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15 21:24

오래된 습관의 단순한 반복 유사학문

청춘상담앱 정혜신 인터뷰에 대한 아이추판다 님의 비판에 대한 답변 (한윤형님)

일단 문제의 대화를 다시 보자.

이진호 제가 다니는 인문학부에서 가장 인기 많은 학과가 심리학과예요. 지원하는 학생들이 선생님처럼 상담치료 쪽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막상 공부하는 건 ‘뇌의 신호’가 어떻다는 등 학생들 기대와는 다른 내용이에요.

정혜신 심리학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이 상담을 통해 남을 돕고 싶어 하는 동기로 시작해요. 그런데 막상 뇌신경 분야 같은 기능적인 학문 쪽만 가르치는 게 사실이에요. 미국 정신의학계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렇다고 봐요. 유독 한국 사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을 꺼리는 거 같아요.

내가 문제 삼는 것은 빨간색으로 강조한 대목인데, 이것이 그저 상담을 배우기 어려웠다는 개인적 경험을 술회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냥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일정한 맥락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배경을 좀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우선 정혜신이 정신분석과 별로 관련이 없는 그저 "상담치료 열심히 하는 정신과 의사"라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정혜신의 회사 "마인드프리즘"의 전신은 "정혜신 심리분석 연구소"이고 '심리분석'은 psychoanalysis의 또다른 번역어이다. 마인드프리즘 회사 비전에도 "정신분석적 심층심리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물론 정신분석을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한윤형님은 내가 "약물로 치료해야 하는 어떤 이들에게 정신분석학은 무력하기 때문에 그것은 사이비라고 결론짓는다"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이유로 정신분석학을 비판하는 사람은 본 적도 없다. 정신분석이 흔히 비판받는 이유는 단순한 임상적 수단을 넘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과도하게 많은 주장들을 하는데 있다. 예를 들어 불교의 명상은 우울증 재발 방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있다. 불교는 '번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련 방법을 수 천년간 탐구해왔으니 아무 효과도 없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러므로 우리는 불교를 믿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상당한 비약을 감행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신분석가들이나 또는 정신분석학을 옹호하는 인문학자들이 이와 같은 주장들을 해왔다는데 있다. 종종 정신분석가들조차 이런 점을 비판한다. 저명한 정신분석가 맥윌리암스의 지적을 살펴보자.

셋째, 정신분석적 치료의 효과가 임상적 경험을 통해 입증되었다는 섣부른 확신으로 인해 많은 분석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일에 소흘하게 되었다. Masling(2000, Hoffman, 2002에서 인용)이 정신역동적 이론에 근거한 경험적 연구가 5,000개 이상이라고 추산했듯이, 정신분석과 정신역동적 치료에 관한 경험적 연구는 보험사, 제약회사, 일부 학자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많지만, 치료효과에 대한 연구는 기대되는 것보다 현저하게 부족하다. 경험적 연구를 경시하는 이러한 태도에는 Freud도 일부 책임이 있다. 미국 심리학자인 Saul Rosenzweig가 억압에 대한 Freud의 생각이 실험실에서 검증되었다는 것을 알리려고 Freud에게 편지를 보냈더니, Freud는 그 스스로 이미 억압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회신했다. 그는 그러한 개념에 대한 경험적 검증을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Freud 이래로 정신분석적 치료자들이 연구를 소흘히 여기는 경향은 기질과 관련된 문제인 듯하다. 유럽의 통합적인 철학적 전통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세밀하게 통제된 연구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드물다. 이들은 내향적이고 성찰적인 경향이 있으며, 특정한 현상이 왜곡 없이 실험적으로 조작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치료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완벽하게 통제되지 않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상황에서 사람을 돕는 일에 관심이 더 많다. 심리치료 결과에 대한 경험적 연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향은 환자와 치료자 두 사람간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얻은 정신분석의 가치에 대한 확신, 즉 상투적인 경험적 증거는 불필요하거나 피상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믿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을 경험적 연구를 통해 검증받는 것에 대해서 분석가들이 나타내는 저항적 태도는 우월주의자들이 지니는 자만심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현재 미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분석적 치료자는 정신분석적 치료에 대한 통제된 연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낸시 맥윌리엄스, 권석만 등 옮김,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학지사, 29-30쪽.

위의 인터뷰에서 정혜신은 단순히 상담을 배우기 어렵다고 이야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뇌신경 같은 기능적 학문 쪽만 가르친다"고 말하며 그 원인을 "미국의 영향"과 "보이지 않는 가치를 .. 꺼리는 분위기"에 돌린다. 그런데 뇌 연구는 약물치료만을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 이론들을 좀 더 탄탄한 기반위에 올려놓기 위한 것이다. 돈되는 것으로 따진다면 정신분석이 차라리 더 돈이 된다.

