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님식 반박법?

해석의 역사와 시대의 한계 (노정태님)

우선 1) [19세기에는 칸트 철학이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당성을 보장한다고 보았다]은 잘못된 정리이다. 칸트 철학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당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기하학과 자연과학의 성공적인 발전 모델을 본받아 철학을 재구성하고자 시도한 것이 칸트의 기획이다(B판 서문, 특히 BXVI 참조). 아이추판다님은 바로 이런 식으로 꾸준히 칸트 철학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의 포스트 "사후약방문"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하다. "수학과 과학의 근거를 확보한다는 칸트 철학의 목적을 생각하면 그런 얘기는 200년 전에 했어야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추판다님의 생각과 달리 칸트 철학의 목적은 수학과 과학의 '근거 확보'가 아니다.

(중략)

18세기에 활동한 칸트와 19세기 철학자, 수학자들이 시대의 한계에 맞닥뜨려 유클리드 기하학 외의 기하학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순수이성비판』과 그가 남긴 다른 저서들을 총체적으로 검토해보면, 그가 전제하는 선험적 공간이 뉴턴 식의 절대공간과 같은 것이 아닐 뿐 아니라(이건 내 추측인데, 대부분의 19세기 해석에서는 양자를 혼용하고 있는 것 같다), 관측되는 공간이 비유클리드적이라고 해서 '선험적으로 요구되는 공간 표상'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끌어낼 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 해석에는 선험적 공간과 뉴턴 식의 절대 공간을 혼용하고 있지만, 그렇게 정리하면 잘못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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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추판다 | 2009/08/11 18:12 | 트랙백(1) | 핑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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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노정태의 블로그 at 2009/08/11 19:38

제목 : 추측은 추측일 뿐
노정태님식 반박법? '원칙적으로 보자면 A는 답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A가 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수 있다.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추측한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는 A가 답이라는 주장에 대해 적극적인 옹호를 하는 입장이 아닐 것이다. 19세기 사람들의 칸트 공간론 해석에 대한 나의 추측도 이런 차원에서 하는 말일 따름이다. 아이추판다님의 생각과 달리 나는 19세기 사람들이 멍텅구리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일......more

Linked at Null Model : 어떤 간극 at 2009/08/12 02:16

...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19세기에 가지고 있던 것에 비하면 훨씬 많은 경험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데도 그렇다. 이 사람들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도 한참 잘못하고 있다. 산마로님은 노정태님식 반박법?에 단 댓글에서 "철학자연하는 라캉같은 2류가 철학적 주제와 비철학적 주제를 혼동하[고] 있는 것을 보고 철학적 주제가 철학에서 독립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허수아비 ... more

Commented by 세리자와 at 2009/08/11 20:45
심하네요.
Commented at 2009/08/11 21:4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123123 at 2009/08/11 23:27
칸트는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이다" 를 예시로 들어서 종합판단을 설명했었던 것 같은데요.. 이건 아무리 봐도 유클리드 기하학이지 말입니다.. 헷갈리네요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9/08/12 00:01
토론이 산으로 가는군요. http://nullmodel.egloos.com/1931181 에서는 분명 '공간'이 주제였던 것 같은데요? 은근슬쩍 다시 유클리드 기하학과 칸트 선험철학의 해석으로 주제가 바뀌었군요. 게다가 노정태님의 글이나 고율님의 글의 핵심을 님은 적절하게 반박하고 있지 않습니다. 19세기 서양의 수학자, 철학자들이 유클리드 기하학을 맹신하게 된 인과관계를 님은 칸트-19세기 수학자라고 더비셔의 책만을 근거로 말하고 있는데 다른 분들은 그것에 반대되는 서양 수학 전통-칸트의 인과관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다른 분들이 맞습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고대 그리스부터 서양 수학을 지배했고 유클리드적 공간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보는 전통이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그만두더라도 칸트가 유클리드 기하학을 선험철학적으로 다루었다는 것만으로도 더비셔와 님의 해석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즉, 칸트가 다른 기하학을 반박하면서 유클리드 기하학의 진리성을 증명하고자 했다면 님의 해석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만, 칸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칸트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진리성을 전제한 것이고 이는 칸트 철학이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당성을 보장한다고 본 사람들이 칸트 철학의 의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칸트의 선험철학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했던 것이죠. 19세기 사람들은 멍텅구리가 아니라 현대인과 같은 시야를 확보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칸트 선험철학의 의의를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9/08/12 00:25
두 가지(칸트-19세기 수학자, 서양 수학 전통-칸트)가 서로 '반대'되는 게 아니죠. 지금 문제는 칸트가 뭐라고 주장했느냐가 아니라 19세기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철학적 반대'가 존재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이 논쟁은 원래 '철학적 까임 방지권' 때문에 시작된 거거든요.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9/08/12 00:39
아래도 적었지만 라캉같은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인데 그런 사례를 두고 철학자나 수학자의 대표로 해석하는 건 대단히 비생산적입니다.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9/08/12 00:37
조금 더 중언부언하자면 19세기인들은 멍텅구리가 맞습니다. 지능이 낮다는 뜻이 아니라 시대의 한계에 갇혀 있었다는 뜻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을 칸트 철학이 정당화할 수는 없으며 차라리 칸트 철학을 유클리드 기하학이 정당화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이는 칸트와 마찬가지로 유클리드 기하학 외에는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견으로 문제는 유클리드 기하학만이 칸트 철학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것으로 변경되었으며, 이 문제에 꼭 유클리드 기하학만이 칸트 철학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지배적인 칸트 해석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수학자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물리학자들이 왕위를 찬탈'하리라고 상상도 못했다는 발언은 애초에 칸트의 연구 층위가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의 층위와는 다른 것이었음을 이해하지 못한 바에 불과합니다. 오해한 것은 도리어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이죠.
'근대철학사에서 여러 차례 반복된 것처럼 해당 주제를 철학으로부터 독립하게 만들 것이다'라는 언명 역시 실상과는 별로 맞지 않습니다. 그 반대가 도리어 가깝습니다. 김영건님의 블로그는 알고 있을테니, 가장 그런 태도에 가까웠던 분석철학 내부에서 관념론의 부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철학자연하는 라캉같은 2류가 철학적 주제와 비철학적 주제를 혼동하 있는 것을 보고 철학적 주제가 철학에서 독립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허수아비 때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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