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전학파의 합리성의 한계로부터 '데카르트적 코기토'를 향하여 (박가분)
물신적 부인
진정성은 이해하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 (박가분)
한국 인문학계에는 정신분석학을 심리학의 대체물로서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이들이 소비하는 정신분석학은 대부분 프로이트-라캉-지젝으로 이어지는 계보에만 국한된다. 그러다보니 이 사람든은 심리학은 물론이고 정신분석학에 대해서도 균형잡힌 이해가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심리학적으로 잘못된 이야기를 퍼트리고 다니면서도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도리어 심리학을 그들 자신의 잘못된 이해에 기반하여 공격하고 다니기도 한다.
박가분의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그는 라캉주의가 심리학과 중첩되지 않으며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 인용문은 그가 심리학의 대상과 범위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심리학과에 있는 소개문을 통해 그의 오해를 짚어보도록 하자.
우리는 이 짧은 소개글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심리학의 연구 대상은 인간 행동이며, 그 단위는 개별 인간, 그 방법은 과학적이다. 또 심리학에는 기초분야와 응용분야가 있으며 상담과 임상은 응용분야에 속한다.
보통 정신분석학을 통해 심리학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심리학의 분야는 오로지 임상이나 상담에만 해당하지만, 사실 이들은 심리학의 한 분과일 뿐이다. 또한, 임상심리학에는 정신분석학 외에도 인본주의, 인지행동치료 등 다양한 접근법이 존재한다. 라캉주의나 자아심리학은 정신분석학의 한 분파이다.
다시 말해, 임상영역 외에 라캉을 적용한다고해서 심리학과 영역이 겹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차라리 임상에서는 정신분석학이 하나의 '쓸모있는' 접근법으로 활용되기라도 한다. 임상 외의 광범위한 영역에 대한 라캉의 남용이야말로 과학적 탐구를 통해 인간 행동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제공하고자 하는 심리학의 기초와 충돌하게 된다는데서 더욱 심각한 문제를 지닌다.
예를 들어, 박가분이 관심영역이 심리학과 무관하다고 거론한 사람 중에 하나인 김상환은 어디서 족보도 없는 이상한 지각 이론을 들고 나왔는데, 지각심리학은 심리학의 가장 오래된 기초분야다. 지각심리학자였던 카네만이 나중에 분야를 바꿔 연구한 것이 판단 및 의사결정이었고, 이것이 경제학에 영향을 미쳐 행동경제학이 태어났다. 카네만은 노벨상 수상연설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그의 판단 및 의사결정 연구에서도 근본은 지각심리학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행동경제학적 증거를 부정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지각심리학을 부정하는 김상환은 더 문제가 되야하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김상환이 틀리고 있는 건 학부 3학년 수준의 심리학 지식에 불과하다. 김상환은 라캉을 찬양하고 다닐 시간에, 심리학 교과서라도 좀 읽어보는 게 어떠할지?
박가분의 또다른 오해를 하나 더 살펴보도록 하자.
이런 것이 '그들 자신의 잘못된 이해에 기반하여 심리학을 공격'하는 사례다. 라캉주의나 자아심리학이나 모두 정신분석학의 한 분파다. 정신분석학은 앞서말했듯이 임상적으로나 쓸모가 인정되지, 기초 분야에서는 교과서에서 언급조차 되는 경우가 드물다. 즉, 라캉주의와 자아심리학의 갈등은 정신분석학 내의 다툼에 불과한 것으로 심리학의 기초분야 연구자 입장에서 볼 때는 전혀 관심을 둘만한 이유가 안된다. 다시 말해, 라캉주의가 자아심리학을 조롱하건 말건 그것은 라캉에 대한 나의 태도를 결정하는데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은 단지 박가분의 무지 외에는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라캉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든지 심리학과 겹치는 것은 피할 수 없으며 이때 라캉의 교의는 독단적으로만 제시될 뿐 심리학적으로는 잘못되었거나 적어도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불과하다. 그들이 라캉의 활용을 무죄라고 하는 이유는 단지 심리학의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모르기 때문일 뿐이다.
