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표현에 해당하는 행동들은 우정이나 친밀감 또는 예의상 하는 행동들의 연장선 상에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을 구분하는 건 연애에서 중요한 문제다. 상대방이 단순히 친밀감에서 한 행동을 애정 표현으로 오해하면 쓸데없는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수 있고, 반대로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걸 눈치채지 못하면 사랑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흔히 말하는 '어장관리'는 주로 여자가 '낚고', 남자가 '낚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여자가 의도적으로 모호한 행동을 해서 남자를 낚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자의 친밀감 표현을 남자가 애정 표현으로 오해해서 제풀에 낚이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남자가 잘 낚인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
한 조사에 따르면 여자 대학생 중 67%가 단순한 친밀감의 표현을 애정 표현으로(정확히 말하면 성적 관심으로) 오해받아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23%는 그런 오해를 최근 한 달 내에 경험한 적이 있다고 보고했다. 이것은 남자들이 여자들의 행동을 자신에 대한 애정 표현이나 성적 관심의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경향은 남자들이 쉽게 낚이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 경향의 원인은 남자들이 '멍청'하기 때문이라는 게 통속적인 설명이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멍청'하냐에 따라 눈에 보이는 결과 이상의 다른 문제와 연결될 수도 있다.
양성생식하는 동물의 경우 수컷들은 많은 상대와 짝짓기를 할 수 있는 반면 암컷들은 짝짓기 할 수 있는 상대의 수가 제한적이다. 만약 한 집단에 생식가능한 연령에 도달한 수컷과 암컷이 각각 100마리씩 있고 암컷은 일생동안 5마리까지 새끼를 낳아 기를 수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암컷은 잘해야 5마리의 수컷과 짝짓기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짝짓기는 항상 1:1로 하기 때문에 수컷들이 짝짓기 할 수 있는 횟수도 500번(암컷 100마리 X 새끼 5마리)으로 제한된다. 각각의 수컷들이 짝짓기 할 수 있는 횟수는 무제한이기 때문에 수컷들끼리는 제로섬 게임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 극단적으로 수컷 하나가 암컷 100마리를 독차지하면 그 수컷은 500마리의 후손을 두겠지만 나머지 99마리의 수컷은 후손을 하나도 남기지 못한다. 따라서 수컷들끼리는 극심한 경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 결과 대부분의 수컷들은 짝짓기는 커녕 암컷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채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인간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인간 남성의 경우 혹시라도 자기한테 관심있는 여성의 애정 표현을 놓친다면 손해가 막심하므로 종종 여자의 의도를 오해해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더라도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보이면 일단 들이대고 보는 게 진화적으로 좋은 전략일 수가 있다. 이런 설명은 남자들이
역치(threshold)가 낮아서 사소한 행동도 쉽게 애정표현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는다.
또 다른 설명이 있을 수도 있다. 남자들은 대체로 여자들에 비해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데 미숙하다. 게다가 연애를 시작하는 연령에 이른 남자들은 여자들의 행동으로부터 감정을 추론할만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미숙함이 더 두드러질 수도 있다. 따라서 역치가 낮다기보다
감민도(sensitivity)가 떨어져서 행동으로부터 감정을 구별하는 데 실패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이 감민도-가설에 따르면 잘 낚이는 남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더 캐안습한 상황일 수 있다. 친밀감 표현과 애정 표현을 구분하는 감민도가 떨어진다면
엉뚱한데 가서는 낚여서 삽질하고 정작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몰라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연구가 있지만 역치와 감민도를 직접 측정한 연구는 없었는데 사진 분류 과제를 통해 이것을 측정한 연구가 보고되었다. Farris 등(2008)은 497명의 남학생들에게 1127장의 일상적인 복장을 입고 있는 여학생들의 전신 사진에 대해 사진 속의 행동이 친밀감, 애정(정확히는 성적 관심), 슬픔, 거절을 나타내는 정도와 여학생들의 매력과 옷차림의 도발성에 대해 7점 척도로 평정하게 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사진들을 감정 별로 4개의 집단으로 나누고 각 집단의 매력이 비슷하도록 조정하여 70장씩 총 280장의 사진을 골랐다. 70장 중에 35장은 비교적 도발적인 옷차림으로 35장은 비교적 보수적인 옷차림이 되도록 했다.
그리고 새롭게 모집한 각 80명의 이성애자 남녀 학생들에게 이 280장의 사진을 다시 친밀감, 애정(정확히는 성적 관심), 슬픔, 거절로 분류하도록 했다. 남녀 모두에서 다수가 분류한 기준에 따라 사진의 집단을 재조정하고 앞서 측정한 매력을 바탕으로 재조정된 집단에서도 집단 간에 매력의 차이가 없음을 확인했다. 결과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위의 표는 남녀 학생들이 사진을 분류한 결과를 나타낸다. 긍정적인 감정의 경우 친밀감(friendly)을 애정(sexually interested)으로 잘못 분류하는 경우는 확실히 남자가 더 많았지만(남 12.1% vs. 여 8.7%), 애정을 친밀감으로 잘못 분류하는 경우도 남자가 더 많았다(남 37.8% vs. 여 31.9%). 통계적 모형을 이용한 분석에서도 친밀감과 애정 사이의 역치에는 남녀 차이가 없었지만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감민도가 더 낮았다.
위의 그래프는 옷차림에 따른 감민도 변화를 나타낸다. 여자들은 옷차림에 따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감민도의 차이가 없었다. 남자들도 친밀감 표현에 대해서는 차이가 없었지만 애정 표현의 경우 보수적인 옷차림의 사진보다 도발적인 옷차림의 사진에서 감민도가 상승했다.
요약하면, 남자들은 친밀감과 애정을 잘 구별 못한다. 애정 표현은 도발적인 옷차림으로 하면 잘 먹힌다. --;
물론 사진을 이용한 연구기 때문에 좀 더 복잡한 상황에선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제법 설득력있는 결과다. 그런데 감민도-가설에 따르면 남자들은 여자의 애정 표현을 친밀감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아야 하는데 여학생들이 그런 오해를 받았다고 보고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여자들이 남자들이 정말로 오해를 한건지 아니면 관심이 없어서 그러는지 알 수가 없고, 애정 표현을 할 일보다 친밀감 표현을 할 일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애정 표현이 친밀감 표현으로 오해받는 경우보다 친밀감 표현이 애정 표현으로 오해 받는 경우가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사실 남자들의 감민도 부족은 자기들 한테도 불행한 일이지만 여자들에게도 역시 불행이다. 정작 좋아하는 남자는 딴데가서 삽질하고, 관심도 없는 남자는 한 번 웃어줬더니 졸졸 쫓아다니고. 그렇다면 남자들의 감민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음. 모르겠다. 그런 연구는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어쨌든 다음에는 여성편이다. (계속)
Farris, C., Treat, T. A., Viken, R. J., & McFall R. M. (2008). Perceptual mechanismss that characterize gender differences in decoding women's sexual intent.
Psychological Science, 19(4), 348-354.
충격반전. 이 연구는 미국 국립정신보건원(NIMH) 및 국립 알콜 남용 및 중독 연구소(NIAAA)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