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EBS에서 다큐프라임 "인간의 두 얼굴" 시즌2를 방영했다.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그램이지만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보니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실험들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려고 한다. "인간의 두 얼굴"은 EBS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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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할 실험은 눈 앞에서 사람이 바뀌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변화맹(change blindness) 실험이다. 실험 절차는 이렇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실험자가 지도를 들고가서 길을 물어본다. 이 사람이 길을 가르쳐주는 사이 간판을 든 사람들이 둘 사이를 지나가고 그틈에 실험자를 바꿔치기한다.
길거리가 아니라 조용한 진료실에서도 같은 실험을 한다. 환자와 상담을 하던 의사가 볼펜을 떨어트린다. 볼펜을 줍는 척 책상 밑으로 내려가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다른 의사와 바꿔치기를 한다.
이 실험은 스펀지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기 때문에 아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변화맹에 대해서는 두 번 설명한 적이 있다(변화맹, 라캉주의식 오바질). 사람들은 수 천장의 사진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런데 눈 앞에서 사람이 바뀌는 건 알아차리지 못한다.
프로그램에서 최인철 교수가 설명하듯이 이 현상은 앞에 있는 사람에 주의(attention)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런데 지나가다 길 물어보는 사람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자기 앞에 있는 의사에게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건 왜일까?
원래 실험은 다니엘 시몬스와 다니엘 레빈이 1998년 Psychonomic Bulletin & Review에 보고한 것이다. 시몬스와 레빈은 미국 코넬 대학교 교정에서 첫번째 실험과 똑같은 실험을 실시하였다. 실험자는 20~30세 가량의 남자였는데 재미있게도 젊은 사람들은 실험자가 바뀐 것을 알아차린 반면 나이든 사람들은 실험자가 바뀐 걸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이든 사람이 인지능력이 떨어져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시몬스와 레빈은 사회적 집단(social group)의 차이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워보았다. 젊은 사람들은 실험자를 자신과 같은 집단(내집단)으로 인식하고 세부적인 특징에 주의를 기울였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다른 집단(외집단)으로 인식하고 "젊은 사람"이라는 범주적 측면만 봤을 수도 있다.
내집단에 대해서는 세부 특징에 주의를 기울이지만 외집단은 하나의 범주로 인식하는 건 아주 흔한 현상이다. 인터넷에서 성별 떡밥을 보면 이런 패턴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여자들이 "남자들은 전부 어쩌구저쩌구"라고 말하면 남자들은 "그런 남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남자들도 많다"고 대꾸한다. 여자들에게 남자는 외집단이지만 남자들에게는 내집단인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시몬스와 레빈은 젊은 사람들만 대상으로 두 번째 실험을 실시했다. 대학 교정 내에 있는 젊은 사람들이라봐야 다 학생들이므로 실험자는 학생이 아닌 공사장 인부처럼 차림을 했다.
실험 결과는 시몬스와 레빈의 가설을 지지했다. 학생들은 상대방이 학생 차림일 때는 모두 실험자가 바뀐 걸 알아차렸지만 공사장 인부 차림일 때는 실험자가 바뀌는 걸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인간의 두 얼굴"에 나온 실험을 보면 첫번째 실험에서는 검은색 정장 차림을 하고 평상복을 입은 젊은 사람에게 길을 물어봤고, 두번째 실험에서는 의사가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를 상담했다. 시몬스와 레빈의 가설에 따르자면 실험참여자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정장", "의사"라는 범주로만 인식했기 때문에 세부적인 특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따라서 실험자가 바뀐 걸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인간의 두 얼굴" 1부 처음에는 비극적인 사건이 하나 소개된다.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흑인 소녀가 주스를 가방에 넣고 카운터로 다가왔다. 소녀는 돈을 내려고 했지만 주인은 도둑이라고 생각하고 가방을 뺐으려고 했다. 주인이 가방을 뺐으려 하자 소녀는 주인을 때렸고 주인은 소녀를 총으로 쐈다. CCTV에는 카운터 위에 놓인 돈이 찍혀있었지만 주인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사회적 집단이 주인의 눈을 가린 것이다.
