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기괴한 꿈 (2017님)
"저" 꿈 얘기에 대한 내 생각 (2017님)
2017님의 꿈 이야기를 보고 꿈에 대해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기억을 더듬어 쓰는 거라 좀 부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중간부터 '어떤'이라는 말이 난무할텐데 그건 세부사항이 잘 기억이 안나서 그렇다. 일일이 찾아보기는 좀 귀찮고.. 하여간 대강 이렇다.
우리의 뇌는 신경들로 이뤄진 네트워크고 이 네트워크가 하는 일은 수학적으로 공간을 분할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림으로 친절하게 설명해보자. 2차원 평면 위에 빨간 점과 파란 점이 있다. 당장 생각나는 게 광어와 도다리인데 뭐 그거라고 해보자. 빨간점이 광어, 파란점이 도다리. 그러니까 아래 그림은 광어와 도다리의 속성을 가지고 2차원 표현한 것이다.
열심히 회를 쳐먹으면서(어감이 이상하지만 패스) 나름대로 광어와 도다리를 구분할 줄 알게된다는 것은 저 공간 어딘가에 선을 긋는 것과 같다. 주어진 데이터만 가지고는 아래 그림처럼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공간을 자를 수 있지만 대충 보기에 중간쯤에 까만 선처럼 긋는게 제일 그럴싸해보인다. 원래는 좀 수학적인 이유가 있지만 여기선 대충 그럴싸하게 보이는 방식으로 계속 공간을 분할하기로 하자.
그런데 만약 오늘 또 횟집에 갔는데 광어를 시켰더니 웬 도다리 같은 게 나왔다고 해보자. 점선으로 표시한 진한 빨간점이 새로 맛본 광어다. 오오.. 광어의 새로운 세계.
그러면 이제 새로운 경험에 발맞추어 학습이 이뤄지고 신경들 사이의 연결 강도가 변화한다. 자연히 2차원 공간 상에 표시한 광어와 도다리의 경계도 달라진다.
공간 상에 선 긋는거야 아무렇게나 그어도 그만이지만 사람의 신경이 그렇게 연결 강도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는 없다. 새로운 경험에 둔하다면 선이 천천히 이동할 것이고 민감하다면 빨리 변할 것이다. 그런데 어느 쪽이든 문제가 있다.
새로운 경험에 둔하면 학습이 이뤄지는 시간이 너무 오래걸린다. 그렇다고 새로운 경험에 지나치게 민감하면 아래처럼 기존의 경험을 싹다 무시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걸 파국적 간섭(catastrophic interference)라고 한다. 이래서야 모듬회 한 판만 시켜먹어도 수 십 년의 회 인생이 뒤집힐 것이다.
이런 딜레마에 대한 한 가지 대안은 두 종류의 학습 시스템을 다 가지는 것이다. 하나는 새로운 경험에 민감하고 하나는 둔감하게. 이것은 기억에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존재한다는 심리학적 관찰과도 일치한다.
RPG 게임은 처음엔 양한테 들이 받혀도 죽는 캐릭터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러다가 경험치를 계속 쌓으면 용도 때려잡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경험치 쌓는 게 좀 지겹다보니 똑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경험치를 자동으로 쌓아주는 프로그램도 나오고 그런다. 우리의 뇌도 비슷한데 일단 새로운 경험에 민감한 단기 기억에 먼저 학습이 되고 그 다음에 그 정보를 새로운 경험에 둔감한 장기 기억에 연타로 보내서 적당한 속도로 학습이 이뤄지게 만든다.
뇌에서 이런 기능을 하는 부위가 해마(hippocampus)다. 그저께 세상을 떠난 H.M.은 간질 때문에 측두엽 절제술을 받았고 그 결과 해마를 잃어 단기 기억만 있고 장기 기억으로 정보가 넘어가지 못하는 순행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incoming 폴더에 다운 받은 파일을 한 번씩 분류별로 폴더에 나눠 저장도 하고 안 볼 파일은 지우기도 하듯이 잠을 자는 동안 해마도 비슷한 작업들을 한다. 낮동안 학습한 정보들을 뇌의 각 부위로 전송해서 장기 기억에 저장하는 것이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 수면 주기를 겪는데 각 주기에 따라 뇌의 각 부위에서 해마로 정보가 전송되기도 하고 그 반대로 전송되기도 한다. 그래서 낮에 공부를 많이 하면 수면 주기의 비율도 달라지고, 특정 주기에 잠에서 깨우면 학습 효율이 저하되기도 한다.
