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19 20:48

하나면 끝? 매우 적은 표본에 기반한 라캉주의식 글쓰기 유사학문

행동의 목적에 따라 요구하는 증거의 양은 천차만별이다. 극단적인 경우 하나로 끝: 매우 적은 표본에 기반한 최적 의사결정에서처럼 증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게 오히려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매우 적은 증거만을 요구하는 행동의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2007년 4월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에서 재미한국인 1.5세인 조승희가 총기를 난사하여 수십명의 사람을 살해한 후 자살했다. 이 사건 이후 라캉주의자 이택광은 자신의 블로그에 조승희의 정신분석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뒷풀이 때 우연히 조승희에 대한 말이 나왔다. 내가 조승희의 죽음은 미국의 정신의학이나 에고 심리학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하자, H선생이 이런 내용으로 한번 책을 묶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취중 제안이긴 했지만, 최소한 글한편은 나올 주제인 것 같다. 요즘 나의 관심이기도 한, 정신분석학이 왜 필요한가, 아니 달리 말하자면, 인문학이 왜 필요한가에대한 중요한 논점을 조승희 사건이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택광은 여러 용어들을 자의적으로 재정의해서 사용하는 것을 자신의 방법론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정신의학이나 에고 심리학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는 말도 글자 그대로 읽었다가는 곤란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택광은 댓글에서 위의 말은 특별히 재정의한 용어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조승희는 분석시기를 놓쳐서 정신병으로 발전한 경우가 아닐까 싶군요. 중요한 건 조승희가 '심리상담'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전혀 진전이 없었지요.

조승희는 심리 상담을 받았다. 그런데 전혀 진전이 없었다. 그리고 총기난사 후 자살했다. 그러니까 심리치료는 쓸모가 없다. 꽤나 빠른 결론이다. 이택광은 역시나 빠르게 대안을 제시한다.

조승희 사건은 이런 '심리치료'의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조승희에게 필요했던 건 정신의학이나 심리치료가 아니라, 정신분석이었다. 그가 정신분석을 받았다면, 그의 공격성은 창조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임상심리학/정신의학에는 매우 다양한 분파들이 있고, 이들 분파들은 오랫동안 이택광처럼 남의 방법은 틀렸고 자기 방법만 옳다고 주장을 했다. 그런데 오랜 통계적, 실험적 연구가 밝혀낸 사실들은 이 분파들에 아주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잠깐 임상심리학 교과서를 펼쳐보자.

연구들은 일반적으로 한 가지 치료 조망이 다른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데 실패하였다(Beckham, 1990; Lambert, Shapiro, & Bergin, 1986; Smith, Glass, & Miller, 1980).  예를 들면, 심리치료에서 개선의 약 45%는 모든 주요 이론 및 접근에서 발견되는 공통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Lambert, 1986). 더욱이 몇몇 연구에서는 치료 성과 변량의 15% 미만이 특정 기법에 의해 설명되어질 수 있다고 시사하였다(Beutler, Mohr, Grawe, Engle, & MacDonald, 1991; Lambert, 1986). 연구들은 조망들 및 기법들의 조합이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해주었다(Lazarus, 1989; Norcross & Goldfried, 1992). 그러므로 연구 및 실무 모두에서 단지 한 가지 조망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은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으며 고지식한 것일 수 있다고 시사되었다.

Thomas G. Plante, 손정락 옮김, "현대임상심리학", 시그마프레스, 107쪽.


물론 정신 장애의 종류에 따라서는 특정 이론이나 기법이 잘 듣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단극성 우울 장애의 경우 인지치료, 대인관계치료, 약물치료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고, 강박충동장애의 경우 클로미프라민과 노출반응예방이 모두 잘 듣지만 후자가 더 효과가 오래간다. 공황장애에는 인지치료, 공포증에는 체계적 둔감화가 효과적이다. 불안을 감소시키는데는 명상도 괜찮다. 성폭행범에 대한 혐오치료는 약간의 효과가 있다 등등. 그런데 예전에도 좀 찾아봤지만 라캉주의 정신분석이 특별히 어떤 경우에 효과적이라는 연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조승희에게는 정신분석이 필요했다는 이택광의 주장은 "단지 한 가지 조망에 대한 맹목적 집착"에 지나지 않는다.

