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28 20:56

물신적 부인 유사학문

신고전학파의 합리성의 한계로부터 '데카르트적 코기토'를 향하여 (박가분)

링크한 박가분의 글은 실증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허구적인 '합리적 경제인'의 가정을 고집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이론적 욕망을 라캉주의에 입각하여 분석하고 있다. 이게 무슨 농담인지 모르겠다. 실증적 비판에 굴하지 않는 걸로 치자면 라캉주의가 신고전파 경제학보다 몇 수 위가 아닌가!

심리학자들은 오랫동안 경제학을 비롯해 여러 사회과학 이론에서 흔히 도입하는 '합리적 경제인'의 가정을 공격해왔다. 하지만, 경제학은 경제현상을 다루는 학문이지 인간행동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다. '합리적 경제인'이 심리학적으로가 아니라 경제학적으로 문제가 되려면, 이 가정을 극복함으로써 심리학이 아니라 경제학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만 한다. 행동경제학은 경제학의 예외적 현상에 심리학적 세부사항을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을 뿐, 경제학 전체를 심리학적으로 타당한 가정 위에 다시 쌓아올리는데는 도달하지 못했다. 심리학적으로는 행동경제학도 인간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러한 단순화는 어떤 학문에서도 불가피하다. 어느 농부가 농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리학자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몇 달 뒤에 이 물리학자가 가져온 해결책은 이렇게 시작했다. "소가 구라고 가정하자.." '합리적 경제인'의 가정을 비판하는 심리학자들도 발을 살짝 들어보면 더러운 것을 밟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심리학의 신경망 모형은 실제 생물의 신경망과는 희미한 유사점만 있을 뿐이다. 생물학자들은 DNA를 마치 A, C, T, G 네 가지 알파벳만으로 이뤄진 문자열처럼 취급한다.

라캉주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서 생물학적 요소를 모두 배제한 것이다. 소가 둥근 것도 아니고 아예 없애버린 셈이다. 소는 도대체 누가 키울거야, 누가. 그러나 가정이야 어쨌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인데 그렇지도 않다. 라캉의 많은 주장들은 실증적 증거와 충돌한다. 경제학자들은 그들의 '가정'이 지나치게 단순한 것이지만, 라캉주의자들은 '결론'이 틀렸다. 하지만 라캉주의자들의 눈과 귀를 막을 뿐이다. 그렇다면, 라캉주의를 지탱하는 그들 자신의 이론적 욕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를테면 박가분의 글도 실증적 비판이 가능하다. 우선, 링크한 글은 경제학의 '무제한적 합리성' 개념을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은 똑같은 전제를 깔고 있다. 즉,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다면 그건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의 오랜 관념이기도 하다. 즉, 도달불가능한 완벽성에 인간이 미치지 못한다면 그만큼은 어떤 무의식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는 사람들이 말실수를 하는 것이 어떤 무의식적 원인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인간의 무제한적 합리성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말실수나 기이한 믿음에서 욕망이나 무의식에 대한 사변들을 끌어들일 이유도 없다.

다음의 예를 보자. 아래 그림은 '뮐러-라이어 착시'인데, 잘 알려져있듯이 위아래 두 수평선의 길이는 똑같아도 우리는 이 둘의 길이를 다르게 지각한다. 그리고 두 선의 길이가 같다는 정보를 알려준다고 해도 이러한 착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아래쪽 수평선이 더 길기를 욕망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 박가분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합리적 경제인'이라는 가정을 고집하는 이유는 사회가 그러한 인간을 무의식적 당위로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확실히 '합리적 인간'이라는 인간상이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이념형으로 등장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엔 어려운 점이 많다.

게임이론에서 최종제안게임(ultimatum game)의 경우를 보자. 이 게임에는 두 명의 참가자가 있다. 첫번째 참가자는 정해진 돈을 몇 대 몇으로 나눌지 결정한다. 두번째 참가자는 이 결정을 따르거나 거부할 수 있다. 만약 결정이 거부되면 아무도 돈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두번째 참가자는 무조건 결정을 따르는 게 '합리적'이다. 동시에 첫번째 참가는 자기 몫을 최대한 늘리고 상대의 몫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어떻게 나누든 두번째 참가자는 그 결정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박가분의 주장대로라면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비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보다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조셉 하인리히의 연구에 따르면 실증적 증거는 반대의 결론을 가리킨다. 최종제안게임을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시하면 첫번째 참가자는 둘의 몫을 비슷하게 돈을 나누고, 그렇지 않을 때는 두번째 참가자가 이를 거부한다. 하지만 부족 사회의 사람들은 게임이론적 의미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첫번째 참가자가 대부분을 가지고, 두번째 참가자는 이를 거부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예측을 해보자. 박가분이나 다른 라캉주의자들은 이러한 증거에 어떻게 반응할까? 이 점에 대해서라면 박가분의 말이 옳다. 그들은 다음처럼 대응할 것이다.

