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08 21:13

"그걸 수학으로 어떻게 다루나요?" 인지과학

어떤 현상을 모델링 하는 문제에 대해서 "그걸 수학으로 어떻게 다루나요?"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모델링에 대해 잘 알아서, 그에 따르는 실제적 문제들을 지적하시는 분들이다. 예를 들면 앞선 글 심리학에서 '이론적 작업'에 대해 "입력할 parameter의 크기들을 설정할 때 문제" 같은 것을 이야기 해주시는 漁夫님 같은 분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지적이 나와야 좀 구체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다시 다루기로 하자.

다른 분들은 사실 모델링 자체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다. "진화 과정만 봐도 수백만년 수천만년을 어떻게 수식화 해요? 오로지 상상력이지"라는 댓글을 달아주신 ?님이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나 생각한다. 사실 이런 분들이 더 많다. 그래서 일단 이런 분들을 위해서 모델링에 대해 좀 더 알기 쉬운 예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이런 문제를 하나 생각해보자. 어떤 넓은 초원에 양들이 살고 있다. 양들은 풀을 뜯어 먹고 살고, 양들이 풀을 뜯어먹은 자리에는 시간이 지나면 풀이 다시 자란다. 이 초원에는 늑대들도 살고 있는데 늑대들은 양을 잡아 먹는다. 양과 늑대는 먹이가 풍족하면 늘어나고, 먹이가 부족하면 줄어든다. 자, 이제 이 초원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별의 별 일이 있을 수 있지만 양과 늑대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도록 하자.

모델링이라는 것은 이런 복잡한 상황을 좀 더 단순화, 구체화시켜서 보는 것이다. 양과 늑대가 사는 초원을 가상으로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넷로고(NetLogo) 같은 프로그램을 쓰면 수학이나 프로그래밍을 잘 몰라도 아주 쉽게 시뮬레이션과 그 진행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볼 수 있다. 아래 동영상은 그 한 예다. 동영상을 재생하고 잠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해보도록 하자. (화면 오른쪽에서 초록색은 풀이 있는 땅, 갈색은 양들이 풀을 뜯어 먹은 자리, 흰색은 양, 검은 색은 늑대다)



이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평화로운(?) 작은 생태계에서 1분 4초경, 시뮬레이션 내의 시간으로는 490대 쯤에에 늑대는 모두 멸종해버린다. 사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적지 않은 늑대들이 있었고 먹이도 부족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나오기 거의 직전까지도 상상하기가 무척 어렵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모델링을 하는 것이다.

위의 시뮬레이션은 피식자-포식자 모형(prey-predator model, 위키피디아)이라는 미분방정식 모형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넷로고로 만들어 놓으니 무슨 아이들 장난감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모형이다.

이제 '수백만년 수천만년에 걸친 진화 과정'을 생각해보자. 양과 늑대 시뮬레이션에서는 불과 490 정도의 시점에서 벌어지는 일도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다. 시간의 길이가 수백만으로 늘어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모델링이 필요한 것이다. 위의 시뮬레이션을 진화의 과정으로 바꿔놓기도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알통 논문'의 경우 모든 사람들은 힘, 재산, 재분배에 대한 입장이라는 세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된다. 그러면 비슷하게 가상 세계에 이런 속성들과 그 속성을 결정하는 전략이 다른 개체들을 잔뜩 집어넣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수 있다.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의 재산을 억지로 뺐는 경우도 넣고, 재산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재분배해주는 경우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과연 힘과 재산에 따라 재분배에 대한 입장이 달라지는 개체들로만 바글대는 세계가 되는지 확인해보면 되는 것이다. 전혀 어렵지 않다. 실제로 진화를 연구하는 생물학자들도 많이 하는 방식이고, 진화심리학 연구에서도 쓰이고 있는 방식이다. 내가 지적하는 것은 모델링이 진화심리학 연구에서 필요하고 또 가능한 수준보다 더 부족하다는 것이다(사실 이 점은 대부분의 심리학 연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런데 여기서 어부님이 지적했던 parameter의 문제를 만나게 된다. 양과 늑대 시뮬레이션에서 화면 왼쪽을 보면 여러 가지 수치들이 있다. 이 세계는 100마리의 양과 50마리의 늑대로 시작하고, 양은 매 시점 7%, 늑대는 매 시점 5%씩 증가한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수치들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parameter다. 그리고 양과 늑대 시뮬레이션은 이런 parameter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는다. 어떤 시뮬레이션에서는 양과 늑대가 모두 멸종해버리고, 또 다른 시뮬레이션에서는 늑대만 멸종한다. 양과 늑대가 계속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계속 살아가는 시뮬레이션도 있을 수 있다. 같은 모형을 이용한 시뮬레이션에서도 parameter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어부님이 지적하신 것은 바로 이 문제인데 솔직히 이건 좀 복잡한 문제이기는 하다.

