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11 15:34

공간을 찾아서

과거의 철학자들이 남긴 책을 읽을 때는 그들이 시대의 한계 안에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칸트는 단 하나의 기하학(유클리드 기하학)만 있고, 그 기하학에 기반한 물리학만 존재하던 시대의 사람이었다. 칸트는 계산이론이나 추상대수,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나 상대성이론을 알 수 없었으므로 그의 논증에도 당연히 이에 해당하는 부분들이 빠져있다. 따라서 그의 시대에는 빈틈없는 논증도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구멍 투성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칸트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C1. 경험 이전에 경험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이 있다.
C2. 그런 조건 중에 시간과 공간의 형식이 있다.
C3. 공간의 형식은 유클리드 기하학이다.

"책상 위에 고양이가 있다"는 진술만 보면 이 주장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보인다. 일상적 공간은 3차원 유클리드 기하학에 근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칸트 이후에 이뤄진 수학과 과학의 발전을 고려하면 이 논증에는 문제가 많다.

우선 C1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봐도 여전히 옳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칸트의 철학적 질문은 "인공지능을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라는 공학적 질문으로 바꿀 수 있다. 우리가 경험으로부터 지식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조건들을 다른 종류의 물리적 장치에 실현하면 그게 바로 인공지능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한 분야인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에는 '귀납 편향(inductive bias)"라는 용어가 있다.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알고리듬에 따라 똑같은 경험을 해도 다른 학습을 하게 된다는 걸 말한다. 칸트와 현대의 인공지능 연구자는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이 질문이 "철학의 문제"이기는 하나 "철학'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이제 C2로 넘어가자.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구별한다. 현대 물리학에서 시공간(spacetime)이라고 할 때는 시간과 공간을 단순히 줄여서 부르는 게 아니다. 시공간은 시간과 공간이 합쳐진 하나의 공간(?)을 말한다. 똑같은 현상도 관찰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은 갈릴레이에 의해 밝혀졌다. 한 관찰자의 관점을 다른 관찰자의 관점으로 바꾸는 수학적 방법인 갈릴레이 변환은 공간을 회전시키는 것과 동등하다. 현대 물리학에서 이에 대응하는 것이 로렌츠 변환인데 여기서는 공간만이 아니라 '시공간'을 회전시킨다. 즉, 경험을 가능케하는 조건으로서 시간과 공간이 반드시 구분되어야할 이유는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기하학이 단 하나만 있던 시절에는 그 기하학이 미리 주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칸트 사후에 다양한 기하학들이 탄생했다. 그래서 푸앵카레는 칸트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C2'. 모든 가능한 기하학을 산출할 수 있는 체계가 공간의 형식을 산출한다.

기하학은 여러 가지지만 이런 기하학들은 하나의 체계로부터 도출할 수 있다. 따라서 푸앵카레는 공간의 형식이 아니라 이런 공간의 형식을 산출할 수 있는 체계가 경험을 가능케하는 조건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어떤 기하학이 적절한지 선택해야 한다. 이와 함께 푸앵카레는 칸트의 질문을 심리학적 질문으로 바꾼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공간에 대한 직관을 얻는가? 피아제는 발달심리학 실험을 통해 푸앵카레의 질문에 답하려고 했다. 이 블로그에서는 perceive to act, act to perceive(제목은 영어지만 내용은 한국어니 걱정말고 클릭!)에서 피아제의 연구와 후속 연구들을 소개한 적이 있다.

푸앵카레와 피아제에서 이어지는 연구의 한 사례를 보자. 아래 그림은 예전에도 한 번 소개했던(지식체계의 발견) 탄넨바움과 켄트의 논문에서 가져온 것이다. 단순한 조작을 통해 partition, chain, order, ring, hierarchy, tree, grid, cylinder 등 다양한 공간의 형식을 산출할 수 있다. 탄넨바움과 켄트는 이러한 조작과 베이지언 통계학을 가진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 프로그램에 데이터를 줘서 각각의 지식에 적합한 공간의 형식을 찾아낸다.