정신분석에 의해 알려진 ‘물신적 부인(fetishistic disavowal)’은 다음과 같은 ‘주체적’ 자기분열의 지점을 언표화(enunciate)한다. "나는 이러저러한 표상이 허구라는 걸 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것을 믿을 테야."

핑백

  • Null Model :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을 모르나이다 2010-10-29 13:00:29 #

    ... 신고전학파의 합리성의 한계로부터 '데카르트적 코기토'를 향하여 (박가분) 물신적 부인 진정성은 이해하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 (박가분) 한국 인문학계에는 정신분석학을 심리학의 대체물로서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이들이 소비하는 정신분석 ... more

덧글

  • 저련 2010/10/28 21:33 # 삭제

    이렇게 이론을 어떻게 선택하느냐는 주제의 경우, <라캉이냐 과학사냐>라는 질문을 던져 보는 것도 유익할 거 같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변별 지점을 나눠보자면, 라캉은 이론 선택 주체의 욕망이 이론 선택을 결정한다는 주장이라면, 과학사가 말해주는 것은 기존 연구 프로그램의 <핵>이 붕괴되는 데 있어 중요한 이유는 해당 연구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한 아드 호크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라는 것이겠지요.

    다시 말해, <이론 선택에 대한 결단에는 결국 무언가 정치적 의도가 배후에 있을 것이다>라는 주장과, <이론 선택에 대한 결단은 세계에 대한 설명력(또는 이론이 달성하고자 하는 다른 가치)이 축소되어가는 이론을 버리고 설명력이 증대되는 이론으로 갈아타는 것>이라는 주장 사이의 대결이 되는 듯 합니다. 진리에 대한 이론이든, 선에 대한 이론이든, 미에 대한 이론이든 가치에 대한 이론이라면 그에 대해 라캉주의자들은 저 가운데 전자의 의견을 취할 듯 하구요.
  • 아이추판다 2010/10/29 13:02 #

    그럴 것 같네요.
  • nurike 2010/10/29 08:13 #

    위의 한 예로만 자본주의 사회 사람들이 부족 사회 사람들보다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씀하지도 않으셨겠지만요) 위의 경우에 상대방과 내가 나누는 비율의 공정성에 대한 의식, 또는 서로간의 이익 분배의 합리성에 대한 예민함과 같은 문제들이(더구나 많은 경우에 거기 경쟁의 개념이 포함되죠) 자본주의적 합리성의 일부를 이룰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저와 같은 연구 설계에서 관련된 파이가 작을 때와 극단적으로 커질 때(가능하다면 말이죠..ㅎ) 자본주의 사람들의 반응이 달리 나타나는지 보고 싶기도 합니다. ㅎ
  • 아이추판다 2010/10/29 13:07 #

    그렇죠. 어떤 면에서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로 강조되는' 합리성과 '실제로 요구되는' 합리성 사이에는 괴리가 있습니다.
  • hooyah 2010/10/29 08:14 # 삭제

    푸하하. 잘지내시는지?^^ 틈틈히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바로 연락가능한 연락처가 있으면 제 메일(학교메일)로 보내주시길.

  • 2010/10/29 08:17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트윈드릴 2010/10/29 14:54 #

    "박가분의 주장대로라면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비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보다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조셉 하인리히의 연구에 따르면 실증적 증거는 반대의 결론을 가리킨다. 최종제안게임을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시하면 첫번째 참가자는 둘의 몫을 비슷하게 돈을 나누고, 그렇지 않을 때는 두번째 참가자가 이를 거부한다. 하지만 부족 사회의 사람들은 게임이론적 의미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첫번째 참가자가 대부분을 가지고, 두번째 참가자는 이를 거부하지 않는다."