게다가 한국에서 상담이 잘 안되는 이유는 심리학과나 정신과 수련과정에서 뇌신경 따위만 가르치기 때문도 아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면 돈 문제다. 현행 건강보험에서는 상담치료에 대해 보장하는 범위가 무척 좁다. 게다가 기사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한윤형님에 따르면 정혜신은 "사실 상담치료가 필요한 건 우리가 흔히 '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아니고, 여기 있는 우리같은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우리 같은 사람들'의 문제는 정신과적 문제도 아니고, 당연히 건강보험 급여대상도 아니다. 그런데 정신과 상담은 보험이 안될 경우 회당 상담료가 10만원을 넘는다. 단기치료조차 수 주에 걸쳐 이뤄지는데 보통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언제 종결될지도 모르는 정신분석이라면?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자면 건보재정이 파탄나고 말 것이다.

정부재정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국가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도 제한되기 마련이다.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가게 하자면 어느 정도 질을 낮출 수 밖에 없고, 질을 높이자면 혜택을 받는 사람들을 줄일 수 밖에 없다. 요즘 많은 대학에 상담소가 설치되어 있어서 학생들에게 무료로 상담을 해주고 있는데 이것도 포화상태라 얼마 전 한 대학에서는 상담 대기 명단에 있던 학생이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제도를 설계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며, 그 문제를 커리큘럼 탓으로 돌리는 것은 지극히 관념적인 태도에 불과하다.

어쨌거나 이러한 사정 때문에 정신분석은 고래로 돈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신분석이 비싼 것과 다른 의료 수단이 비싼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의료 수단이 비싼 것은 개발 비용이 높고, 이러한 비용을 메꿔주기 위해 지적재산권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술적, 제도적 문제일 뿐으로 의료 수단의 성격 그 자체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과학적 검증을 경시하고 임상 경험을 토대로 이론을 쌓아왔기 때문에 가격에 의해 제한된 대상의 범위가 이론 그 자체의 성격에도 영향을 주기마련이다.

한윤형님은 "심리학은 먹고 살만한 나라에서나 발달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악랄한 부산물이다."라는 말은 '얼치기 좌파'나 할 소리라고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과학계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는 말이다. 2010년 6월 25일 "사이언스"에 '인간 본성에 대한 이상한(WEIRD) 관점이 심리학자의 연구를 왜곡한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다. 여기서 '이상한'을 뜻하는 영어 단어 WEIRD는 대문자로 쓰였는데, 서구(Western), 교육받은(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 부유한(Rich), 민주(Democratic) 문화권을 뜻한다. 심리학 연구가 대부분 이런 나라들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편향된 표본에 근거하는 연구들이 이뤄지고 결과적으로 특정한 인간 집단의 심리를 보편적인 것으로 주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참고: '괴짜'들의 심리학)

정신분석학은 심리학 일반에 비해서도 더 WEIRD할 수 밖에 없다. 어떤 면에서 정신분석학이 급진적이라는 주장은 참이기도 하다. 정치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취향의 측면에서 말이다. 정신분석학의 급진성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 정신분석학은 부르주아 계급의 '급진적' 취향에 부합했기 때문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프로이트 이외에도 수많은 의사들이 환자의 심리적 갈증을 이해했었으나, 중산층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치료 방식을 다듬어 내었다는데 프로이트의 중요성이 있고, 특히 중산층 사람들이 느긋하게 자기성찰을 할 여건을 마련했다는 데에 그 의미가 크다. 게다가 인종적 배경과 사회적 위치로 인해 그의 이론은 강력한 반향을 일으켰고 심리학적 설명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계층에게 쉽게 특혜가 주어졌던 것이다. 서구 유럽 가치관에 급속하게 순화되어 간 중류층 유태인 여자들이 계층에 속했다. 이 시점에서부터는 이야기가 매우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을 알 수있을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정신분석이 정신의학을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 치료적으로는 불학실한 학설에 불과했고, 줄잡아 말해도 사변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환기에서 비 유대인 여성처럼 되고자 열망하던 중산층 젋은 유태 여성들은 고립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고, 정신분석은 이런 특정 집단의 심리적 욕구게 가장 적절한 것이었다. 게다가 심각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욕구에 이보다 더 잘 부응할 수 있는 치료법은 찾기 힘들었다.

정신분석이 본질적으로 정신의학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었음을 생각한다면, 정신분석이 유럽 전역을 질주하게 된 이유에는 정신분석 자체가 아닌 다른 어떤 영향력이 확실히 작용하고 있었다. 그 힘은 바로 중산층 사람들의 열광이었다. 프로이트의 학설은 교육받은 계층에게 터무니없이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20세기 후반 내내 부르주아 계층에게는 자기인식을 추구하기 위한 성경과도 같이 여겨졌던 것이다. 치료가 정신분석이라면 예술은 표현주의였다. 정신분석과 표현주의는 양자 모두 정교하게 고안된 자기성찰 방법을 의미했다.

에드워드 쇼터, 최보문 옮김, "정신의학의 역사", 바다출판사, 249-257쪽.

