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 규모 감축: 역사적 경험
"슬램덩크"로 보는 교육
지난 글에서 열심히 비판을 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교육방식에 진절머리를 내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 왔다. 그중에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것이 구성주의 교육이다. 그러나 이전 글에서 말했다시피 미국의 구성주의 교육은 실패했다. 여기에 대해 몇몇 분들이 댓글과 메일로 질문을 보내주셨는데 이에 대해 잠시 논의해보기로 하자.
교사의 지시에 따라 성실하게 반복연습 하는 것을 교육에서 학생의 역할로 보는 전통적인 교육과 달리 구성주의 교육은 학생의 능동적 역할을 강조한다. 구성주의 교육관에 따르면 학생들은 교사에게 미리 정해진 답을 배우기보다 직접적인 체험 속에서 스스로 자신만의 답을 발견해야 한다. 교사에게도 가르치는 역할보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상황을 제공하는 역할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구성주의는 80~90년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교육 개혁의 중심 사상으로 부상하였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미국에서는 이런 식의 개혁이 이뤄지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19세기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와 같은 비판이 전개되며 구성주의 교육을 열렬히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슬램덩크"에서도 전통적 교육과 구성주의 교육을 대조시키는 장면이 한 군데 나온다. 안 선생님은 대학 농구팀 감독이던 시절 "흰머리 호랑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격한 전통적 교육자였다. 그의 제자 중에 하나였던 조재중은 큰 키와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초가 튼튼하지 못했다. 안 선생님은 그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그에게 더욱 엄격히 기초를 반복 연습시키려고 하지만 조재중은 여기에 불만을 품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또 구성주의자들은 "연습은 아이들의 영혼에 대한 살해 행위"라며 학생들에게 반복 연습을 시키지 않고,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만의 답을 알아내야한다며 교사는 심지어 학생들이 내놓는 답에 맞고 틀렸다는 말을 하는 것마저 금기시하였다. 읽기 교육에서는 맞춤법에 맞게 쓰도록연습시키는 대신 자신만의 맞춤법으로 자유롭게 쓰도록 허락되었고 수학 교육에서는 값을 이것저것 대입해보고 찍어서 맞춰보게 한다든지 뭐 이런 방법마저 사용하기도 했다.
다시 "슬램덩크"로 돌아가자. 조재중이 유학을 떠난지 1년 후 미국에서 비디오 테이프 하나가 배달되어 온다. 조재중의 시합이 녹화된 테이프였다.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는 미국에서 조재중의 재능은 활짝 만개했을까?

읽기 전쟁은 90년대에 마무리되었고 최근까지 이어오던 수학 전쟁도 구성주의 교육개혁을 주도해온 전미수학교사평의회가 2006년 "기본은 가르쳐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하여 끝을 맺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지만 미국 구성주의 교육의 '최소 지도'는 제도 이전에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실패한 교육법이다.
사람들의 작업 기억(working memory)는 매우 작아서 한 번에 3~5가지 대상을 머리 속에서 다룰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대상의 수는 이미 가진 개념에 의존적이다. 예를 들면 체스의 고수는 체스판을 한 번 스윽 보기만 해도 말들의 위치를 다 기억할 수 있는데 그건 기억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말들의 배치를 적절한 패턴으로 묶어서 기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들을 아무렇게나 체스판 위에 늘어놓으면 고수도 초보자들이나 다름 없게 된다. 적절한 개념을 가지지 못한 초보자에게 복잡한 문제 상황을 제시하면 작업 기억의 용량을 초과해버리기가 십상이다. 강백호의 경우를 보자.




구성주의자들은 교사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은 학생들이 당장은 문제를 잘 풀지 모르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답을 발견해야 나중에 새로운 문제에 부딪혀도 더 잘 풀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실험에 따르면 반대로 직접적인 지도를 받은 학생들이 오히려 새로운 문제도 더 잘 풀었다. 스스로 답을 발견한 학생들은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특정한 문제에만 해당되는 해결 전략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했다.
UC 산타바바라의 리처드 메이어는 2004년 논문에서 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이뤄진 구성주의 교육법에 대한 실험 연구들을 정리한다. 현재 구성주의 교육에 대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 논문에서 메이어는 이 세 시기의 연구 모두에서 구성주의 교육 특히 최소 지도는 실험적으로 지지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구성주의 교육에 '삼진 아웃'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그렇다면 구성주의 교육은 아주 쓸모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학생의 실력이 어느 정도 쌓이면 교사가 직접적으로 지도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고 학생 스스로 답을 찾게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서태웅이야 목표를 제시하고("먼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게.") 동기부여만 하더라도 알아서 잘 하겠지만, 풋내기 강백호한테 그랬다가는 맨날 다른 팀 선수 머리에 슬램덩크나 찍어대다가 만화 연재가 끝났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미국의 구성주의는 특정한 교수법을 지나치게 교조적으로 따랐던 것이 실패의 원인었다.
