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05 21:27

의사결정 공부하기 인지과학

요즘 랩에서 하는 저널 클럽에 참여하고 있다. 저널 클럽이란 최근 논문들을 리뷰하는 정기적인 모임을 말한다. 석사 1년차 후배 하나가 최근 맡은 프로젝트 때문에 의사결정 쪽 논문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논문을 자꾸 발표하기에 친절하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어서 쓴 글을 블로그에도 올려둔다.

철수(가명)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논문을 찾아보려는 모양인데, 석사 1년차에게 큰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이 없으니 구체적인 사례를 다룬 논문들을 자꾸 볼 필요는 없다. 이런 논문 중에는 데이터만 모아서 기존 이론에 끼워맞추거나 연구방법론이 잘못된 경우가 부지기수다. 네가 발표한 두 논문이 그렇다. 물론 잘된 연구들도 있다. 그러나 기본이 없으면 좋은 논문과 나쁜 논문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니 일단 기본을 다지는게 우선이다. 기본은 어떻게 쌓을까? 제일 먼저 기댈 수 있는 건 교과서다. J. R. Anderson이 쓴 Cognitive Psychology and Its Implications에서 의사결정에 관한 대목을 찾아 읽어야 한다. 이때는 최신판을 봐야 한다. 학계의 연구가 교과서에 실리는데는 최소 10년이 걸린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낡은 내용인데 낡은 교과서까지 본다면 시대에 지나치게 뒤떨어지게 된다.

교과서에서 해당 대목을 읽는 건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학부생들이나 보는 책이므로 여기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그 다음으로 보아야 할 것은 의사결정의 전 분야를 개괄할 수 있는 논문을 보는 것이다. 여기서 추천할만한 건 다니엘 카네만의 2002년 노벨상 수상 강연이다. 카네만이 의사결정 분야에서 자기 업적을 개괄하는 강의다. PDF 파일도 있으니 다운로드 받아 읽어보기 바란다. 카네만과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버논 스미스의 수상 강연도 보면 좋다.

이제 교과서도 읽었고, 노벨상 수상자들의 강연도 들었으니 흥미가 부쩍 늘었을 것이다. 이제까지 본 것은 비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논문들을 읽을 차례다. 먼저 Goldstein과 Hogarth가 편집한 Research on Judgment and Decision Making을 보자. 의사결정에서 한 가락하는 사람들이 쓴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첫번째 논문인 Jugement and decision research: Some historical context는 꼭 읽어야 한다. 편집자들이 의사결정 연구의 역사를 정리하고 이 책의 편집방향을 밝힌 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매우 두껍기 때문에 다 볼 필요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다. 그러니 일단 목차를 한 번 읽어보자.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관해 떠드는 주제가 무엇인지 윤곽이 잡힌다. 그리고 저자들의 이름을 눈여겨봐두자. 이 바닥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참고문헌 목록을 펼쳐서 사람들이 주로 어떤 저널에 실린 논문을 인용하는지 살펴보자. 이제 누가 어디서 무엇을 떠드는지 알았다.

그 다음엔 의사결정의 '대마왕'들이 쓴 책을 볼 필요가 있다. 그 '대마왕'은 누구냐? 카네만과 트버스키다. 이들의 논문을 묶어낸 책이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다. 역시 다 읽을 필요는 없으나 목차는 훑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실린 논문들은 옛날 논문이고 최근의 논문들은 Heuristics and Biases: The Psychology of Intuitive Judgment에 실려있다. 그 외에 카네만과 트버스키가 1974년 사이언스에 쓴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라는 논문도 있다. 이건 일종의 요약판이므로 카네만의 노벨상 강연과 함께 읽어두면 좋다.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카네만과 트버스키는 옛날 사람이다. 트버스키는 벌써 죽었다. 이들 대마왕은 90년대에 게르트 기거렌처라는 용자에게 쓰러졌다. 따라서 기거렌처도 읽어야 한다. 기거렌처의 책은 여럿이 있으나 논문집인 Adaptive Thinking: Rationality in the Real World는 볼 필요가 있다. 그가 쓴 대중서인 Gut Feelings: The Intelligence of the Unconscious생각이 직관에 묻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도 되어있으니 심심할 때 읽어보자. 이건 대중서이므로 번역판으로 읽어도 좋다. 역시 심심할 때 볼만한 책으로는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가 있다.