그리고 이러한 부르주아 계급의 열광은 앞서 말했던 정신분석가들의 경험적 연구에 대한 저항적 태도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프로이트와 그 추종자들은 그것이 진리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을까? 아니면 매우 모호한 것들을 "확실한" 그 무엇이라고 믿기 위해 서로에게 암시를 걸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프로이트는 자신을 과학자라기보다는 탐험가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고, 한번은 친구인 플리스에게 단호하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나 자신은 전혀 과학적인 사람도 아니고, 관찰자도, 실험가도, 더욱이 사색하는 사람도 아닐세. 나는 기질상 정복자 - 굳이 정의하자면 탐험가라 할까 - 이고, 그런 사람들의 특징인 호기심과 대담무쌍함 그리고 끈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세." 프로이트 계열 집단은 아첨꾼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 이유는 프로이트가 보내 주는 환자들에 의존하여 경제적 이득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책상 서랍에 연락할 환자들의 목록을 넣어두고 자기 기분에 따라 인색하게 환자들을 나누어주었다.) "프로이트는 자기 추종자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강력한 암시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인식하지 못했고, 따라서 자기 이론이 명백하게 확인되었다고 정말로 믿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역사학자인 폴 로어젠은 적고 있다. 그러므로 타당성의 문제는 정신의학계 안에서 정신분석의 빛이 꺼져 갈 때까지 정신분석 자체를 끊임없이 위협했다.

(중략)

또 다른 그룹의 정신과 의사들은 아마도 심리학적인 것보다는 경제적 이득에 더 관심이 커서 환자를 끌기위해 정신분석을 받아들인 개인 신경 클리닉 소유자들이었다. 이들이 "정신분석"을 한다고 각별하게 선전을 해댔던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 전후로 "프로이트주의"를 요구하는 중산층의 요구에 대한 공급자로서의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 클리닉의 환자들이 바로 중산층이었기 때문이다. 경쟁이 심한 개인 클리닉은 최신 유행이라면, 그것이 1890년대의 식이요법이든, 벨에포크 시대의 "신선한 공기와 태양" 요법이든 무엇이든 하려들었다. 그리하여 정신분석은 1910년 이후 최신 유행 품목이 된 것이다.

1895년에 발표된 프로이트와 브로이어 식의 정신치료는 일명 승화치료라 불렸다. 이 치료방식은 개인 클리닉들에서 즉각적으로 받아들여 이미 1900년에 유행이 시작되었고, 튀링겐의 온천치료소와 블랑켄부르크의 개인 신경클리닉을 운영하던 볼프강 바르다 같은 사람들은 "프로이트와 브로이어의 승화치료"가 엄청나게 환자를 끌어 모은다고 동료들에게 자랑할 정도였다. 프로이트가 승화치료의 치료성을 폐기하고 통찰치료로 전환하자, 이를 지지하는 개인 클리닉들은 몇 배 이상 더 불어났다.

위의 책, 256-265쪽.

위의 인터뷰에 나왔던 정혜신의 말들은 정신의학의 역사를 통해 부르주아 계급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열광에 부응한 정혜신과 같은 개업 정신분석가들에 의해 수없이 반복되었던 것들이다. 이것이 평범한 회고담이라면 민노당이 북한의 3대 세습 비판하지 않는 것도 정말로 외교적인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라캉 이후로 정신분석학은 부르주아 계급만이 아니라 좌파와 인문학자들에게 매력적인 지적 악세사리가 되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socio님이 잘 정리해주셨는데(정신분석학은 진보적인가?: 몇가지 보충자료) 정신분석학의 불가해성에 대한 열광은 사실 새로운 풍경이 아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미국에 망명하여] 새로 도착한 사람들에게는 어려움이 따랐다. 영어를 읽기는 하나 말하는데는 서툴렀다. 예를 들면, 페니켈이 메닝거 클리닉의 요청으로 강의하기 위해 토페카에 갔을 때였다. 자신이 발음을 잘 못한다는 것을알고 있는 그는 다른 망명자인 마틴 그로티얀에게 도움을 청했다. 후에 그로티얀이 회상하기를, 페니켈이 뭔가 "페니스 칙사(敕使)"에 대해 얘기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건 틀린 말 같았지요. 그래서 망설이면서 ...... '페니스 담쟁이 덩굴'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망명분석가가 '선망'이라고 제의했지만 오토와 나는 그 역시 아닌 것 같다고 했습니다." 페니켈의 강의에 "모두 존경을 표했지만 이해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페니스 칙사'는 열렬한 갈채를 받았다.[주: 칙사: envoy, 담쟁이덩굴: ivy, 선망: envy]

위의 책, 279-280.

부르주아들이 무슨 사치스러운 도락을 즐기든지 그것은 내 알 바 아니지만, 그것을 대단한 이론으로 포장하고 경험적 연구에 대한 폄하를 대중적으로 선동하는 것은 보아주기 어렵다. 게다가 일부 얼빠진 좌파들과 인문학자들은 이것이 대단히 급진적 이론인양 떠받들면서 이러한 선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오히려 이들은 정신분석을 옹호하는 정신과 의사들보다 훨씬 더 많이 나간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한윤형님이 단지 철학적 관점에서 라캉을 활용할 뿐이라고 감싼 적이 있는 '인문좌파' 이택광의 말을 보자.

