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 규모와 교육의 생산성

저는 핀란드의 사례를 연구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핀란드는 최근 PISA 테스트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1, 2등을 다투고 있죠. 하지만 흥미롭게도 다른 상위권 국가들과는 현격하게 학생들의 수업 시간이 짧습니다. 왜 그럴까요? 핀란드 같은 경우 공부시간과 학업성적의 XY 그래프를 그리면 일차회귀선 밖에 위치하는 나라일 겁니다. 진정한 의미의 아웃라이어(Outlier)이지요.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시간만 쏟아 붇는 교육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 김창준, 한국식 교육이 완벽한 모델

교사 1인당 담당하는 학생 수를 계속 줄여나가고 있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은 교육의 생산성이 정말 향상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 sonnet, 윗글에 대한 덧글

지난 십 수년 간에 걸쳐 한국의 학급 규모는 지속적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지금보다 학급 규모가 더 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2007년 10월 26일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권영길이 발표한 교육정책을보면 7대 공약 중 여섯번째가 "OECD 수준의 교육여건을 갖추겠습니다"이다. 이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35명인 한국의 학급 규모를 OECD 평균인 25명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특별히 민노당이 아니더라도 정파에 관계없이 누구나 할 법한 공약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좋은 공약일까?

우선 학급 규모가 줄어들면 학생의 성취도가 향상되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테네시 주는 1985년부터 4년에 걸쳐 79개 학교의 300여개 학급, 7000여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학급 규모와 학생의 성취도의 관계를 검증하기 위한 대규모 실험인 Project STAR(Student-Teacher Achievement Ratio)을 실시했다. 이 실험의 결과 학급의 규모가 줄 수록 학생의 성취도가 향상될 뿐만 아니라 장애인이나 소수 인종의 경우 그 효과가 더욱 뚜렷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심리학과 교육학의 여러 연구들도 동일한 결론을 지지하고 있다.

학급 규모가 줄어들면 왜 학업 성취도가 향상될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개입된다. 테네시주의 Project STAR의 경우 학급 규모만 통제하고 교실의 크기는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학급은 큰 학급에 비해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더 넓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기의 질도 더 좋았다. 그러나 학급 규모가 학업 성취도에 미치는 핵심적인 이유는 교사가 학생 개개인에게 더 많이 신경을 쓸 수 있어서 수업의 질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1명의 교사가 36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60분간 수업을 하면 학생 1명당 '1초'동안 신경을 쓸 수 있다. 이것은 7200명을 대상으로 할 때 신경 쓸 수 있는 시간인 0.5초보다 2배나 길지만 너무 미미해서 수업의 질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다시 말해 학급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학급 규모와 수업의 질 사이에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 '일정 수준'은 얼마일까. 연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15명~20명 정도라고 한다. 다시 말해 20명을 넘어서면 학급 규모가 얼마나 되든지 수업의 질에 별 차이가 없다. 따라서 권영길의 공약과 같이 학급 규모를 35명에서 25명으로 감축하는 정도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 하나 기억해둬야할 점은 학급 규모가 줄어드는 것만으로는 결코 수업의 질이나 학업 성취도 향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3자로 하여금 수업을 관찰하며 교사들의 행동을 평가하게 한 결과 학급 규모가 줄어든다고 교사들의 가르치는 방법이 저절로 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학급 규모를 20명 이하로 줄여도 전통적인 강의식 수업 방식을 고수하면 여전히 학급 규모와 학업 성취도의 상관이 낮고, 수업 방식을 적절히 바꿔야만 효과가 나타났다. 다시 말해 학급 규모 축소는 좀 더 효과적인 수업 방식을 위한 '기회'를 제공할 뿐이지 그 자체로 수업의 질을 결정하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학급 규모를 줄여서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권영길의 공약보다 더욱 대담한 조치가 필요하다. 학급 규모는 단순히 지금보다 더 줄이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절반 수준 이상으로 줄여야 하고 수업 방식도 바꿔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하자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까?

