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30일
언어는 마음을 결정한다?
뜻을 이해하기 곤란한 리플 (어부님)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주장은 쉴데로 쉬어서 더이상 논의할 가치도 없는 떡밥이다. 우리가 사고를 언어로 표현하고 전달하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만연한 게 아닌가 싶은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터무니 없는 생각이란 걸 알 수 있다.
개념은 머리에 떠오르는 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혀 끝에서 맴도는 현상을 설단현상(설단=혀 끝)이라고 한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 쯤 경험해봤을 이 현상은 언어와 사고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어증 등의 언어장애가 있는 경우에도 다른 지능은 정상인 경우가 있다.
또, 만약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대상이 나타나더라도 그 대상을 가리키는 새로운 말이 생겨나기 전까지는 그 대상에 대해 사고할 수가 없다. 그런데 가리키는 말이 없어 사고할 수 없다면 그 대상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신조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가? 천만에. 매년 수 십~수 백 개의 새로운 말들이 생겨나고 있다.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주장을 심리학이나 언어학에서는 주창자의 이름을 따서 사피어-워프 가설 또는 간단히 워프 가설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심리학자, 언어학자들은 워프 가설에 동의하지 않는다. 파푸아 뉴기니에 사는 한 부족은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을 나타내는 말 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 부족 사람들에게 색종이를 보여주고 잠시 후에 아까봤던 색종이를 골라보라고 하면 정확히 골라낸다.
아예 언어가 없는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동물들도 대상을 인식할 수 있고 복잡한 사고를 할 수 있다. 침팬지는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먹이가 있으면 받침대나 사다리를 가져오기도 하고, 입구가 오목해서 손이 들어가지 않는 병에 먹이가 있으면 물을 가져다 병에 부어 먹이가 떠오르게 한 다음 꺼내먹는다. 드 발의 책들을 보면 서열 2, 3위가 서열 1위를 몰아내기 위해 음모를 짜고 실행하는 것과 같은 사례들이 소개된다.
어부님 글에 달린 댓글 중에 보면 영어에 '고소하다'라는 뜻의 단어가 없으니 그들이 느끼는 고소한 맛과 우리가 느끼는 고소한 맛이 같은지 알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논법인데 알 수 없기는 뭐가 없어. 앞의 문단에서 소개한 실험 절차에서 색종이를 식품으로만 바꾸면 된다.
아니 이건 실험을 해볼 것도 없다. 요리 만화를 보면 등장 인물들이 맛을 표현하기 위해 매우 장황한 비유를 사용한다. 이 사람들이 느낀 맛을 직접 표현할 어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휘가 없이도 우리는 맛을 느낄 수 있고, 일단 맛을 느낀 다음에는 어휘가 없으면 비유를 동원해서라도 전달하려고 시도 할 수 있다. 사고가 언어를 결정하지, 언어가 사고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게 무슨 맛?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주장은 쉴데로 쉬어서 더이상 논의할 가치도 없는 떡밥이다. 우리가 사고를 언어로 표현하고 전달하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만연한 게 아닌가 싶은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터무니 없는 생각이란 걸 알 수 있다.
개념은 머리에 떠오르는 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혀 끝에서 맴도는 현상을 설단현상(설단=혀 끝)이라고 한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 쯤 경험해봤을 이 현상은 언어와 사고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어증 등의 언어장애가 있는 경우에도 다른 지능은 정상인 경우가 있다.
또, 만약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대상이 나타나더라도 그 대상을 가리키는 새로운 말이 생겨나기 전까지는 그 대상에 대해 사고할 수가 없다. 그런데 가리키는 말이 없어 사고할 수 없다면 그 대상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신조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가? 천만에. 매년 수 십~수 백 개의 새로운 말들이 생겨나고 있다.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주장을 심리학이나 언어학에서는 주창자의 이름을 따서 사피어-워프 가설 또는 간단히 워프 가설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심리학자, 언어학자들은 워프 가설에 동의하지 않는다. 파푸아 뉴기니에 사는 한 부족은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을 나타내는 말 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 부족 사람들에게 색종이를 보여주고 잠시 후에 아까봤던 색종이를 골라보라고 하면 정확히 골라낸다.
아예 언어가 없는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동물들도 대상을 인식할 수 있고 복잡한 사고를 할 수 있다. 침팬지는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먹이가 있으면 받침대나 사다리를 가져오기도 하고, 입구가 오목해서 손이 들어가지 않는 병에 먹이가 있으면 물을 가져다 병에 부어 먹이가 떠오르게 한 다음 꺼내먹는다. 드 발의 책들을 보면 서열 2, 3위가 서열 1위를 몰아내기 위해 음모를 짜고 실행하는 것과 같은 사례들이 소개된다.