말하자면, 정신분석의 문제는 윤리의 문제이지 임상의 문제가 아니다. '의사'라는 제도적 직업에 불과한 존재가 분석주체를 '환자'라고 명명하면서 증상을 억압하기 위해 효과도 확실하지 않는 약물을 처방하는 '권위'에 대해 라캉주의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문제제기는 단순하게 '의사'라는 특정 존재에 대한 의심을 넘어서서, 의료제도, 또는 임상의학이라는 근대적 신화, 더 나아가서 이런 신화를 지탱시키고 있는 자본주의적 상징질서 자체에 대한 회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라캉주의의 혁명성은 빛을 발한다.

솔직히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라캉주의를 비판해서 무슨 소득을 얻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라캉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기득권에 안존하려는 '강단 자유주의자들'의 말과 이런 논리가 어떻게 다른가? 학계에서 라캉의 존재감을 주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한줌도 되지 않는 진지한 라캉주의자들이 몇몇 얼치기 인터넷 논객들 사이에서 그렇게 '강력한 논적'으로 실체감을 획득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라캉주의에 대한 반감은 궁극적으로 욕망의 금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자기방어에 불과하다. 자기 욕망을 분석하기 싫어하고 증상의 쾌감에 안주하고 싶은 것이 이들의 속셈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건 라캉의 수용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택광, 라캉에 대한 비판?

글의 첫 머리, 정혜신의 말에서 붉게 강조한 부분과 이택광의 글에서 붉게 강조한 부분에서 드러나는 이 뚜렷한 상동성을 보라. 물론 정혜신이 '그냥 커피'라면 이택광은 'TOP'라고 할 수 있겠다. 정혜신보다 이택광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관점은 과학적 기반에 토대한 근대 의학은 신화에 지나지 않으며('효과도 확실하지 않는 약물을 처방하는') 이것을 지탱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상징질서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택광은 약물치료 - 뇌신경 - 근대의학 - 자본주의를 하나의 계열로 묶고 이것을 일괄타격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지만 검은 글씨로 강조한 부분이야말로 정신분석학의 부르주아적 특성으로 종종 지적 받는 대목이다.

정신병을 오진할 경우 생기는 또 다른 문제는, 종잡을 수 없는 정신분석학 용어를 부적절하게 아무 데나 갖다 붙이는 것이었다. 특히 환자가 분석가와 매우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진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1955년 클리블랜드의 한 병원에서 전립선 수술을 받은 75세 흑인 노동자의 침상 옆에 정신분석가 여럿이 모여 있던 당시 상황을 한 번 들여다보자. 이 환자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였기에 외과의 사들이 정신과에 자문을 구했고, 정신과 의사들은 이 환자가 "정상"이라고 보았다. (비록 따옴표를 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가들은 이 환자에게 병리적인 점이 있다고 보았는데, 환자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남자'로서의 자부심"을 얘기하고 또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은 약한 남자나 하는 짓이고, 수술 후에 충분히 '원기'를 회복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에" 가능한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위남성성(psuedomasculinity: 겉으로는 남성적 특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태도를 취하나 사실은 남성적이지 못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나타내는 행동에 불과한 경우, 혹은 여자가 강인하게 보이기 위해 남성적 특징을 차용하는 경우)"의 증거라고 보았던 것이다. 의미하는 것은? 흑인 노동자가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가짜 남성성이다.

여하튼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흑인 노동자를 치료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분석 이외의 치료법을 사용하는 의사와 비교했을 때, 분석가들이 보던 환자는 전문직업인, 행정가 등이 훨씬 많았다. 당시 정신의학은 "좋은" 환자와 "나쁜" 환자를 구별했다. 좋은 환자는, 나중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정신과장이 된 허먼 반 프라그가 말했듯이, "비교적 젊고, 매우 지적이고, 자기성찰적인"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교육받은 중류층 사람을 뜻했다. 나쁜 환자란 중증, 만성적 무능상태로, 정신분열증, 중독 그리고 가난하고 교육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에드워드 쇼터, 앞의 책, 299-300쪽.

이택광은 정신분석학의 오랜 부르주아 편향성을 재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뭐 그들 자신을 '좋은 환자'라고 여기겠다면 나무라지는 않겠다.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재미있게도 이택광은 김우재가 "쓰레기 같은 논문이나 남발"한다고 비난하자 이에 길길이 날뛰면서 "시장에 상도덕이란 것이 있듯이, 학문세계에도 일정한 약속이 있습니다. 이걸 우리는 '전공'이라고 부르고, 최대한 해당 전공자의 노고를 존중하는 것이 예의입니다."(비열함에 대하여 중 댓글)이라고 말한다. 그는 "조승희의 죽음은 미국의 정신의학이나 에고 심리학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하고, 효과도 확실치 않은 약물이나 처방하는 임상의학은 자본주의적 상징질서에 의해 지탱되는 근대적 '신화'라고 말하는 사람인데 자신이 비난을 당하자 '해당 전공자의 노고를 존중하는 것이 예의'라고 하니 도대체 세상에 이런 예의가 어디있단 말인가?