parameter를 잡는 문제는 진화심리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델링을 하는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다. 다만 진화심리학의 경우는 좀 더 어려울 수 있다. 일반적인 심리학에서 모형은 자극에서 반응, 입력에서 출력에 이르는 과정까지만 모델링한다. 진화심리학의 경우에는 이것은 물론이고 이러한 과정의 진화과정도 모델링해야 한다. 모형이 자연스럽게 더 복잡해지는 것이다. 모형이 복잡해지면 parameter 잡기가 어렵다. 그러려면 더 풍부하고 많은 자료가 필요한데, 실질적으로 진화심리학이나 일반적인 심리학이나 가지고 있는 자료는 똑같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한 가지 일반적인 전략은 어떤 parameter를 잡더라도 결국에는 똑같은 결과로 수렴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형질 A를 가진 개체가 형질 B를 가진 개체보다 r% 정도 자식을 더 많이 남기게 된다고 해보자. 이런 문제에서는 r 값이 얼마든지 간에 결국에는 형질 A를 가진 개체가 유전자 풀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그렇게 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달라질 뿐이다. 인류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했기 때문에 이렇게 진화하는데 100만년이 걸리건, 200만년이 걸리건 그 정도 차이는 논점에 따라서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대개 이런 종류의 프로세스를 가정하기 때문에 굳이 구체적인 모형을 제시하지 않는 듯 하다(이러나 저러나 어차피 수렴하니까).

사실 이렇게 모델링의 관점으로 보면 진화심리학에서 이론적 문제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공략할 수 있게 된다. 하나는 어떤 진화심리학 이론이 과연 앞문단에서 말한 것처럼 이러나 저러나 그 방향으로 수렴하게 되는 모형으로 기술될 수 있는가? 또 하나는 만약 그렇지 않고 parameter에 따라 결과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달라질 수 있다면 그 이론의 결론은 특정한 parameter에 따른 결과일 뿐인데 과거의 진화과정에서 parameter가 그런 결과를 낳는 범위에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진화심리학은 이런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을 통해서 좀 더 풍부하고 세밀한 논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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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漁夫 2013/04/08 22:15 #

    세밀한 논의 감사합니다. Lotka-Volterra equation에 근거한 늑대와 양의 전쟁(!) 재미있네요 ;-)
  • 아이추판다 2013/04/09 10:52 #

    제가 넷로고 소개할 때 제일 잘 쓰는 예제입니다 ^^
  • 채널 2nd™ 2013/04/08 23:45 #

    모델링의 문제는...............................

    현실을 그럴 듯하게 '모사'하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 해답도 못 주는.

    (주식 시장의 어느 날 갑자기 붕괴라든가 <-- 음모로 배제 ;;; 멸종된 줄 알았는데, 멀쩡하게 살아있는 어떤 존재;;; 모델링에서는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실제로는 멸종해 버린 어떤... xxx (고래라든가... 고래라든가.)) ;;;
  • 아마추어 2013/04/09 00:34 # 삭제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 해답도 못 주지만 결정적인 순간을 제외한 상당히 많은 순간에 대해서는 제법 괜찮은 해답을 주지요.
  • 지나가던중 2013/04/09 01:19 # 삭제

    해답을 내야하는 결정적인 순간이란 곧 앞을 알 수 없는 미래를 의미하고,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 근본적 원인을 모델 탓으로 돌려선 안되죠. 오히려 모델은 그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 asdf 2013/04/09 02:46 # 삭제

    완벽한 모델이란건 그냥 신의 영역입니다
  • 아이추판다 2013/04/09 10:53 #

    그건 모델링이 아니라 귀납의 문제죠..
  • deure 2013/04/09 00:46 #

    우연히 들어왔는데 글이 너무 재밌어서 푹 빠졌습니다. 모델링은 낯선 개념인데.. 실제로 그렇게 되든 되지않든.. 여러 세대를 넘어 '한순간'을 엿볼 수 있다는건 무척 두근거리는 일 같습니다. 왠지 이런 연구자는 패기 넘치고 창조적이어야 할것 같군요 ^^;
  • 아이추판다 2013/04/09 11:13 #

    '패기 넘치고 창조적'..이면 좋겠습니다만.. ^^
  • 이덕하 2013/04/09 06:58 #

    진화 심리학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가설이 있습니다.