어부님 글에 달린 댓글 중에 보면 영어에 '고소하다'라는 뜻의 단어가 없으니 그들이 느끼는 고소한 맛과 우리가 느끼는 고소한 맛이 같은지 알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논법인데 알 수 없기는 뭐가 없어. 앞의 문단에서 소개한 실험 절차에서 색종이를 식품으로만 바꾸면 된다.
아니 이건 실험을 해볼 것도 없다. 요리 만화를 보면 등장 인물들이 맛을 표현하기 위해 매우 장황한 비유를 사용한다. 이 사람들이 느낀 맛을 직접 표현할 어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휘가 없이도 우리는 맛을 느낄 수 있고, 일단 맛을 느낀 다음에는 어휘가 없으면 비유를 동원해서라도 전달하려고 시도 할 수 있다. 사고가 언어를 결정하지, 언어가 사고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 by | 2009/03/30 11:05 | 트랙백(2) | 핑백(2) | 덧글(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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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좋은 생각거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내 모분의 글 중에 노래를 들으면 음악보다 가사가 더 잘 기억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있더군요.
그러면 가사 없는 연주곡은...?
근데, 이 광의의 해석에 의하면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라는 명제는 '사고가 사고를 결정한다'가 되기 때문에 별로 반박할 방법도 없고 왠지 반박하고 싶지도 않아집니다. T_T
언어속에는 사고뿐 아니라 정보가 담겨있는데 이 정보를 통해 사고의 틀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죠. 잘못 연결시킨 정보를 언어에 담아 자연스럽게 쓰게 되면 의식하지도 않은채 잘못된 사고를 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잃어버린 10년" "경제가 죽었다" 뭐 이런거죠..
물론 한국이 500년 전에 평등사회가 되었다면 지금처럼 정교(?)한 존대법이 발전할 리는 없었겠지요. 그러니까 제 주장은 "언어"와 "사고" 양쪽이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만 한쪽이 다른쪽을 결정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써놓고 보니 당연한가. -.-)
존대법의 경우에도 좀 생각이 다릅니다. 한국어는 어미를 추가하거나 바꾸기 때문에 존대법이 눈에 띄어서 그렇지 다른 언어라고 존대법이 없진 않습니다. 중국어는 잘 모르겠지만 영어도 격식있게 말하기는 꽤 까다롭습니다. 북한의 경우에도 평등한 언어 사용을 하게 한다고 동지/동무를 도입했지만 결과적으로 동지는 존칭, 동무는 평칭으로 굳어졌습니다.
언어의 경우 특히 문법에서 다른 사고와 독립적인 성격이 있습니다만 그건 '다른' 사고와 그런 것이고 문법 자체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와 일본어는 역사적 연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만 상당히 비슷한 문법을 가지고 있지요. 이것은 선천적인 '문법적 사고방식'이 가능한 문법의 형태를 제약하기 때문입니다.
'사고가 언어를 결정한다'는 간단한 명제로 깔끔하게 정리가 안 되는 쟁점은 리플에서도 보시다시피 언어가 그 공동체 안에서 한 번 선택되면 역사성을 띄게 된다는 점인 듯 한데, 개별 선택이 이뤄지는 상황을 원초적 상황과 몇몇 역사적 배경 이후에 이뤄지는 사후적 상황으로 나누어 생각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정리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심리학이나 언어학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이미 애저녁에 이런 이론이 나왔을 것 같은데, 간략하게 논문이라도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갑자기 이게 생각나서 급 웃었습니다.
언어-사고의 관련성은 인지의 차원보다는 의사소통의 차원에서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사람들이 의사 표현을 위해서 (혹은 더 적절한 표현을 찾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기 때문에) 기존에 만들어진 표현들을 사용해서 의사를 전달하게 되고 그 덕분에 (앞에서 저련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표현/단어에 부가된 역사적인 의미들도 함께 부수적으로 따라다니고 말이죠. 그러니 사회 전체적으로는 한 사회, 한 시대가 특정한 개념의 지배를 받는다고, 어떤 개념들이 사고의 틀을 형성한다고 말하는 게 가능해지지 않을까.
아무튼 perception에 대해 강한 사피어-워프 가설을 주장하는 건 바보같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차원에서는 어떨까, 혹은 '프레임'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떨까, 그런 궁금증은 계속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전에 한 친구가 만들어낸 유머 하나. 그 친구가 쓴 건 단편 SF였는데, 모든 언어를 '축자적'으로 사용하는 혹성에 한 외계인(지구인)이 찾아와 술자리에서 "Kiss my ass!"라는 욕설을 내뱉음으로써 동성애를 몰랐던 이 혹성에서 동성애가 시작되었다, 라는 짤막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었지요 ㅋㅋㅋ.
