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12 02:16

어떤 간극 인지과학

원래 이 논쟁의 시발점이 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그러므로 어떤 주제가 철학적이라고 단정짓고, 전통적인 철학의 범주 안에만 가두려는 발상은 반동적일 수 있다. 오히려 필요한 태도는 우리 앞에 나타난 사태를 바닥까지 철저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근대철학사에서 여러 차례 반복된 것처럼 해당 주제를 철학으로부터 독립하게 만들 것이다. 가장 근본적으로 철학적인 태도가 철학의 종말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철학자들은 오이디푸스의 저주받은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저주받은 운명

문제는 '해석'이 아니라 '역사'인데, 19세기 상황에 대한 노정태님 자신의 요약(혹은 추측?)만으로도 내 얘기의 근거로 삼기에는 무리가 없다.

19세기 철학자들은 『순수이성비판』에서 말하는 '선험적 공간'이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완벽하게 서술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칸트 철학의 영향을 받은 과학자, 수학자들 또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쉽사리 수용하지 못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통해 리만 기하학을 이용하여 관측되는 공간을 완벽하게 기술해냄으로써 '물리적 공간은 필연적으로 유클리드적이다'라는 칸트적 공간 이론은 폐기되었다.

노정태님, 해석의 역사와 시대의 한계

노정태님이 자꾸 '해석'하려는 것처럼 19세기 철학자들의 믿음이 올바른 것이었건, 잘못된 것이었건 그들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반대한 이유가 칸트에 근거해서건 아니면 칸트를 옹호하기 위해서건 간에, 내가 문제 삼는 건 19세기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철학적 반대'가 존재했고, 이것이 비유클리드 기하학 발전에 장애물이었다는 것 그 자체다.

사실 19세기 당시에는 어느 쪽이 옳은지 불확실한 상태였다. 가우스는 기하학이 역학과 마찬가지로 경험적인 학문이라고 믿었지만 그걸 실제로 입증할만한 측정치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가우스는 브로켄, 호허 하헨, 인젤베르그 세 산을 꼭지점으로 해서 세 변이 각각 69Km, 85Km, 107Km에 달하는 거대한 삼각형을 측량했지만 그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결과만을 얻었을 뿐이다. 가우스의 믿음은 20세기에야 에딩턴의 관측으로 정당화된다. 그러니까 19세기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반대했던 철학자들도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그렇게 잘못한 건 아니다.

그러나 19세기 철학자들의 "어떤 주제가 철학적이라고 단정짓고, 전통적인 철학의 범주 안에만 가두려는 발상"이 시대적 기준으로 잘못된 건 아니라고 해도, 결국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꿔놓은 것은 "자신들 앞에 나타난 사태를 바닥까지 철저하게 파고든" 가우스와 그의 제자 리만의 작업이다. 그들의 작업이 없었다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데 있다. 이 블로그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홍준기, 맹정현, 김상환, 김석 등 라캉주의자들의 말은 다시 요약하기도 번거롭다. 아무리 현대 인지과학의 성과가 별볼일 없다고해도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19세기에 가지고 있던 것에 비하면 훨씬 많은 경험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데도 그렇다. 이 사람들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도 한참 잘못하고 있다.

산마로님은 노정태님식 반박법?에 단 댓글에서 "철학자연하는 라캉같은 2류가 철학적 주제와 비철학적 주제를 혼동하[고] 있는 것을 보고 철학적 주제가 철학에서 독립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허수아비 때리기"이며 "라캉같은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인데 그런 사례를 두고 철학자나 수학자의 대표로 해석하는 건 대단히 비생산적"이라고 말한다. 이건 어느 쪽에서 보느냐의 문제일 수 있기는 하지만, 라캉주의자들처럼 중증은 아니라도 그런 '철학적 개입주의'는 적지 않다.

