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인지능력은 환경 속에서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다. 환경이 공간적이니까 동물도 공간을 경험할 거라는 주장은 지나치게 단순한 관점이다. 하나의 문제를 푸는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동물의 경우에는 가급적 단순한 방법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아래는 데이비드 마의 유작 "Vision"에서 파리의 시각 시스템을 예로 시각의 목적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진화는 누적적으로 이뤄진다. 이것은 기존의 시스템을 개량하는 방향으로도 이뤄지지만, 기존의 시스템에 새로운 시스템을 덧붙이는 방식으로도 이뤄진다. 전체 인지 시스템은 모듈(module)이라고 부르는 하위 시스템의 집합체다. 마가 동물들이 '하나 이상의 표상'을 가진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경우에는 중앙처리장치와 이에 종속된 모듈들로 인지 시스템이 이뤄져있다고 한다. 모듈이라는 용어 자체가 컴퓨터 공학에서 나온 것인데, 우리가 보통 쓰는 컴퓨터를 보면 랜카드, 그래픽카드 같은 모듈들이 CPU를 보조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라는 게 이 관점의 요체다. 이에 반대하여 중앙처리장치는 없고 다만 여러 개의 모듈들이 상호작용할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를 '대량 모듈 가설(massive module hypothesis)'라고 한다.
위의 인용문을 간단히 요약하면, 파리의 시각적 비행제어는 다섯 개 모듈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각각의 모듈은 매우 간단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특정한 패턴의 감각 신호가 모듈에 입력되면, 각각의 모듈은 이에 대응하는 행동 패턴을 출력한다. 파리의 전체적인 움직임은 다섯 개 모듈 각각이 출력하는 행동 패턴들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로봇 청소기는 원래 적어도 방의 구조와 자신의 위치에 대한 표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방이 어떻게 생겼고, 내가 그 중에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청소 계획도 세우고 다음 이동 위치도 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술은 좀 어렵기 때문에 청소기 가격이 비싸진다. 그래서 로봇청소기를 파리의 시각 비행제어 시스템처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대량 모듈 가설의 인공지능 버전이다. 이런 종류의 로봇 청소기는 방의 구조나 자기 위치에 대한 인식 능력이 없는 대신 앞부분에 일종의 스위치가 달려있다. 그래서 무조건 전진하다가 벽이나 장애물에 부딪히면 스위치가 눌리고, 회전 모터가 잠시 작동하면서 방향을 바꾼다. 그 다음엔 다시 전진, 충돌하면 다시 방향 전환, 다시 직진, 그렇게 전원이 나갈 때까지 반복을 한다. 만약 방이 적절하게 생겼고, 전원이 충분하면 로봇 청소기는 결국 모든 방바닥을 쓸고 다니게 된다. 이런 움직임은 직진 '모듈'과 방향 전환 '모듈'이 산출한 행동 패턴의 결과물이다. 두 모듈은 직접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하나의 목적을 완수한다.
파리는 표면을 모르고, 청소기는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파리와 로봇 청소기는 공간 속에서 자신의 목적에 맞게 자신의 움직임을 제어하지만, 공간에 대한 명시적 표상을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미묘한 정보'를 이용해 공간을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스위치를 올리면 불이 들어오는 형광등도 '미묘한 정보'를 이용해 공간적 인식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각의 목적
표상의 유용함은 그것이 사용되는 목적에 적합한 정도에 달려있다. 비둘기는 비행을 날고 먹이를 찾기 위해 시각을 이용한다. 여러 종류의 깡총거미(jumping spider)는 잠재적 먹이와 잠재적 짝을 구별하기 위해 시각을 이용한다. 예를 들어, 그 한 종은 V자 모양으로 배열된 두 개의 대각선 형태의 특이한 망막이 있다. 이 거미들은 자기 앞에 있는 검은 물체의 등에서 붉은 V자 무늬를 탐지하면 짝이라고 판단하다. 아니면 먹이다. 개구리는 앞서 보았듯이 망막으로 벌레를 탐지한다. 그리고 토끼의 망막은 매 형태의 물체를 탐지하는 매 탐지기(hawk detector)를 비롯해 다양한 특수 장치들로 가득차 있다. 반면, 인간의 시각은 훨씬 더 일반적이지만, 그 역시 다양한 특수목적 기제들을 포함한다. 이런 기제에는 시각장 안의 예상치 못한 움직임으로 눈을 향하게 하거나, 눈을 깜빡이거나, 머리 쪽으로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물체를 피하는 것 등이 있다.
