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24일
주디스 버틀러의 10%
어느날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눈이 확 뜨이는 구절을 발견했다.
클라인펠터 증후군(XXY)처럼 성염색체 이상인 경우가 있지만 인구 중 0.1% 정도에 불과하고 이런 저런 경우를 다 합쳐도 1%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10%?

"1987년, MIT, 페이지 박사" 이 세 가지만으로는 원출처를 확인할 수 없어서 제쳐두고 있던 중에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을 보다가 비슷한 구절을 발견했다.
내용은 좀 미묘하게 달라졌는데 조현순의 글에서는 "XX염색체와 XY염색체를 분명히 밝힐 수 없다"였던 것이 버틀러의 글에는 "XX 여성과 XY 남성의 범주에 딱 들어맞지 않는 변종 염색체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1987년, MIT, 페이지 박사인데다가 10%라는 수치도 맞는 것이 아무래도 조현순은 버틀러를 참고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젠더 트러블"의 역자가 마침 조현준이라 혹시 남매라도 되나해서 약력을 보았다. 헉.
약력으로 보나 "새 여성학 강의" 저자 중에는 조현준이 없는 걸로 보나 두 사람은 동일인물로 보인다. 둘 중에 하나가 오자거나 아니면 "새 여성학 강의"가 2005년, "젠더 트러블" 번역판이 2008년이 나왔으니 그 사이에 이름을 바꿨나보다. 어쨌든 동일인물인 건 분명하니 조현순/조현준이 "젠더 트러블"을 참조했을 가능성은 높아보인다. "젠더 트러블" 번역판이 "새 여성학 강의"보다 늦게 나왔지만 원서는 1990년에 나왔고, 조현순/조현준은 버틀러에 대해 논문을 여러 편 썼으니 버틀러의 대표작인 "젠더 트러블"을 틀림없이 보았을 것이다. 설마 조현순/조현준이 데이비드 페이지의 논문을 직접 보고 썼을 것 같지는 않다.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와서, 버틀러의 인용이 조현순/조현준의 인용보다 좀 더 말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앞뒤 맥락으로 볼 때 인구 중 10%는 성 염색체만으로 성별을 결정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보이는 데 역시나 AIS처럼 XY 염색체를 가졌지만 생식기의 모양이 여성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역시 10%까지는 안될 것 같다. 그래서 1987년 셀에 실린 문제의 논문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는데 조현순/조현준이고 버틀러고 10% 얘기는 한 구절도 나오지 않는다. 다행히도 검색이 되서 검색을 해보니 "10%"라는 말은 실험 절차 설명 중에 "10% dextran sulfate"라고 나온 것 외에는 한 마디도 없다. "percent"라는 표현은 아예 없다. 후덜덜해서 버틀러의 책을 다시 읽어보니 이하의 내용은 Fausto-Sterling의 "Life in the XY Corral"과 이 논문에서 인용된 두 논문에서 인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파우스토-스털링의 논문을 찾아냈다. 읽어보니 버틀러 역시 페이지의 논문을 직접 읽은 건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버틀러가 페이지를 인용하는 대목은 파우스토-스털링이 인용하는 대목과 거의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딱 하나, "10%"만 빼고. 그럼 도대체 이건 어디서 나온 얘기야?!
아니 이런 신공은 라캉만 쓰는 줄 알았더니(한 편의 만담 : 라캉의 인용 참고) 덜덜덜. 버틀러가 인용했다고 밝힌 논문 셋을 모두 첨부해두니 한 번들 보시길. 혹시나 내가 못 보고 지나친 것이기를 빈다.
a0007594_Page_et_al_1987.pdf
a0007594_Fausto-Sterling_1989.pdf
a0007594_Eicher_Washburn_1986.pdf
※ 2009년 03월 25일 00시 20분 추가: "10%"의 진상이 밝혀졌습니다. 기불이님의 글을 참고하세요. 아이고 머리야.
1987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페이지 박사는 현대과학으로도 전체 인구 중 10%에 이르는 사람들의 XX염색체와 XY염색체를 분명하게 밝힐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현재 미국의 경우, 동성애자 비율이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지만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조현순, '여성성과 젠더 정체성', "새 여성학 강의" 개정판, 동녘, 94쪽
조현순, '여성성과 젠더 정체성', "새 여성학 강의" 개정판, 동녘, 94쪽
클라인펠터 증후군(XXY)처럼 성염색체 이상인 경우가 있지만 인구 중 0.1% 정도에 불과하고 이런 저런 경우를 다 합쳐도 1%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10%?