이러한 무지와 오류는 박가분의 원문에서도 계속되며, 링크한 글에서도 반복된다. 나는 궁극적으로 그가 비판하려는 게 신고전파 경제학자인지 아마티아 센인지 별로 관심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그의 글은 아마티아 센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아마티아 센처럼 신고전파를 비판해봤자 소용없다는 소리 아닌가? 어쨌거나 누가 뭘 비판하건 말건 그건 박가분 마음대로 하라.
여기서 내가 문제시하는 것은 박가분이 라캉으로 심리학을 대체하는 바로 그 부분이다. 과연 그가 주장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이론적 욕망'이나 '자기결단'은 어떤 근거를 갖는가? 과연 신고전파는 그리고 그들과 같은 사회적 환경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그런 합리적 경제인의 자기결단을 내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왜 최종결정게임의 실험에서는 이러한 주장에 배치되는 결과가 나오는가?
박가분은 이에 대해 아무런 대답없이, 자신의 주장을 다른 문장으로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신고전파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는데, 비판하려는 의도가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아무 주장이나 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면 이런 말은 하나 마나 한 것이다. 자기 '의도'를 상대방이 몰라준다고 투정을 부리기 전에 상대의 의도를 이해하는 독해력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저번엔 그림까지 큼직하게 넣어가며 설명했는데, 이번에는 앞문단에서 굵게 강조했으니 이번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지. 혹시 모를까봐 다시 강조하자면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이론적 욕망'이나 '자기결단'에 대한 박가분의 주장은 라캉이라는 전거 외에 심리학적으로 어떤 타당한 근거를 갖는가?
마지막으로 박가분의 무지를 보여주는 문장 하나를 더 살펴보자.
'그들 자신의 잘못된 이해에 기반하여 심리학을 공격'하는 또 다른 사례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전제들은 심리학에서 거의 인기가 없었고, 오히려 이에 대한 실증적 비판은 한동안 심리학의 '인기 스포츠'와 같았다. 앞서 언급한 카네만이 그 '스포츠'의 선두 주자 중에 하나다. 그러니, 심리학 기초분야 전공자가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 자체에 불만을 품는 상황이란 거의 있을 법하지 않다. 그런 불만을 상상한다는 것부터가 그의 심리학에 대한 심각한 무지를 또 한 번 보여준다. 그러나 사이먼의 제한적 합리성 개념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 정도는 이미 예전에 써놓은 게 있으니 라캉 따위는 그만 좀 떠들고 제대로된 심리학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바란다.
물신적 부인
진정성은 이해하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 (박가분)
한국 인문학계에는 정신분석학을 심리학의 대체물로서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이들이 소비하는 정신분석학은 대부분 프로이트-라캉-지젝으로 이어지는 계보에만 국한된다. 그러다보니 이 사람든은 심리학은 물론이고 정신분석학에 대해서도 균형잡힌 이해가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심리학적으로 잘못된 이야기를 퍼트리고 다니면서도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도리어 심리학을 그들 자신의 잘못된 이해에 기반하여 공격하고 다니기도 한다.
박가분의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그는 라캉주의가 심리학과 중첩되지 않으며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 '라캉주의자'들 중에서 라캉을 임상에 적용하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분석실천 자체가 부재한다. (중략) 내가 알기로 이택광, 김상환, 이성민 등과 같이, 정신분석학을 전공하지 않은 라캉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관심영역 자체도 심리학과 무관하다.
이 인용문은 그가 심리학의 대상과 범위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심리학과에 있는 소개문을 통해 그의 오해를 짚어보도록 하자.