이택광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조승희의 사례가 미국 정신의학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하자. 그런데 에고 심리학은 왜 갑자기 툭 튀어나왔을까? 에고 심리학은 미국 정신분석학의 주요 분파다. 라캉주의가 에고 심리학에 비판적인 것은 알고 있는데, 정신분석학이 미국 정신의학계를 지배하고 있던 1950년대라면 모르겠지만 조승희가 정신과에서 에고 심리학적 조망에 따라 상담이나 치료를 받았을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에 생뚱맞은 이야기다.

현재 미국 정신분석학에 대한 통계가 내게 없기 때문에 대충 짐작을 해보자. 1998년 American Psychoanalyst에 실린 논문에서 제프리는 미국에서 정신분석가를 찾는 환자의 수가 20년 동안 매년 10%씩 감소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0.9^20=0.12이므로 1998년에는 1978년 대비 12%의 환자만이 정신분석가를 찾았다는 이야기다. 미국 정신의학에서 정신분석학의 전성기는 1978년보다 훨씬 이전인 1950년대고, 조승희가 심리상담을 받은 건 1998년보다 훨씬 뒤인 2000년대이므로 조승희가 에고심리학적 조망을 따르는 심리치료를 받았을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또, 국제정신분석학회(IPA)가 인정한 미국 내 정신분석가의 수는 4천명이다. 이들이 모두 정신과 의사라고 해도, 미국 정신의학회 회원 수가 3만 8천명이므로 미국 내 정신과 의사의 10%에 지나지 않는다. 참고로 미국에서 한 해 임상심리학 분야 박사학위 배출자 수는 PhD와 PsyD(임상심리학 전문학위)를 모두 합쳐 2천명이 넘는다.

간단히 말해 조승희가 정신과 상담을 받았을 때 정신분석가를 만났을 확률은 많이 잡아도 10%고, 그 정신분석가가 에고심리학을 따를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그 확률은 더욱 줄어든다. 에고심리학 이야기가 나올 이유가 별로 없다. 10%라도 확률이 있는 거 아니냐고 한다면, 조승희가 운 나쁘게 라캉주의자 정신과 의사를 만나지 않았으리라는 법도 없다는 얘기를 해두겠다.

과거 라캉주의자들은 내 블로그에 와서 "세계 정신분석가의 절반이 라캉주의자"라며 라캉주의가 대단한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IPA 회원 수를 다 합쳐도 1만명 밖에 안된다. 라캉주의자들도 비슷한 수만큼 있다고 치면 역시 1만명 쯤 될텐데, 통계가 없어 모르겠지만 프랑스 심리학회 회원 수만 해도 그보다는 많을 것이다. 참고로 미국 심리학회 회원 수는 16만명. 이러한 전력에 비춰보면 라캉주의자들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정신분석학계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택광이 에고심리학 운운한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이제 두 번째 문단을 보자.

대니 노버스는 치료 관점에 치중한 정신의학이나 에고 심리학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7살짜리 아이를 진찰하는 과정에서 자기 친구심리학자는 기계적 스캐닝이나 약물검사만 할 뿐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황당해했다. 중요한 건 그 아이가 무얼 원하는지'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심리학자는 그 아이에게 무엇을 해라고 시키기만 했을 뿐, 그 아이의 말을 들어보려는 노력을 하지않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과학 연구에서 표본은 랜덤하게 추출해야하고, 그것도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라캉주의자들에게는 반대의 통계적 지침이 있어서 표본은 단 하나, 그것도 언론에 떠들석하게 보도되거나 아니면 자기 친구여야 하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이택광이나 아니면 그가 인용하는 대니 노버스는 심리치료/심리상담에서 기본이나 다름 없는 내용을 새삼스럽게 강조하면서 그것이 라캉주의의 대단한 강점인양 말하고 있다. 그런데 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번엔 상담심리학 교과서들을 보자.