시간이 흐른 탓인지 모르지만, 최종덕 교수는 이제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는 아주 진지하게 현대 진화론의 자연선택 개념을 대체할 수 있는 이론을 동양적 사유, 구체적으로는 '노장사상'이 제시할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이는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거나의 문제가 아니다. 한 철학자의 '취향'이 과학이론의 토대가 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베르나르의 사유가 생각난 것이다.

또한 최종덕 교수와 강신익 교수의 대담에서, 현대분자생물학의 환원론이 '나쁜'것으로 매도되고, 듣보잡에 말도 안되는 사이비 과학으로 대중을 현혹중인 이상한 생물학자의 예를 들면서 '전일론'적인 과학이 현대과학의 '사악한' 행보를 막을 수 있는 것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곤 헛웃음을 칠 수 밖에 없었다.

김우재님, 과학과 철학의 상호작용에 있어서의 일방향성

산마로님은 이런 사람들까지 포함해도 소수에 불과하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산마로님의 "박쥐 공간경험설"도 그런 '철학적 개입주의'와 다르지 않다. 사실 이 주장은 노정태님(직관되는 표상으로서의 공간)에 따르면 철학적으로도 잘못된 것이고(이건 두 분이 알아서 해결하시라), 고율님(아이추판다님께 트랙백(2))에 따르면 과학적으로도 잘못된 것이다(박쥐로 한정하면 고율님과 내 생각은 별 차이가 없다). 철학적 개입주의자들은 산마로님까지 포함해도 소수에 불과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산마로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최소한 한 명 많다. 바로 이 간극이 내가 지적하려는 문제다.

덧글

  • dPIN 2009/08/12 04:27 # 삭제

    영화 매트릭스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철학도 2009/08/12 09:06 # 삭제

    '이러한 태도는 근대철학사에서 여러 차례 반복된 것처럼 해당 주제를 철학으로부터 독립하게 만들 것이다.'

    이것만 입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공간이라는 주제는 철학으로부터 독립한 것인지. 공간은 이제 과학만의 연구주제인지. 이제 철학이 공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잘 못 인지. 구체적으로 칸트의 공간론을 연구하는 것은 시대 착오적인지. 사실 논쟁이 이렇게 커진 것은 이 문제였잖아요.
    김영건 선생의 설명 이후 다들 이 문제에 대해서는 GG친 것 같은데 아이츄판다님은 어떤 입장이신지요?

    아이츄판다님이 19세기의 칸트와 라깡을 엮는 것은 좀 문제가 있어요. 현재 라깡 때문에 과학의 연구가 손톱만큼이라도 영향을 받고 있나요? 철학적 개입주의라고 명명하시는 것으로 발생되는 과학계의 손실이 어떤 것인지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아이츄판다님이 생각하시는 것이 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과학은 철학에 대해 이거해라 저거해라 해도 되나요? 그런 식의 과학적 개입주의(?)는 철학의 발전을 혹시라도 저해하지 않을까요? 칸트 공간론을 연구하는 것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단정하는 것이 옳아요?

    바쁘시더라도 처음 입장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그 생각 그대로이신지 밝혀주시면 독해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 아이추판다 2009/08/12 12:26 #

    이제와서 19세기처럼 공간이 유클리드적이냐 아니냐를 걸고 넘어지는 철학자는 거의 없다는 걸로 충분히 제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라캉은 아니지만 http://nullmodel.egloos.com/1789965 가 좋은 예가 되겠군요. 사회과학도인 글쓴이는 경험적 근거가 아니라 철학(?)에 근거해서 아내의 수술을 거부하고, 또 이것은 글쓴이의 아내의 건강을 크게 위협합니다. 라캉주의가 악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이렇습니다. 자연과학도 중에는 이런 사람 없지만 사회과학도 중에는 종종 있죠.