심리학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문제를 경험적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다른 학문들이 인간을 하나의 대표적 존재로서 연구하는 것에 비해 심리학은 개별 인간의 행동을 미시적으로 혹은 거시적으로 직접 연구한다. 더욱이 심리학의 수많은 연구들은 직관이나 상식을 넘어서서 과학적인 관찰과 연구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인간을 이해하는데 가장 확실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한다. 따라서 심리학은 인간 행동의 원리에 대해 과학적인 통찰력을 제시하여 문학, 역사학, 사회학, 신문방송학, 경영학, 경제학, 법학 등 다양한 학문의 기초학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나아가 심리학의 응용분야인 상담심리학, 임상심리학, 산업심리학, 법심리학 등은 기초 심리학의 지식을 인간 생활에 적용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고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직접 기여한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학과소개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학과소개
우리는 이 짧은 소개글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심리학의 연구 대상은 인간 행동이며, 그 단위는 개별 인간, 그 방법은 과학적이다. 또 심리학에는 기초분야와 응용분야가 있으며 상담과 임상은 응용분야에 속한다.
보통 정신분석학을 통해 심리학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심리학의 분야는 오로지 임상이나 상담에만 해당하지만, 사실 이들은 심리학의 한 분과일 뿐이다. 또한, 임상심리학에는 정신분석학 외에도 인본주의, 인지행동치료 등 다양한 접근법이 존재한다. 라캉주의나 자아심리학은 정신분석학의 한 분파이다.
다시 말해, 임상영역 외에 라캉을 적용한다고해서 심리학과 영역이 겹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차라리 임상에서는 정신분석학이 하나의 '쓸모있는' 접근법으로 활용되기라도 한다. 임상 외의 광범위한 영역에 대한 라캉의 남용이야말로 과학적 탐구를 통해 인간 행동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제공하고자 하는 심리학의 기초와 충돌하게 된다는데서 더욱 심각한 문제를 지닌다.
예를 들어, 박가분이 관심영역이 심리학과 무관하다고 거론한 사람 중에 하나인 김상환은 어디서 족보도 없는 이상한 지각 이론을 들고 나왔는데, 지각심리학은 심리학의 가장 오래된 기초분야다. 지각심리학자였던 카네만이 나중에 분야를 바꿔 연구한 것이 판단 및 의사결정이었고, 이것이 경제학에 영향을 미쳐 행동경제학이 태어났다. 카네만은 노벨상 수상연설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그의 판단 및 의사결정 연구에서도 근본은 지각심리학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행동경제학적 증거를 부정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지각심리학을 부정하는 김상환은 더 문제가 되야하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김상환이 틀리고 있는 건 학부 3학년 수준의 심리학 지식에 불과하다. 김상환은 라캉을 찬양하고 다닐 시간에, 심리학 교과서라도 좀 읽어보는 게 어떠할지?
박가분의 또다른 오해를 하나 더 살펴보도록 하자.
라캉은 그가 활동하던 50-60년대 당시 영미식 '자아 심리학'에 대해 적대적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러 차례 그것을 조롱하기까지 했다. 때문에 라캉이라는 사람이 용서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이 '그들 자신의 잘못된 이해에 기반하여 심리학을 공격'하는 사례다. 라캉주의나 자아심리학이나 모두 정신분석학의 한 분파다. 정신분석학은 앞서말했듯이 임상적으로나 쓸모가 인정되지, 기초 분야에서는 교과서에서 언급조차 되는 경우가 드물다. 즉, 라캉주의와 자아심리학의 갈등은 정신분석학 내의 다툼에 불과한 것으로 심리학의 기초분야 연구자 입장에서 볼 때는 전혀 관심을 둘만한 이유가 안된다. 다시 말해, 라캉주의가 자아심리학을 조롱하건 말건 그것은 라캉에 대한 나의 태도를 결정하는데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은 단지 박가분의 무지 외에는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라캉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든지 심리학과 겹치는 것은 피할 수 없으며 이때 라캉의 교의는 독단적으로만 제시될 뿐 심리학적으로는 잘못되었거나 적어도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불과하다. 그들이 라캉의 활용을 무죄라고 하는 이유는 단지 심리학의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모르기 때문일 뿐이다.
