 대한 애정 표현이나 성적 관심의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경향은 남자들이 쉽게 낚이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 경향의 원인은 남자들이 '멍청'하기 때문이라는 게 통속적인 설명이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멍청'하냐에 따라 눈에 보이는 결과 이상의 다른 문제와 연결될 수도 있다.

양성생식하는 동물의 경우 수컷들은 많은 상대와 짝짓기를 할 수 있는 반면 암컷들은 짝짓기 할 수 있는 상대의 수가 제한적이다. 만약 한 집단에 생식가능한 연령에 도달한 수컷과 암컷이 각각 100마리씩 있고 암컷은 일생동안 5마리까지 새끼를 낳아 기를 수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암컷은 잘해야 5마리의 수컷과 짝짓기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짝짓기는 항상 1:1로 하기 때문에 수컷들이 짝짓기 할 수 있는 횟수도 500번(암컷 100마리 X 새끼 5마리)으로 제한된다. 각각의 수컷들이 짝짓기 할 수 있는 횟수는 무제한이기 때문에 수컷들끼리는 제로섬 게임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 극단적으로 수컷 하나가 암컷 100마리를 독차지하면 그 수컷은 500마리의 후손을 두겠지만 나머지 99마리의 수컷은 후손을 하나도 남기지 못한다. 따라서 수컷들끼리는 극심한 경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 결과 대부분의 수컷들은 짝짓기는 커녕 암컷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채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인간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인간 남성의 경우 혹시라도 자기한테 관심있는 여성의 애정 표현을 놓친다면 손해가 막심하므로 종종 여자의 의도를 오해해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더라도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보이면 일단 들이대고 보는 게 진화적으로 좋은 전략일 수가 있다. 이런 설명은 남자들이 역치(threshold)가 낮아서 사소한 행동도 쉽게 애정표현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는다.

또 다른 설명이 있을 수도 있다. 남자들은 대체로 여자들에 비해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데 미숙하다. 게다가 연애를 시작하는 연령에 이른 남자들은 여자들의 행동으로부터 감정을 추론할만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미숙함이 더 두드러질 수도 있다. 따라서 역치가 낮다기보다 감민도(sensitivity)가 떨어져서 행동으로부터 감정을 구별하는 데 실패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이 감민도-가설에 따르면 잘 낚이는 남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더 캐안습한 상황일 수 있다. 친밀감 표현과 애정 표현을 구분하는 감민도가 떨어진다면 엉뚱한데 가서는 낚여서 삽질하고 정작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몰라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연구가 있지만 역치와 감민도를 직접 측정한 연구는 없었는데 사진 분류 과제를 통해 이것을 측정한 연구가 보고되었다. Farris 등(2008)은 497명의 남학생들에게 1127장의 일상적인 복장을 입고 있는 여학생들의 전신 사진에 대해 사진 속의 행동이 친밀감, 애정(정확히는 성적 관심), 슬픔, 거절을 나타내는 정도와 여학생들의 매력과 옷차림의 도발성에 대해 7점 척도로 평정하게 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사진들을 감정 별로 4개의 집단으로 나누고 각 집단의 매력이 비슷하도록 조정하여 70장씩 총 280장의 사진을 골랐다. 70장 중에 35장은 비교적 도발적인 옷차림으로 35장은 비교적 보수적인 옷차림이 되도록 했다.

그리고 새롭게 모집한 각 80명의 이성애자 남녀 학생들에게 이 280장의 사진을 다시 친밀감, 애정(정확히는 성적 관심), 슬픔, 거절로 분류하도록 했다. 남녀 모두에서 다수가 분류한 기준에 따라 사진의 집단을 재조정하고 앞서 측정한 매력을 바탕으로 재조정된 집단에서도 집단 간에 매력의 차이가 없음을 확인했다. 결과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위의 표는 남녀 학생들이 사진을 분류한 결과를 나타낸다. 긍정적인 감정의 경우 친밀감(friendly)을 애정(sexually interested)으로 잘못 분류하는 경우는 확실히 남자가 더 많았지만(남 12.1% vs. 여 8.7%), 애정을 친밀감으로 잘못 분류하는 경우도 남자가 더 많았다(남 37.8% vs. 여 31.9%). 통계적 모형을 이용한 분석에서도 친밀감과 애정 사이의 역치에는 남녀 차이가 없었지만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감민도가 더 낮았다.

위의 그래프는 옷차림에 따른 감민도 변화를 나타낸다. 여자들은 옷차림에 따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감민도의 차이가 없었다. 남자들도 친밀감 표현에 대해서는 차이가 없었지만 애정 표현의 경우 보수적인 옷차림의 사진보다 도발적인 옷차림의 사진에서 감민도가 상승했다.

요약하면, 남자들은 친밀감과 애정을 잘 구별 못한다. 애정 표현은 도발적인 옷차림으로 하면 잘 먹힌다. --;

물론 사진을 이용한 연구기 때문에 좀 더 복잡한 상황에선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제법 설득력있는 결과다. 그런데 감민도-가설에 따르면 남자들은 여자의 애정 표현을 친밀감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아야 하는데 여학생들이 그런 오해를 받았다고 보고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여자들이 남자들이 정말로 오해를 한건지 아니면 관심이 없어서 그러는지 알 수가 없고, 애정 표현을 할 일보다 친밀감 표현을 할 일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애정 표현이 친밀감 표현으로 오해받는 경우보다 친밀감 표현이 애정 표현으로 오해 받는 경우가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사실 남자들의 감민도 부족은 자기들 한테도 불행한 일이지만 여자들에게도 역시 불행이다. 정작 좋아하는 남자는 딴데가서 삽질하고, 관심도 없는 남자는 한 번 웃어줬더니 졸졸 쫓아다니고. 그렇다면 남자들의 감민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음. 모르겠다. 그런 연구는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어쨌든 다음에는 여성편이다. (계속)



Farris, C., Treat, T. A., Viken, R. J., & McFall R. M. (2008). Perceptual mechanismss that characterize gender differences in decoding women's sexual intent. Psychological Science, 19(4), 348-354.


충격반전. 이 연구는 미국 국립정신보건원(NIMH) 및 국립 알콜 남용 및 중독 연구소(NIAAA)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응?

by 아이추판다 | 2008/04/19 02:57 | 트랙백(3) | 핑백(1)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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