    마지막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목만 잡았던 19세기 철학자들의 개입과 달리 상대성이론을 통한 과학적 '개입'은 칸트 해석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쓸데없는 집착을 버리게 함으로써 칸트 철학의 이해에 진전을 가져왔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이런 건 아니죠. 라캉주의에 대한 과학적 개입은 라캉주의의 '발전(?)'을 저해하겠죠.
  • 철학도 2009/08/13 05:52 # 삭제

    '이제와서 19세기처럼 공간이 유클리드적이냐 아니냐를 걸고 넘어지는 철학자는 거의 없다는 걸로 충분히 제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이 말이 '해당 주제를 철학으로부터 독립하게 만들 것이다.'라는 아이추판다님의 주장을 어떻게 지지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철학으로부터 독립했다는 말씀이신가요?

    링크하신 예가 어떤 방식으로 아이추판다님이 주장하시는 바라는 그것. '내가 문제 삼는 건 19세기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철학적 반대'가 존재했고, 이것이 비유클리드 기하학 발전에 장애물이었다는 것 그 자체다.'라는 말씀과 관련되어, 아이추판다님으로 하여금 칸트와 라깡을 같이 엮어 논할 수 있게 하는 것인지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김우재님이 말씀하신 것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철학의 자연과학에 대한 '개입'이며, 아이추판다님이 칸트에게서 지적하는 것은 그의 철학으로 인한 기하학 발전의 저해였죠. 라깡이 아이추판다님의 평온한 감정을 건드려서 연구시간을 잡아 먹게 만든다는 엄청난 악영향은 제가 잘 알겠습니다만, 인지심리학이나 기타 어떤 과학이라고 불리는 것의 학문발전에 대해서 라깡이 칸트의 철학이 (본의 아니게) 기학학 발전을 저해했던 것과 비교될 수 있는 방해공작을 본의든 아니든 수행하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그걸 '개입'이라고 말하지 않죠. 제가 비유한 '과학적 개입'이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아실텐데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철학이 과학의 성과를 받아들이고 연구해나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과학이 성과를 내면 철학은 반영합니다. 과학의 성과를 받아들여서 기존의 철학이론을 고찰해보는 것도 철학의 영역입니다.(정확히는 철학사연구지만)
    가령..(이거 적극 추천이고 정말 생각이 있으시다면 적당한 지도교수도 추천해드릴 수 있는데) 아이추판다님이 심리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라깡을 비판하는 논문을 쓴다고 합시다. 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연구영역은 철학과뿐입니다. 또 논의 중에 제시되기도 했는데, 현대 과학의 성과로 칸트를 평가하는 '철학'논문들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시대를 가르는 자연과학의 엄청난 성과들 나올 때마다 그에 응하는 위대한 철학자들이 등장했습니다. 철학자에게 과학의 성과는 엄청난 할 일들를 안겨주지만 동시에 엄청난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이런 자료 제공으로서의 '개입'이라면 언제나 빤스 벗어들고 대 환영입니다.

    간단한 질문이었습니다. 과학하시는 분이 문학하는 사람들처럼 불분명하게 답하시는 것은 어색해보입니다. 다시 질문드립니다. 공간은 이제 철학으로부터 독립한 문제라고 생각하세요? 칸트의 공간론을 연구하는 것은 시대착오예요? 라깡은 과학연구에 어떤 피해를 주고 있어요? (그렇지 않다면 왜 칸트랑 엮으신 거예요?) 과학자가 철학자에게 이거 연구해라 저거 연구하지 마라 말하는 것은 정당해요?

  • 아이추판다 2009/08/13 11:55 #

    이해가 안가시면 저한테 '질문'을 하지 마시고, 철학도답게 라캉주의가 철학으로 가장한 반과학적 억지가 아니라 과학이 개입할 수 없는 정당한 철학적 작업이라는 걸 논증하시면 됩니다.
  • 철학도 2009/08/14 04:41 # 삭제

    철학도답게 라깡을 읽는 후배. 선배들을 만날 때마다 사기꾼이라고 알려주고, 아이추판다님의 블로그를 소개해주고는 합니다. 라깡을 전공하겠다는 한 후배를 일주일간 쥐잡듯이 한 끝에 주저앉힌 적도 있지요.