글을 마치기 전에 한국의 경우를 잠깐 살펴보자. 한국에서 1997년에 시작되어 현재 시행 중인 7차 교육과정은 미국의 구성주의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아 체험 중심, 활동 중심을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과정의 연구와 계획을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4년 발행한 보고서 "제7차 교육과정의 쟁점 분석 연구"를 보면 미국 구성주의 교육에서 나타났던 것과 똑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또한 현재 교과서에 제시된 활동을 수행하기에는 교육과정에 배정된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 사회과의 경우에는 아동의 발달 단계에 적합하지 않은 활동이 무리하게 제시된 경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2학년 교과서에 제시된 ‘마을 조사하기’ 활동은 해당 학년 아동의 공간 지각력으로는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또 교과서에 제시된 활동이나 놀이를 하는 데 필요한 개념・원리가 학습되지 않은 채 활동을 먼저 하게 되어 있어 피상적 수준에서의 활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략)
현재의 교과서 내용 구성에 있어서 활동 중심 내용이 과다하게 제시되어 학교 현장에서 수업을 실효성있게 운영해 가는 데 어려움이 있는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첫째, 교과서에 제시된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사전에 학습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기술해 줄 필요가 있다. 새로운 개념을 포함하는 학습 내용 습득을 위해 학습자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기 이전에 ‘이해’의 과정이 선행될 필요성이 있다. 둘째, 분책으로 구성된 교과서 체제의 실효성이 재고될 필요가 있다. 셋째, 특정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동일한 종류의 제재 글을 여러 편 제시하거나 동일한 절차의 활동을 여러 차례 하도록 하는 것은 반복 학습을 통한 완전 학습 지향의 장점이 있지만 주어진 수업 시간 수의 제약과 아동의 학습 흥미 유발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조정될 필요가 있다. 넷째, 초등학교 고학년에 너무 쉬운 활동이 제시되거나 저학년에 아동 스스로 하기 어려운 과제가 제시된 경우가 있으므로 이에 대한 조정이 요청된다. 다섯째, 현재 교과서에 제시된 활동은 그 종류는 다양하지만 요청되는 활동을 의미 있게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 실천 방안과 실질적 자료가 제공될 필요가 있다. 향후 교과서 내용 구성에 있어서는 학생들이 내용에 대한 이해를 보다 철저히 하도록 돕고, 그 기반에서 다양한 활동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이 모두 충족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박순경 등. (2004). 제7차 교육과정의 쟁점 분석 연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128-129쪽.
이 보고서가 나온 2004년 이후로 지금까지 7차 교육과정은 4차례에 걸쳐 부분 개정이 되었는데 이러한 평가를 내렸으니 이제는 문제점이 많이 개선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정 내용까지 찾아보면 좋겠지만 귀찮기도 하고 글도 길어질테니 잘 하고 있으리라 믿고 여기서 정리하자.
네 줄 요약:
학생의 능동적 역할에 초점을 맞춘 미국 구성주의 교육의 발상은 옳았다.
하지만 최소 지도를 남용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학생들에게 개념을 챙겨주는 교사의 역할은 중요하다.
한국은 뭐가 문제인지는 알고 있다. 잘하고 있겠죠?
다음 글에서는 원래 예고한대로 IT와 교육의 접목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덧글
그런데 이런 창의력 관점은 유럽쪽에서도 많지 않나요. 유럽과 미국은 또 어떻게 달랐을까요?
이 부분은
<초등학교 고학년도 아닌 공대생이 계산기를 쓰거나>를 잘못 쓴 것입니까? 문맥으로 보면 그런 것 같은데...
원문장이 맞는 거라면 어째서 공대생이 계산기를 쓰는 건 괜찮고 초딩이 계산기를 쓰는 게 이상하다는 건지 부연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해가 안되네요.
그런데 그 기본중의 기본을 구성해야 할 초등학교 수준에서 계산기를 사용하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을수도 있는 현상일지도요..
초딩 수준의 계산은 계산해서 답을 산출하는 그 자체가 학습 목표죠.
그걸 계산기로 두들겨서 그냥 해결해버리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반면 수학은 이런 산수를이용하는 논리 체계와 그것의 연구입니다. 계산기는 산수라는 스킬을 자동화 시킨 기계입니다.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수학이 아니라 산수(스킬)이고, 이 스킬을 배워야 하는데 이걸 그냥 자동화 시키면 아무것도 못배우는 거죠.
공대생과 회계사는 두자리 덧셈부터는 계산기가 필요한 것입죠 ㅋ
사실 구성주의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닌데 말이죠. 문제는 역시 '극단적'으로 사태를 몰고가는 사람들..... 어쨌든 결론은 대충 나왔으니 한국은 좀 정신차리고 교육제도를 정비해 주면 좋을텐데 말이죠...