요컨대, 서로 다른 동물의 시각 시스템은 서로 크게 달라서 시각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된다. 내가 지지해온 표상(representation)과 처리(processing)라는 형태의 정식화(formulation)는 이들 동물 모두에게 적합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여기서 일반적 논점은 시각이 서로 다른 동물에서 서로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시각을 가진 모든 동물은 서로 다른 표상을 갖는다는 것이다. 각각의 동물은 그들 자신의 목적에 맞는 하나 이상의 표상을 사용할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원시적이지만 대단히 효율적인 시각 시스템의 한 예를 살펴보도록 하자. 튀빙겐의 베르너 라이하르트(Werner Reichardt) 그룹은 집파리(housefly)의 시각 비행제어 시스템을 14년 동안 꾸준히 연구했다. 그리고 토마소 포기오(Thomas Poggio)와 유명한 공동연구로 이 문제를 푸는데 많은 성과를 거뒀다. 거칠게 말해서, 파리의 시각 장치는 약 다섯 개의 독립적이고 기능이 고정된 매우 빠르게 반응하는 시스템들로 비행을 제어한다. 시각자극에서 돌림힘(torque) 변화까 지걸리는 시간은 21밀리초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이런 시스템 중에 하나가 착륙 시스템(landing system)이다. 만약 표면이 근처에 나타나서 시각장이 충분히 빨리 '폭발(explode)'하면 파리는 자동적으로 그 중심에 착륙한다. 그 중심이 파리의 위쪽에 있으면, 파리는 자동으로 뒤집어 착륙한다. 발이 닿으면, 날개의 동력을 끊는다. 반대로 이륙할 때 파리는 점프해서 발에 촉감이 사라지면 날개의 동력을 복구한다. 그리고 이 벌레는 다시 난다.
(중략)
특히, 파리가 주변 세계에 대한 표면(surface)의 개념 같은 명시적 표상(explicit representation)을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신 파리는 약간의 방아쇠(trigger)와 몇몇 파리 중심적 조절변수(fly-centered parameter)만을 가진다.
인간의 시각이 파리보다 더 복잡하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도 특정한 저수준의 과제를 위해 파리와 다르지 않은 하위 시스템을 포함한다. 그럼에도, 비록 단순한 시스템이지만 포기오와 라이하르트가 보였듯이 정보처리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연구는 파리의 시각 제어 시스템을 미분방정식으로 정확히 기술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반이 되는 신경망의 최소로 가능한 복잡성에 대한 직접적 정보를 이 방정식을 볼테라 급수 전개하여 표현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Marr, D. (1982). Vision: A computational investigation into the human representation and processing of visual information. New York: W. H. Freeman and Company. p. 34.
표상의 유용함은 그것이 사용되는 목적에 적합한 정도에 달려있다. 비둘기는 비행을 날고 먹이를 찾기 위해 시각을 이용한다. 여러 종류의 깡총거미(jumping spider)는 잠재적 먹이와 잠재적 짝을 구별하기 위해 시각을 이용한다. 예를 들어, 그 한 종은 V자 모양으로 배열된 두 개의 대각선 형태의 특이한 망막이 있다. 이 거미들은 자기 앞에 있는 검은 물체의 등에서 붉은 V자 무늬를 탐지하면 짝이라고 판단하다. 아니면 먹이다. 개구리는 앞서 보았듯이 망막으로 벌레를 탐지한다. 그리고 토끼의 망막은 매 형태의 물체를 탐지하는 매 탐지기(hawk detector)를 비롯해 다양한 특수 장치들로 가득차 있다. 반면, 인간의 시각은 훨씬 더 일반적이지만, 그 역시 다양한 특수목적 기제들을 포함한다. 이런 기제에는 시각장 안의 예상치 못한 움직임으로 눈을 향하게 하거나, 눈을 깜빡이거나, 머리 쪽으로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물체를 피하는 것 등이 있다.