아래 그림은 이러한 프로그램에 도시들 간의 거리를 데이터로 주었을 때 찾아낸 지구 표면의 공간적 형식이다. 이 프로그램은 원통(cylinder)의 형식은 산출하지만 구(sphere)의 형식은 산출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구가 원통 모양이 되었지만 어쨌든 칸트의 C2 없이 푸앵카레의 C2'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덧붙여 거리를 측정하려면 어쨌든 기하학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다만 여기에 대해서 설명하긴 복잡하기 때문에 일단 넘어가자.


C2가 유효하지 않다면 당연히 C3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푸앵카레는 여기서 다시 한 발 물러나 칸트의 손을 들어준다. 푸앵카레 역시 상대성 이론 이전 시대의 사람이라는 걸 염두에 두자. 푸앵카레는 어떤 공간 형식을 선택하든 근본적인 차이는 없고, 유클리드 기하학이 가장 단순하기 때문에 결국엔 유클리드 기하학을 선택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주장은 나중에 다 뒤집힌다.

이제 C3로 가보자. 다양한 기하학이 있다면, 선험적 공간의 형식이 반드시 유클리드 기하학일 필요가 없다는 건 이미 지적했다. 게다가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물리적 공간의 형식은 유클리드 기하학도 아니다. 게다가 전통적 공간관에서는 공간이 있고 물질이 그거에 놓여있지만, 상대성 이론의 공간관에서는 시공간과 물질이 상호작용한다. 따라서 물리학자들은 공간의 형식을 먼저 가지고 데이터를 그 형식에 맞추는 게 아니라, 데이터를 가지고 공간의 형식을 찾아내야 한다.

그건 물리학의 얘기고 일상적 경험은 다르지 않을까? 이것은 다시 심리학의 문제가 된다. 푸앵카레와 피아제는 공간의 형식을 경험적으로 찾아낸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날의 심리학자들은 거기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마술이 흥미로운 건 우리가 직관적으로 가진 공간의 형식을 위배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기들이 오로지 경험으로만 공간의 형식을 발견한다면 마술을 보여주더라도 별로 놀라워하지 않겠지만 어떤 마술에는 아기들도 놀란다. 따라서 인간은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응하는 전체적인 공간의 형식은 아니더라도 공간의 형식 중 일부는 가지고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아기들은 어떻게 그런 형식을 가지고 태어날 수 있을까? 그런 형식은 아마도 유전자에 프로그래밍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 그 유전자의 프로그래밍은 누가 해놓은 것일까? 신이 아니라면 진화 밖에 없다. 진화도 넓게 보면 학습의 일종이므로 결국에는 개체 수준에서 선천적이지만 여전히 경험의 산물이다. 우리의 크기나 속도가 상대론적 효과를 관찰할 수 있을만큼 크거나 빠르지 않기 때문에 진화적 경험과 개인적 경험은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슷한 기하학((실제 심리학 연구를 보면 정확히 같지는 않다)을 직관적인 공간의 형식으로 산출한다.

이제 정리해보자. 칸트의 주장 중에 C1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C2와 C3는 현대의 수학과 과학에 의해 타파된다. 선험적 공간과 물리적 공간을 구분한다고 해도, 선험적 공간이 칸트가 주장한 바와 같아야할 논리적 이유도 없고 경험적으로도 그렇지 않다. 유일하게 남는 C1은 칸트의 시대에는 오로지 철학만의 문제였으나 이제는 과학과 공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기관은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라고 한다. 사실 막스 플랑크 연구소는 하나의 연구소가 아니라 여러 분과학문별 연구소의 집합체다. 60~70개쯤 된다고 한다. 심리학의 종주국인 독일답게 막스 플랑크 심리학 연구소도 있다. 아니 있었다. 이제는 막스 플랑크 인지 및 신경과학 연구소(Max Planck Institut für Kognitions- und Neurowissenschaften)이다. 심리학을 탄생시킨 나라가 자신의 대표적 연구소에서 심리학의 간판을 뗀 것이다. 이는 전통적 심리학이 이제 인지과학과 신경과학의 결합체로 재규정되고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모든 딱딱한 것은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칸트의 철학적 문제는 한때 물리학과 심리학의 문제이기도 했으며 이제는 인지과학과 뇌과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가 우리의 출발점이다. 이제 어디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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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산마로 2009/07/11 17:18 # 삭제