    이번 사안과 님의 라깡 관련 글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이추판다님이 정말 모르시고 계신다고 그냥 믿겠습니다.

  • 노컷 2009/08/12 20:24 # 삭제

    처음 판다님의 글에 감동하고 이후에 꾸준히 블로그에서 글을 읽고 있는 사람입니다. 먼저 저는 판다님의 글 내용에 항상 감탄하고 있구요. 제가 요새 드는 생각은 요새 다른 블로거와의 논쟁때문에 판다님의 소중한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는 거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노정태님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구요. 세상엔 각자 자신의 방향으로 추구하는 것이니까요- 정태님도 정태님의 가치는 충분히 가지고 계시겠죠. 예를 들어 정태님의 글을 편하게 읽으시는 분도 있겠죠 과학적인 자료를 중시하는 저는 아무래도 정태님보다는 판다님의 글이 훨씬 읽기가 편하구요
    결론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예전 같은 포스팅 떡밥 좀 던져주세요 하악하악" 이에요 ㅎㅎㅎ
  • 아이추판다 2009/08/13 01:33 #

    어떤 떡밥을 원하십니까? ㅎ
  • ExtraD 2009/08/13 01:39 #

    사소한 코멘트.

    1.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기술하는 수학적 도구로 리만의 기하학이 사용된 것은 맞지만 일반 상대론으로 가는 시작점을 마련해준 '특수'상대성 이론의 경우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의 대칭성(혹은 invariance)에 대한 고찰로부터 그 단초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저는 "그들의 작업이 없었다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없었을 것이다."는데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실제로 '민코브스키 공간' 혹은 4차원 시공간 (RaumZeit)이라는 개념은 리만의 기하학 없이 충분히 잘 기술됩니다. 물론 중력을 기술하기 위해서 '국소적 민코브스키 공간(local Minkowski space)'라는 개념이 필요해지고 이 부분에서 리만의 기하학이 매우 매우 적절하게 이용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2. 우주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칸트나 그 어떤 철학자의 2000년 넘은 사유가 아니라 맥스웰의 전자기학과 리만의 기하학을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분들이 계시겠지만 여전히 그 분들도 인터넷 사용하고, 휴대폰으로 문자 날리고 할 것이라는 것이 재밌습니다.

    그렇다고 철학을 읽는 것이 재미와 의미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소비자 입장에서요.
  • 아이추판다 2009/08/13 02:21 #

    좋은 코멘트 감사합니다.
  • 별아저씨 2009/08/21 01:23 #

    저도 사소한 코멘트.

    리만의 기하학과 민콥스키의 공간은 서로 독립적으로 기술할 수 있지요. 좀 더 말하자면 리만의 기하학은 "리만계량이 주어진 국소적 공간을 붙이는 방법"이고 민콥스키의 공간은 "국소적으로 리만계량의 특수한 성질을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 의견이지만, 노정태님은 수학/물리학자들이 생각하는 공간의 개념을 거의 이해 못하고 계시는 듯.
  • 아이추판다 2009/08/21 02:35 #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수학/물리학자들이 생각하는 공간의 개념"은 피상적으로 밖에 모르니까, 철학도가 모른다고 큰 흠은 아니겠지요. 다만..
  • 산마로 2009/08/14 21:30 # 삭제

    몇가지 오해에 대하여,
    1) 박쥐 공간경험설은 칸트철학에 대한 해석이 아니므로 노정태님이나 고율님의 주장이 그에 대한 반론이 되지 못함. 공간의 선험성에 대한 논변이 칸트 철학의 해석으로만 가능할 이유가 없음.
    2) 박쥐 공간경험설에서 기존의 과학적 성과를 부정하거나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추가한 부분이 있던가? 과학의 어디에 개입하려 했다는 것인지 어리둥절할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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