    아이추판다 님은 '합리적'을 일상 언어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계신데, 경제학에서 논하는 '합리성'은 개념이 좀더 확장적입니다.

    http://www.skepticalleft.com/bbs/board.php?bo_table=01_main_square&wr_id=59318
    http://www.skepticalleft.com/bbs/board.php?bo_table=01_main_square&wr_id=59590&page=3

    무소의 님의 설명을 참조해 주세요.
  • 트윈드릴 2010/10/29 14:58 #

    위의 nurike 님이 지적하셨듯이,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합리성은 단순히 돈을 많이 얻고 적게 얻는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효용 극대화"를 다루고 있어요. 만약 첫번째 사람이 70:30으로 나누면, 두번째 사람은 30을 '먹고 떨어지는' 게 금전적 이익일지라도 '불공평한 처사에 기분이 나빠지는' 감정적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해 거부하는 것이지요.

    다만 경제학자가 수리모형을 만들 때엔 그렇게 계량화가 힘든 비물질적인 편익및 비용을 넣기가 힘들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금전적 효용만 다룰 때가 많지요.
  • 아이추판다 2010/10/29 15:16 #

    네. 맞습니다. 정확한 예는 아니죠. 그리고 심리학 수리모형에서는는 그걸 utility에 다 합쳐놓지 않습니다. 관련된 뇌 영역도 다르고..
  • 트윈드릴 2010/10/29 15:23 #

    학문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심리학으로 보면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경제학으로 보면 '합리적'이다, 정도로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 아이추판다 2010/10/29 15:30 #

    제가 본문에서 '합리적'이라는 용어를 모호하게 쓴 건 맞고요.. 사실 심리학적 의미에서도 합리성은 돈 나누는 거랑은 별로 상관없고 계산이 처리되는 방식과 용량에만 관련됩니다;;
  • 트윈드릴 2010/10/29 15:45 #

    그래도 사람들은 결과를 보고 합리적이니 아니니 판단하니까요O>-<
  • leopord 2010/10/29 20:22 #

    몇 가지 의문점이 있는데요.

    1. "하지만, 경제학은 경제현상을 다루는 학문이지 인간행동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다." : 물론 행동경제학이라는 분과에 대한 언급이 있긴 했지만, 경제 현상과 인간 행동을 완전히 분리시켜서 바라보는 게 적합한지 의문인데요. 단적으로 주식 시장의 경우, 행동경제학과 효율시장가설이 충돌하는 데에는 시장에 대한 투자자의 자기실현적 기대가 발견되었기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자기실현적 기대가 개방적인 거시경제와 연결된다는 점 역시 거시경제학적 관점에서 지적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경제 현상 / 인간 행동 사이의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 경제학의 연구 범위는 경제 현상의 내적 논리에 따를 뿐이라는 논리로 이어지고, 그 논리의 연장선상에 신고전파 경제학이 놓여 있는 것 아닐까요. 앞서 심리학자들이 '합리적 경제인'의 가정을 비판해 왔다고 지적하셨는데, 예컨대 '효용'보다 구매 행위에 대한 뇌의 반응을 검토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합리적 경제인이라는 의미와는 다른 쓰임이겠죠.)이라는 지적을 포함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아이추판다 님은 경제 현상은 경제학의 것, 인간 행동은 심리학의 것이라고 영토 구분을 분명히 하는데 그게 과연 딱 들어맞느냐는 겁니다. 아이추판다 님이 다음 글에서 K대 심리학과 소개를 옮겨 놓았는데, "따라서 심리학은 인간 행동의 원리에 대해 과학적인 통찰력을 제시하여 문학, 역사학, 사회학, 신문방송학, 경영학, 경제학, 법학 등 다양한 학문의 기초학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선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시려는 겁니까? 물론 심리학의 발전 성과, 특히 양적 접근과 뇌 과학의 발전은 현대 과학에서 그야말로 주류의 자리에 들어섰다는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분명한 영토 구분과는 또 한 편에서, 너무나 철저하게 '심리학 중심적'인 입장에서 다른 학문, 특히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심리학의 입장(그 심리학이라는 것도 아이추판다 님이 연구하는 분야에 국한된 건 아닌지요.)에서 재편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겁니다.

