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말벌과 식물의 공생 (byontae님)
'작은 동물들'의 학습 (漁夫님)
'작은 생물들'의 학습 (byontae님)
얼마 전 과학밸리를 달궜던 작은 동물/생물 학습 시리즈.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지 군소의 예를 들어서 한 번 설명해보자.
군소(Aplysia)는 바다 달팽이의 일종으로 뇌가 2만 여개의 세포로 이뤄져있어서 아주 단순한데다가, 신경세포가 맨눈으로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커서 신경과학에서는 상당히 인기있는 동물이다. 아래 사진처럼 생겼는데 토끼하고 닮아서 '바다 토끼(lepus marinus)'라고도 불린다.
파블로프는 세 가지 형태의 학습을 연구 했다. 습관화, 민감화, 고전적 조건화. 습관화는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무시하는 것이다. 민감화는 강한 자극이 주어졌을 때 다른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전적 조건화는 '파블로프의 개'로도 잘 알려있다. 이 세 가지 학습은 군소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군소를 뒤집어보면 위의 그림처럼 생겼다. 실제로 저렇게 색깔이 있는 건 아니고 구별을 위해 넣은 것이다. 군소의 수관을 건드리면 아가미 수축 반사가 나타난다. 수관을 자꾸 건드리면 이 반사는 약해지는 데 이것이 습관화다. 반대로 꼬리에 충격을 주고 수관을 건드리면 아가미는 강하게 수축한다. 이것이 민감화다. 꼬리를 맞고 놀라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누가 수관을 건드리니 식겁할 수 밖에 없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꼬리를 먼저 살짝 만져서 예고를 해준다음에 수관을 건드리면 나중에는 꼬리만 만져도 아가미 수축반사가 나타난다.

이 세 가지 학습은 최소한 단기적인 기억은 있어야 가능하다. 아까 수관을 만졌다는 걸 기억해야 습관화가 될테고, 방금 꼬리를 맞았다는 걸 기억해야 민감화가 될 것이다. 그럼 이런 단기기억은 신경 수준에서 어떻게 이뤄질까.
군소에서 수관의 감각 뉴런은 아가미의 운동 뉴런과 연결되어 있다. 수관을 만지면 감각 뉴런이 활성화되고, 감각 뉴런은 다시 운동 뉴런을 활성화시킨다. 운동 뉴런은 아가미의 근육을 움직여서 아가미를 수축시킨다. 민감화의 경우, 꼬리를 때리면 꼬리의 감각 뉴런이 활성화되고, 꼬리의 감각 뉴런은 중간 뉴런을 활성화시킨다. 중간 뉴런은 수관의 감각 뉴런에 '어떤 작용'을 해서 운동 뉴런을 더 강하게 활성화시키도록 만든다.
여기서 알 수 있지만 민감화를 위해 필요한 건 단 4개의 신경세포 뿐이다. 습관화는 수관 감각 뉴런과 아가미 운동 뉴런 2개만 있으면 된다. 물론 군소의 경우에 실제로는 좀 더 많은 뉴런이 있다. 예를 들어 아가미를 수축시키는데 필요한 운동 뉴런은 6개다. 하지만 원리상으로는 군소의 행동을 4개의 신경세포에 가둘 수 있다. 군소가 없어도 뉴런 네 가닥만 떼내서 실험해도 똑같은 학습이 가능하다.
그럼 여기서 한 수준 더 내려가서 중간 뉴런이 수관 감각 뉴런에 무엇을 하는지 분자 수준에서 살펴보자.
뉴런과 뉴런이 만나는 부분을 시냅스라고 한다. 영화에서 보면 뉴런 사이에 스파크가 튀는데 실제로는 시냅스 전 뉴런이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해서 시냅스 후 뉴런을 흥분시킨다. 초록색 삼각형은 감각 뉴런의 시냅스 전 말단인데 여기서 글루타메이트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운동 뉴런에 방출한다. 중간 뉴런은 여기에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한다.
세로토닌을 받으면 감각 뉴런은 cAMP라는 물질을 합성한다. cAMP는 단백질 키나아제A를 활성화하고, 단백질 키나아제 A는 칼륨 이온통로를 닫아 감각 뉴런의 흥분 상태를 더 오래 유지시키고, 글루타메이트의 방출을 촉진한다.
우리는 앞서 군소의 행동을 신경 수준에 가두었다. 이제는 신경 활동을 다시 분자 수준에 가둘 수 있다. 뉴런 네 가닥도 필요없고 감각 뉴런 하나만 있으면 된다. 감각뉴런을 활성화시키고 시냅스 전 말단에 세로토닌을 주면 역시 똑같은 학습이 가능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은 유비가 성립한다.