그리고 '프레임'의 경우 언어 자체가 영향을 주는 것인지 아니면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전달된 아이디어가 영향을 주는 것인지 구별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레임'이라는 말을 유행어로 만든 조지 레이코프는 오랫동안 은유가 단순한 수사법이 아니라 인간의 핵심적인 인지양식의 반영이라는 주장을 해왔는데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레이코프가 퍼트린 '프레임'의 원래 의미도 단순히 말을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는 게 문제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것도 역시 원래 뜻과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는 말의 예가 되겠군요.)
인지에 관해서 어떤 실재가 절대적으로 존재하는가와 그것을 "사고"하는 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인지를 하더라도 그것을 대상으로 표현할 수 없다면 내가 인지하는 실재가 과연 실재인지 증명할 길이 없겠지요. 따라서 이를 표현하려면 당연히 언어를 통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선 언어의 번역성이 문제가 됩니다. 언어로 우리가 소통을 하고는 있지만 과연 언어가 객관적 실재를 지칭하는 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콰인은 이에 대해 가바가이를 예로 듭니다. 경험주의의 두 독단을 참조할 수 있겠습니다.
사고가 언어를 결정한다던지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던지를 확정할 수는 없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언어가 사고를 제한 할 수는 있다는 점이겠죠.
말씀하신대로 색종이 등의 실험을 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어설픈 범위를 정할 수 밖에 없을 뿐입니다. 언어가 정확한 실재를 지칭하는지는 단지 비유적으로 그럴 것이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2) 사고를 표현하는 방법이 언어 밖에 없습니까?
3) 콰인의 가바가이 얘기를 연장하면 아기는 언어를 배울 수 없습니다. 엄마가 아기에게 "저길 봐, 강아지야"라고 말했을 때 아기는 '강아지'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번역불가능성을 연장하면 아기는 언어를 배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기는 언어를 습득하죠. 가바가이는 철학적 사고 실험이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의사소통과정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4) 언어가 사고를 제한한다면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을 지칭하는 어휘 밖에 없는 민족은 밝은 색과 어두운 색만 '사고'해야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명도가 같은 색을 구별하지 못해야 되는데 실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언어가 사고를 제한한다는 가설은 틀린 것이죠.
매우 단순한 문법을 가지고 있는 언어가 있을 때, 아기가 (백지 상태에서 출발해서) 그 언어의 용례 및 비문들만을 데이타로 해서 그로부터 문법을 재구성할 수 있다면, 그 아기를 부품으로 이용해서 RSA 암호를 풀 수 있다는 결과가 알려져 있죠. :) 파라미터를 이상하게 잡지 않은 경우라면 RSA를 효율적으로 깨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믿음인 만큼, 결과적으로 언어의 용례만으로 문법을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 결과는 어떤 의미에서는 콰인의 '가바가이'와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RSA를 깨는 정도가 되면 더 이상 '그래, 언어는 번역 불가능해' 정도에서 그칠 수가 없게 됩니다. 실제로는 언어의 습득이 가바가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강력한 논거가 되는 셈입니다.
이 책을 추천하면 될 것 같군요 :)
언어는 선입견을 만들죠.
제 생각인데 '사고'란 단어의 의미가 좀 혼재되어 논의되는것 같군요.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시군요... ㅎㅎ
그건 언어가 사고 속에 재현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표현이 사고를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지요. 언어는 단어나 표현으로 축소될 수 없습니다.
언어는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을 지칭하는 어휘가 아닙니다. 언어는 그 둘의 차이를 말합니다. 그걸 이항대립이라고 하지요. 이항대립 때문에 어휘가 없어도 무수한 사유를 전개할 수 있는 겁니다.
레비스트로스나 촘스키를 읽어보세요...
그들이 무슨 주장을 하는지 알고나 비판을 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건 어휘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아닌, 언어가 만들어내는 체계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방향으로 이해하는게 좀 더 제대로 이해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어떤 개념이나 사물을 지칭하는 언어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현재 언어로 존재하는 다른 개념이나 사물들과의 차이에 의해 그 개념이나 사물을 인지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것도 결국 언어의 체계에 의해 사고하게 되는 것이 되겠죠.
일반적으로 이런 쪽에서 언급되는 언어란, 단순한 어휘들이 아닌, 윗 분 말대로 차이에 의해 나타나는 어떤 체계를 지칭하는 말인거죠. 아이추판다님은 이 언어에 대한 인식을 언어가 표면적으로 갖는 어휘 등에만 한정해서 사용하셨는데, 이런 논의를 해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언어 자체에 대해서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할듯합니다.
아, 그리고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말을 언어학자들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건 어디에서 누가 그렇게 언급한건가요. 현대 언어학자중에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캐매장당할텐데...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결정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현대' 언어학자로 노암 촘스키가 있습니다. 촘스키가 매장당한게 아니라 촘스키가 구조주의를 매장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