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도덕판단

윤리적 논쟁

과학에는 발견의 논리와 정당화의 논리라는 게 있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물론 이 얘기는 뉴턴의 개뻥)했다고 해서 논문에 "오늘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만유인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끝." 이렇게 쓸 순 없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이에는 어느 정도 간극이 있다. 윤리적 판단도 비슷한데 비록 사후적으로 논리적 정당화를 요구하더라도 윤리적 판단은 많은 부분 직관과 정서에 의존한다.

한 가지 실험에서는 윤리적으로 중립적인 단어, 예를 들어 "블로깅"같은 단어에대해 최면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연합시켰다. 그 다음에 "철수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방을 청소한 다음에 잠깐 블로깅을 하며 휴식을 취했다" 뭐 이런 얘기를 들려주면 실험참여자들은 철수가 윤리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비난한다. 이유를 물어보면 그제서야 뭐라뭐라 얘기하는데 제3자가 들어보면 다 헛소리다. 반대로 긍정적인 감정을 연합시키면 철수가 윤리적으로 옳은 행동을 했다고 칭찬하는데 역시나 이유를 물어보면 또 다 헛소리다.

이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정서는 윤리적 판단에 많은 영향을 준다. 더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다. 어떤 사람이 "A라서 B다"라고 자신의 윤리적 판단을 설명하더라도 이 사람이 정말로 A이기 때문에 B라고 판단한 게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일단 직관이나 정서에 따라 B라는 판단을 내려놓고 그 다음에 A라는 이유를 찾아낸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이명박은 뭘해도 까이는데 정말로 이명박이 하는 짓이 다 뻘짓이냐하면 또 그런 건 아니다. 아마 이명박이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정책이라도 추진하면 사람들은 "대통령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가지고 생색내는 걸 보니 재수 없다"고 또 깔 겁니다. 이명박.. 지켜주지 못해..도 미안하진 않구나.

윤리적 문제나 정치적 문제를 두고 사람들이 싸우면 항상 A만 가지고 열심히 논리질하는 데 물론 그것도 필요하긴 하지만 그래가지고는 견적이 안나온다. 논쟁 자체를 위한 논쟁을 한다면 모를까 그 밑에 깔린 정서를 이해하고 공략할 필요가 있다. 물론 말이야 쉽지..

by 아이추판다 | 2008/09/08 11:35 | 트랙백 | 덧글(9)

목숨값을 계산하지 말라

1994년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6살이던 세르히오 히메네스(Sergio Jimenez)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채로 엄마가 모는 크라이슬러 미니밴의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그의 엄마가 신호를 위반하고 교차로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자동차가 시속 24Km로 옆을 들이받았고 미니밴은 전복됐다. 차의 뒷문이 열리면서 세르히오는 도로로 튕겨나갔고 죽었다. 세르히오의 가족은 뒷문에 결함이 있었다며 크라이슬러를 고소했다.

크라이슬러는 뒷문 잠금장치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 결함을 수정하려면 공정 비용이 10만 달러(1억원)가량 추가 지출되는 반면 탑승자를 위험에 빠트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분석 결과를 토대로 결함을 내버려두기로 했던 것이다. 배심원들은 문의 결함만이 아니라 크라이슬러의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비열한 경제적 분석을 문제 삼아 2억 5천만 달러(2천5백억원)의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부과했다.

위험은 적을 수록 좋다. 하지만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무제한의 비용을 감수할 수는 없다. 자동차에 에어백을 설치하면 사망 확률을 감소시킬 수 있다. 하지만 에어백 가격이 몇 백 만원씩 한다면 설치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기도 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추가 수당을 받기도 한다. 미국 정부는 이런 비용이나 수당을 토대로 사람들의 '목숨값'을 계산하는 데 대략 한 명 목숨에 3백만 달러(30억원), 1년 목숨에 10만 달러(1억원)라고 알려져있다. 예를 들어 죽을 확률이 0.001%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30억원X0.001%=3만원을 지출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목숨값'은 공공정책을 수행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비용 사이에 균형을 맞출 때 근거가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크라이슬러가 실시한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이 그렇게 냉혈한 행위로 비난받을만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런 분석은 크라이슬러만이 아니라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다 하는 것이고 심지어 정부도 한다. 그런데 크라이슬러는 비난을 받았다. 이외에도 여러 사건에서 배심원들은 제품의 결함을 알고도 비용편익분석에 따라 방치한 회사들에 거액의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부과했다.

한 실험에서 서로 다른 참여자들에게 다음의 사례를 제시했다. 1년에 4명 정도의 사망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해보자. 한 기업은 내부적으로 위험 방지 비용을 1인당 1천만 달러(100억원)까지 책정하고 있는데 이 위험을 방지하는데 드는 비용이 1억달러(1천억원)로 추정되서 위험을 방치했다. 또 다른 기업은 별 이유없이 이 위험을 방치했다. 실험 참여자들은 전자보다 후자를 비용편익분석을 한 기업을 더 심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기업의 안전 기준은 미국 정부 기준(30억원)보다 3배 이상 높았는데도 말이다.

요약하자면 목숨값 계산은 성욕과 같다. 누구나 하는 것이고, 다들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공공연히 드러내면 도덕적 혐오와 지탄의 대상이 된다. 설령 그 계산이 대단히 보수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말이다. 이런 연구들은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몇 가지 교훈을 던져준다. 한국 정부의 한 '고위 공무원'은 국민들이 위험성을 우려하는 식품에 대해 "싸고 맛있다"는 등등의 발언을 태연하게 해서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이 말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그 식품 1Kg을 먹고 죽을 확률이 0.001%보다 낮고 기존 식품보다 3만원 이상 싸다면 이 식품을 기꺼이 사먹는 게 다른 종류의 위험에 대한 태도와 비교할 때 일관성이 있다. 하지만 정부당국자라면 그것도 선출직 공무원이 그런 소릴 하면 안된다.

직업 관료나 전문가들이 내리는 판단과 일반 국민들의 판단 사이에 생길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괴리를 메꾸는 게 선출직 공무원의 중요한 임무다. 이 '고위공무원'은 그 임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면서 자기 정치 생명 깎아먹는 거야 보고 있기 즐거운데, 이 '고위공무원'의 임무 방기로 인한 혼란상은 보고 있기 영 찝찔하다.

by 아이추판다 | 2008/05/07 11:12 | 트랙백(2) | 핑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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