요컨대, 서로 다른 동물의 시각 시스템은 서로 크게 달라서 시각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된다. 내가 지지해온 표상(representation)과 처리(processing)라는 형태의 정식화(formulation)는 이들 동물 모두에게 적합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여기서 일반적 논점은 시각이 서로 다른 동물에서 서로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시각을 가진 모든 동물은 서로 다른 표상을 갖는다는 것이다. 각각의 동물은 그들 자신의 목적에 맞는 하나 이상의 표상을 사용할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원시적이지만 대단히 효율적인 시각 시스템의 한 예를 살펴보도록 하자. 튀빙겐의 베르너 라이하르트(Werner Reichardt) 그룹은 집파리(housefly)의 시각 비행제어 시스템을 14년 동안 꾸준히 연구했다. 그리고 토마소 포기오(Thomas Poggio)와 유명한 공동연구로 이 문제를 푸는데 많은 성과를 거뒀다. 거칠게 말해서, 파리의 시각 장치는 약 다섯 개의 독립적이고 기능이 고정된 매우 빠르게 반응하는 시스템들로 비행을 제어한다. 시각자극에서 돌림힘(torque) 변화까 지걸리는 시간은 21밀리초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이런 시스템 중에 하나가 착륙 시스템(landing system)이다. 만약 표면이 근처에 나타나서 시각장이 충분히 빨리 '폭발(explode)'하면 파리는 자동적으로 그 중심에 착륙한다. 그 중심이 파리의 위쪽에 있으면, 파리는 자동으로 뒤집어 착륙한다. 발이 닿으면, 날개의 동력을 끊는다. 반대로 이륙할 때 파리는 점프해서 발에 촉감이 사라지면 날개의 동력을 복구한다. 그리고 이 벌레는 다시 난다.
(중략)
특히, 파리가 주변 세계에 대한 표면(surface)의 개념 같은 명시적 표상(explicit representation)을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신 파리는 약간의 방아쇠(trigger)와 몇몇 파리 중심적 조절변수(fly-centered parameter)만을 가진다.
인간의 시각이 파리보다 더 복잡하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도 특정한 저수준의 과제를 위해 파리와 다르지 않은 하위 시스템을 포함한다. 그럼에도, 비록 단순한 시스템이지만 포기오와 라이하르트가 보였듯이 정보처리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연구는 파리의 시각 제어 시스템을 미분방정식으로 정확히 기술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반이 되는 신경망의 최소로 가능한 복잡성에 대한 직접적 정보를 이 방정식을 볼테라 급수 전개하여 표현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Marr, D. (1982). Vision: A computational investigation into the human representation and processing of visual information. New York: W. H. Freeman and Company. p. 34.
진화는 누적적으로 이뤄진다. 이것은 기존의 시스템을 개량하는 방향으로도 이뤄지지만, 기존의 시스템에 새로운 시스템을 덧붙이는 방식으로도 이뤄진다. 전체 인지 시스템은 모듈(module)이라고 부르는 하위 시스템의 집합체다. 마가 동물들이 '하나 이상의 표상'을 가진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경우에는 중앙처리장치와 이에 종속된 모듈들로 인지 시스템이 이뤄져있다고 한다. 모듈이라는 용어 자체가 컴퓨터 공학에서 나온 것인데, 우리가 보통 쓰는 컴퓨터를 보면 랜카드, 그래픽카드 같은 모듈들이 CPU를 보조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라는 게 이 관점의 요체다. 이에 반대하여 중앙처리장치는 없고 다만 여러 개의 모듈들이 상호작용할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를 '대량 모듈 가설(massive module hypothesis)'라고 한다.