카네만, 트버스키, 기거렌처가 벌인 논전은 1996년 Psychological Review에 back-to-back으로 실린 두 논문에 잘 정리가 되어 있다. 하나는 카네만과 트버스키가 쓴 Kahneman, D., & Tversky, A. (1996). On the reality of cognitive illusions. Psychological Review, 103(3), 582-591.이고 또 하나는 Gigerenzer, G. (1996). On narrow norms and vague heuristics: A reply to Kahneman and Tversky. Psychological Review, 103 (3), 592-596. 대가들이 어떤 식으로 논쟁하는지 배울 수 있다. 아니, 취소다. 완전 '개싸움'이니 구경만하고 배우지는 말자.

이 논쟁의 승자는 기거렌처라는 게 세평이지만, 12년 후인 2008년 똑같은 저널 Psychological Review 115권 1호에서 기거렌처는 다른 학자들에게 열심히 뜯긴다. 편집자가 아주 작심을 하고 기거렌처 비판 논문 특집호로 만들었다. 논문 중에 하나는 기거렌처가 1996년에 카네만과 트버스키를 비판한 논문 제목을 그대로 따서 Vague Heuristics Revisited이다. 굴욕이다. 여기에 실린 논문들을 당장 읽기는 어려우므로 이런 일도 있다는 정도로 알아두자.

이제는 대충 의사결정에 대해 감이 잡혔을 것이다. 그럼 좀 더 프로젝트와 관련있는 주제들을 살펴보자. 짧은 걸로는 Haidt, J. (2007). The new synthesis in moral psychology. Science, 316(5827), 998-1002. 긴 걸로는 Sunstein, C. R. (2005). Moral heuristics.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 28, 531-573.을 읽어볼만하다. 뒤의 논문이 실린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는 특이하게도 Open Commentary라고 해서 관련 연구자들이 원논문에 코멘트를 붙이는 형식을 취한다. 역시나 한 마디 하는 사람들은 다 있기 때문에 이름만 봐둬도 도움이 된다. 마찬가지로 참고문헌 목록도 살펴보자.

그 다음에는 Trends in Cognitive Sciences라는 저널을 보는 것이다. 저명한 연구자들이 인지과학의 동향을 소개하는 논문을 싣는 저널이다. 길이도 10쪽 미만으로 짧고, 색깔도 알록달록해서 예쁘다. 따로 설명해야할 부분은 잡지처럼 박스 기사로 소개하기 때문에 요긴하다. 이 저널에서 최근의 동향을 소개하는 논문을 찾아 읽어보면 감이 더 빨리 잡힌다. 이와 비슷하게 볼 수 있는 게 Nature Reviews Neuroscience다. 역시나 알록달록하니 예쁘고 길이도 짧아서 읽기 좋다. 여기에 있는 논문들을 읽어보고 참고문헌을 보면 필요한 논문을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스코퍼스DB에서는 특정 저널에 실린 논문들만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저널에 실린 논문들을 일단 찾아서 보고 참고문헌을 따라가면 편리하다.

이쯤되면 일진급 학자와 저널들도 알게 되었고 키워드도 제법 알았을 것이다. 스코퍼스에서 이것 저것 조합해서 논문을 검색해보자. 인용순으로 정렬하면 많이 인용된 논문이 뭔지 알 수있다. 뭐가 좋은 논문인지 모를 때는 일단 인용 많이 된 게 장땡이다. 일단 검색되는 걸 무조건 보지 말고, 이런 논문 목록들을 정리해나가자. 그리고 스코퍼스에서는 논문들의 인용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이런 인용관계를 살펴보면 뭐가 중심이 되는 논문이고 뭐가 곁가지인지, 누구랑 누가 뭘 가지고 싸우고 있는지 이런 게 눈에 보인다. 그렇게 큰 흐름을 주욱 파악한 다음에 그런 흐름의 고비고비에 있는 논문을 하나씩 읽어보면 된다.

덧글

  • 개미지옥 2009/07/05 23:45 # 삭제

    철수 부럽다능 :)
  • 사이코 2009/07/06 05:25 # 삭제

    최인철 교수의 프레임이란 책이었던가요?
    거기서 칸네만과 츠버스키를 접하고 흥미를 느껴서 좀 뒤적여 봤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리고... 아이추 판다님의 글에 다시 흥미를 느껴 다시 좀 뒤적여 봤습니다. ^^;
    그런데 Psychological Review는 115권 3호가 아니라 1호네요.
    혹시 논문들을 보고싶긴 한데 저널에 접근이 불가능한 분은 다음의 링크로 가 보시면 페이지 밑의 Further reading 부분에 논문을 다운받을 수 있는 링크가 있네요. 저작권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다운로드 주소가 대부분 저자의 학교나 직장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공개한 것들 같아요.