이러한 무지와 오류는 박가분의 원문에서도 계속되며, 링크한 글에서도 반복된다. 나는 궁극적으로 그가 비판하려는 게 신고전파 경제학자인지 아마티아 센인지 별로 관심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그의 글은 아마티아 센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아마티아 센처럼 신고전파를 비판해봤자 소용없다는 소리 아닌가? 어쨌거나 누가 뭘 비판하건 말건 그건 박가분 마음대로 하라.
여기서 내가 문제시하는 것은 박가분이 라캉으로 심리학을 대체하는 바로 그 부분이다. 과연 그가 주장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이론적 욕망'이나 '자기결단'은 어떤 근거를 갖는가? 과연 신고전파는 그리고 그들과 같은 사회적 환경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그런 합리적 경제인의 자기결단을 내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왜 최종결정게임의 실험에서는 이러한 주장에 배치되는 결과가 나오는가?
박가분은 이에 대해 아무런 대답없이, 자신의 주장을 다른 문장으로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신고전파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는데, 비판하려는 의도가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아무 주장이나 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면 이런 말은 하나 마나 한 것이다. 자기 '의도'를 상대방이 몰라준다고 투정을 부리기 전에 상대의 의도를 이해하는 독해력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저번엔 그림까지 큼직하게 넣어가며 설명했는데, 이번에는 앞문단에서 굵게 강조했으니 이번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지. 혹시 모를까봐 다시 강조하자면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이론적 욕망'이나 '자기결단'에 대한 박가분의 주장은 라캉이라는 전거 외에 심리학적으로 어떤 타당한 근거를 갖는가?
마지막으로 박가분의 무지를 보여주는 문장 하나를 더 살펴보자.
혹시나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 자체가 불만이라면, 여기서 딴지를 걸지 말고 사이먼이나 아마티야 센과 같은 학자들의 논문과 저서를 직접 읽고 비판하는 포스팅을 스스로의 힘으로 올리기 바란다. 나 역시 그것을 즐겁게 읽고 참고할 생각이 있다.
'그들 자신의 잘못된 이해에 기반하여 심리학을 공격'하는 또 다른 사례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전제들은 심리학에서 거의 인기가 없었고, 오히려 이에 대한 실증적 비판은 한동안 심리학의 '인기 스포츠'와 같았다. 앞서 언급한 카네만이 그 '스포츠'의 선두 주자 중에 하나다. 그러니, 심리학 기초분야 전공자가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 자체에 불만을 품는 상황이란 거의 있을 법하지 않다. 그런 불만을 상상한다는 것부터가 그의 심리학에 대한 심각한 무지를 또 한 번 보여준다. 그러나 사이먼의 제한적 합리성 개념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 정도는 이미 예전에 써놓은 게 있으니 라캉 따위는 그만 좀 떠들고 제대로된 심리학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바란다.
덧글
전 이제 그만 -_-/
그런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논증이 되려면, 그들의 '라깡주의' 자체를 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츄판다님의 글은 그저 라깡주의와 다른 과학적/심리학적 지식만을 소개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비판 자체는 좋지만, 비판이 언제나 잘 먹혀들지 않는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물론 비판이 먹히지 않는 건, 과학/심리학 지식 자체를 알려줘도 잘 들춰보지 않는 라깡주의자들의 탓도 클 것 같긴 합니다.)
라깡주의자들은 한의사들과 연대해서 대항하시든가...
기초는 파악하고 시작하십시다.....
'인문학이 과학과 합치되지 않으면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내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얘기하고 싶으면 어떤 점에서 과학과 합치되지 않는지 하나 예를 들면 끝날 얘기를...
그렇게 오독하고 비아냥거리는게 기초를 파악한 사람의 토론 태도라면 난 그 기초 됐습니다.
아 물론 당신 이야기는 과학적으로는 옳지도 틀리지도 않아요. 아주아주아주 좋게 봐주면 '메타과학'이라고 부를 수는 있겠지만(... 이런 말을 만들면서까지 상대 입장을 옹호해주는 나도 참 웃기지) '과학'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깝깝할 듯', '라깡주의자들은 한의사들과 연대해서 대항하시든가...' 이렇게 말하는 작자한테 토론태도를 지적받으니 우습지도 않군요.
