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11 23:19

한국어와 영어, 몇 가지 차이 인지과학

엄마, 미치고 말았다. (umberto님)

영화 "My Fair Lady"에서도 나오듯이 발음은 신분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의 영어 발음에 대한 집착은 단지 영어로 의사소통을 잘하고 싶다는 것보다, 이른바 '본토 발음'이 상징하는 신분에 대한 선망에서 비롯한다. 이 현상에 대한 논평은 지금까지 무수히 반복되었기 때문에 또 덧붙일 말은 없고, 말 나온 김에 /f/, /v/, /r/, /l/말고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한국어와 영어의 음운론적 차이 몇 가지를 재미삼아 소개해볼까 한다.

1. 유성음과 무성음

고등학교에서 배우기로는 한국어의 유성 자음은 /ㄴ/,/ㄹ/,/ㅁ/,/ㅇ/ 네 가지 뿐이다. 하지만 그 이외의 자음들도 특정한 조건에선 유성음으로 발음나기도 한다. 다만 의미상 차이가 없기 때문에 굳이 유성음이라고 하지 않는 것 뿐이다. 예를 들어 "고기"에서 '고'의 /ㄱ/은 무성음이지만 '기'의 /ㄱ/은 앞뒤의 모음에 영향을 받아 유성음으로 발음된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 이렇게 말하면서로 이 차이를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한국어에서는 그 구별이 별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에서 /ㄱ/과 비슷하게 소리는 /g/는 유성음이기 때문에 영어 화자의 귀에는 "고기"에서 두 /ㄱ/의 차이가 잘 들린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어 화자가 한국 사람의 소리를 흉내낸다고 "고기"를 [kogi]처럼 발음하는데, 한국인의 귀에는 오히려 더 어색하게 들린다.

반대의 현상도 있다. 영어 "game"에서 /g/는 유성음이지만 한국어의 경우 "게임"에서 /ㄱ/은 무성음이다. 이번에는 한국어 화자들이 영어 화자의 소리를 흉내내려고 하지만, 애석하게도 유성성(voice) 대신 긴장성(tense)을 추가하여 [께임]이라고 발음해버린다. 비슷한 예로 "bus"를 [뻐스], "dance"를 [땐스]로 발음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재미있게도 한국 사람 중에 영어의 /f/나 /v/를 흉내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런 발음은 촌스럽게 여겨서 차라리 그냥 무성음으로 발음해버리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2. 자음동화

필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설명했다시피 연속된 발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 변하는 것은 어느 언어에나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변화의 규칙은 언어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비음이 파열음 앞에서 변하는데("tank"는 [탠크]가 아니라 [탱크]), 한국어에서는 파열음이 비음 앞에서 변한다("국물"은 [궁물]로 발음).

한국 사람이 "국물"을 [국물]로 발음하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매우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영어 발음을 할때도 한국어 발음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게 되는데 덕분에 한국 사람들이 아주 쉽게 생각하는 "Good morning."도 영어 화자와 달리 [군모닝]이 되고 만다. "국물"에서 처럼 파열음 /d/가 비음 /m/ 앞에서 /n/으로 변한 것이다. 물론, 영어에는 이런 규칙이 없기 때문에 영어 화자는 이렇게 발음하지 않는다. 비슷한 예로 "bookmark"를 [붕마크]로 발음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영어와 한국어도 많은 차이가 있지만, 잘 알려져있다시피 영어들 사이에도 발음에 많은 차이가 있는데 그건 아래 동영상을 참고하시길:




덧글

  • erte 2010/08/12 00:58 # 삭제

    외국인들의 영어톤을 따라하는게 굉장히 재밌네요. 21가지를 저렇게 외워서 하는 저분도 참 대단한듯. 녹음상태가 썩 좋지 못해서 조금 아쉽네요.
  • 아이추판다 2010/08/13 00:46 #

    강습 동영상도 있더군요;
  • -_- 2010/08/12 05:34 # 삭제

    한국어의 예사소리/된소리/거센소리는 음성학적인 측면으로

    유성-무성음/긴장 무성음/유기 무성음

    으로 구분됩니다. 즉 한국사람들은 유무성 구분없이 긴장성이 없거나 (lax) 유기음(aspriration)이 없으면 그냥 예사소리로 이해하지요. 즉 ㄱ의 음가는 (g~k), ㄲ의 음가는 (k.), ㅋ의 음가는 유기음(kh)가 되지요.

    쉽게 말해서 한국어 파열음에서 유무성의 구분은 의미적 변별자질이 아닙니다.
    그러니 한국어 음운에 유성음 무성음이 있다고 하는 건 잘못된 지식입니다. 하나의 음운이 여러 환경내에서 변이음으로 다르게 발음될 뿐이지요. 그러니 한국사람들더러 이 둘을 구분하라는 건 가장 어려운 과제 중에 하나 입니다.


    한 국사람이 영어를 배울때 무성음/유성음 구분을 비유기음/유기음 으로 대치한다는 거지요. 재미있게도 영어모국어 화자입장에서도 몇번 들으면 금새 적응하고, 발음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 몇몇 한국사람들은 자기가 유성/무성 구분을 해낸다고 착각하게 되는데.. 글쎄요. 음운론을 익히고 Voice Onset Timing 테스트를 해서 두들겨 패가면서 가르치지 않는한 유성음 무성음은 구분 못할 것입니다.

    아 구라파어 쓰는 인간들이 한국어를 배울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제게 마이크 달린 노트북과 몽둥이로 두들겨 팰 권리를 주신다면 어떤 양키에게라도 한국어 파열음에 3가지 구분을 익히게 할 자신이 있는데, 아마 그 전에 한국어강사 자리를 짤리겟지요?
  • wet 2010/08/12 09:07 # 삭제

    유성음 무성음 구별하는게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음운론 배우고 쫌 하니까 되던걸요. 들겨 맞은적 없지만 99% 구별할 수 있어요 (일본어학과 졸업생)
  • khris 2010/08/12 16:09 # 삭제

    새디스트인가요 패는거 왤케좋아하져.
  • theadadv 2010/08/12 07:45 #

    게임의 경우는 어느 순간 까지는 분명 다들 게임으로 말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께임이 되어버렸다는...
  • -_- 2010/08/13 05:51 # 삭제

    외국어를 말할라니까 긴장이 되지요. 그래서 된소리가 댑니다
  • 지브닉 2010/08/12 08:12 #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 jick 2010/08/12 16:30 # 삭제

    10년쯤 전 음운론 수업시간에 주워들은 얘깁니다만, 실은 영어에서도 aspiration의 유무로 b/p 등등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어두에 오는 b,d,g 등은 굳이 유성음성(?)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서 상당히 무성음화된다고 들었습니다.

    반면 일부 언어는 어두에서도 아주 꿋꿋이 유성음을 유지한다던데... 불어였던가... 너무 오래되서 잘 기억이 안나는군요;;;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말 어두의 ㄱ/ㄷ/ㅂ와 그렇게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 mah0140 2011/04/04 21:11 #

    대표적으로 일본어가 그렇지 않나요
    힌디어도 그럴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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