    http://psychology.wikia.com/wiki/Heuristics
  • 아이추판다 2009/07/06 13:25 #

    3호는 1호로 고쳤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널마다 정책이 조금씩 다르지만 저자가 자기 홈페이지에 올리는 건 허용됩니다. 그런게 아니라도 별 문제는 없습니다.
  • 김우재 2009/07/06 17:06 # 삭제

    잘보고 갑니다~
  • 명랑이 2009/07/06 18:00 #

    철수 부럽다능... ㅜㅜ (이제 곧 석사 1기....)
  • 쯧쯧 2009/07/06 18:21 # 삭제

    일진급... 애냐;;
  • 애자일컨설팅 2009/07/06 19:27 #

    제가 관심있어하는 분야네요. 저는 경영학쪽의 의사결정론으로 입문을 해서는 나중에 심리학쪽의 의사결정론도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쪽 의사결정론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카네만의 JuU랑 기거렌쩌의 책들이지요.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조감하는 데에는 Blackwell Handbook of Judgment & Decision Making이랑 Thinking and Deciding(Jonathan Baron)도 권하고 싶군요. 특히 전자가 제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말씀하신 "공부법"은 실무자들에게도 꼭 필요한 중요한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무를 하면서 논문 찾아 읽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데 노하우도 없고 얼마나 가치를 얻을지 감이 없어서라고 생각해요.
  • 아이추판다 2009/07/07 01:17 #

    비슷한 글을 여럿 쓰셨던 것 같기도 합니다만 IT 실무자를 위한 논문검색법 한 번 써주시지요 ^^
  • 123123 2009/07/06 23:13 # 삭제

    궁금한게 있는데요.. 아이추판다님은 "Haidt, J. (2007). The new synthesis in moral psychology. Science, 316(5827), 998-1002" 요런 거 일일히 기억하고 쓰시는 건가요? 아님 적어뒀다 그때그때 찾아 쓰시는 건가요? 갑자기 격 떨어지는 소리해서 지송ㅎㅎ
  • 아이추판다 2009/07/07 01:22 #

    자세한 건 기록해두고 대강만 기억했다가 필요하면 찾아서 씁니다.
  • aleph 2009/07/07 07:52 # 삭제

    Thanks.
  • 꽃사슴 2009/07/08 11:25 # 삭제

    가뭄에 단비를 만난듯 합니다. 사이버세상의 매력.
    의사결정 부분에 대해 스터디모임에서 발표하기로 되어있는데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느무나 고맙습니다.
    알려주신 내용들 따라가며 읽다가 혹시라도 궁금해지는거 여쭤봐도 될까요? ^^;
  • 아이추판다 2009/07/08 13:45 #

    어떤 스터디 모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글은 대학원 석사 1년차에게 주려고 쓴 것이므로 이대로 다 따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안서원, "사이먼 & 카네만", 김영사와 도모노 노리오, "행동경제학", 지형도 볼만합니다. 궁금한 점 있으시면 언제든지 물어보셔도 괜찮습니다.
  • Bloodstone 2009/07/08 18:10 #

    좋은 공부법을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죠. 교양서를 보다 보면 틀린 내용 아닌가...싶고, 교과서를 보다 보면 이게 얼마나 묵은 이론인가...싶고, 논문을 보다 보면 또 검증된 논문인가 싶어서 불안해집니다ㅠㅠ
  • 아이추판다 2009/07/08 23:35 #

    결국 다 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ㅎ
  • 후유소요 2009/07/12 13:57 #

    안녕하세요, 심리학으로 석사 1학기를 마친 꼬꼬마입니다^^;;; 아메바에서 짚신벌레로 조금이나마 진화하려고 애쓰는 중에 정말 좋은 글을 발견하고 잘 읽었습니다. 링크도 추가하겠습니다.

    전공이 의사결정은 아닌데, 혹시 다른 인지과학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게 큰 흐름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직 혼자 검색해서 찾아보는 것도 익숙치 않고.. 선생님이 떠먹여 주시는 논문만 읽고 있으니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 아이추판다 2009/07/12 16:41 #

    반갑습니다 ^^ 인지과학은 넓고 넓으니까요, 전공이 어느 쪽인지 알려주시면 제가 아는 범위에서 얘기해드릴께요. 그런데 기본적인 검색법은 비슷해요. 교과서, 주요 논문,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review paper 들, 그 다음엔 Scopus와 google이죠. :)
  • 후유소요 2009/07/12 23:46 #

    앗, 제 전공은 인지신경과학이고 시지각/시의식을 주로 공부하고 있고, (선생님께서 주신ㅋ) 세부전공은 공감각자 연구여요. 요즘 읽고 있는 건 코흐의 '의식의 신경생물학적 기반' 이구요, 일단 거재니거의 '인지신경과학' 2판과 3판은 학부때 정독했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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