역시 과밸은 재미있어요.
PS : 저 파이어아벤트 정말 X나 싫어하는데 과밸에 오면 올 수록 좋아지지 말입니다?
주장하는 자가 증거를 대라는게 그렇게 무리한 이야기입니까?
깝깝한지 아닌지 알고 싶으면 한번 "천동설을 가정하는 인문학을 포기함으로서 더 건설적인 인문학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해보시든가.
당연히 과학적으로는 옳지도 않고 옳지 않지도 않지요. 다른 차원의 얘기니까. 굳이 따지자면 메타과학보다는 메타인문학, 인문학이 어떠해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거기서 왜 과학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는지 모르겠군요.
보아하니 디씨에서 노시는 분인가 본데, 여기는 디씨가 아닙니다. 뭘 까고 싶으면 근거를 가지고 와요. 판다님께서 저거 하나 까려고 쓰신 글 보고도 감이 안옵니까?
'천동설을 가정하는 인문학...'어쩌고 하시는데 질문 자체가 잘못되어 있지요. 그 질문에 '건설적이지 못하다'라고 대답하건 '건설적이다'라고 대답하건 '인문학이 과학과 합치되지 않으면 버려야죠'라는 주장을 정당화 할 수가 없습니다.
또 '저게 왜 잘못되었는지 증명해봐.'라고 하시던가요. 그게 왜 잘못되었는지 생각이나 좀 해보시던가. 그런 간단한 생각도 안하는 게으른 사람한테 뭐하러 가르쳐요?
과학 좋아하는 사람은 비논리적이어도 상관없나 봅니다.
남의 블로그+남의 덧글에서 키배질은 여기까지. 원 실력이 맞아야 키배질을 하지.
난 당신한테 오류론 같은거 가르쳐줄 시간 없습니다. 당신처럼 생각을 안 하고 사는 사람은 배워 봐야 쓰지도 않아요.
당연히 '천동설을~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이 '인문학이~버려야죠.'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지는 못하지요. 애초에 근거로 쓴 말이 아니라 일종의 가설 연역이니까. 굳이 따지자면, 버리지 말자고 주장하는 쪽은 '천동설을~할 수 있는가?'라는 주장을 당연하게 할 텐데, 여기에 대해 할 답이 '인문학이~버려야죠.'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겠지요. 아 물론 나는 깝깝해서(혹은 님 주장대로라면 학부 1학년 수준도 안돼서) 대답을 못하겠다라는 입장이고, 이는 첫 댓글부터 명시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판다님은 대답할 수 있으시겠지만, (유사)과학의 지위만 넘보지 않으면 손대지 않으시겠다는 입장이신 듯 싶고...
남의 블로그에 남의 댓글이라고 하셨지만, 이 블로그의 저 댓글 밑에 달렸다는 맥락을 바탕으로 제 댓글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위에 Carrot님이 '이 글이 충분한 답이 되지 않는다'라는 글을 쓰셨고, 저는 그 글에서 든 예에 대해 조금 더 극단적인 예를 듬으로서 "이 글이 '라깡을 포기함으로써 더 건설적인 인문학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된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만하신다고 하셨으니 이제 저도 이쯤에서 접기로 하죠. 앞으로 이 블로그에서만이라도 저처럼 닉 만들어서 댓글 다시면 님의 댓글에 대해 좀 더 맥락을 존중하여 대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난 이게 틀린건 알고 있지만 그냥 쓸래. 니가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건 사상 검열임. 정도로 해석이 되던데-_-;;
도대체 이게 뭔 말이여.
구체적인 설명 없이 라캉처럼 밑도 끝도 없는 추상적 어휘만을 늘어놓는다면 "불가해한 지식에 대한 열망"을 지닌 신비주의자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혹은 열폭이거나.
