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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먼저일까?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생각해서 죄송합니다에 달린 댓글:비판을 목표로 한 지나친 일반화와 글쓴이의 편견이 진하게 묻어나는 글이네요. 뭐 하나의 패러다임이 힘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구체제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는 늘 나타나는 모습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모든 학문이 지닌 정치적 이면을 보게 될 때마다 썩 유쾌하진 않습니다.강조한 대목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을 모르나이다

신고전학파의 합리성의 한계로부터 '데카르트적 코기토'를 향하여 (박가분)물신적 부인진정성은 이해하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 (박가분)한국 인문학계에는 정신분석학을 심리학의 대체물로서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이들이 소비하는 정신분석학은 대부분 프로이트-라캉-지젝으로 이어지는 계보에만 국한된다. 그러다보니 이 사람든은 심리학은 물론이고 정신분석학에 대...

물신적 부인

신고전학파의 합리성의 한계로부터 '데카르트적 코기토'를 향하여 (박가분)링크한 박가분의 글은 실증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허구적인 '합리적 경제인'의 가정을 고집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이론적 욕망을 라캉주의에 입각하여 분석하고 있다. 이게 무슨 농담인지 모르겠다. 실증적 비판에 굴하지 않는 걸로 치자면 라캉주의가 신고전파 경제학보다 몇 수 위가 아닌가!...

라캉주의식 마케팅?

아래는 영국의 라캉주의자 대리언 리더가 쓴 "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에 대한 로쟈의 서평에서 인용한 것이다.저자의 ‘관찰과 해석’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맛보기. 만일 당신이 남성에게 코트를 팔고자 한다면 요즘엔 다들 그런 옷을 입는다고 말해주는 게 좋다. 하지만 반대로 여성에게는 아무도 그런 옷을 입고 있지 않다고 말해주는 게 더 낫다. 왜 ...

아버지와 정신병

라캉주의자들이 라캉주의가 경험과학과 층위가 다르기 때문에 과학적 방법론으로 검증/반증할 수 없지만, 그대신 풍부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검증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적절한 것일까? 우선 라캉주의가 경험과학과 층위가 다르다는 주장에 대해 검토해보자. 물론 라캉주의의 일부 주장은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주장들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세상에는 현명한 사람이 바보들보다 많다

라캉에 대한 비판? (이택광)인터넷 상에서 이뤄지는 라캉주의에 대한 비판에 이택광이 반박(?)을 내놓았다. 이 글은 하나면 끝? 매우 적은 표본에 기반한 라캉주의식 글쓰기에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왜곡된 현실인식, 자의적인 개념 사용, 근거와 논리의 부재.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두 문장이 하나의 글에 공존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한국의 라캉주의자들

김상환(서울대 철학과 교수)라캉주의적 오바질김석(건국대 강의교수)아기들의 시야: 라캉의 거울 단계에 대해18개월맹정현(파리8대학 정신분석학과 박사과정)환각의 생리학이택광(경희대 영미어학부 교수) 하나면 끝? 매우 적은 표본에 기반한 라캉주의식 글쓰기홍준기(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라캉주의식 설명법?이상한 홍준기대화와 존중

하나면 끝? 매우 적은 표본에 기반한 라캉주의식 글쓰기

행동의 목적에 따라 요구하는 증거의 양은 천차만별이다. 극단적인 경우 하나로 끝: 매우 적은 표본에 기반한 최적 의사결정에서처럼 증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게 오히려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매우 적은 증거만을 요구하는 행동의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2007년 4월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에서 재미한국인 1.5세인 조승희가 총기를 난사하여 수...

로보스님께

양자역학은 칸트의 시공간 개념을 반박하는가? (로보스님)집에 오는 길에 핸드폰으로 RSS를 확인하는데 로보스님께서 글을 하나 쓰셨다. 그런데 좀 '오해'가 있는 것 같다.내가 이해하기로 노정태님의 시각은 사물이 "이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이다. 실재하는 사물이라면 관념적 세계가 아니라 바로 이 세계 안에 존재한다. 그걸 강조하기 위해 '어딘가'라는 표현...

보어와 칸트

원래 저주받은 운명은 라캉주의자들처럼 증거가 없거나 증거에 반하는 주장을 하면서도 이를 지적하면 "철학적 까임방지권"을 발동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여기서 19세기에 있었던 칸트 철학과 비유클리드 물리학의 갈등을 소개했는데(공간을 찾아서), 노정태님은 칸트의 공간 개념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해석하면서 그런 갈등 자체를 부정했다.이해를 쉽게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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