    너도 나도 통섭을 말하는 시대에, 분과 학문에 옹색하게 좁혀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만 아이추판다 님의 발언에는 상당한 모순이 보인다는 겁니다. 즉, '라캉주의'(그조차도 자의적인 구분이지만.)의 문제를 짚는 한편에, 지극히 편향적인 독선이 드러난다는 인상이 듭니다.

    2. "하지만 조셉 하인리히의 연구에 따르면 실증적 증거는 반대의 결론을 가리킨다. 최종제안게임을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시하면 첫번째 참가자는 둘의 몫을 비슷하게 돈을 나누고, 그렇지 않을 때는 두번째 참가자가 이를 거부한다. 하지만 부족 사회의 사람들은 게임이론적 의미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첫번째 참가자가 대부분을 가지고, 두번째 참가자는 이를 거부하지 않는다." : 최정규는 『이타적 인간의 출현』에서 최종 제안 게임(내지는 최후 통첩 게임)의 결과가 '부족마다' 다르다고 지적한 걸로 기억합니다. 어떤 부족은 철저하게 '합리적 경제인'의 움직임에 따르지만, 다른 부족은 그렇지 않는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이런 연구가 부각시키는 것은 후자보다는 전자, 즉, '합리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비합리적인' 행위가 발생하는가라고 봅니다.

    이를 두고 박가분 주장의 '비합리성'을 규정하시려는 것 같은데, 여기서 최후 통첩 게임을 왜 반증의 사례로 제시하시죠? 박가분은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왜 '합리적 인간'에 대한 가정을 놓치지 않는가를 분석하는 데에 라캉을 동원한 것인데, 그 얘기가 "박가분은 모든 인간이 합리적 인간을 무의식적 당위로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로 환원된 게 이상하다는 거죠.

    3.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로 신고전파 경제학이 동네북이 되었고, 그 이전부터 줄곧 비판의 대상이 된 것도 맞고, 심리학으로 논박하든 라캉주의로 논박하든 숱한 비판이 있어 왔죠. 박가분의 지적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보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굳이 라캉주의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아도 공박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신고전파 경제학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담론으로만 접근하는 건 아닌가 하는 점에서 말이죠. 즉, 실제로 자본주의 체제가 작동하는 측면을 너무 사유의 영역에서만 본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담론적 비판이 '휴머니즘' 안에서 맴돈다는 지적은 유효하다고 봅니다. 이에 반해 아이추판다 님은 박가분이 라캉을 경유한다는 점 하나만을 계속 잡고 늘어지며, 박가분이 라캉과 심리학 일반을 동일시한다고 비판하는데, 이는 맥을 잘못 잡고 있다고 봅니다. 단적으로 아이추판다 님은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라캉주의'라는 카테고리와 '라캉주의 문화비평' 모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런 식의 일방적인 비방은 별로 성실해 보이지가 않습니다. 지적으로요. 글이 길어졌군요.
  • 아이추판다 2010/10/29 21:51 #

    경제학과 심리학과 다른 '학문'이지만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의 '일부'니까요. "사람은 왜 꿈을 꾸는가?" 이런 질문은 심리학의 질문입니다. Dreaming이라고 아예 이 문제만 다루는 저널도 있어요. 정신분석학의 시작을 알린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이 질문에 한 가지 답을 내놓고 있지요. 그러니 정신분석학이 심리학의 일부가 아니라 하겠습니까.

    문제는 심리학 내에서 정신분석학은 임상적으로나 쓸모가 있을까, 이론으로서는 역사적 가치외엔 별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처지라는 거죠. 그런데, 문학이나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평가를 무시하고 정신분석학을 활용하려 든다면 이것은 심리학자로서 정당하게 개입할 수 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아예 정신분석학을 끌어다쓰지 않는다면 심리학으로서도 문학이나 철학에 개입할 이유가 없죠.
  • ... 2010/11/06 16:02 # 삭제

    유비논증의 오류추론..
  • 안마사 2010/11/06 23:09 # 삭제

    이런 아이추판다도 신고전학파 신자였나. 애써 숨긴패가 이거였다니! 차라리 신고전학파도 까고 라캉도 까는 스탠스였으면 정말 문제적 인물로 자리매김하는건데, 인물이 아깝네. 집요함은 훌륭한 이론가의 중요한 자질이기는 하지만 그 전부는 아니라는 예를 다시한번 확인하고 가네. 안녕 판다~ 그동안 악플달아서 ㅈ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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