12345+23476의 계산을 100번 1000번 반복한다고 수학을 잘하게 되는건 아니니까요.
저는 지금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중이지만, 대학교까지는 한국에서 다녔으니 양쪽의 교육방식을 좀 비교해보자면... 미국에서 대학교와 대학원 수업은 이미 말씀하신 '학생들이 나서서 스스로 배우는'수업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생의 수업 참여도가 전혀 떨어지는건 아닙니다. 계속 교수라고 안하고 선생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냥 맨날 이름 부르다 보니 이 사람을 Sir, 혹은 프로페서 라고 해야되는지도 좀 모르겠어서... 우리나라랑 좀 개념이 틀리더라구요;;; 하여간, 심지어는 같은 선생이 Undergraduate 학생과 Graduate 학생을 가르키는 방식이 틀립니다. Undergraduate쪽이 좀더 선생님들이 학생을 가르키는 방향으로 가고,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더 배워야 될게 많다고 봅니다. Graduate쪽은 학생들의 개개인별 학습 능력을 좀더 따지는 편입니다. 심지어 Graduate쪽에서 학습 능력이 떨어지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는 학생은 해당 클래스 에서 선생이 혼자 어떻게든 하는게 아니라, 수업외 시간에 개인 지도교사를 붙여주거나 workshop 을 통해 배우길 권장합니다. 대학원 수업은 어찌됬든 학생 한명 한명을 주입식으로 가르키는건 아니라서요.
그러나 심지어 대학원이라 할지라도 틀림없이 중간에 수업 진행에서 막히거나 학생들이 소모적인 방향으로 시간낭비 하는 타이밍이 생깁니다. 때문에 분명히 수업 시간동안 학생들이 선생님 보다 더 많이 이야기 하고 떠들긴 해야합니다만, 그렇다고 선생이 학생들을 방관하면서 아무것도 안가르치진 않습니다.
애초에 학교측이 제대로 되어 있다면, 능력이 안되는 선생을 매 학기마다 쫓아내려고 하기에 학교에 남아 있을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수들이 꾀나 자주 이야기 하는 것중에는 '너희들은 대학원 과정이기 때문에, 이렇게 배우는거다. 너네가 대학생 이라면, 혹은 고등학생이라면 이런식으로 가리치지 않는다. 하지만 너넨 대학을 마치고 어느정도 기본 교양이 있는 상태를 예상하고 이렇게 수업하는거다'
라는겁니다.
대학원 영어 수업에 대해서도 재미있는게 좀 있는데, 저희 학교같은 경우 영어 수업에서 영어 성적이 나쁜 외국인 학생들이 있는 클래스 일수록 능력이 입증된 선생님들이 투입됩니다. 이쪽 수업은 매주 내주는 과제때문에 다른 수업은 아예 들을수도 없게 만들지만, 대신 선생님들 도 나이 지긋한 닳고 닳은 분들인데다, 하버드 영문과 출신도 좀 있고 최소 4~5년 이상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 사람들입니다. 이게 수업이 좀더 고차원적인 수업이 될수록 선생의 주입식으로 뭘 가르치는 비중이 줄어들고, 과제양도 양 자체는 줄어들지만 창의력을 요하는 방식으로 바뀝니다.
한국 대학교와 비교를 하자면, 한국은 중학교때 이미 '오로지'주입식으로만 공부를 해서 고등학교 가면 고등학교때도 나 혼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식이고, 겉으로는 학업성취도가 완벽해 보이지만... 그렇게 완벽히 무장된 학생을 대학교로 보내놓고 보면... 대학교를 가면 이번에는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열린 교육방식을 가르킬 필요를 못느끼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심지어는 대학교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할때 의견 교환을 하는걸 아예 '싸움'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러면 학생들끼리 '싸우지 말자'라는 암묵적인 합의에 도달하고, 건설적인 발전은 거의 안이뤄집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할줄 모르는 대학생 이라니...
해서, 여태까지 말씀하신 열린 교육방식이 구성주의가 맞다면. 고등학생쯤 되면 슬슬 이런식으로 교육을 준비하는게 옳을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도 학부때를 되돌이켜 보면 강백호보다 재능도 없으면서 아는것도없(...흑흑ㅠㅠㅠㅠ)
이렇게 한국교육에 대해서 고민하는 글이 있어 새삼스레 희망을 느낍니다.
이 때 사용하는 것은 기본적인 기술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 기본기를 교육시킨 후에 다시 모의전을 한다고 합니다.
이때는 기본기에서 발전된 변칙기술로 신병들을 박살낸다고 합니다.
이 글을 보니 그런게 생각나는군요.