이런 정보 정리 과정에서 우리는 꿈을 꾸게 된다. 따라서 주기에 따라 뇌에서 정보를 정리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꿈의 내용도 다르다. 어떤 주기에는 비현실적인 꿈을 꾸고 또 어떤 주기에는 현실적인 꿈을 꾼다. 이걸 어떻게 아냐하면 일단 재우고 뇌파를 보다가 깨운다. (나 같으면 이런 실험 절대 참여 안한다 --; )
뇌의 특정 부위가 손상된 사람들은 사람 얼굴을 혼동한다. 이런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다른 남자 얼굴을 자기 여동생 얼굴로 알아보고 "왜 너 얼굴에 수염이 났니?" 이런 경우가 있다. 꿈에서 겪는 일도 비슷한 게 아닐까하는 얘기가 있다. 꿈 속에서 어떤 남자 얼굴에 대한 정보가 정리되는 중인데 이 정보가 정상적인 얼굴 인식 프로세스를 따라가지 않으면(정리가 목적이므로 따라갈 필요도 없다) 꿈 속에서는 여동생 얼굴로 알아보고 그 결과 "여동생 얼굴에 수염이 난 꿈"을 꾸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확인된 가설은 아니지만 그럴싸하다.
하옇든 이런 이유로 꿈의 내용은 정리되는 정보의 내용들과 방식 등등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기억에서 꺼내는 과정은 항상 재구성된다. 예를 들어 미국 백인 대학생들에게 아주 낯선 아메리카 원주민 전래설화(대충 사냥을 갔다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배를 타고 따라갔다가 전쟁을 같이하고 집에 돌아왔다가 검은 것을 토하고 죽었다는 이 뭥미? 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좀 있다가 물어보면 헐리우드 영화처럼 완전히 재편집된 얘기를 한다. 또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상황(레스토랑 가서 밥먹고 뭐하고 집에 오는 아주 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해주지 않은 이야기(예를 들면 밥먹고 계산한 이야기)를 중간 중간에 끼워넣는다. 방금 들은 이야기도 이 모양이니 꿈 이야기도 별로 다르지 않거나 더 심할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말하는 그리고 듣는 꿈 이야기는 낮동안 경험한 것을 장기 기억에 저장하기 위해 수면 중에 온갖 정보가 들락날락거리면서 정리되는 와중에 생긴 찌그러기들을 가지고 잠이 깬 후에 그럴싸하게 재구성한 것이다. 그런 내용들이 아주 무의미하진 않고 어쨌든 일정한 경향을 띄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침대 맡에 공책을 놓고 자다 깨서 꾼 꿈의 내용을 적게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해보면 미국 사람들은 네덜란드 사람들보다 불안한 정서의 꿈을 더 많이 보고한다. 아마도 미국이 네덜란드보다 뭔가 살기 불안한 동네인 탓일 듯도 한데 그렇다고 이걸 과대해석해서 "깨어있을 땐 불안하지 않지만 불안한 정서의 꿈을 꾸는 건 무의식적으로 불안하다는 증거"라는 식으로 말해버리면 그건 좀 곤란하다. 컴퓨터에서 휴지통을 열어보니 파일이 다섯 개 있는데 파일명 첫글자만 따서 읽어보니 "문근영 만세"라고 해서 컴퓨터 주인이 문근영 빠라고 하면 좀 웃긴 거 아닌가!(응?).
어쨌든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꿈의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해석한다는 건 무리고 근거도 없다. 누군가는 프로이트를 들어 뭐라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도대체 "꿈의 해석"이 언제적 책이라고.. 차라리 지하철 송풍기에 발전기를 달고 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