Simons, D. J., & Levin, D. T. (1998). Failure to detect changes to people during a real-world interaction. Psychonomic Bulletin & Review, 5(4), 64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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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할 실험은 눈 앞에서 사람이 바뀌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변화맹(change blindness) 실험이다. 실험 절차는 이렇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실험자가 지도를 들고가서 길을 물어본다. 이 사람이 길을 가르쳐주는 사이 간판을 든 사람들이 둘 사이를 지나가고 그틈에 실험자를 바꿔치기한다.
길거리가 아니라 조용한 진료실에서도 같은 실험을 한다. 환자와 상담을 하던 의사가 볼펜을 떨어트린다. 볼펜을 줍는 척 책상 밑으로 내려가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다른 의사와 바꿔치기를 한다.

프로그램에서 최인철 교수가 설명하듯이 이 현상은 앞에 있는 사람에 주의(attention)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런데 지나가다 길 물어보는 사람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자기 앞에 있는 의사에게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건 왜일까?
원래 실험은 다니엘 시몬스와 다니엘 레빈이 1998년 Psychonomic Bulletin & Review에 보고한 것이다. 시몬스와 레빈은 미국 코넬 대학교 교정에서 첫번째 실험과 똑같은 실험을 실시하였다. 실험자는 20~30세 가량의 남자였는데 재미있게도 젊은 사람들은 실험자가 바뀐 것을 알아차린 반면 나이든 사람들은 실험자가 바뀐 걸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집단에 대해서는 세부 특징에 주의를 기울이지만 외집단은 하나의 범주로 인식하는 건 아주 흔한 현상이다. 인터넷에서 성별 떡밥을 보면 이런 패턴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여자들이 "남자들은 전부 어쩌구저쩌구"라고 말하면 남자들은 "그런 남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남자들도 많다"고 대꾸한다. 여자들에게 남자는 외집단이지만 남자들에게는 내집단인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시몬스와 레빈은 젊은 사람들만 대상으로 두 번째 실험을 실시했다. 대학 교정 내에 있는 젊은 사람들이라봐야 다 학생들이므로 실험자는 학생이 아닌 공사장 인부처럼 차림을 했다.

"인간의 두 얼굴"에 나온 실험을 보면 첫번째 실험에서는 검은색 정장 차림을 하고 평상복을 입은 젊은 사람에게 길을 물어봤고, 두번째 실험에서는 의사가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를 상담했다. 시몬스와 레빈의 가설에 따르자면 실험참여자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정장", "의사"라는 범주로만 인식했기 때문에 세부적인 특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따라서 실험자가 바뀐 걸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인간의 두 얼굴" 1부 처음에는 비극적인 사건이 하나 소개된다.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흑인 소녀가 주스를 가방에 넣고 카운터로 다가왔다. 소녀는 돈을 내려고 했지만 주인은 도둑이라고 생각하고 가방을 뺐으려고 했다. 주인이 가방을 뺐으려 하자 소녀는 주인을 때렸고 주인은 소녀를 총으로 쐈다. CCTV에는 카운터 위에 놓인 돈이 찍혀있었지만 주인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사회적 집단이 주인의 눈을 가린 것이다.
Simons, D. J., & Levin, D. T. (1998). Failure to detect changes to people during a real-world interaction. Psychonomic Bulletin & Review, 5(4), 644-649.
덧글
가게 주인인 그 한인은 오상방위로 인정되어 중형을 선고받지는 않았을 것 같군요. 불쌍한 여성 한명의 목숨만.......
2. 결국 내집단과 외집단이라는 것도 장기기억 속의 정보를 토대로 판단하는거겠죠. 그것도 무의식적으로 말입니다.
3.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놓치는 정보도 있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처리되는 정보가 있다는 사실이 참 재미있습니다.
other race effect는 대체로 expertise로 보는 것 같은데 이것도 영향이 있을 수 있겠지요.. 한문을 모르는 사람이 한문을 보면 '모르는 문자'로 치부해서 더 자세히 안 볼 수도 있고, 모르기 때문에 구분을 못하듯이....
체계화된 교통 신호가 오히려 주변 상황에 대한 주의를 빼돌린다고 아예 없애자는 얘기도 있어요. 교통 신호만 보고 운전시 행동을 선택하기 때문에 상황 파악에 주의를 덜 기울이고, 그러다보면 심심해지니까 핸드폰으로 통화하거나 문자를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에 교통 신호를 없애서 좀더 도로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어서 안전운전을 도모하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