상담자는 듣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상담자는 주의 깊게 듣고, 있는 그대로 내담자를 수용함으로써 신뢰와 지지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동맹 관계가 없으면 많은 내담자들은 변화할 수 없다.

Scott T. Meier, Susan R. Davis, 이동렬, 유성경 옮김, "상담의 디딤돌", 시그마프레스, 5쪽.

경청은 기본 면담법 중 가장 먼저 거론될 만 한데, 상담이라는 것은 내담자의 말을 듣는 것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김환, 이장호, "상담면접의 기초", 77쪽.

위의 책들은 특정한 이론적 입장을 따르지 않는 책들이다. 이택광의 말은 그 자체로 틀린 건 아니지만 아주 생뚱맞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신과 의사나 임상심리학 전문가라면 상담을 할 때 누구나 하는 것을 두고 마치 남들은 하지 않고 자기들만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택광은 댓글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정신분석은 인간의 자연치유력 같은 걸 믿습니다. 모든 인간은 정신병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뭔가 신호를 보내는데요,이런 자기 노력을 잘 이끌어서 자기 분석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게 라캉의 정신분석입니다. 무슨 분석가가 분석을 해서 지침이나처방을 내리는 게 정신분석이 아닙니다.

이것도 특별히 라캉주의 정신분석에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다.

심리상담자의 역할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스스로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것은 대개 내담자들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낼 능력이 있다는 철학을 반영한다.

김환, 이장호, "상담면접의 기초", 18쪽.

그러니까 이택광은 상담의 기본을 라캉주의의 장점으로 내새우면서, 조승희가 심리치료가 아닌 라캉주의 정신분석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쯤되면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왜냐하면 어떤 심리 치료 기법이 특정 증상에 효과적이라는 것은 당연하게도 대조군과 비교해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는 것인데, 이때 이 '대조군' 환자들에 적용되는 것이 이택광이 라캉주의의 장점이라고 내세우고 있는 공감과 경청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문단을 보자. 심리치료의 무능성을 가지고 책 한 권을 쓰겠다느니, 글 한 편은 나올 주제라느니 하는 분이 어째서 예로 드는 건 모조리 "내 친구가..", "텔레비전을 보니까.."인지 잘 모르겠다만 어쨌든 이번엔 텔레비전에서 본 이야기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황당한 게 이런 거다. 무슨 사회 고발 프로그램에 아동학대 같은 문제가 나오면, 대개 무슨 심리상담사나 정신과의사가 나와서 그림을 그려보게 해놓고, 그 그림을 보며 이러쿵 저러쿵 해석을 해준다. 볼 때마다 이들이 얼마나 용감한가, 싶은 생각이 솔직히 든다. 어떤 아이가 팔을 그리지 않았는데, 이 그림을 '감정'한 한 심리상담사는 "아버지의 학대를 받아서 팔을 그리지 않았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했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아이가 머리카락을 세오라기로 그리거나 손가락 없는 손을 그리는 행위도 무슨 '학대의 표현'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위에서 말하는 종류의 검사를 '투사 검사(projective test)'라고 한다. 대체로 투사 검사는 계량심리학적 근거가 박약하다. 그럼 이런 검사들의 '이론적 근거'는 무엇일까? 그렇다. 정신분석학이다. 아이러하게도 라캉주의자가 정신분석학에 기반을 둔 검사는 '얼마나 용감한가'라며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늘 라캉주의자들에게 하고 싶은 게 그 말이다. '얼마나 용감한가'

게다가 DAP의 경우 이론적 근거야 어쨌든 일정한 해석 지침에 따라 실시하면 정서적 문제가 있는 아동들을 변별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라도 있는데, 이택광은 무슨 근거를 가지고 조승희가 라캉주의 정신분석을 받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이거야 말로 뭐 뭍은 개가 겨 뭍은 개를 나무라는 셈 아닌가.

