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25 11:06

'괴짜'들의 심리학 인지과학

A WEIRD View of Human Nature Skews Psychologists' Studies (Science)

생명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생물을 조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생물학자들은 연구하기 쉬운 특성을 가진 몇 가지 생물종을 '모델 생물(model organism)'로 삼아 연구를 한다. 대표적인 모델 생물로 초파리나 예쁜꼬마선충 따위가 있다. 일단, 모델 생물에서 일정한 연구가 확립되고 나면 그 다음에 다른 생물종으로도 일반화가 차츰 이뤄지게 된다.

심리학의 경우 복잡한 과제를 학습할 수 있는 동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개, 쥐, 비둘기, 침팬지, 원숭이 등이 모델 생물로 이용되지만 역시 인간 그 자체가 최적의 모델 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비싸기' 때문에 그 중에서도 '심리학 개론을 수강하는 대학 1~2학년생'들이 인간종의 '모델 집단'으로 쓰인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인간의 모델로서 적절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무엇을 실험하느냐, 어떻게 실험하느냐,  실험 결과를 어디까지 일반화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쨌거나 더 넓은 범위의 인간 집단에게 일반화시킬 수 있는 결론을 이끌어내려면, 당연히 다양한 인간 집단으로부터 실험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교과서적인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 그림에서 왼쪽 위의 두 화살표 A, B 중에 B의 가로선이 A보다 더 길어보이지만 실제로는 A와 B가 정확히 똑같다. 이 현상을 뮐러-라이어 착시라고 하는데, 인간만이 아니라 여러 동물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효과는 인간 집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위의 그래프는 다양한 인간 집단에서 A와 B에서 가로선의 길이가 다르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을 도시한 것인데 오른쪽 끝에 있는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실시한 실험 결과는 20%에 가까운 사람이 다르다고 응답한 반면 왼쪽에 있는 소규모 부족 사회의 사람들 대체로 그렇지 않다고 응답하는 경향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맨 왼쪽의 San은 흔히 '부시맨'으로 알려진 사람들인데 A와 B가 다르다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아이고 어른이고 거의 없다.

위의 그래프는 다양한 인간 집단에서 B의 가로선을 A보다 얼마나 더 길게 지각하는지 나타낸 것이다. 오른쪽 끝에 있는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실시한 실험결과는 사람들이 B의 가로선을 20%나 더 길다고 응답하는 반면 왼쪽에 있는 소규모 부족 사회의 사람들은 그보다는 훨씬 덜 차이가 난다고 응답하는 경향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맨 왼쪽의 San은 흔히 '부시맨'으로 알려진 사람들인데 A와 B가 거의 똑같다고 응답한다.

이렇게 다양한 집단에서 실험을 해보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긴 하지만, 표본 집단이 대학교 교문을 넘어서는 순간 실험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대학생들은 학점만 준다면 별 괴상한 실험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참가비를 주는 경우에도 적은 비용만으로 충분하지만, 일반인의 경우엔 "먹고살기 충분한 시간당 최저임금™" 4,118원보다 훨씬 많은 돈을 줘야 한다. 실험 비용이 1인당 10만원만 들어도, 천 명이면 벌써 1억이다.

따라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실험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론적 혁신이 필요하다. 영국에서는 심리학자들이 BBC와 손을 잡고 인터넷에서 심리학 실험(링크)을 실시하여 수 십만건의 데이터를 얻어내고 있다. 이 역시 인터넷 사용자층에 편향된 표본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대학생보다는 다양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비용도 매우 적다.

또, 최소한의 데이터만으로도 충분한 결론을 얻어낼 수 있도록 실험 설정 자체를 최적으로 맞추는 방법이 있다. 전통적인 실험 방식은 예비 실험을 몇 번 해보고 연구자가 적당히 실험 성정을 맞췄는데, 최근에는 실험을 진행하면서 실험 설정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통계적 방법론도 개발되고 있다. 이런 방법론을 이용하면, 더 적은 실험으로도 더 강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혁신으로도 표본의 편향성이라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심리학 지식을 현실에 적용할 때는 항상 그러한 지식이 잠정적인 결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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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yy 2010/06/25 11:28 # 삭제

    같은 종인데 착시효과가 저렇게나 차이난다는 게 신기하군요. +_+
  • 아이추판다 2010/06/25 11:43 #

    그래서 심리학자들이 먹고 사는 거죠. 논문 게재 축하드립니다. ^^
  • 르혼 2010/06/25 11:38 #

    인종별로 차이나는 이유는 화살표가 갖는 문화적인 상징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 아이추판다 2010/06/25 11:44 #

    이유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뮐러-라이어 착시가 기존의 시각경험을 바탕으로 시지각을 자동적으로 보정해주는 과정에 생겨나는 부산물이라면, 주변 환경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지요. http://nullmodel.egloos.com/1905597
  • Desac 2010/06/25 11:46 # 삭제

    사회과학의 sampling issue는 늘 비판의 주된 타깃이지요.
    단 위의 사례는 저 도표의 집단별, 연령별 분포 자체가 정교한 sampling이 아니기 때문에 저것만으로는 집단간 차이, 연령간 차이를 유의미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겠네요.