공약자료집에 따르면 권영길의 공약 수준만으로도  초중고 1천 3백개와 교사 3만 8천명이 추가 고용되어야 하는데 학교 신설비용은 연 6조 4천억원으로 4년간 25조 6천억원, 교사증원으로 인한 소요비용은 2009년 2,597억원으로 시작해 2012년에 이르면 1조 1,085억원에 달한다. 25명이 아니라 20명까지 끌어내리려면 대운하로 한반도에 그랜드 크로스를 새길만큼 돈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이만한 돈을 들여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얼마나 될까? 적절한 수업 방식을 사용한다는 전제 아래 학급 규모가 20명 밑으로 내려가면 100명 중 50등 하던 학생이 40등으로 올라가는 정도의 학업성취도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수십조원의 돈을 투자할 때 기대할만한 효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20명부터는 학급 규모를 줄일 수록 효과도 발맞추어 늘어나지만 들어가야할 돈도 그만큼 같이 늘어난다.

간단히 말해 학교를 더 짓고 교사를 더 뽑아 학급 규모를 줄이는 것은 1) 그냥도 돈이 엄청 든다 2) 하지만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3) 효과를 보려면 돈이 더 든다 4) 그래도 효과는 별볼일 없다 5)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기둥뿌리를 뽑아야 한다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정책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정책이 필요할까?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도록 하자.

by 아이추판다 | 2009/04/03 00:42 | 트랙백(2) | 핑백(5) | 덧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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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오린간 at 2009/04/03 01:04
이거 굉장히 흥미롭군요. 저도 일종에 가르치는 사람인지라.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갑니다.

확실히 제가 10명을 가르친다면, 그럭저럭 1명당 개별적 지도할 기회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만큼 적용될거 같지만, 지금 30명을 가르치는데 이건 거진 불가능하더군요.

아예 허벌라게 말솜씨 좋고, 질좋은 교육자료를 통해서 3000명을 가르치라는게
이득같습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9/04/03 17:10
동영상 강좌로 한다면 3만명도 가르칠 수 있겠지요. ^^
Commented by 아침의전령 at 2009/04/03 01:20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개인적으로 공부할 때는, 확실히 학급당 학생 수가 적은 게 좋기는 하지만, 적정수가 어느 정도인지는 논란이 많다고 들었는데, 혹시 이와 관련해서 괜찮은 자료 있으면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9/04/03 17:11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나온 보고서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따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Commented by 김우측 at 2009/04/03 09:49
잘 읽고 갑니다. 다음 글 기대하겠습니다. :)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9/04/03 17:11
기대하세요~ ^^
Commented by 새벽안개 at 2009/04/03 10:20
목표를 넘어서려면 엄청난 고용효과를 창출할수 있겠네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9/04/03 17:12
교육정책보다는 실업정책이 되겠네요 하하.
Commented by dhunter at 2009/04/03 11:03
역시 완급에 뛰어난 아이추판다님...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9/04/03 17:12
앗.. 패턴을 읽혔나요? ^^
Commented by 준식이 at 2009/04/03 22:43
ㅋㅋㅋ 대운하로 그랜드 크로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9/04/03 23:56
ㅎㅎㅎ
Commented by 漁夫 at 2009/04/03 22:47
제 부업이 지금 교육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라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글이군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9/04/03 23:56
무슨 부업을 하시길래요? @.@
Commented by 漁夫 at 2009/04/04 09:39
아, 직장에서 하는 일 중 'secondary priority'가 교육입니다. '부업'이라고 하는 바람에 약간 오해가... ^^
Commented by 루민 at 2009/04/03 23:36
초인지전략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높이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효과적인 학습법 이란 과목을 신설하는 것도 좋을듯...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9/04/03 23:57
'초인지'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초능력?) 찾아보니 meta cognition 말씀이시군요. ^^;; 저희는 그냥 메타인지라고 하는지라.. ㅎㅎ
Commented by 펭도 at 2009/04/06 00:36
메타인지 배워서 공부 잘 하면 인지심리 전공자들은 무슨 공부든 잘 하게요? ㅋㅋㅋ 물론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동기유발이 가장 중요하겠죠
Commented by 키시야스 at 2009/06/03 15:35
글 작성자 본인은 우파도 좌파도 아니시군요. 우파의 결론은 저렇게 나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9/06/03 15:54
무슨 말씀이신지 잘..
Commented by 김혜숙 at 2009/11/04 10:36
학교를 지식습득이라는 기능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는 거군요.... 하지만 좀 더 넓게 인성적 인격적 측면까지 생각한다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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