그건 그렇고 댓글에서 이택광은 또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정신분석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그래서 '정신병'으로 발전해버린 경우는 무용지물입니다. 이런 경우는 의학적 치료 이외에 별 도리가 없습니다.

조승희가 도착이었는지, 아니면 정신병이었는지, 그가 없는 지금 판단하기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대체로 정신병의구조를 갖고 있었을 것이라는 게 강력한 추측입니다만... 만일 구조가 이랬다면, 치료는 불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이쯤되면 횡설수설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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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Carrot 2009/12/19 20:53 #

    흠 난감한 걸요. 임상/상담심리학 전공하신 분은 더 난감하시겠습니다. (...)
  • 아이추판다 2009/12/20 18:57 #

    ㅎㅎ
  • 2009/12/19 21:3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아이추판다 2009/12/20 18:58 #

    50년대 하버드 의대에서 정신과 레지던트로 있었던 에릭 켄달은 레지던트들끼리 세미나를 하려고 정신병의 생물학적 기작에 대해 강연해줄 연사를 찾았는데 보스턴 내 어느 의대에도 그럴 사람이 없었답니다. 결국 생물학과의 에른스트 마이어를 초빙했다는;; '과거'에 미국에서 이랬으니까 '현재'의 한국에 그 영향이 남아있겠지요 :)
  • 누렁별 2009/12/20 00:40 #

    "나의 라깡은 그렇지 않아!"를 외치는 비로그인들이 몰려올 때가 된 듯도 한데 아직 조용하군요.
  • 아이추판다 2009/12/20 18:59 #

    그러게 말이죠. 라캉주의자들끼리 서로 물어뜯는 꼴을 보나 했더니 ㅎㅎ
  • 휴~ 2009/12/20 00:44 # 삭제

    요즘에도 정신분석 지상주의자가 있었어요? 조승희같은 frank psychosis한테 정신분석이 최선책이었다니 저 분 뭘 알고나 하는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 아이추판다 2009/12/20 18:59 #

    그러게 말이죠.
  • 휴~ 2009/12/20 00:47 # 삭제

    아 그러고 저 작자가 홍준기 선생님을 들먹이는데요, 그 분은 라캉주의자가 아니랍니다. 정신분석하시는 분들 미국에서 공부한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저렇게 뜬금없는 소리 하고 라캉을 신처럼 떠받드는 현상을 아주 혐오하시지요.
  • your_rachel 2009/12/20 12:43 #

    '여러 용어들을 자의적으로 재정의해서 사용하는 것을 자신의 방법론' 덕택인지 저 사람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못알아듣겠어요............
  • 아이추판다 2009/12/20 19:00 #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딘가에서 누군가 나타나 your_rachel님의 '인문학적 소양'을 탓할 거에요 호호.
  • 지구밖 2009/12/20 13:03 #

    판다님 글 보면서 개인적으로 항상 라캉떡밥을 이해해 보고 싶었는데..
    귀찮아서 자꾸 문맥상으로만 낼름거리게 되네요.
  • 아이추판다 2009/12/20 19:02 #

    그냥 계속 귀찮아 하시는 편이 낫습니다. ^^
  • 『한군』 2009/12/20 16:14 #

    이런 비판은 저런 짤막한 단상 글 보다는 라캉주의자들의 논문을 대상으로 하시는게 더 효과적일 듯 하네요. 지적하신 문제가 라캉주의식 글쓰기의 문제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단상이라는 글의 형식 때문에 발생한 문제인지 애매하니까요.
  • 아이추판다 2009/12/20 19:03 #

    논문이라도 별반 다르지 않거든요;; 다음 글을 참고하세요.

    "라캉을 읽지 않겠다 - 한국라깡학회 저널을 보고"
    http://coolleft.egloos.com/1796621
  • 저련 2009/12/20 19:50 # 삭제

    맹정현의 <라깡과 사드>(<<라깡의 재탄생>>(창비 2002))라는 명 논문 또한 권해드립니다.
  • 저련 2009/12/20 19:54 # 삭제

    <라깡과 사드>는 물론 심리학적 논의와는 무관한 텍스트 해석하는 글이긴 하지만, 철학적 논의에서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표본 가운데 하나인 듯 합니다.
  • ocd 2009/12/20 21:31 # 삭제

    이택광 교수의 글을 호의적으로 해석하면 '자아'를 강화한다는 명목의 치료를 '에고심리학'으로 집약해서 비판한 것 같습니다.