그리고 미국식 교육의 단점은 역시 학생 자신의 모티베이션이 없다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만, 반대로 학생이 정말 적극적으로 할 경우엔 반대로 굉장한 실적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때 보면 우수반은 대부분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던 동양계(한국, 중국등)이 많지만 소수의 백인들이 있는데, 대학가보면 상당수 동양계들은 탈락을 많이 하는거에 비해 그 소수의 백인들은 쭈욱 페이스를 유지해서 오히려 우수한 수준을 자랑하더군요.
이봐들 현재 세계 넘버 원은 미국이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글 잘 봤습니다(꾸벅)
2. 미국의 교육사를 살펴볼 때 또 언젠가는 학문중심 교육이 강조 되는 때가 오겠죠. 1920~50년대 초반까지 미국을 풍미했던 진보주의 사조가 러시아 인공위성 발사 한방으로 날아가 버린 것 처럼
3. 미국은 구성주의를 통해 지식을 빠른 시간에 명확하고 정확하게 구성해 내는 우수한 인제들을 선발하고 한국은 19세기 주입식 교육을 통해 많은 지식을 소화한 소수만을 선발하고... 둘 다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군요.
4. 기회가 되신다면 존 듀이(John Dewey)에 대해서도 짧은 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미국에서 교육정책은 지방자치이기 때문에 매우 다양하며, 따라서 그 구성주의 방식 또한 매우 다양합니다. 그래서 미국 구성주의가 "최소 지도를 남용"한다고 한 통속으로 엮어 실패했다고 결론내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언급한 UC 산타바바라의 리처드 메이어의 2004년 논문의 결론은 "... a doctrine-based approach to constructivism does not lead to fruitful educational practice" 인데, 이는 어떤 교육방법을 써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정자본주의를 가지고 자본주의가 실패했다고 단정하지 않듯이, 구성주의가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실패했다고 단정짓는 것도 마찬가지로 무리가 있습니다.
여기 어느 댓글에서 보인 성공한 교육으로 현재 여겨지는 핀란드 교육도 또한 구성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 더욱 그렇습니다.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이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주관적인 체험이긴 하지만, 미국에서 아이를 교육시켜보면, 미국교육이 그렇게 실패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실패라고만 단정지을 수 있는지가 의문이고,
한국 교육의 주입식 교육의 폐해 속에서 여전히 유효한 문제 제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교사의 역할이 선행되면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변형된 형태의 구성주의 내지
구성주의의 개념 자체에 대해서도 여전히 모호하게 파악하고 있어서
궁금한 점이 많네요.
그리고 사족을 달자면, 듀이도 주관적 경험만큼 인지적 교수도 중시하는 것이 자신의 생각인데 진보주의 교육에서는 아동의 주관적 경험이나 자율성만 너무 확대하여 수용하여 인지적 측면을 크게 간과하였다고 하면서, 자신의 프래그머티즘이 진보주의교육에서 오용되는 것에 대하여 일침을 가한 적이 있습니다.(굳이 구성주의라 적지 않고 프래그머티즘이라 적는 것은 구성주의는 후반부에 나온 것이고 진보교육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듀이의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라고 번역하는-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도 공부가 미진하니 틀린점이 있으면 지적해주셔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리플을 보다가 소중한 구성주의땅이 까이는 게 가심아파서 한자 적고 갑니다.
일방적으로 학생의 활동을 통해 지식을 학습하게 하는 것은 1920-30년대의 진보주의(물론 잘못 해석된 진보주의)에 가깝고, 오늘날의 구성주의는 오히려 안선생님의 가르침이 지금 올바른 구성주의 지도에 가까운듯
미국 교육의 실패? 실패라고 아직 확정할 수도 없지만 그것이 있다면 교육적 사조에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가르치는 교사의 교수능력의 부족이 올바르지 않을지.. 구성주의의 교육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지 않은..
사실 미국에서도 님이 말씀하신 형태의 constructivists' education이 제대로 실시된 적은 없습니다. 대세는 언제나 강의식, 주입식이었고,
강의식, 주입식 구조가 미국 white 들에게만 잘 맞아들어가는 바람에 다른 minority들이 소외된다는 비판이 많았죠.
님이 말씀하신 구성주의가 뭔지는 미국사는 저도 궁금하네요 ㅎㅎ
하여튼 뭐가 좋더라하면 그것의 근본이나 기초에 대한 숙고없이 그대로 베껴서 겉만 포장하고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난리부르스를 치면서 종내는 망가뜨리는 우리의 고수적 기술(?)에 대한 답답함이 다시금 밀려들게 하는 글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근데 미국은 직접교수법으로 향한다던데요.. 이에 대해서도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
http://infinitesp.tistory.com/entry/직접교수법
흥미롭군요 ^^
새로운 획기적인 관점을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