라캉이 용서받지 못하는 이유가 정말로 놀랍기 짝이 없네요. -_-;; 논문을 백날 읽어도 인용조차 되지 않은 사람을 용서를 하고 말고 할 이유가 있...나요?;
여담으로 폭력을 긍정하고 주체사상의 민중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께서 왜 '더러운 부르주아 자유주의자' 인 아마티아 센을 들먹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라캉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라캉을 이야기하려면 필연적으로 소쉬르부터 시작해야합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내뱉고 있는 발화의 기저에는 언어라는 구조가 있다고 봤죠.
기표+기의=기호 로 파고 들어가는 소쉬르의 분석은 구조언어학으로 자리잡습니다.
(그게 롤랑 바르트의 신화론으로 넘어가서는 메타구조로 넘어가게 되고
우리가 늘 부대끼는 사회문화 현상도 구조주의로 풀 수 있다는 말이 나오게 되죠.)
레비 스트로스는 슬픈열대 그리고 신화학전집을 통해서
신화도 계열체와 통합체로 구성되는 구조로서 풀 수 있다고 보여주기에 이르렀죠.
물론 그 방식이 워낙 딱 떨어지지 않고 자의적인 부분이 있어서 까이긴 하지만요.
라캉에 와서는 우리가 말하는 무의식, 욕망이라는 걸 구조주의적으로 접근하죠.
결국 일종의 구조주의 라인에서 봐야하는 심리학입니다.
물론 라캉이 프로이트 심리학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단순히 칼 구스타프 융이나 프로이트 선상에서
심리학 라인의 선 상으로만 처리해서 보는 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지 않아서 링크된 분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심리학 선상에서 라캉을 사랑하는 라캉옹호자가 지나가면서 발자취 남겨봅니다.
구조주의 이론과 주체의 문제를 다루는 이론이 어떤 식으로 조화가 되고 있는지 설명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구조와 행위의 변증법이라는 사회과학의 오랜 난제를 일도양단에 해결하신 라캉 본좌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이와 더불어 아이추판다 님께서 라캉을 공격하는 이유는 그 이론 자체의 오류도 있지만 라캉 본인 및 그 추종자들의 방법론적 문제가 결정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실험심리학에 비해 그들의 이론이 대안적 해석틀이 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한 설득력있는 주장은 아직까지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젝도 결국 이 구조주의 관점 라인에 속하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그뿐이라는 거죠 (...)
라깡은 문학 비평에 쓰이기에 딱 좋은 '떡밥'이지요.
본분을 모르고 심리학이나 사회과학으로 기어들어오면 두들겨야 겠지만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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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은 진실을 갈망한 적이 없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증거도 외면해버리고
자신들을 부추겨주면 오류라도 신처럼 받는 것이 '군중'이다.
그들에게 환상을 주면 누구든 지배자가 될 수 있고
누구든 이들의 환상을 깨버리려 들면 희생의 제물이 된다.
-귀스타프 르봉
사람들은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지만, 또한 그들이 볼 수 있는 것만 보려고 한다
- 하인리히 뵐플린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http://sprinter77.egloos.com/3043073#3880701
남이야 TV를 보건, 인터넷을 하건 말건 간에 남의 자유를 빼앗지 말고, 보기 싫음 너나 조용히 디스 하고 넘어가라. 알겠냐?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당당히 말씀하시는게? 당당하게 근거를 가지고 주장을 하셔야 멋지게 박살날것 아닙니까^^
라깡=유사심리학에 대한 증오의 시간을
매일 5분씩 가집시다
그러면 걔네들이 알아서 처리할 듯.
인문학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은 인문학의 연구대상과 연구방법에 대한 명확한 서술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과학'이라 함은 무슨 뜻인가여? 분과학문 or Science?
심리학은 사회과학에 속한다고 알고 있는데요 ... 궁금
무엇을 연구하는가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연구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글쎄요. 님 주장은 모두가 수긍할 일반론이라기 보단 대체로 받아들여지기는 하는 '가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서 아이추판다님도 경제학의 "합리적 인간" 가정을 심리학자들이 실험결과를 통해 조롱했다는 듯한 내용을 써 놓으셨는데, 경제학은 아직도 이런 가정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고있죠. 무엇을 가정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경제학적인 명제를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증명하므로 문제가 없다는식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