다시 돌아와서 나는 부르주아들이든, 정혜신이든, 이택광이든, 인문학자나 좌파들이든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사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문제 삼는 것은 과학에 대한 그들의 '비열한' 악선동이다. 이것은 예의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걸려있는 문제다.

예를 들면 한윤형님은 핀란드 교육과 콩나물 교실을 대조시켰는데 교육 문제야 말로 좌우 모두에서 라캉주의와 별로 다를 바 없는 근거가 불확실한 사변적 주장들이 난무하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볼 때 핀란드에 열광하는 좌파들은 프랑스산 이론들에 열광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게 근거를 묻기보다 외국에 대한 터무니없는 선망을 가지고 있다. 물론 핀란드 교육에도 장점이야 있겠지만 핀란드는 핀란드고 한국은 한국이다. 한국의 상황에서 정치적 목표(그것이 무엇이든)를 달성하려면 당연히 과학이 필요하다.

예컨대 아침 자율학습 같은 것은 입시교육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과학적으로 어리석은 짓에 불과하다. 청소년들은 수면주기가 성인과 달라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야 학습의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높이려면 0교시 자율학습을 할 게 아니라 등교시간을 오히려 지금보다 더 늦춰야 한다. 과학이 없는 독단적 주장으로는 좌든 우든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는 고사하고, 사람들의 삶을 망가트리는 결과 외에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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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irof 2011/06/15 21:47 # 삭제

    저쪽 한윤형님 쪽에서는 댓글에서 비웃는 식(정확히는 다른사람이 그렇게 하고, 거기에 동조함)으로 대응하고 있던데... 어떤 식으로 답변할지 궁금하긴 하네요.

    개인적으로는 이전 포스팅과 이 포스팅에서 일관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을 잘 못잡아서 그런건지 고의적으로 무시해서 그런건진 잘 모르겠지만.... socio님의 포스팅까지 엮어서 생각하면 저쪽에서는 아이추판다님의 지적이 뜬금없다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상한 방향으로 반응한 것은 한윤형님이 아닌가 싶긴 합니다.

    뭐, 그런데 이런 종류의 지적을 한윤형님한테 하는게 그렇게 의미가 있는가 싶긴 한데 말입니다... 그냥 이 주제를 엮지말고 별도 포스팅을 하셨다면 좋았을 듯?
  • 아이추판다 2011/06/15 22:41 #

    일단 트랙백이 왔으니 보내야죠.
  • 액시움 2011/06/15 22:34 #

    인용하신 이택광의 첫 번째 글을 읽었을 때 입을 떡 벌렸고, 두 번째 인용 대목에서 뒷목을 잡았습니다. 저 양반은 아플 때 병원이나 가는지 궁금하네요.

    질문 1.
    "요즘 많은 대학에 상담소가 설치되어 있어서 학생들에게 무료로 상담을 해주고 있는데 이것도 포화상태라 얼마 전 한 대학에서는 상담 대기 명단에 있던 학생이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이에 대한 출처를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다른 건 아니고, 저희 학교 상담 센터를 이용하는 학생이 하도 없어서 이에 대한 일을 좀 하는 데 활용하려고 합니다.

    질문 2.
    "청소년들은 수면주기가 성인과 달라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야 학습의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자료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근데 제 경험으로는 12시에 자서 9시에 일어났더니 머리만 뻐근하고 학습이 잘 안 되더군요.(...)
  • 아이추판다 2011/06/15 22:44 #

    답변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7132252331&code=940100 이 기사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답변2: 이 부분은 정리해서 사이언스온 연재에 넣을 생각입니다. 그때 보시죠.

    근데 수면 주기나 필요한 수면양에는 개인차가 있으니까요. 모국 대통령처럼 하루 5시간만 자도 충분한 사람도 있고..
  • Y 2011/06/15 22:37 # 삭제

    근데 wllflower.egloos.com 주인장이 혹시

    SSRI 같은 약물이 실제로 효능은 없고, 제약회사 배만 불려주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요?

    그리고 더 나아가 정신과 질환 치료에 있어서 생물학적 접근을 부정하시는 건가요?

  • Y 2011/06/15 22:44 # 삭제

    아! 그리고 한가지만 더 질문을 드리면

    한윤형님의 라캉에 대한 입장은 뭔가요?
  • 2011/06/15 23:0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1111 2011/06/15 23:28 # 삭제

    차라리 디씨 정사충이랑 논쟁하는게 훨 남는장사 같군요....
  • hs 2011/06/15 23:30 # 삭제

    한윤형 여기저기 집적대는건 여전하군.
  • hs 2011/06/15 23:41 # 삭제

    아흐리만 시절이 그립구나 지금은 그냥 진중권 주니어가 되가는 한윤형 ㅋㅋㅋㅋㅋ 중궈빠니 이런 말 봐도 좋겟지?ㅋ
  • 1111 2011/06/15 23:42 # 삭제

    꿈은 진중권(이 누리고 있는 사회적 명성)이지만 현실은......
  • -_- 2011/06/16 06:42 # 삭제

    꼭 공부못하는 놈들이 빽빽이를 좋아한다는거 선생들도 거의 다 압니다. 마찬가지로
    하루종일 책상에 않혀놓고 4당5락 바락바락 윽박질러도 성적 안오른다는거 경험적으로
    금방 터득합니다.