    “이런 선천적 심리 기제가 있다” 류의 경우 다른 심리학 학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검증 방법도 똑같은 방법을 쓰면 됩니다. 모델링의 경우에도 그렇고요.

    이 때 진화 심리학이 특별한 이유는 그런 가설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적응론(adaptationism)이 heuristic(발견법, 어림짐작법)으로 쓰였다는 점입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적응론이 무한한 가설 공간(hypothesis space)에서 덜 헤매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 반면 진화 심리학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적응 가설의 경우 “이런 선천적 심리 기제가 진화한 이유는 이런 이유 때문이다” 류입니다. 다른 심리학파에서는 보통 이런 류의 가설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진화 심리학자들이 수학적 모델링을 한다면 주로 최적화 모델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만약 실제 심리 기제나 행동 패턴이 최적화 모델에 근접한다면 설계 논증(argument from design)을 끌어들여서 “그러니까 적응이 맞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때 진화 역사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눈처럼 구조와 기능 사이에 아귀가 잘 맞는다면 설계 논증 자체로 설득력 있게 적응 가설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지난 수억년 또는 수천만년 또는 수백만년 동안의 진화 역사에 대한 가설(“이런 저런 그런 경로를 거쳐서 이 심리 기제가 진화했다”)의 경우 모델링도 검증도 아주 힘들겠지요.
  • 아이추판다 2013/04/09 11:18 #

    휴리스틱으로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도움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당장 진화심리학자들 자신만 봐도 임팩트 있는 논문을 딱히 많이 써내는 것도 아니고..
  • 이덕하 2013/04/09 13:54 #

    진화 심리학 논문의 임팩트를 분석한 글을 본 기억은 없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비해 1990년대에 “진화 심리학 논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논문이 학술지에 훨씬 더 많이 실린 것 같습니다. 또한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도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 같고요.

    그런 논문들이 얼마나 호의적으로 인용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많이 실리고 있다는 것은 진화 심리학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긍정적인 것 같습니다.
  • 이덕하 2013/04/09 14:01 #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Impact Factor: 3.113
    5-Year Impact Factor: 4.063
    http://www.journals.elsevier.com/evolution-and-human-behavior

    Evolutionary Psychology
    Impact factor: 1.055
    http://www.epjournal.net/about-the-journal/

    Evolution and Human Behavior가 진화 심리학계의 대표 저널로 보이는데 지난 30년 동안 impact factor가 어떻게 변했는지 추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아이추판다 2013/04/09 14:41 #

    일단 숫자가 많다는 걸로만 따지면 fMRI 등 뇌영상 논문들을 따를 분야가 없겠죠, 하하. 진화심리학자들이 제기한 몇 가지 이슈들은 중요하기도 하고 널리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만, "임팩트 있는 진화심리학 논문이 많이 나왔다"라는 주장에 동의할 심리학자는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저도 딱히 떠오르는 게 별로 없습니다만.. 누가 "진화심리학이 아주 엉터리다!"라고 말한다면 저도 반대하고 싶습니다만, 이덕하님처럼 "아주 중요하다"라고 하셔도 별로 수긍이 안가네요..
  • 이덕하 2013/04/09 17:26 #

    진화 심리학자들은 대체로 “진화 심리학은 혁명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이 때 이 혁명은 상당 부분 미래형입니다. 지금까지 진화 심리학이 30년 정도 동안 급속히 팽창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심리학계에서도 소수파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회 과학계에서는 그보다 더 인기가 없죠.

    진화 심리학 혁명(이것이 진짜 혁명이라면)은 인지 혁명보다 학계에서 훨씬 더 큰 저항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진화 심리학이 아주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미 이루었도다”라기보다는 “두고 보시라”라는 말은 하는 거죠.
  • 엉뚱한 질문 2013/04/12 13:31 # 삭제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304112131365&code=990100

    판다님 이 기사 보셨나요? 하려는 이야기는 좋은데 하는 이야기는 이상한 그런 거 같은데... 심리학에서도 저리 말하는가요.

    엉뚱한 질문 죄송합니다
  • 아이추판다 2013/04/14 02:42 #

    좀 미묘한 지점들이 있는데, 워낙 짧은 글인데다가 중간부터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려서 이렇다 저렇다 평하기가 어렵네요.
  • mu 2013/04/16 01:57 # 삭제

    판다님을 비롯, 많은 사람들이 UCSB라인의 연구만을 진화심리학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진화심리학은 심리학의 하위 분야라기 보다, 심리학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보는 접근이 더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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