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17 21:45

대학평가의 딜레마

얼마 전에 중앙일보 대학평가를 보고 든 잡상.

대학은 어쨌든 교육기관이다. 물론 연구중심대학이라는 개념도 있지만, 여기에 해당하는 대학은 거의 없다. 한국에서는 카이스트와 포스텍 정도나 해당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언론사에서 운영하는 대학평가에는 '교육'이 측정 항목에 거의 포함되지 않는다. 그 대신 재정이나 시설이 포함되는데 이런 '하드웨어'와 교육은 대체로 별로 상관이 없다. 굳이 좋게 이해(?)해주자면 측정 가능한게 그것 뿐이니 그거라도 측정하자는 건데.. (먼산)

사실 정규교육과정 중에 대학교육은 평가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초중고등학교 교육은 교육과정도 있고, 교육과정에 보면 평가기준이나 성취기준도 있고 뭐 이래저래 말도 많지만 어쨌든 일제고사나 수능처럼 '교육의 결과'를 측정하는 절차도 마련되어 있다. 반면 대학교육은 그런 기준이나 절차가 전혀 없다. 학기말에 학생들이 하는 강의 평가정도가 전부인데, 이것도 별로 믿을 수 있는 지표는 아니다.

어쨌거나 대학평가에서 교육, 정확히는 교육의 결과를 '잘' 평가할 방법들이 없지는 않을텐데 여기서 한 가지 딜레마가 나온다.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교육에 대한 평가를 잘 할 필요가 있지만, 대학교육의 평가를 잘 할 방법이 있으면 대학교육의 존재가치도 떨어진다. 왜냐하면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선별 기능인데, 이것이 독립적으로 '잘' 측정될 수 있다면 대학을 나오든 안 나오든 그 방법으로 측정해서 높은 점수만 받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 특히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대학일 수록 자신의 존재가치를 돋보이게 하려면 이런 종류의 평가에 저항할만 유인이 존재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이 '딜레마'가 대학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실마리이기도 한데, 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정작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쉬운 일도 아니고.

덧글

  • 不慍_불온 2012/10/17 22:32 #

    우리나라 대학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가 서열화인데, 현재의 대학평가는 이러한 서열화 경쟁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학 역시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서열을 높이려고 경쟁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 아이추판다 2012/10/18 11:50 #

    서열화 자체보다는 어떤 서열화인가가 문제겠지요.
  • 아세 2012/10/18 00:06 # 삭제

    아시다시피 일제고사로는 평가될 수 없는 것이 대학교육에는 반드시 있어야하고, 실제로 대가라 불리는 사람들, 혹은 조금 낮춰 연구를 잘 하는 교수들에게서 배우는 것들 중에는 일제고사로는 평가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까닭에 말씀하셨듯이 소위 명문대라는 곳들은 일제고사식의 교육에 대한 평가를 거부할만 합니다.
  • 아이추판다 2012/10/18 11:51 #

    하지만 대학교육의 상당 수는 그냥 교과서 가지고 가르치는 수업이 전부인지라.. 말씀하신 부분이 그렇게 큰 비중은 아니라고 봅니다.
  • 산마로 2012/10/18 12:13 # 삭제

    아세// 지식이 방대해지고 사회 전체가 고학력화되고 있어서 말씀하신 부분은 이미 대학원으로 다 옮겨간 것으로 보입니다. 학부의 교육은 표준화시험으로도 충분히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 높은 수준의 시험이 이미 각종 고시들로 충분히 치뤄지고 있지 않습니까?
  • 아세 2012/10/21 02:57 # 삭제

    아이추판다님/ 그래서 명문대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라면 소위 상위 몇 개, 혹은 십 여개의 의 대학을 제외하고는, 말씀하셨듯이, 교과서 가지고 가르치는 수업, 아니 교과서도 다 소화하지 못하는 수업이 전부인지라, 제가 이야기한 부분은 전체 대학의 교육을 평가할 때 큰 부분이 아닐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상위 몇 대학에서는 교과서 이외의 그 무언가가 중요하고, 그것이 어떤 학생들에게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가의 한마디가 커다란 깨달음을 주는 경우는 참 많고, 그런 기회는 아무래도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에서 더 자주 만나게 되니까요. 그런 면에서 일제고사로는 평가될 수 없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 밖에 없는 명문대란 곳에서는 그러한 평가를 거부할 수도 있겠습니다.

    산마로님/ 대학원으로 옮겨갔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학부생들에게는 자신들이 배우는 것들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주어야 하고 그것은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1/(1+x^2)의 부정적분 속에 숨어있는 17세기 이후 19세기 말까지의 수학의 큰 흐름, 대변혁과 같은 것은 교과서에서는 배우기 힘은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를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해주며 수학에 대한 큰 꿈을 품게 해 주는 것도 교과서를 벗어나 교수가 학생들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큰 선물일 수 있습니다. 표준화된 시험으로는 평가가 불가능한 내용들입니다. 쉽게 말해 "이거 배워 뭐에 써먹냐?"는 질문에 대한 교수의 제대로 된 답변은 교과서의 한줄 진도를 더 나아가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교육이란 것이 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 2012/10/18 03:29 # 삭제

    헌데 교육의 질은 무엇으로 평가하나요?
    만족도가 어떤가 설문조사는 이미 하고 있고....
    결국 반영할 수 있 게 졸업생들의 취직률이 얼마인가, 취직한다음 평균 연봉이 얼마였나
    구하는 게 전부지...
  • 아이추판다 2012/10/18 11:52 #

    실제로 학생들이 무엇을 배웠는지 보면 됩니다. 물론 쉽지는 않죠.
  • 1 2012/10/18 18:38 # 삭제

    위에 쓰셨던 대로 대학들이 연구 중심이면 매우 쉽게 평가될 수 있을 거 같아요
  • 아이추판다 2012/10/18 18:56 #

    사실 그 이유 때문에 대학평가가 연구실적에 편향되는 경향이 있죠.. 근데 연구실적도 단시간에 올리기 어려우니 국제화 같은 항목을.. (먼산)
  • Ha-1 2012/10/20 18:18 #

    대학 평가는 진리의 졸업생 결혼정보등급으로 (...)
  • 悟汪 2012/10/29 06:33 # 삭제

    제가 공부하는 쪽에서 이야기하는 교육의 기능이 하나가 productivity improvement고 또 하나가 screening 인데 형이 이야기 하시는 건 후자 쪽의 입장이신듯 합니다요. 중등 교육과정은 고등 교육과정으로의 진학률이라는 대표적인 지표가 있긴 한데, 일단 대학 교육은 취직/대학원 진학 등등으로 졸업 후의 커리어가 정말 제각각이라서 일괄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고요. 그래서 screening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데이터를 일일히 보면서 분류를 해야하는데 그 기준이 정말 애매하고 그야말로 노가다 중의 노가다. 덕분에 많은 labor economist들이 마르지 않는 샘을 파고 있는 중...(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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