    근대 왜 저따위로 비효율적인 교습방법을 고집하는 걸까요?
    그건 과학적 검증을 통한 연구결과를 경시하는 인문학적 가르침이나
    민족주의나 가르치는 걸 지고의 목표로 삼는 구시대적 전교조 선생들이 원인이 아님미다.

    그냥 학교의 의사결정 구조가 비민주적이기 때문이지요. 교장 교감의 눈에
    너네 학생들이 책상에 앉아 끄적거리고 있고, 한두시간이라도 학교에 더 붙잡아 두는게
    보기에 좋기 때문이지요.


    좌파니 인문학자니 진보니 언급하며 좌충우돌하시는데
    몇몇 튀기 좋아하는 블로거들이랑 싸워 이기는 거하고
    현실에서 합리적인 교육제도를 구축하는 것하고 비교하자면
    후자가 훠어얼씬더 어려운 일이거던요 ㅋㅋㅋ

    그러니 정치와 권력관계에 대해 좀 더 배우시지 않으면
    현실비판하시기도 쉽지 않습니다.
    한윤형이나 이택광같이 많이 배우고 착하고 지적이며 현학적인걸 즐기는 꼬꼬마 새끼들과
    글로 싸워 이기는 거에 열내고 계시니 마음이 찌저집니다.
  • 파파라치 2011/06/16 14:39 #

    모든 사람이 정치 투사가 될 이유도, 필요도 없지요. 거악이 저기 있는데 왜 찌질한 애들만 패고 다녀!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있는 일입니다.
  • 2011/06/16 07:35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아이추판다 2011/06/16 16:06 #

    이런 것은 누가 이기고 지는 일도 아니고요, 이런 일로 자료를 정리할 수 있으면 좋은 것이죠.
  • maxi 2011/06/16 12:09 #

    좋은 글이라 추천합니다.
  • 불별 2011/06/16 13:45 #

    "청소년들은 수면주기가 성인과 달라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야 학습의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

    -> 이 내용에 대한 사이언스 온 연재 기다리겠습니다!
  • sanxiyn 2011/06/16 15:38 #

    청소년 수면주기 이야기는 혹시 http://www.overcomingbias.com/2011/04/why-not-let-teens-sleep.html 인가요?
  • 아이추판다 2011/06/16 16:04 #

    제가 알고 있던 것은 좀 더 예전 연구인데, 이거 좋군요. 감사합니다. :)
  • Malina 2011/06/16 16:28 # 삭제

    님이 문제삼는게 정확히 무엇인지.. 저 맥락을 비판하신 거면 번지수 잘못찾으신 거 같은데요. 저 학생이 말하는 맥락은 경험적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탐구를 중시하는 심리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위상을 문제삼은 게 아니라 '인문학부'에서 가르치는 심리학이라는 학과목이 심리학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기대하는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커리큘럼에 대한 문제제기 인데요.. 또 정혜신 씨도 과학적 경험성을 경시하지도 않는데요.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는 경향에 대해 문제를 삼고 있지요. 결국 정신분석이든 경험과학적 심리학이든 사변적 형이상학에 지나치게 천착하거나, 수치화된 데이터에 지나치게 천착하는 것 양자 모두 비난의 계기는 갖고 있겠죠. 줄을 어디에 서냐 거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게다가 정신분석학과 철학의 관계를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고 계신듯. 의미에 도달하는 다양한 언어게임이 있다면 정신분석은 윤리적 계기를 제공하는 위상 쯤 가지고 있겠죠. 누구도 정신분석이 진리라고 보지는 않을 겁니다.

    결론: 남이 정신분석 좋아하건 말건 굳이 깔 것도 없는데다, 저 구절로 봐서는 경험적 과학 경시했다고 보기도 어려움. 학생은 인문학적 시각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커리큘럼을 문제삼고 있으며, 정혜신 씨는 그것을 그저 과학이 형이상학적 탐구를 경시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하는 거 뿐임. 오히려 형이상학 무시하는 건 과학이죠.
  • 2011/06/16 21:38 # 삭제

    왜 유독 심리학이라는 학문만 몇몇 학생들의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저런 욕을 들어야하는걸까.

    님같이 심리학을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아이추판다님이 이 글을 써주신 것 같네요.
    글 다시 읽어보시는게 좋으실 듯.
  • Tardis 2011/06/16 22:17 # 삭제

    아이추판다님의 비판을 오해하신 건 아닌지요?

    개인적으로 제가 보기에도 정혜신 씨가 어디에 치우쳐 있다고 말한 점은 좀 비약이라고 봅니다.

    설사 일부 학생들이 그렇게 원한다 하더라도 일괄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들과 성향이 다른 학생들에게 무슨 변명을 하면서 교육과정을 고치겠습니까?

