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05 17:25

그래서 어쩌라고? 유사학문

너 컴퓨터 공학과 나왔으니 내 핸드폰 좀 고쳐봐라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자들의 과거는 반복된다

다시 인터뷰 내용을 보면 굉장히 웃긴다.

이진호 제가 다니는 인문학부에서 가장 인기 많은 학과가 심리학과예요. 지원하는 학생들이 선생님처럼 상담치료 쪽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막상 공부하는 건 ‘뇌의 신호’가 어떻다는 등 학생들 기대와는 다른 내용이에요.

정혜신 심리학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이 상담을 통해 남을 돕고 싶어 하는 동기로 시작해요. 그런데 막상 뇌신경 분야 같은 기능적인 학문 쪽만 가르치는 게 사실이에요. 미국 정신의학계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렇다고 봐요. 유독 한국 사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을 꺼리는 거 같아요.

이진호 선생님도 기능적인 연구에 한계를 느끼고 상담치료 쪽을 택한 건가요?

정혜신 그런 셈이죠. 현재 우리나라에선 상담분야 공부를 안 해도 정신과 전문의가 될 수 있어요. 수련의 과정을 약물에 의존해야 하는 만성적 정신분열증 환자가 있는 폐쇄병동에서 진행해요. 그분들은 기본적으로 상담이 불가능한 분들이에요. 상담보다는 약물치료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의사 탓만 할 수도 없어요. 약을 줘야 치료받았다고 생각하는 풍토도 문제죠. 마음이 아픈 분이나 치료하는 사람, 모두 좌절하고 있는 구조예요. 안타깝죠.

학생은 심리학과에서 뇌의 신호가 어떻다는 둥 가르친다는 것이 불만이라는데, 정혜신은 '정신과 전문의'가 되는데 상담분야를 공부 안해도 된다고 말한다. 지금 문제가 심리학과 커리큘럼인가, 아니면 의대 정신과 커리큘럼인가. 정혜신은 심리학과 정신의학을 구분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는 임상이나 상담이 심리학의 모든 것일지 모르겠지만, 심리학자의 입장에서는 한 가지 응용분과에 지나지 않는다. 심리학에는 이것말고도 많은 응용분과들이 있다. 교육공학, 인간공학, 마케팅, 조직행위, 인사, 행동경제학 등등 이런 응용분과들은 기초분과들보다 더 인기가 많다. 정혜신의 입장을 연장하자면 심리학에서 뇌의 신호가 어떻다는 둥하는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지 말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이런 주제나 다뤄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언제부터 한국의 진보진영이 기초학문을 버리고 실용학문에 올인하는 정책을 지지했는지 몹시 궁금하다.

더 문제는 이런 주제들은 다른 전공과 겹친다는는데 있다. 교육공학은 교육학, 인간공학은 산업공학, 마케팅과 조직행위, 인사는 경영학, 행동경제학은 경제학, 그리고 임상/상담은 정신의학과 겹친다. 그렇다면 심리학과의 존재의의는 무엇인가? 인기있는 응용전공만 가르쳐야한다면 심리학과는 없애버리는 편이 낫다.

아마 정혜신이나 저 자리에 모인 '진보적 20대'들의 입장이 물론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입장에 선의로(?) 해석을 해주자면 1) 뇌의 신호가 어떻다는 둥하는 것은 심리학의 '기초'가 아니며 2) 정신분석학이 심리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선의로 이해하니 더 괴악한 결론이 나온다. 도대체 그렇게 해야할 이유가 무엇인가? 언제는 정신분석학이 인문학이라더니 이제는 또 심리학인가? 나야말로 "도대체 왜 저들에겐 일말의 회의도 없는 것인지, 자신들이 나름대로 믿는 바가 있다면 왜 그것을 글의 논지에 맞추어 설명해주지 않는 것인지, 에 대한 순수한 의문이"든다.

덧1. 심리학과에서 정말 상담을 가르치지 않을가? 다음은 심리학 개론 교과서인 "마이어스의 심리학 개론" 목차다.

제1장 심리과학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제2장 신경과학, 행동, 그리고 의식
제3장 일생에 걸친 발달
제4장 감각과 지각
제5장 학습
제6장 기억
제7장 사고, 언어, 그리고 지능
제8장 동기와 정서
제9장 스트레스와 건강
제10장 성격
제11장 심리 장애와 치료
제12장 사회심리학

뇌의 신호가 어떻다는 둥 하는 것은 2장에서 나오는 이야기이고, 상담치료 어쩌구 하는 이야기는 11장에 나오는데 아마 질문한 학생은 수업을 끝까지 안 들은 모양이다.

그리고 정혜신이 연세대 출신이니 연세대 심리학과의 실험실 현황을 보자.

기억 및 의사결정 (한상훈 교수)
발달심리 (송현주 교수)
발달심리 (황상민 교수)
산업심리 (손영우 교수)
상담심리 (이동귀 교수)
성격심리 (서은국 교수)
인지공학 (한광희 교수)
인지과학 협동과정 (정상철 교수)
인지신경과학 (이도준 교수)
인지심리 (김민식 교수)
임상심리 (오경자 교수)
임상심리 (정경미 교수)
지각심리 (정찬섭 교수)
학교 및 진로상담 (이기학 교수)

14개 실험실 중에 임상/상담 분야가 4개나 있으면 됐지 뭐가 얼마나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정신분석이 아니면 상담으로 치지도 않는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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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긁적 2011/06/05 19:00 #

    14개 중에 4개면 충분한 듯 (....)
  • O)o 2011/06/05 19:08 # 삭제

    나는 상담심리사가 되고 싶으니 심리학과는 앞으로 상담심리만 가르쳐라!
    멍미
  • 111 2011/06/05 19:18 # 삭제

    저런 친구들을 위해서 상담치료에 관심이 있다면, 임상이나 상담 보단 사회복지를 추천해 드립니다..

    정말 원없이 하게 될껍니다. 토나올 정도로 -_- 특히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를 하신다면야 .

    치유의 장에서 시간이 모자를정도로 내담자를 만날수 있을 꺼라고 봅니다..

    그러니.. 과학적 방법론을 기초로한 심리학 보단, 인간을 직접 만나는 서비스 분야에 관심을 가지시는게

    훨 나아 보이네요 .. 뭐.. 프로이트 류의 개입적인 상담심리를 꿈꾸고 이쪽 바닥을 생각하면, 현장에

    나가 바로 깨질테니 그런 분들은 그냥 안오셨으면 좋겠네요 -.-
  • powdersnow 2011/06/05 23:21 #

    222222 즐거운 사회복지입니다:D
  • sac 2011/06/05 19:19 # 삭제

    이런. 제가 인터뷰 원문을 읽지 않고 퍼오신 부분만 읽고는 대학생 1~2학년 두 명이 대담을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이건 좀 괴랄하긴 하네요.
  • your_rachel 2011/06/05 19:57 #

    뭐, 의대 커리큘럼만 생각하면 심리학 공부를 몇학점 수강하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따로 본인이 챙겨 공부하지 않았으면.

    덧붙여 임상/상담 전공 교수님 없는 제가 다니는 학교에도 임상/상담관련 과목은 학부에1년에 최소 3-4개는 개설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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