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테러

우리는 사악한 개인이 때로는 군대보다 더 많은 죽음과 파괴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미국에 대항해 수백 대의 비행기와 미사일을 날려보낸다면 그 누구라도 미국을 쓰러뜨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큰 규모로 들이닥치면 미국의 방어체계가 즉시 발동해 그 위협은 순식간에 해결될 것이다. 반면 적군이 7명에게 불룩한 바지와 농구 모자를 씌워 보낸다면, 그들은 아마도 목표물에 접근하여 폭탄을 투하하고 독성분을 방사하거나 아니면 비행기를 납치해 고층 빌딩으로 돌진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좋은 공격은 방어체계를 작동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임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테러다.

물론 작은 규모의 위협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방어체계를 설계할 수도 있지만(전기를 깔아 놓은 국경선, 여행 금지령, 각종 전자 감시 장치, 무작위 조사 등), 이 체계를 가동시킬 때 필요한 자원과 오작동의 경우를 계산해본다면 이 체계는 어마어마한 경비를 요구한다. 벼룩 잡자고 곳간을 태우는 셈이다. 어떤 방어체계가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어떠한 위협에도 반응해야 하지만, 동시에 현실성이 있으려면 어떤 역치 수준을 초과하는 위협에만 반응해야 한다. 결국 역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위협은 겉으로는 작은 규모지만 커다란 파괴력을 지닐 수도 있다. 대규모의 위협과 달리 작은 위협은 레이더망을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 역시 일종의 방어체계로 위와 동일한 원리를 따른다. 우리의 감정이 몹시 상하면, 심리적 면역체계는 사실을 조작하고 비난의 대상을 바꾸는 방법 등을 동원해 우리로 하여금 긍정적인 관점을 유지하도록 해준다. 그러나 약간 슬프거나 질투 나거나 화가 나거나 좌절하는 모든 상황에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결혼 실패와 실직은 우리의 심리적 방어체계를 발동시키기에 충분할만큼 우리의 행복에 대규모 공격을 가하는 일이다. 그러나 부러진 연펼, 구멍 난 양말, 또는 느린 엘리베이터 등은 방어체계를 작동시키지 않는다. 연필이 부러진 것은 짜증나는 일이 될 수는 있지만 심리적 안녕에는 그다지 중대한 위협을 가하지 않으므로 심리적 방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아주 나쁜 경험을 하고 나서는 긍정적인 관점을 지닐 수 있어도, 조금 나쁜 경험을 하고 나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한 연구에서 신고식으로 전기 충격 3회를 행하는 동아리에 가입한 학생들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매우 강한 전기충격을 받았고(심한 신고식 집단),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경미한 충격을 받았다(경미한 신고식 집단). 그러자 심한 신고식 집단이 경미한 신고식 집단보다 그 동아리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극심한 고통이 방어체계를 작동시켜, 즉시 자신이 경험한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도록 한 것이다. 물론 고통을 겪고 나서 그런 관점을 지닌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겪는 신체적 고통은 나쁜 것이지만("세상에, 이거 진짜 아프잖아!"), 그 고통이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특별한 사람들만 오는 고귀한 집단에 들어온 거 아니겠어?") 그렇게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 또 다른 연구에서 전기 충격을 받을 때 뭔가 가치 있는 일을 위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 고통을 덜 느낀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강렬한 전기 충격은 심리적 방어를 일으켜 그 집단을 높이 평가하게 만들었지만, 경미한 충격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당신의 남편이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용서했으면서도, 차고 문을 움푹 파이게 해놓거나 집안 여기저기에 지저분한 양말을 벗어놓으면 화가 났던 경험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동일한 역설을 경험한 것이다.

대니얼 길버트,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김영사. 259-260쪽.


두 줄 감상
1. 때로는 귓가에 앵앵거리는 모기가 폭격기보다 무서운 법
2. 역시 전기 충격은 심리학의 로망~♡ (응?)

by 아이추판다 | 2008/08/13 00:35 | 트랙백 | 덧글(11)

생뚱맞죠?

정보과학회 프로그래밍언어연구회(SIGPL) 2008년 여름학교 일정 중에서..

중간에 뭔가 이상한 게 끼여있는 거 같은데...

by 아이추판다 | 2008/08/11 11:59 | 트랙백 | 덧글(7)

교실 강의의 한계

개인교습의 현실적 적용sprinter님이 달아주신 댓글

제가 보기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좀 더 생각해 봐야 할듯. 한번의 수업으로는 개인교습과 conventioanl 방식이 차이가 나겠지만, 학습이 1년 ~ 3년 단위로 반복된다고 하면 1:1은 오른쪽의 벽에 부딪히고 conventioanl과의 차이가 줄어들수도 있지 않을까요? 갑자기 궁금해 지기는 하네요.