    c1이 과학과 공학의 문제라는 데에 동의할 수 없군요. 과학과 공학이 c1에 발언하는 그 순간 그 발언은 과학,공학의 발언이 아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c1이 경험에 대한 전칭명제라는 데에서 필연적인 결론이 됩니다. 과학,공학적 방법으로 구체적인 개체의 경험을 연구하는 것으로는 c1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과학,공학의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과학자,공학자가 c1의 명제에 어떤 발언을 할 수 있겠지만 그 발언은 이미 과학,공학의 영역에서 벗어난 것이 되어버리지요.
  • 아이추판다 2009/07/11 18:01 #

    과학이나 공학에 C1에 해당하는 명제들은 많은데요, 그런 걸 '철학적'이라고 부를 수는 있습지만 과학과 공학의 영역을 '벗어난다'고 말하는 건 좀 무리가 있습니다. 그럼 수학적으로 논리를 전개해도 똑같이 과학과 공학의 영역을 벗어난다고 해야하는데 그건 이상하잖아요? 게다가 '철학적'이기는 한데 철학에서 다루지 않는 명제들도 있는데 - 예를 들면 실험이나 자료 분석에서 동원되는 잡다한 가정들 - 그런 '고아 명제'들의 소속이 문제가 됩니다. 해결책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과학에 대한 정의를 현실에 맞춰서 '철학적'이거나 '수학적'인 탐구도 과학 활동의 일부로 포함시키는 것이고, 또하나는 철학/과학의 정의에 현실을 맞추는 거죠. 그런데 철학이나 과학이라는 정의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철학자들이 그런 잡다한 가정들을 다룰 것도 아니라면 굳이 후자의 해결책이 필요한 이유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C1 같은 경우에는 경험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죠. "항상 그런 건지 어쩐 건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인공지능 로봇을 자꾸 만들다보니까 최소한 몇 개는 해줘야 하더라고. 그러니까 아마 인공지능을 만들려면 최소한의 조건은 있어야 하나봐."
  • 산마로 2009/07/11 19:03 # 삭제

    과학이나 공학에서 c1에 해당하는 명제들이 바로 과학철학이니 수리철학이니 하는 분야를 구성하죠. 과학이나 공학의 영역을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탐구를 전통적으로 '철학'에서 다뤄왔고 과학자들이나 공학자들이 개인적으로 그런 탐구를 수행하고자 해도 철학의 전통적인 논의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 탐구를 과학이나 공학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과학토대론이라고 이름을 바꿔 부른다고 해도 기존의 철학적인 탐구와 역사적 연속성이 성립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프레게가 평생 수학교수였고 수학연구의 일환으로 수리철학,논리철학의 업적을 남겼지만 프레게의 업적은 현재 철학적인 것으로 취급받을 때가 더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런 명제는 c1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 연구자가 그 사실에 영감을 받아 일반적인 이론을 전개하기 전까지는.
  • 아이추판다 2009/07/11 21:05 #