    저도 심리학 좋아합니다만 상담심리학, 정서심리학 같은 분야보다는 지능 심리학(일반 지능 이론, 다중 지능 이론), 인지심리학 분야 등에 훨씬 끌리는 편입니다만..

    추상적인 것에 관심 있는 학생은 그런 학문에 흥미를 느낄 가능성이 적다는 사실을 반드시 고려할 필요가 있지요.

  • 1204 2011/06/17 06:09 # 삭제

    흠//"왜 유독 심리학이라는 학문만 몇몇 학생들의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저런 욕을 들어야하는걸까."
    무슨 학문이든 다 불만있고 욕 먹죠. 그냥 주제가 그랬을 뿐입니다.
    따질 필요도 없는 구절로 걸고 넘어지는 게 그냥 우습죠.
  • Carrot 2011/06/18 11:10 # 삭제

    애초에 심리학과의 인문학부 소속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요. -_- 그리고 정말 심리학에 형이상학적인 탐구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인지주의가 어떻게 시작됐나요?

    다만 어떤 이론이든 '측정량'에 구속될 뿐이고, 그게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지식을 쌓아가는 방법입니다. 당연히 심리학도 그런 방법을 따르니 학제 편성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지요. -_- 그런데 상담심리 쪽만 들어가도 측정량에서 벗어난 이야기들도 참 많아요.



  • 2011/06/20 11:11 # 삭제


    1204/ 전 저 학생이 뇌신경 언급에서 왠지 적의가 느껴져서요. 전 다른 학과에 대해서는 저런 식으로 비판 받는 건 전혀 본 적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나 예시처럼 저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저 학생의 말은 철학은 왜 실증적인 과학적 데이타도 없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이렇게 말하는 거죠? 라고 말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여겨집니다.
  • Malina 2011/06/16 16:29 # 삭제

    그리고 뭐..'소위 좌파'가 그걸 관심있어 하든 말든 관심 없다는 말 계속 반복하시는데..관심 많아 보이세요..
  • 屍君 2011/06/16 17:07 #

    오 그래서 제 컨디션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야 좋은 게 다 이유가 있었군요(......)
    사이언스온 기대하겠습니다.:)
  • Malina 2011/06/16 22:11 # 삭제

    흠// '유독 심리학'이 아니죠. '인문학부 심리학'에 수강신청 하는 학생들이라면 그 학문에 인문학적 요소를 기대하는 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건 욕이 아니에요. 심리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경험적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인간은 다른 실험 '객체'와는 다르죠. 그러한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 인간이라는 대상을 수치화 하는데로만 흐른다면 저런 비판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현재 심리학이 경험적 데이터에 기반하고 뇌생리학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 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글쓴님이 정신분석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객체화시키는 학문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 쯤은 이해하겠으나(이 경우 역도 성립합니다, 수치화와 계량화 가능한 것만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이번의 문제제기는 저 맥락만 놓고 보자면 핀트가 어긋난 듯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저 글 어디에서도 심리학이 경험적데이터를 이용한다는 것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으니까요. 단지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 형이상학적 고민을 너무 하지 않는다는 온건한 문제제기를 왜 정신분석적 입장이 경험적 데이터를 경시한다는 논의로 옮겨간 거 자체가 지나친 논의 확장이에요.

    고로 저는 심리학은 어떠어떠해야 한다라고 댓글 단 게 아닙니다. 님이나 제 댓글 제대로 읽으세요.
  • sac 2011/06/17 15:26 # 삭제

    > 일단 인간은 다른 실험 객체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다른 실험객체와 달리 인권을 존중받야하 합니다."

    > 네. 우리는 인권 존중하면서 실험합니다. 내가 묻고 싶은건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실증적방법)을 인간의 사고나 행동에 적용하여 해석하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싶은 것 입니다.
    "수치화 계량화로 인간의 모든것은 안다는 것은 심각한 착각입니다."

    > 물론 수치화 계량화가 전부는 아니지만... 수치화 되지도 계량화 되지도 못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실증 불가능 하다는 의미와 같지요? 단지 사변일 뿐이지. 실재로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알지 못하는 명제를 무려 "치료"에 맞다고 가정하고 시행하는 것은 과연 인권을 존중하는 행위인가요?
  • 2011/06/20 11:10 # 삭제

    전 심리학이 애초에 인문학과는 다른 학문이라고 생각해서요. 어느정도 인문학에 걸치는 부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회과학, 자연과학 쪽에 더 가까운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심리학 수업 들어보았지만 심리학이 형이상학적 부분을 도외시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수치화, 계량화'하는 방식을 적용한다고 형이상학적 부분에 대한 탐구가 사라지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전 사실 인문학과생 중에 심리학에 대해 잘 모르고 공부하다가 점수도 망치고 왕창 깨지는 애들을 많이 봤습니다. 뭐 이 학생들의 문제는 아니지요..다만 우리나라는 직접 전공하기 전까지는 해당 전공에서 무얼 공부하는지 어떤 성격인지도 알 수 없다는게 문제겠지만..