개체 수준: 충격 -> 꼬리 -> 수관 -> 아가미
신경 수준: 꼬리 감각뉴런 -> 조절뉴런 -> 수관 감각뉴런 -> 운동뉴런
분자 수준: 세로토닌 -> cAMP -> 단백질 키나아제A -> 글루타메이트
여기서 설명한 학습은 지나치게 단기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학습과 좀 차이가 있다. 연습은 완벽을 만든다는 말은 군소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장기기억을 위해서는 뉴런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시냅스를 더 강하게 더 많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뉴런의 구조를 바꾸려면 단백질이 필요하고, 단백질을 만들려면 DNA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 첫 단추는 역시 cAMP에 의해 활성화된 단백질 키나아제 A가 담당한다. 나름 바쁘신 몸이다. 이온통로 열랴, 글루타메이트 방출 촉진하랴, 이제는 핵으로 출장도 간다. 그러면 여차저차한 과정을 거쳐서 DNA가 활성화되고 그 정보는 mRNA에 담겨서 각 시냅스 말단으로 전달된다.
뉴런은 여러 다른 뉴런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장기기억을 형성하려면 특정한 뉴런과 연결만 강화되어야 한다. 이 경우엔 아가미 운동 뉴런과 시냅스를 강화해야지 다른 엉뚱한 운동 뉴런의 시냅스를 강화하면 안된다. mRNA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정확한 시냅스 전 말단에 가서 단백질을 합성할까?
여기서 작년 한국을 뒤흔들었던 생물학 용어가 하나 등장한다. 그거슨~ 두둥. 프.리.온. 잘 알려져있다시피 프리온은 무척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자가증식하는 특징이 있다. 멀쩡하던 프리온도 미친(?) 프리온을 만나면 같이 미쳐버리는 식인데 이 메커니즘이 장기기억에 기여한다고 알려져있다. 시냅스 전 말단에는 CPEB라는 단백질이 있다. 이 단백질은 프리온과 비슷해서 우성 CPEB가 열성 CPEB를 만나면 우성으로 바꿔놓는다. 시냅스 전 말단의 CPEB는 평소에는 열성 상태로 있다가 세로토닌 신호를 전달받으면 우성으로 바뀌고 다른 열성CPEB들을 우성으로 바꾼다. 이런 과정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해당 말단에는 우성CPEB들이 바글바글하게 되어 마침내는 뇌에 구멍을 뚫..는 게 아니고 시냅스 전 말단에 도착한 mRNA를 활성화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뉴런은 정확히 강화시켜야할 시냅스만 강화할 수 있다.
이런 신경세포의 작동방식은 군소만이 아니라 초파리나 사람에서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재미있게도 cAMP는 뉴런에만 존재하는 게아니라 다른 종류의 세포나 단세포 생물에서도 세포 내부의 신호 전달에 사용된다. CPEB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두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첫째, 학습의기본적인 메커니즘은 분자 수준의 시스템에 바탕을 둔 것이다. 둘째, 이런 분자 수준의 시스템은 신경세포가 진화하기 오래 전부터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단순한 생물도 학습과 기억을 위한 기본적 시스템은 우리와 꼭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학습을 한다고 이상한 일은 아니다.
모든 종류의 학습이 이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개체, 신경망, 세포와 분자의 각 수준에서 대칭적인 것은 아니다. 좀 더 복잡한 학습은 신경망 수준 이하에서는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조엘 스폴스키의 말대로 모든 쓸만한 추상화에는 어딘가에 구멍이 존재한다. 단적인 예가 정신질환이다. 많은 정신질환은 분자 수준의 시스템에서 말썽이 시작된다. 이것은 세포, 그리고 신경망의 작동 방식을 바꾸고 마침내는 개체 수준까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유전적으로 cAMP 합성에 말썽이 생긴 초파리는 냄새와 전기충격을 연합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멀쩡할 때는 상관없지만, 무언가 뒤틀리기 시작하면 바닥까지 내려갈 수 밖에 없다.
덧. 프리온과 CPEB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김우재님이 사이언스타임즈에 연재하신 "광우병을 넘어" 3부작을 보시면 되겠다.
광우병으로 얼룩지는 ‘프리온’ 연구
최초의 생명 혹은 기억의 입자 ‘프리온’
‘프리온’ 발견이 생물학에 끼친 변화
'작은 동물들'의 학습 (漁夫님)
'작은 생물들'의 학습 (byontae님)
얼마 전 과학밸리를 달궜던 작은 동물/생물 학습 시리즈.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지 군소의 예를 들어서 한 번 설명해보자.
군소(Aplysia)는 바다 달팽이의 일종으로 뇌가 2만 여개의 세포로 이뤄져있어서 아주 단순한데다가, 신경세포가 맨눈으로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커서 신경과학에서는 상당히 인기있는 동물이다. 아래 사진처럼 생겼는데 토끼하고 닮아서 '바다 토끼(lepus marinus)'라고도 불린다.



이 세 가지 학습은 최소한 단기적인 기억은 있어야 가능하다. 아까 수관을 만졌다는 걸 기억해야 습관화가 될테고, 방금 꼬리를 맞았다는 걸 기억해야 민감화가 될 것이다. 그럼 이런 단기기억은 신경 수준에서 어떻게 이뤄질까.