    과학자나 공학자들이 수학을 다루는 것을 "과학이나 공학이 아닌 개인적 수학 연구"라고 하진 않습니다. 과학이나 공학이라는 활동 안에 수학 연구도 일부 포함되는 걸로 보는 거죠. 심리학에 계량심리학이라는 분야가 있는데 여기 논문들을 읽어보면 그냥 통계학 논문입니다. 그렇다고 이걸 심리학자들의 '개인적'인 통계 연구라고 보기엔 어폐가 있습니다. 심리학 연구에 필요한 통계학을 직접 연구하는 것도 이제 심리학이라는 과학 활동의 일부가 되었다고 봐야죠. 저는 이 문제도 그런 식으로 봅니다. 철학이라면 철학이지만 그걸 '개인적' 활동이라고 할 수는 없죠.
  • 산마로 2009/07/12 20:12 # 삭제

    개인적 활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c1의 연구를 과학이나 공학 공동체에서보다 철학 공동체에서 주로 수행해 왔기 때문입니다. 개인적 활동이란 말이 마땅치 않다면 과학,공학 공동체에서 철학 공동체와 겹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을 바꿀까요? 말장난일 뿐입니다. 제 주장은 첫째, c1에 해당하는 연구는 전통적으로 철학에서 해 왔고, 둘째, 따라서 c1 연구자들의 학과 소속이 어디이든 그들의 연구를 철학적이라고 부르는 데에 아무 모순이 없으며, 셋째, c1 연구는 연구 대상의 정의 상 기존 철학이 수행해 왔던 연구 방법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 아이추판다 2009/07/12 21:39 #

    논의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이렇게 정리해보죠. 철학1은 어떤 특징을 가진 주제를 말하는 거고, 철학2는 역사적으로 성립되고 일정한 전통을 가진 분과학문으로서 제도적으로는 철학과에서 주로 연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C1이 철학1에 속하고, 철학1이 대체로 철학2와 교집합을 갖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1 전체가 철학2에 독점된다는 것은 동의 못하겠다는 거예요.

    수학을 똑같이 수학1과 수학2로 나눠봅시다. 오늘날 거의 모든 과학 분야에서는 수학1을 하고 있어요. 특히 물리학의 경우에는 전통적으로 수학1을 많이 했죠. 아인슈타인의 업적도 수학1에서의 혁신을 상당부분 포함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아인슈타인을 물리학자가 아닌 수학자라고 할 수 있나요?

    본문에서 귀납 편향이라는 용어로 설명했지만 똑같은 경험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경험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철학1 또는 수학1에 해당하는 건데요, 따라서 과학은 당연히 철학1과 수학1에 대한 탐구까지 포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실험 자료의 더미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현실 과학이 이런데 "그건 철학적이니까 철학"이라고 하는 게 무슨 의민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공학은 자연과학들의 이런 저런 조합으로 해소되어버리지 자기 범주는 하나도 남지 않을텐데요.
  • ExtraD 2009/07/11 22:01 #

    갈릴레이 변환은 두 관성계 (혹은 힘을 받지 않는 두 관찰자) 사이의 병진 이동(translation)과 공간 회전(rotation) 변환을 일컫는 말입니다. 뉴턴의 역학은 이 변환에 대해 불변(invariant)입니다.

    이에 대한 시공간 변환은 포앵카레 변환이고 이는 다시 시공간의 병진 이동과 로렌츠 변환(4 차원 회전)을 일컫습니다. 현재 소립자와 그들의 상호작용을 가장 정확하게 기술하는 물리학 프레임워크는 양자장이론( relativistic quantum field theory)라고 부릅니다. 이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은 국소적(local) 포앵카레 변환에 대해 불변입니다.

    알고 계신 내용에 대한 (일부 correnction을 포함한 ) 좀 더 상세 버전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 아이추판다 2009/07/11 22:52 #

    고맙습니다. ^^ 저는 학부 1학년 물리학 시간에 x랑 t만 가지고 간단하게 설명한 버전으로 배운게 전부라;;; 그러니까 갈릴레이 변환은 translation이랑 rotation 둘 다고, 로렌츠 변환은 rotation만이고 여기에 translation까지 포함해서 포앵카레 변환이라고 하는 거죠?
  • 아름다운백수 2009/07/12 03:30 # 삭제

    아마추판다 / ㅋㅋ 지금 웃길려고한거죠? 갈릴레이 변환은 transation이랑 rotation 둘다고, 로렌츠 변환은 rotation만이고???????