    저희 학교 교수님도 그래서 심리학- 정신분석학편 들어가기전에 경고도 하세요.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의 일부일 뿐이다.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이되 전부 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라고..(오래되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대충 이런 조의 뉘앙스)
  • .. 2011/06/17 10:54 # 삭제

    솔까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 언어학은 3대 유사과학
  • 11 2011/06/17 11:50 # 삭제

    댓글 보면서 느끼는 것은 해당 분야를 까고 싶으면 해당분야가 뭔지를 알고 까는게 먼저가 아닐까 하네요.
    바로 윗댓글처럼 심리학이 유사과학이라고 말하는 것도 참으로 웃기구요.
    정신분석도 심리학 내에서 거의 입지가 박살나고, 상담심리 나 임상 혹은 정신의학쪽에 하나의 방법으로 취급 받고 있구요.
    언어학을 까는건 좋은데, 구체적으로 언어학 전반부인지 특정 이론을 말하는건지 원
    사실상 심리학이 정신분석, 언어 영역까지도 포괄하고 있는데

  • Malina 2011/06/17 13:15 # 삭제

    그런데요,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이 양쪽 진영 왜 싸우는 거예요? 도대체 왜? 진짜 궁금해요. 어차피 서로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듯 한데. 이런 싸움이 왜 아직도 진행되고 있어요? 칼 포퍼-프랑크푸르트 이후에? 근데 서로 읽어보기나 하고 비판하나요?
  • 111 2011/06/17 15:29 # 삭제

    심리학 내에서 과학적인 심리학 분야(기초심리학 이나 실험심리학) 하고 (임상,상담 넓게는 교육, 이나 예술, 문화등) 응용심리학 분야 하고 피터지도록 싸우고 있다고 하네요. 싸우는 이유는? 자기 분과 분야는 옳고 다른 분과 분야는 그렇지 않다고 하니깐 싸우는지 잘 모르겠네요. 제일 좋은 부분은 심리학회 에다가 투고 러쉬 해서 다른 분과는 병맛이니 없애야 한다 로비 하는게 젤 좋겠죠
  • Malina 2011/06/20 15:32 # 삭제

    sac/

    1.
    인권 문제를 말한 게 아닙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실험주체의 사적 심정일테니 여기서 말할 건 아니죠. 그런 '윤리적 계기'를 끌어오지 않아도 의학처럼 인간의 생리적 시스템을 다루는 것이 아닌, '심리'를 다루는 학문이라면 이걸 단순히 경험대상적 '객체'로 묶어도 될지 의문이 듭니다. 물론 이것에 대한 개인차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님은 '인간의 마음'이 다른 실험 '객체'와 다를 바 없다고 보시는군요. 좀 놀랍군요.

    2.
    무엇이 문제냐가 아니라, 그것이 '전부'라는 태도가 문제라는 겁니다. 저 학생이 불만을 가진 것도 심리학과에서 그런 것 '만' 가르친다는 거였죠. 물론 그런 것만 가르칠 수밖에 없겠죠. 그렇게만 인식'가능'할 테니까요. 하지만 인식론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해서 그게 존재론적으로도 그렇다고 보면 안되죠.

    3.
    지금 정신분석학이 한국에서 그런 식으로 적용되고 있나요? 한국에서 정신분석을 정치에 대입해서 해석하는 시도는 그런 치료 임상적 목적이 아니라 일종의 해석학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설마 하나의 텍스트가 한 가지 의미만 가진다고 보는 건 아니겠죠?
  • k 2011/06/20 16:04 # 삭제

    1.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신지 잘 모르겠네요.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특별'하다는 입장이신가요? 가령 이원론(그것도 인간에 한정된 이원론) 같은 걸 생각하고 계신게 아닌가 싶은데요.
    심리학을 설명하는 간단한 비유중에 하나가 mind-body를 software-hardware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심리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모르겠는데, 이 비유가 대략적으로라도 맞다고 생각하지 않다면 그에 대한 최소한의 rationale을 소개하는게 논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여기 블로그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은 심리를 '과학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적어도 '심리'를 '과학의 대상'으로 보는지 아닌지를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인간의 마음'이 다른 실험 '객체'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도요.
  • Malina 2011/06/20 16:49 # 삭제

    k/
    software-hardware라고 간단히 말씀하셨는데, 이것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 않나요? 부현상론 혹은 신-부현상론 운운할 때, 후자의 경우가 하드웨어로 설명 불가한 부분을 인정하는 부분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제가 무슨 이원론을 생각하고 있다고 읽으셨는지..절 정신분석 하신 게 아니라면 어떤 문맥에서 그걸 유추하셨는지요, 상대방이 하는 말에 제 3의 항을 놓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항 내에서 타인의 입장을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이원론적 접근입니다. 어쨌든 이원론이라니 뜬금없습니다.

    그리고 자꾸 인간이 다르다는 말에 '특별'이니 '존중'이니 하는 휴머니즘 냄새나는 느끼한 어휘들을 쓰고 계신데요, 특별하지도 존경스럽지도 않아요. 단지 오지게 까다로울 뿐이죠.

    인간이란 객체는 선형적(함수적)이라기 보다는 비선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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