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28일
공간과 합성함수
어딘가에 있지 않으면서 존재하기
댓글에서 한 얘기를 그림으로 친절하게 설명. 우리는 눈,코,입,귀,피부 등의 감각기관을 통해 다양한 자극을 받아들인다. 이런 자극을 내적으로 이러저러하게 계산해서 공간적 표상으로 만들고, 이런 표상에 근거해서 이러저러한 계산을 해서 반응을 산출한다. 예를 들어 뭔가 휘익하는 소리(자극)를 들어서 고개를 돌리고(반응), 눈으로 축구공을 보고(자극) 몸을 살짝 피할(반응) 때 내적으로는 청각 자극과 시각 자극을 공간적 표상으로 바꿔서 이에 대해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반응과 자극 사이에 반드시 공간적 표상이 필요하느냐? 그렇지는 않다. 자극을 공간적 표상으로 바꾸는 계산을 함수 f라고 하고, 공간적 표상에서 행동을 도출하는 계산을 함수 g라고 하면 이 두 함수의 합성 함수 h는 공간적 표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g*f 말고도(*는 여기서 합성함수 기호) h=u*v인 다른 두 함수 u와 v를 생각할 수 있는데(사실 이런 함수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함수 v가 만들어내는 것이 꼭 유클리드 기하학이건 비유클리드 기하학이건 어떤 종류의 공간일 필요는 없다. 만약 칸트의 주장이 여전히 옳다고 말하려면, 공간적 표상을 공역으로 갖는 함수 f와 정의역으로 갖는 함수 g가 있고 두 함수 u,v가 g*f=u*v일 때 u의 공역과 v의 정의역이 반드시 공간적 표상이라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면 된다.
덧붙여, 경험이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시간이나 공간이 아니다. 감각으로 주어진 것이 저절로 선험적 감성형식에 따라 표상될리 만무하고 뭔가 그렇게 변환해주는 과정, 다시 말해 계산(computation)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 '최소한의 조건'은 계산이지 시간이나 공간이 아니다.
댓글에서 한 얘기를 그림으로 친절하게 설명. 우리는 눈,코,입,귀,피부 등의 감각기관을 통해 다양한 자극을 받아들인다. 이런 자극을 내적으로 이러저러하게 계산해서 공간적 표상으로 만들고, 이런 표상에 근거해서 이러저러한 계산을 해서 반응을 산출한다. 예를 들어 뭔가 휘익하는 소리(자극)를 들어서 고개를 돌리고(반응), 눈으로 축구공을 보고(자극) 몸을 살짝 피할(반응) 때 내적으로는 청각 자극과 시각 자극을 공간적 표상으로 바꿔서 이에 대해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반응과 자극 사이에 반드시 공간적 표상이 필요하느냐? 그렇지는 않다. 자극을 공간적 표상으로 바꾸는 계산을 함수 f라고 하고, 공간적 표상에서 행동을 도출하는 계산을 함수 g라고 하면 이 두 함수의 합성 함수 h는 공간적 표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덧붙여, 경험이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시간이나 공간이 아니다. 감각으로 주어진 것이 저절로 선험적 감성형식에 따라 표상될리 만무하고 뭔가 그렇게 변환해주는 과정, 다시 말해 계산(computation)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 '최소한의 조건'은 계산이지 시간이나 공간이 아니다.
# by | 2009/07/28 14:10 | 트랙백(2)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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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칸트의 공간론 : 구제받기 어려운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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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이추판다님께 트랙백 (2)
공간과 합성함수 아이추판다님은 위의 트랙백 건 글에서 "덧붙여, 경험이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시간이나 공간이 아니다. 감각으로 주어진 것이 저절로 선험적 감성형식에 따라 표상될리 만무하고 뭔가 그렇게 변환해주는 과정, 다시 말해 계산(computation)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 '최소한의 조건'은 계산이지 시간이나 공간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나는 칸트의 철학을 아이추판다님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나는 칸트가 의미한......more
1. '어딘가에 있지 않으면서 존재한다'는 말이 칸트의 생각과 모순되는 건가요? 칸트도 우리의 인식주관과 독립적인 실재의 세계 즉, 물자체는 알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것과는 다른 의미인가요? 즉, 님의 이전 글에서 나오는 곰과 호랑이 그림의 문제에서 생각해볼 때, 칸트의 생각도 '실재의 세계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칸트는, 현상이라는 것은 실재가 아니고 우리의 인식주관이 가진 선험적 공간형식으로 구성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 같은데요.
2.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질문을 드리는데요.. 인간은 어떤 대상을 유클리드 기하학적으로 보지 않을 수도 있나요? 저는.. 칸트가 논증하고자 했던 것이 '분석명제가 아닌 것을, 경험의 제한성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보편적 참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그것은 인식주관이 가진 선험적 형식이 인간들이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형식이기 때문이라고 이해를 했었는데.. 잘못인가요?
2. 인간이 공간을 지각하는 방식도 정확히 유클리드 기하학은 아닙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일종의 추상화된 거죠. 그리고 칸트와 같은 식의 주장을 수학에서는 직관주의라고 하는데 그건 더이상 지지 받지도 못합니다.
어떤 철학적 발언에 대한 비판을 하려면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님은 현재 노정태의 글이 어떻게 철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지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엉뚱한 비판을 계속하고 있을 뿐입니다.
산마로님은 '공간'을 엄밀하게 정의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제 글을 이해 못하고 있는 겁니다.
아이추판다님 논리는 한국어만 쓰는 사람이 '한국어의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은 언어가 아니다. 따라서 언어가 아닌 음성적 매체(우리가 말하는 다른 언어)로도 추상적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공간의 합성함수 h 하나만으로 자극을 처리하는 생물이 있다고 하여 그 생물은 공간 개념 없이 지각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생물은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우리와는 다르게 인식하겠지만 같은 차원으로 인식하거나 전혀 다른 종류의 분류 체계(공간1+시간=a 차원, 공간2 =b차원 식의 분류)를 갖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간 여행의 역설을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한 그런 종류의 생물, 경험 주체를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함수만을 갖고 있는 생물도 시간과 공간을 구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h는 중간에 표상을 아예 만들지 않아요. 우리와 다른 분류체계고 뭐고 간에 그런 게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인지과학에서 연결주의는 표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