여기서 알 수 있지만 민감화를 위해 필요한 건 단 4개의 신경세포 뿐이다. 습관화는 수관 감각 뉴런과 아가미 운동 뉴런 2개만 있으면 된다. 물론 군소의 경우에 실제로는 좀 더 많은 뉴런이 있다. 예를 들어 아가미를 수축시키는데 필요한 운동 뉴런은 6개다. 하지만 원리상으로는 군소의 행동을 4개의 신경세포에 가둘 수 있다. 군소가 없어도 뉴런 네 가닥만 떼내서 실험해도 똑같은 학습이 가능하다.
그럼 여기서 한 수준 더 내려가서 중간 뉴런이 수관 감각 뉴런에 무엇을 하는지 분자 수준에서 살펴보자.

세로토닌을 받으면 감각 뉴런은 cAMP라는 물질을 합성한다. cAMP는 단백질 키나아제A를 활성화하고, 단백질 키나아제 A는 칼륨 이온통로를 닫아 감각 뉴런의 흥분 상태를 더 오래 유지시키고, 글루타메이트의 방출을 촉진한다.
우리는 앞서 군소의 행동을 신경 수준에 가두었다. 이제는 신경 활동을 다시 분자 수준에 가둘 수 있다. 뉴런 네 가닥도 필요없고 감각 뉴런 하나만 있으면 된다. 감각뉴런을 활성화시키고 시냅스 전 말단에 세로토닌을 주면 역시 똑같은 학습이 가능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은 유비가 성립한다.
개체 수준: 충격 -> 꼬리 -> 수관 -> 아가미
신경 수준: 꼬리 감각뉴런 -> 조절뉴런 -> 수관 감각뉴런 -> 운동뉴런
분자 수준: 세로토닌 -> cAMP -> 단백질 키나아제A -> 글루타메이트
여기서 설명한 학습은 지나치게 단기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학습과 좀 차이가 있다. 연습은 완벽을 만든다는 말은 군소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장기기억을 위해서는 뉴런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시냅스를 더 강하게 더 많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뉴런은 여러 다른 뉴런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장기기억을 형성하려면 특정한 뉴런과 연결만 강화되어야 한다. 이 경우엔 아가미 운동 뉴런과 시냅스를 강화해야지 다른 엉뚱한 운동 뉴런의 시냅스를 강화하면 안된다. mRNA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정확한 시냅스 전 말단에 가서 단백질을 합성할까?
여기서 작년 한국을 뒤흔들었던 생물학 용어가 하나 등장한다. 그거슨~ 두둥. 프.리.온. 잘 알려져있다시피 프리온은 무척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자가증식하는 특징이 있다. 멀쩡하던 프리온도 미친(?) 프리온을 만나면 같이 미쳐버리는 식인데 이 메커니즘이 장기기억에 기여한다고 알려져있다. 시냅스 전 말단에는 CPEB라는 단백질이 있다. 이 단백질은 프리온과 비슷해서 우성 CPEB가 열성 CPEB를 만나면 우성으로 바꿔놓는다. 시냅스 전 말단의 CPEB는 평소에는 열성 상태로 있다가 세로토닌 신호를 전달받으면 우성으로 바뀌고 다른 열성CPEB들을 우성으로 바꾼다. 이런 과정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해당 말단에는 우성CPEB들이 바글바글하게 되어 마침내는 뇌에 구멍을 뚫..는 게 아니고 시냅스 전 말단에 도착한 mRNA를 활성화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뉴런은 정확히 강화시켜야할 시냅스만 강화할 수 있다.
이런 신경세포의 작동방식은 군소만이 아니라 초파리나 사람에서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재미있게도 cAMP는 뉴런에만 존재하는 게아니라 다른 종류의 세포나 단세포 생물에서도 세포 내부의 신호 전달에 사용된다. CPEB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두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첫째, 학습의기본적인 메커니즘은 분자 수준의 시스템에 바탕을 둔 것이다. 둘째, 이런 분자 수준의 시스템은 신경세포가 진화하기 오래 전부터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단순한 생물도 학습과 기억을 위한 기본적 시스템은 우리와 꼭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학습을 한다고 이상한 일은 아니다.
모든 종류의 학습이 이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개체, 신경망, 세포와 분자의 각 수준에서 대칭적인 것은 아니다. 좀 더 복잡한 학습은 신경망 수준 이하에서는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조엘 스폴스키의 말대로 모든 쓸만한 추상화에는 어딘가에 구멍이 존재한다. 단적인 예가 정신질환이다. 많은 정신질환은 분자 수준의 시스템에서 말썽이 시작된다. 이것은 세포, 그리고 신경망의 작동 방식을 바꾸고 마침내는 개체 수준까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유전적으로 cAMP 합성에 말썽이 생긴 초파리는 냄새와 전기충격을 연합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멀쩡할 때는 상관없지만, 무언가 뒤틀리기 시작하면 바닥까지 내려갈 수 밖에 없다.
덧. 프리온과 CPEB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김우재님이 사이언스타임즈에 연재하신 "광우병을 넘어" 3부작을 보시면 되겠다.
광우병으로 얼룩지는 ‘프리온’ 연구
최초의 생명 혹은 기억의 입자 ‘프리온’
‘프리온’ 발견이 생물학에 끼친 변화
덧글
엄청나게 방대한 글이 되는군요...
관게없지만 재미있는 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