위의 인용문을 간단히 요약하면, 파리의 시각적 비행제어는 다섯 개 모듈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각각의 모듈은 매우 간단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특정한 패턴의 감각 신호가 모듈에 입력되면, 각각의 모듈은 이에 대응하는 행동 패턴을 출력한다. 파리의 전체적인 움직임은 다섯 개 모듈 각각이 출력하는 행동 패턴들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로봇 청소기는 원래 적어도 방의 구조와 자신의 위치에 대한 표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방이 어떻게 생겼고, 내가 그 중에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청소 계획도 세우고 다음 이동 위치도 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술은 좀 어렵기 때문에 청소기 가격이 비싸진다. 그래서 로봇청소기를 파리의 시각 비행제어 시스템처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대량 모듈 가설의 인공지능 버전이다. 이런 종류의 로봇 청소기는 방의 구조나 자기 위치에 대한 인식 능력이 없는 대신 앞부분에 일종의 스위치가 달려있다. 그래서 무조건 전진하다가 벽이나 장애물에 부딪히면 스위치가 눌리고, 회전 모터가 잠시 작동하면서 방향을 바꾼다. 그 다음엔 다시 전진, 충돌하면 다시 방향 전환, 다시 직진, 그렇게 전원이 나갈 때까지 반복을 한다. 만약 방이 적절하게 생겼고, 전원이 충분하면 로봇 청소기는 결국 모든 방바닥을 쓸고 다니게 된다. 이런 움직임은 직진 '모듈'과 방향 전환 '모듈'이 산출한 행동 패턴의 결과물이다. 두 모듈은 직접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하나의 목적을 완수한다.
파리는 표면을 모르고, 청소기는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파리와 로봇 청소기는 공간 속에서 자신의 목적에 맞게 자신의 움직임을 제어하지만, 공간에 대한 명시적 표상을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미묘한 정보'를 이용해 공간을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스위치를 올리면 불이 들어오는 형광등도 '미묘한 정보'를 이용해 공간적 인식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덧글
점차 시그널이 강해지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식으로요..
이동 메커니즘은 동일하게 하고요....
'우리가 시각은 없고 박쥐같은 반향정위를 사용해서 공간정보를 얻는 동물이라고 쳐 봅시다.'
왜 '우리'라고 했는지 그 전의 댓글 중 아래 부분을 봤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한 형식으로만 두 종류의 정보를 처리하는 생명체의 반응보다 두 종류의 정보를 다르게 처리하는 반응이 합리적임을 우리는 추론할 수 있고 한 종류의 반응만 보이는 생명체가 두 종류로 반응하는 생명체로 '필연적으로' 진화할 것임을 우리는 정당하게 단정할 수 있는 것이죠. 마치 복잡한 수와 계산을 모르던 아이나 무학력자가 수학 공부를 통해 '필연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수와 계산을 배울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 것처럼요.'
'이들이 '미묘한 정보'를 이용해 공간을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스위치를 올리면 불이 들어오는 형광등도 '미묘한 정보'를 이용해 공간적 인식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요. 인식의 뜻을 그렇게 정의한다면 형광등도 공간적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주장한 적은 없습니다.
파리가 바로 그런 h 경험만을 하는 동물입니다. 아마, 파리는 인식을 하는 게 아니라고 대답하실 텐데 그러면 인지과학이라는 건 더이상 존재할 수가 없는 거죠.
선험이란 경험의 근거가 되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가 필연적으로 그에 따라 경험할 수 밖에 없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기술적으로 경험불가능하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모순이나 역설 없이 가정할 수조차 없는 것이란 말이지요. 비행 기술을 우리가 모를 때라도, 우리가 하늘을 난다는 상상은 모순 없이 가능했지만, 시간 이동의 가정은 모순을 반드시 수반하게 되죠. 공간의 비선험성을 논증하고 싶으면 공간 인식 수준에 미달하는 자극-반응 체계를 예로 들 것이 아니라 모든 공간에 편재하는 주체나 모순 없는 시간 이동의 가능성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전공자가 아니면 입다물어라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전문용어의 정확한 의미조차 모르고서 발언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간이나 공간이 선험적 형식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불분명하단 말이죠. 제가 지금까지 얘기해온 건 다양한 종류의 인식이 실제로 존재하는데 왜 특정한 형식만을 선험적이라고 주장하느냔 말이죠. 산마로님은 그런 다양한 종류의 인식을 '낮은 수준의 인식'이라고 하는데 저는 거기에 별로 동의하지 않거든요.