    어쨌든 사회과학분야에서, 특히나 experiment, quasi-experiment 같은 경우는 그 결과 자체를 일반화(generalization) 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주제나 방법에 따라 nonprobability sampling이 허용될 수 있다는 부분을 오해하는 분들도 많고요.
    저도 purposive sampling을 이용한 연구 중에 컴퓨터공학 교수님 한 분이 "이런 sampling으로는 일반화할 수 없다"며 연구방법을 지적하셨는데... 굳이 probability sampling과 nonprobability sampling을 설명해드릴 필요를 못느껴서 "조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답하고 말았지요.
    빅뱅을 검증할 수 없고 일반화할 수 없어도 천체물리학이 돌아가듯이 표본의 편향성이 궁극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연구결과가 잠정적인 오류를 내재하고 있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현실에 적용"이라는 문제라면야 아무리 엄격한 sampling으로 불편표본을 구해서 유의미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하더라도 늘 예측불가의 상황이 되구요.

    써놓은 말을 다시 검토할 자신은 없고 코뮤니케이션이 잘 되었는지 자신도 없어서 굳이 한줄요약하자면...
    "표본의 편향성과 현실적용은 별개의 문제, 어쨌든 모든 과학적 연구결과는 '현시점에서 설득력있는 가설'일 뿐"
    ...이라고 마무리할께요.

    [위에 영어로 쓴건 우리나라에서 어케 번역해서 쓰는지 몰라서에요. 용어 잘못써서 오해생길까바...]
  • 아이추판다 2010/06/25 13:33 #

    심리학의 경우엔 사회과학 일반보다 생물학과 비교하는 편이 낫습니다. 본문에서 모델 생물 이야기를 한 것도 그런 이유고요. 이를테면 '파블로프의 개'를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겠느냐, 이런 문제죠. 물론, 대학생들이 개는 아닙니다만. 생물학에서 모델 생물의 타당성 문제는 늘 있는 거고, 이 문제는 생물학 계열의 학문들에서는 피할 수 없는 종류의 문제이긴 합니다.
  • 브라질 2010/06/25 13:34 # 삭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experiment 같은 경우의 golden rule은 random assignment (즉, probability sampling)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야 편향성이 없는 treatment 효과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일반화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신 약의 임상실험 experiment 같은 경우는 특정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타겟으로 삼기 때문에 혹시라도 nonprobablility sampling이라고 볼 수 도 있겠지만, 그 경우에는 사실 모집단 자체가 그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므로 그 모집단 내에서 ramdom sampling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임상실험을 하는 이유는 그 실험의 결과를 전체 모집단인 위험군에 일반화하기 위한 것일텐데 그 표본을 nonprobability 방식으로 한다면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여튼 경제학, 통계학, 사회학 등 여러 사회과학 분야에서 quasi-experiment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는 post-treatment bias(selection bias)를 통제한 treatment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발전한 많은 논의들이 '일반화'하려는 것이 아닌 nonprobability sampling의 예라고 한다면 제 상식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purposive sampling을 포함한 nonprobability sampling의 가치 자체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아니고요, 다만 절대 nonprobability sampling이 적용되어서는 안되는 (quasi-) experiment 디자인을 오히려 그 예로 들어 말씀하셔서 혹시 무슨 생각이신지 궁금해 답글을 달았습니다.
  • 총수 2010/06/25 12:02 # 삭제

    그런데 질문 있습니다. '착시'라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착각하게 되는 거니까 착시인데 겨우 20%의 사람만이 두 선의 길이가 다르다고 생각하면 뭔가 이상한 듯 합니다.
  • 아이추판다 2010/06/25 13:23 #

    개인차라는 게 있기 때문에 착시 현상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 보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요. 근데 뮐러-라이어 착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한테 나타나는 걸로 알려져있는데 미국에서도 20%라니 좀 적긴 하네요. 이건 원래 논문에서 실험 조건을 어떻게 잡았는지 확인해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 solleo 2010/06/25 20:18 #

    세로축에 'perceived difference'라고 씌여있으니,
    B의 길이가 A에 비해 몇 % 더 길게 보였는지를 응답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프리카의 다른 부족들 (Zulu, Toro)에서도 어린이들은 10% 이상 길게 지각하는 착시를 보고한 것이 재미있군요.
  • 아이추판다 2010/06/25 20:21 #

    그러네요,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아니라 지각된 길이 비율이군요. 감사합니다.
  • asianote 2010/06/25 14:41 #

    이거 한국어판 책으로도 나와서 읽었는데 꽤나 유쾌하더군요.
  • 아이추판다 2010/06/25 14:57 #

    아, 책 "괴짜심리학"의 제목을 패러디하긴 했습니다만 다른 이야기입니다;;
  • asianote 2010/06/25 14:58 #

    아뇨... 그 책에서도 BBC와 연구팀이 같이 실험한다는 내용이 나와서 이 댓글을 남겼습니다.
  • 아이추판다 2010/06/25 15:25 #

    아, 그건 또 몰랐네요.
  • 김원철 2010/06/25 19:36 # 삭제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실험을 진행하면서 실험 설정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통계적 방법론"이라니 솔깃하네요. 관련 문헌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 아이추판다 2010/06/25 20:28 #

    근데 말은 그럴듯하지만 방법론 자체가 워낙 복잡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요;; 이건 별도로 포스팅하겠습니다.
  • 누렁별 2010/06/26 16:28 #

    A보다 B가 길게 보일 수록 '도시 어린이'에 가까운 건가요.
  • 2010/06/28 10:30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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