"1987년, MIT, 페이지 박사" 이 세 가지만으로는 원출처를 확인할 수 없어서 제쳐두고 있던 중에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을 보다가 비슷한 구절을 발견했다.
1987년 말, MIT 연구자들이 성의 비밀스럽고도 확실한 결정인자로 발견했다고 주장한 지배 유전자에 대한 최근 논쟁은, 섹스의 단성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하나의 장이다. 대단히 복잡한 기술수단을 사용해 데이비드 페이지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Y 염색체상의 특정한 DNA 연쇄를 구성하는 지배 유전자를 발견했고, 이것에 'TDF' 혹은 '고환 결정인자(testis-determining factor)'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포(Cell)"(51호)에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페이지 박사는 자신이 "모든 성적으로 이형적 특징을 결정하는 이분법적 교환"[원주: Anne Fausto-Sterling, "Life in the XY Corral", Women's Studies International Forum, Vol. 12, No. 3, 1989 ; Special Issue on Feminism and Science : In Memory of Ruth Bleider,ed. Sue V. Rosser, p.328. 이 부분에서 나머지 인용은 모두 그녀의 논문과 그녀가 인용한 다음 두 편의논문에서 가져온 것이다. (David C. Page et al., "The sex-determining region of thehuman Y chromosome encodes a finger protein", Cell, No. 51, pp. 1091~1104 ; Eva Eicher and Linda Washburn, "Genetic control of primary sex determination in mice", Annual Review of Genetics, No. 20, pp. 327~360)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는 그런 발견이 주장하는 바를 고찰해보고, 왜 성의 결정성에 관해 불안정한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지 생각해보자.
(중략)
페이지와 그의 동료들이 이런 결과물을 끌어내기 위해 이용한 집단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들의 연구가 기반하고 있는 가정의 일부는 인구 중 족히 10%는 XX 여성과 XY 남성의 범주에 딱 들어맞지 않는 변종 염색체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배 유전자'의 발견은 성의 결정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성차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전의 염색체 범주가 제시할 수 있던 것보다 좀 더 확실한 기반으로 간주된다.
주디스 버틀러, 조현준 옮김,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285-287쪽..
(중략)
페이지와 그의 동료들이 이런 결과물을 끌어내기 위해 이용한 집단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들의 연구가 기반하고 있는 가정의 일부는 인구 중 족히 10%는 XX 여성과 XY 남성의 범주에 딱 들어맞지 않는 변종 염색체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배 유전자'의 발견은 성의 결정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성차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전의 염색체 범주가 제시할 수 있던 것보다 좀 더 확실한 기반으로 간주된다.
주디스 버틀러, 조현준 옮김,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285-287쪽..
내용은 좀 미묘하게 달라졌는데 조현순의 글에서는 "XX염색체와 XY염색체를 분명히 밝힐 수 없다"였던 것이 버틀러의 글에는 "XX 여성과 XY 남성의 범주에 딱 들어맞지 않는 변종 염색체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1987년, MIT, 페이지 박사인데다가 10%라는 수치도 맞는 것이 아무래도 조현순은 버틀러를 참고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젠더 트러블"의 역자가 마침 조현준이라 혹시 남매라도 되나해서 약력을 보았다. 헉.
조현준
경희대 영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현재 동대학교 관광영어통역학과와 성신여대 영문학과, 한신대 영문학과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경희대 인문학 연구소,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한국여성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정체성 이론", "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여성주의로 읽어본 대중문화"(공저), "페미니즘과 정신분석"(공저), "새 여성학 강의-한국사회, 여성, 젠더"(공저), "여성의 몸-시각, 쟁점, 역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안티고네의 주장", "포스트모던 사상사"(공역)등이 있다.
조현순
영문학 비평 전공. 경희대 영문학 박사. 현재 경희대, 성신여대 영문학 강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 역서: "포스트모던 사상사"(공역, 현대미학사, 2000), "안티고네의 주장"(동문선, 2005). 논문: "몸과 여성 정체성: 수잔 보르도와 주디스 버틀러",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정체성 이론", "주디스 버틀러의 환상적 젠더 정체성과 안젤라 카터의 '서커스의 밤' 연구".
경희대 영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현재 동대학교 관광영어통역학과와 성신여대 영문학과, 한신대 영문학과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경희대 인문학 연구소,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한국여성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정체성 이론", "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여성주의로 읽어본 대중문화"(공저), "페미니즘과 정신분석"(공저), "새 여성학 강의-한국사회, 여성, 젠더"(공저), "여성의 몸-시각, 쟁점, 역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안티고네의 주장", "포스트모던 사상사"(공역)등이 있다.
