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11일
노정태님식 반박법?
해석의 역사와 시대의 한계 (노정태님)
"19세기 해석에는 선험적 공간과 뉴턴 식의 절대 공간을 혼용하고 있지만, 그렇게 정리하면 잘못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우선 1) [19세기에는 칸트 철학이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당성을 보장한다고 보았다]은 잘못된 정리이다. 칸트 철학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당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기하학과 자연과학의 성공적인 발전 모델을 본받아 철학을 재구성하고자 시도한 것이 칸트의 기획이다(B판 서문, 특히 BXVI 참조). 아이추판다님은 바로 이런 식으로 꾸준히 칸트 철학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의 포스트 "사후약방문"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하다. "수학과 과학의 근거를 확보한다는 칸트 철학의 목적을 생각하면 그런 얘기는 200년 전에 했어야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추판다님의 생각과 달리 칸트 철학의 목적은 수학과 과학의 '근거 확보'가 아니다.
(중략)
18세기에 활동한 칸트와 19세기 철학자, 수학자들이 시대의 한계에 맞닥뜨려 유클리드 기하학 외의 기하학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순수이성비판』과 그가 남긴 다른 저서들을 총체적으로 검토해보면, 그가 전제하는 선험적 공간이 뉴턴 식의 절대공간과 같은 것이 아닐 뿐 아니라(이건 내 추측인데, 대부분의 19세기 해석에서는 양자를 혼용하고 있는 것 같다), 관측되는 공간이 비유클리드적이라고 해서 '선험적으로 요구되는 공간 표상'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끌어낼 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략)
18세기에 활동한 칸트와 19세기 철학자, 수학자들이 시대의 한계에 맞닥뜨려 유클리드 기하학 외의 기하학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순수이성비판』과 그가 남긴 다른 저서들을 총체적으로 검토해보면, 그가 전제하는 선험적 공간이 뉴턴 식의 절대공간과 같은 것이 아닐 뿐 아니라(이건 내 추측인데, 대부분의 19세기 해석에서는 양자를 혼용하고 있는 것 같다), 관측되는 공간이 비유클리드적이라고 해서 '선험적으로 요구되는 공간 표상'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끌어낼 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 해석에는 선험적 공간과 뉴턴 식의 절대 공간을 혼용하고 있지만, 그렇게 정리하면 잘못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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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8/11 18:12 | 트랙백(1) | 핑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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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19세기에 가지고 있던 것에 비하면 훨씬 많은 경험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데도 그렇다. 이 사람들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도 한참 잘못하고 있다. 산마로님은 노정태님식 반박법?에 단 댓글에서 "철학자연하는 라캉같은 2류가 철학적 주제와 비철학적 주제를 혼동하[고] 있는 것을 보고 철학적 주제가 철학에서 독립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허수아비 ... more
'근대철학사에서 여러 차례 반복된 것처럼 해당 주제를 철학으로부터 독립하게 만들 것이다'라는 언명 역시 실상과는 별로 맞지 않습니다. 그 반대가 도리어 가깝습니다. 김영건님의 블로그는 알고 있을테니, 가장 그런 태도에 가까웠던 분석철학 내부에서 관념론의 부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철학자연하는 라캉같은 2류가 철학적 주제와 비철학적 주제를 혼동하 있는 것을 보고 철학적 주제가 철학에서 독립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허수아비 때리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