게다가 세리자와님의 글 http://serizawa.egloos.com/1937833 에도 나오지만 현대 물리학은 "모든 사물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가정을 부정합니다.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끈 이론 등은 모두 우리의 직관에 위배되는 것들 뿐이죠. 그렇다면 선험이라는 개념은 시간이나 공간과 같은 형식에 한정할 수 없고 인간, 파리, 현대 물리학을 모두 포함하는 그런 형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계산(computation)이라는 개념을 얘기한 거죠.
저는 물리는 잘 모르지만, 기하학이 물리에 많이 응용되었고, 최근 20년간은 그 반대로 물리의 결과들이 기하학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관심은 아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잘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현대 물리학은 칸트의 선험적 공간론의 철학 아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칸트 시대에 생각되어졌던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가 R^3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real dimension이 4인 공간으로 설명을 하고, 이것도 아마 R^4는 아니라 중력에 의해 휘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게 rimannian manifold of dimension 4에 적당한 metric이 주어졌을 때 curvature가 0이 아니라는 뜻인거 같은데, 리만기하와 일반상대론 둘 다를 제대로 몰라서 헛소리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걱정이 되네요.)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간과 시간이라는 것이 또는 시공간이라는 것이 주어져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이건 리만기하학이건 결국 그러한 공간(space)이 주어진 상태에서 기하학적인 성질들을 연구하는 것이지요.
칸트의 질문은 일반상대성이론의 혹은 다른 무엇이든 (칸트의 경우 고전역학이었겠죠) 그 이론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 선험적인 것인지, 아니면 경험적인 판단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일반상대성이론이나 고전역학이나 그 무대만 다를 뿐 칸트의 질문에 대한 아무런 대답도 근거도 되지 못하는 것은 똑같지 않나 싶습니다.
과연 현대 물리학의 무엇이 '모든 사물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가정을 부정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선 원리는 사물의 존재자체를 부정하진 않습니다. 위치와 운동량 모두를 정확히 결정할 수 없다는 것뿐이지요. 게다가 양자역학의 무대가 되는 우리의 세계 자체는 이미 가정이 되어 있습니다.
끈이론의 경우는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물리학자들이 어떻게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 자체를 건드리고 있으니까요. 그 물리학자들의 논리적인 연역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가 시공간R^4에 real dimension 6인 Calabi-Yau manifold가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물리학 이론에서 처음으로 칸트의 질문에 근접하게 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아이추판다님의 주장처럼 현대의 끈이론이 철학의 고유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잠식해 나가는 한 가지 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여전히 끈이론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정들이 있을텐데, 그런 것들이 과연 선험적으로 주어져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지성을 통해 확실하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인지라는 질문은 남고, 이런 질문들은 영원히 철학의 영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질문들은 계속 철학의 영역에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질문들은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애초에 과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널리 쓰인게 19세기 정도입니다. 칸트와 공간에 대해서라면 어떤 부분은 여전히 철학적 영역이겠지만, 라캉주의자들처럼 환각도 철학의 대상이라고 하면 아주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간단한 A.I. 를 만들려고 한적이 있었습니다.
가상의 공간안에서 사과를 먹으러 돌아다니는 지렁이를 만들려고 했죠.
그런데 여기서 지렁이가 공간을 스스로 인식하고, 사과를 향해 이동하는것 자체를 스스로
이해하게 하려고 만들려고 했죠.
그런데 처음에 공간을 인식한다? 라는 것 부터가 막히더군요.
참으로 멍청한 때였죠 ㅋㅋㅋ
지금은 좀 더 공부한 상태라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공간을 인식할 정도로 훌륭한
인공지능을 만든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더군요.
그리고 이 글을 보니, 그게 당연히 어려운것이구나~ 싶네요.
생각해보니 사람조차도 도대체 공간이라는게 무엇인지 이토록 고민하니까요..
인간의 눈알이나 동일한 유전자의 지배... 를 받지요
언어 중추와 연관성 있는 FOXP2 유전자에 대하여 나오면
참 재미있을꺼 같네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