개인교습의 효과에서 인용한 그래프를 보면 분명히 오른쪽 벽이 있다. 이 벽은 학습범위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어차피 배울 분량이 정해져 있다면 좀 더 비효율적인 학습법이라도 충분한 시간이 있으면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안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개인교습과 전통적인 교실 강의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 한 학기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을 각각의 skill들로 세분하면 500개 정도 된다고 한다. 모든 과목이 다 그런 건 아니고 대충 이공계 과목들. 완전학습이나 개인교습은 학생의 skill 습득 상태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서 학습계획을 짜는 과정을 무한반복하는 게 핵심이다.

전문성 발달에 대한 연구를 보면 전문성의 차이는 곧 연습량의 차이다. 그런데 아무 연습이나 다 전문성을 발달시키는 게 아니라 의도적 수련(deliberate practice)만이 전문성을 발달시킨다. 이 의도적 수련이란 곧 개인교습과 완전학습에서 하는 바로 그 상태파악->맞춤 학습의 무한반복을 말한다.

전통적인 교실 강의는 학생들에게 주는 feedback이 무척 제한적이어서 한 두 달마다 시험보고 성적이나 알려주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feedback으로는 도저히 의도적 수련이 불가능하다.

영어 lecture는 중세 라틴어 lectura에서 나온 말인데 이것은 '읽다'라는 뜻이다. 구텐베르크 이전 유럽에서 책값은 무척 비쌌기 때문에 강의는 곧 선생이 책을 읽어주면 학생들은 받아쓰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 강의의 목적은 교육이 아니라 음성 통신을 이용한 중세식 P2P.

내가 학교 다닐 때까지도 선생이 칠판에 판서하면 학생들이 베껴쓰는 그런 수업이 있었다. 사실 교과서에 있는 내용 정리한게 전부인데 그짓을 왜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 요즘 대학 수업에서 보면 교수가 떠들면 학생들은 미리 출력해온 PPT 옆에 빼곡하게 받아적는데 이것도 역시 중세 수준을 못벗어난 것이다. 선생이나 학생들이나..

강의란 것의 장점을 찾자면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활용해서 혼자 책 읽는 것보다 좀 나을 수 있다는 정도인데 이거야 요즘 시대에는 인터넷 동영상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고 보면 전국의 수십만 학생들이 교실에 바글바글 앉아 강의를 들을 필요는 더이상 없어보인다.

얘기가 좀 샜지만 하여간 교실 강의는 교습법 자체의 한계 때문에 시간이 충분히 많다고 해도 개인 교습을 따라잡기는 좀 어려울 듯 싶다.

by 아이추판다 | 2008/08/04 16:25 | 트랙백 | 덧글(5)

개인교습의 현실적 적용

그냥
개인교습의 효과

공교육을 둘러싼 입장 차이는 간단히 수월성 대 형평성의 구도로 나눌 수 있는데 전통적인 교실 강의로는 이 구도를 벗어날 수 없다. 개인교습은 수월성과 형평성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 효과 면에서도 압도적인데 문제는 현실성이다. 댓글로 이 점을 지적해주신 분들이 있어서 좀 생각을 해봤다.

문제가 되는 건 공간과 교사. 공간이야 기존 공간을 잘 재편해서 쓰면 된다고 하면 남는 건 교사 문제인데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16~17명이라고 해도 과외와 비슷한 수준으로 개인교습을 하려면 1회 2시간 주 2회 수업은 해야하니 수업 시간 수가 학생 1인당 4시간, 교사 1인당 64~68시간으로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교사가 학생을 가르친다는 고정관념을 포기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기본 강의는 인터넷이나 TV로 대체하고 교사가 부족한만큼 학생 조교를 뽑아서 수업을 맡기면 된다. 대학생 과외도 한달에 수십만원씩 주고 하는 데 학생이 학생을 못 가르칠 것도 없지.

그럼 학생 조교에게 돌아가는 인센티브가 문제인데 이건 간단. 일단 가르치는 활동 자체가 대단히 교육적이다. 해본 사람은 누구나 알지만 가르치는 건 배우는 것만큼이나 공부가 된다. 결정적으로 학생 조교 경력을 대입에 반영하면 확실한 인센티브가 된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정말 그럴듯 하군. (이미 살짝 자아도취)

by 아이추판다 | 2008/08/03 01:34 | 트랙백(1) | 핑백(1) | 덧글(4)

개인교습의 효과



교습 방법을 달리 했을 때 학생들의 성적 분포. conventional은 30명 규모 학급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업을 한 경우. tutorial은 1대 1 개인 교습을 한 경우. 개인교습을 받은 학생의 평균 수준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업을 받은 학생의 상위 2% 수준과 같다.

Bloom, B. S. (1984). The 2 sigma problem: The search for methods of group instruction as effective as one-to-one tutoring. Educational Researcher, 13(6), 4-16.

by 아이추판다 | 2008/08/02 14:56 | 트랙백(1) | 핑백(2)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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