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25일
사랑과 고통
죽을 때조차도 '그들'보다는 '우리'에 속하는 편이 더 낫다. 1795년 런던의 켄싱턴 공원에서 루이스 애버쇼(Lewis Avershaw)라는 사람이 교수형을 당했다. 당시 사람들이 전하는 것처럼, 그는 교수대로 끌려가는 동안 지나치는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입에 꽃을 문 채로 최후까지 당당하게 죽었다. 몇 달이 지나자 사람들은 그가 목매달린 장소를 마치 영웅의 무덤인 양 방문했다. 그는 영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중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받으며 죽었다. 공개 교수형에 익숙했던 영국인들은 바로 그 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도 1759년 "도덕감정론(Theory of Moral Sentiments)"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교수대로 향하는 사람은 자신을 지지하는 구경꾼들의 동정을 받으며...... 수치심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고통이 혼자만의 것이라는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감정으로부터 벗어난다."
데이비드 베레비, 정준형 옮김,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에코리브르, 303쪽.
데이비드 베레비, 정준형 옮김,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에코리브르, 303쪽.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는 실제로 고통을 감소시켜준다는 것은 여러 가지 실험으로도 잘 확인되어 있다. 오늘 새로 나온 논문중에 이 현상에 관련된 논문이 하나 있다.
Master, S. L. et al. (2009). A Picture’s worth: Partner photographs reduce experimentally induced pain. Psychological Science, ?(?), ?-?.
실험은 이렇다. 6개월 이상 된 애인이 있는 여성들을 실험참여자로 모집했다. 실험자는 이 여성들의 팔 일부에 열을 가하면서 고통의 정도를 물었다. 실험의 조건은 여섯 가지였다.
1) 애인이 손을 잡아주는 조건
2) 모르는 남자가 손을 잡아주는 조건
3) 고무공을 잡고 있는 조건
4) 애인의 사진을 보는 조건
5) 모르는 남자의 사진을 보는 조건
6) 의자 사진을 보는 조건
1, 2, 3의 조건에서 얼굴은 볼 수 없도록 두 사람 또는 고무공과 여성 사에 커튼을 쳤다. 동시에 실험참여자들은 불시에 삐 소리가 들리리면 버튼을 가능한 빨리 누르라는 지시도 받았다. 이것은 버튼을 누르는 속도를 측정해서 실험 조건에 따라 주의가 산만해진 것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실험 결과는 아래와 같다.

약간 신기하지만 아주 재밌진 않다. 결과가 반대로 나왔으면 대박이었을텐데 ㅎㅎ.
# by | 2009/09/25 19:05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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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손을 잡는 편이 정신적으로 큰 지지/위안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