    주류라고 하는 IPA 쪽의 현재 커리큘럼을 살펴보니 'IPA 분석가 다수=에고심리학'은 진작에 깨진 듯.자아심리학,대상관계,대인관계,애착이론,자기심리학,뉴로바이올로지까지 교육함.심지어 라깡 이론도 소개함.다만 산하 기관마다 특정 학파의 성향은 존재하는 듯.영국은 주로 대상관계,남미는 클라인파,뉴욕은 자아심리,시카고는 자기심리학 등등.

    그 밖에 전체 정신분석가의 반이 라깡파라는 것은 숀 호머의 '라캉 읽기'가 출처인데 근거는 알 수 없고,제 심증으로는 분석가가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는 남미쪽 임상가 수 때문에 그런 계산이 나온 것 같습니다.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의 '정신분석 대사전'에 각국별로 정리가 돼 있다는데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고...여하간 주인장도 진짜 끈질기십니다^^
  • 아이추판다 2009/12/21 08:49 #

    예전에 오토 컨버그 논문을 보니 실험도 하더군요.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2009/12/20 23:47 # 삭제

    전에 보니까 심심하면 라깡. 라캉 등으로 검색해서 능동적으로 떡밥을 찾으신다고 하신 것 같은데 이번 주제도 그런 것의 일환인가요?. 아주 예전 글인거 보니 원래 벼르고 계셨던지?
  • 아이추판다 2009/12/21 08:52 #

    새 떡밥이 없으니 쉰 떡밥이라도 문 셈이죠. '컬렉션'을 만들어보려는 요량도 있었습니다.
  • 페이비언™ 2009/12/21 03:26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이정우 선생의 소칼 비판에 고개를 갸우뚱한 적 있었는데, 이런 글을 보니 제가 왜 프랑스철학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지 알 것 같습니다.
  • 아이추판다 2009/12/21 08:59 #

    과학 용어를 자의적으로 쓴다는 건 차라리 별 문제가 아니죠. 그거야 뭐 좀 뻘짓했다 치면 되는 건데, 라캉주의자들은 아예 대놓고 과학의 영역에 개입하고 있기 때문에 잡도리가 필요합니다.
  • hasad el 2009/12/21 14:34 #

    심리상담치료가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조건 들으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환자는 스스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데 말이죠!
  • 케르베로스 2010/02/22 10:49 # 삭제

    [무조건 들으려고 한다] <---이건 아니지 않나요 ㅡㅡ;
    환자가 스스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직접 알려주는 단계도
    치료과정에 포함되어있는걸로 알아요.
  • medizen 2009/12/24 15:22 # 삭제

    저희 집사람이 미술교육과를 나와서...

    미술심리치료를 졸업 후 배우러 다녔습니다. 이쪽으로 석사를 할 생각이었죠.

    그런데... 이론을 배우고, 실제로 유명한 미술심리치료사들을 만나고 이들이 하는 '치료'를 보면서, 그만 두었습니다.

    정신과에서 치료받아야 할 아이들까지 '다 치료 할 수 있다.'고 붙잡고 있고,
    스스로 almighty라고 믿고 있더랍니다. 이 아이는 정신과를 보내야하지 않을까? 이야기했다가 면박만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저도 내용을 들여다보니 프로이드의 정신분석과 대동소이하더군요.

    물론 그렇지 않은 미술심리치료사도 있겠지요.

    문제는 개별 경험이나 자신의 방법(arm)이 almighty라고 믿는 사람들이죠.

    어느 직업 내에나 돌팔이와 무당이 어느 정도 존재하기 마련인데, 한국에는 이것을 제어하는 힘이 너무 적습니다...
  • 아이추판다 2009/12/26 01:00 #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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