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 규모 감축: 역사적 경험

학급 규모와 교육의 생산성

앞서 글에서 나는 학급 규모 감축이 돈만 들고 효과는 없는 정책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런데 이 평가는 해외 연구와 특정 정당의 공약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한국에서 실행되었을 때는 다른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대안을 모색하기 전에 이점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미 이런 정책을 실시해왔다. 한국 정부는 그 동안 학급 규모 감축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1996년부터는 교육환경 개선사업에 매년 7천억원을 들여왔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학급 규모 감축이 한국에서 어떤 효과를 거둬왔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정부출연연구소인 한국교육개발원(KEDI)는 학급 규모에 대해 세 차례 보고서를 발행한 바 있다.

학급규모의 교육재정·경제적 분석연구 (2003)
학교·학급 규모 적정화와 재정대책 (1997)
학교·학급의 적정규모 (1984)

이중 2003년에 발행한 학급규모의 교육재정·경제적 분석연구는 2001년부터 진행된 학급 당 학생 수 감축사업의 성과를 다루고 있다. 이 사업은 2004년까지 초중고등학교의 학급 당 학생 수를 35명까지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4개년에 걸쳐 약 12조원의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다.

2백쪽이 넘는 방대한 연구보고서이므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다운받아 보시도록 하고 여기서는 이 사업이 수업의 질을 향상시켰는지만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따져보도록 하겠다. 숫자가 많이 나와 좀 지루할 수 있으므로 중요한 부분은 강조를 했다.

우선 이 사업의 결과 2001년 4월 초등학교 35.6명, 중학교 37.3명, 일반계 고등학교 41.6명, 실업계 고등학교 36.4명이던 학급 규모가 2003년에는 33.9명, 34.8명, 34.1명, 그리고 31.0명으로 각각 1.7명, 2.5명, 7.5명, 그리고 5.4명이 줄었다. 고등학교에서 감축 규모가 큰 것은 저출산의 영향으로 이 연령대에서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이고 또 고등학교에 중점적으로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감소는 전국적인 경향일 뿐이고 실제로는 농촌이나 소도시로부터 대도시로 사람들이 옮겨가기 때문에 대도시 일부 지역은 거꾸로 학급 규모가 커지기도 했다. 그래서 보고서에서 KEDI 측은 "하지만 이것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8조 9,164억원이 투자된 자금과 자연적인 학생수의 감소, 그리고 2003년 교육예산이 약 30조 4,636억원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성과는 큰 것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7.20 교육여건 개선사업의 성과는 과밀 학급이 양산되는 것을 막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49-50쪽)"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급 규모를 실제로 줄이기 위해서는 예산이 얼마나 필요할까? 이 보고서에서는 인구 변화나 경제 성장등을 고려하여 학급 규모를 평균 30명까지 줄이기 위한 예산을 추정하고 있는데 교사 인건비를 제외하고 시설비만 최소 19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권영길의 공약에서 25명까지 줄이기 위한 시설비 예산이 약 25조원이었는데 KEDI 측 추정치를 받아들인다면 최소한 38조원은 투입되어야 한다. 게다가 학생 수가 줄어들 수록 학급 규모를 1명 줄이기 위해 증설해야하는 학급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실제 소요되어야할 시설비는 이를 훨씬 상회할 것이다.

그렇다면 학급 규모 감축은 수업의 질을 얼마나 향상시킬까? 이 부분에서 이 보고서는 좀 여러 가지로 결함이 있는데 우선 시험 성적 등을 통해 학업 성취도를 측정한 게 아니라 설문 조사 형식으로 주관적 만족도만을 측정했고 분석 방법에서도 HLM을 돌려야할 것을 회귀분석을 따로 돌렸다든지 이런 미진한 부분이 많다. 이런 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 눈감고 넘어가더라도 그 결과가 별로 좋지 않다.

예를 들어 학급 규모와 수업 분위기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학생들은 제대로 공부할 수가 없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잠을 잔다" 등 7개의 문항에 5점 척도로 응답을 받았다. 문항이 좀 이상하지만 그것도 그냥 넘어가고 하여간 이렇게 총 35점으로 측정한 수업 분위기에 대해 학급 규모를 비롯해 여러 가지 변수를 넣고 회귀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학급 규모와 수업 분위기 사이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그런데 학급 규모의 회귀계수는 -0.0522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학급 규모가 1명이 줄어들 때마다 학생들이 느끼는 수업분위기는 35점 중에 0.05점씩 좋아진다는 것이다. 너무 대단한 효과라 손발이 다 오그라들 지경이다.

세 줄 요약:

1) 이미 한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학급 규모를 줄이는 데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다
2) 그래도 학급 규모는 잘 줄지 않았다
3) 게다가 참새 눈물만큼의 효과 밖에 거두지 못했다.

결국 앞서 글에서 내린 평가와 다르지 않다. 수 조원의 재정을 쏟아부어서 이만큼의 효과밖에 거두지 못한다면 교육 정책이라기보다는 교육의 탈을 쓴 건설 경기 부양책이라고 해야겠다.

확인 사살까지 했으니 다음 글에서는 정말로 대안적인 정책에 대해 논의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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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추판다 | 2009/04/04 00:02 | 트랙백 | 핑백(3)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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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dhunter at 2009/04/04 09:57
완급에 뛰어난 아이추판다님... (2)

블로그를 쓸때 독자와 블로거 자신을 위한 적절한 글 나누기의 모범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감사.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9/04/05 17:31
적절한 '글쓰기'의 모범이 아닌게 아쉽군요 :(
ㅎㅎ
Commented by 아침의전령 at 2009/04/04 13:01
오늘도 역시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_~

대안 정책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9/04/05 17:31
기대하세요.
Commented by 세라비 at 2009/04/04 13:57
학급 규모를 줄이는 것만으로 바로 학생들이 느끼는 효과로는 나타나지 못할 것 같네요. 학급 규모를 줄임으로써 수업 방식이 달라진다든가,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소통방식이 달라져야만 가능할 것 같군요. 예를 들어, 30명이 되면 1명의 선생님으로 토론 수업이 가능한데, 40명 때의 수업 방식 때 그대로 진행한다면 아무런 효과가 없는 거겠죠.

그러고보면, (10년 점 쯤에 이슈가 되었음직한) 양적으로 학급 규모를 줄이는 것은 그만두고 이제 질적인 면에 치중할 때가 아닌가도 싶네요. 이건 그냥 가설도 뭣도 아닌 짐작일 뿐이니, 이런 부문에 대한 정책 연구 및 방향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하군요.
Commented at 2009/04/05 14: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9/04/05 17:32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로리 at 2009/04/12 11:30
50명 수업해보다 30명 가지고 수업해보면 우와..학급 규모 줄이는 게 정말 좋구나..라는 걸 체험하게 되죠. 일단 애들이 한 눈에 들어오거든요.

이게 20명 수준으로 줄면 덩실덩실 춤을 출겁니다.

교육 관련되는게 수치화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quantitative method를 근거로 옳다 그르다를 판별하는 건 좀 무리가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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