    역시 모르면 거창해진다니까 ㅋㅋㅋ
  • 조진명 2009/07/12 13:55 # 삭제

    아름다운백수/ 님이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다만 갈릴레이 변환과 로렌츠 변환은 범주가 다른데, 갈릴레이 변환은 3차원에서의 translation과 rotaiton이고, 로렌츠 변환은 4차원(Minkowski space)에서의 "회전"에만 해당하는 것입니다.
  • 아름다운백수 2009/07/12 20:46 # 삭제

    조진명 / 수학을 모르는 얘들이 깝죽거릴 때 거창한 말을 쓰죠. 님 처럼 ㅋㅋㅋ 민코스프키 공간이라...
  • 아름다운백수 2009/07/12 20:51 # 삭제

    참고로 파인만이 쓴 교재도 로렌츠 변환에 대해서 말을 할 때 민코스프키 공간이라고 거창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조진명 님은 파인만과 비슷한 수준이긴 커녕 기본도 모르는거 같은데 천재들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맙시다.

  • -_- 2009/07/12 23:03 # 삭제

    아니, 그러니깐 '민코스프키 공간'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썼다고 지금 그러시는군요.
    역시 수학과 출신은 논리적이네요.
  • 아름다운백수 2009/07/12 23:39 # 삭제

    거창한 단어 마음껏 쓰세요. 위법 아닙니다. ㅋㅋ 왠지 여기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새로운 방법으로 증명했다고 떠드는 인간이랑 같아 보여서 웃을 뿐이죠.
  • 아름다운백수 2009/07/12 23:54 # 삭제

    흠/ 사기를 친다? 누가 사기꾼?
  • 아름다운백수 2009/07/13 00:16 # 삭제

    지금 내 여친은 자고있을랑ㄱ.
  • 중2병? 2009/07/13 01:04 # 삭제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 조진명 2009/07/13 01:48 # 삭제

    지적받은게 그렇게 쪽팔리신가요? 그래서 기껏한다는 것이 인신공격ㅋㅋ 님의 공부 수준을 알만하네요. Minkowski space는 Rindler, Hartle, Sean Carroll... 학부생도 읽을 수 있는 상대론 책 어디나 다 나옵니다. Feynman lecture 하나 읽고 기고만장 하셨쎄여?
  • 조진명 2009/07/13 01:55 # 삭제

    참고로 Minkowski space라는 거창한 용어로 말한 이유는 4차원이지만 metric이 standard metric이 아니라 Minkowski metric으로 주어졌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
  • 풍차나라 2009/07/13 00:55 #

    아는게 없어서 읽기 좀 힘들었지만 ...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공간과 관련한 많은 떡밥 부탁드려요. ^^;;;
  • 조진명 2009/07/13 01:50 # 삭제

    아이추판다님 본의 아니게 난장판을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아름다운백수 2009/07/13 09:52 # 삭제

    조진명/나중에 민코프스키 공간으로 에너지 보존 법칙이 틀렸다고 증명할 사람같네. ㅋㅋ
  • ..... 2009/07/13 15:57 # 삭제

    님....ㅋㅋㅋ 하고 있으니깐 님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가 본데
    여긴 님 같은 분 일주일에 몇 명씩 들어와서 깝치다가 버로우하는 곳이예요.
    내용없는 글 쓸 바에 저처럼 아가리 셧업 하시길.
  • ...... 2009/07/13 17:00 # 삭제

    우월한 놈들 부럽죠? ㅋㅋㅋㅋ
  • 지양 2009/07/13 09:57 # 삭제

    잘 읽었습니다. 읽고 나서 칸트의 '별이 총총한 하늘'에 빛나던 별빛은 대부분 칸트가 태어나기 전에 출발한 빛이라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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