조현순
영문학 비평 전공. 경희대 영문학 박사. 현재 경희대, 성신여대 영문학 강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 역서: "포스트모던 사상사"(공역, 현대미학사, 2000), "안티고네의 주장"(동문선, 2005). 논문: "몸과 여성 정체성: 수잔 보르도와 주디스 버틀러",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정체성 이론", "주디스 버틀러의 환상적 젠더 정체성과 안젤라 카터의 '서커스의 밤' 연구".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와서, 버틀러의 인용이 조현순/조현준의 인용보다 좀 더 말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앞뒤 맥락으로 볼 때 인구 중 10%는 성 염색체만으로 성별을 결정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보이는 데 역시나 AIS처럼 XY 염색체를 가졌지만 생식기의 모양이 여성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역시 10%까지는 안될 것 같다. 그래서 1987년 셀에 실린 문제의 논문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10% 얘기는 아무데도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는데 조현순/조현준이고 버틀러고 10% 얘기는 한 구절도 나오지 않는다. 다행히도 검색이 되서 검색을 해보니 "10%"라는 말은 실험 절차 설명 중에 "10% dextran sulfate"라고 나온 것 외에는 한 마디도 없다. "percent"라는 표현은 아예 없다. 후덜덜해서 버틀러의 책을 다시 읽어보니 이하의 내용은 Fausto-Sterling의 "Life in the XY Corral"과 이 논문에서 인용된 두 논문에서 인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파우스토-스털링의 논문을 찾아냈다. 읽어보니 버틀러 역시 페이지의 논문을 직접 읽은 건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버틀러가 페이지를 인용하는 대목은 파우스토-스털링이 인용하는 대목과 거의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딱 하나, "10%"만 빼고. 그럼 도대체 이건 어디서 나온 얘기야?!
아니 이런 신공은 라캉만 쓰는 줄 알았더니(한 편의 만담 : 라캉의 인용 참고) 덜덜덜. 버틀러가 인용했다고 밝힌 논문 셋을 모두 첨부해두니 한 번들 보시길. 혹시나 내가 못 보고 지나친 것이기를 빈다.
a0007594_Page_et_al_1987.pdf
a0007594_Fausto-Sterling_1989.pdf
a0007594_Eicher_Washburn_1986.pdf
※ 2009년 03월 25일 00시 20분 추가: "10%"의 진상이 밝혀졌습니다. 기불이님의 글을 참고하세요. 아이고 머리야.
# by | 2009/03/24 19:13 | 유사학문 | 트랙백(2) | 핑백(2) | 덧글(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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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0% 의 진실: 말이 몇 다리를 건너면 어떻게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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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미국인구의 10% 가 게이?
주디스 버틀러의 10% "1987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페이지 박사는 현대과학으로도 전체 인구 중 10%에 이르는 사람들의 XX염색체와 XY염색체를 분명하게 밝힐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현재 미국의 경우, 동성애자 비율이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지만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조현순, '여성성과 젠더 정체성', "새 여성학 강의" 개정판, 동녘, 94쪽" 페이지박사가 미국인구의 10% 가 게이라는 소......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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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저런 글을 쓰는데도 박사타이틀이 유지되는건가요? -_-;
(저 사람 글은 garbage가 틀림 없으니 머...)
저걸 다 확인해 보는 사람은 미쿡에도 없단 말인가.
좋은 글 잘봤습니다.
함량미달의 교수(인간)는 어디에나 있는 법.
3줄요약
1. 페이지는 10% 관련 이야기한 적 없다 (불임남성의 10% 이야기는 우연의 일치)
2. 버틀러는 특별히 잘못한 게 없다.
3. 조현순/조현준 이 바보.
내 생각에는 그냥 버틀러 책에 나온대로 옮겨쓰고 출처를 밝혀줬으면 아무 일이 없었을 것 같은데 뭣하러 저런 오버를 했는지...
Gender Trouble p.145-146페이지에 나온 정확한 문장은 이렇습니다.
"Although the pool that Page and his researchers used to come up with this finding was limited, the speculation on which they base their research, in part, is that a good ten percent of the population has chromosomal variations that do not fit neatly into the XX-female and XY-male set of categories."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speculation, in part, a good ten percent of...와 "the" population입니다. 추정, 좋이 10%, 그 인구인데, 저도 지금 세 논문을 대충 훑어 보았지만 애당초 Page et al.은 몇 명이 풀이고 그 중 몇 명이 샘플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Kilobase라는 단위로만 표기가 되어 있는 것 같은데,여기서 뭔가 추정할 수는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Fausto-Sterling은 Page의 논문을 반박하는 입장이고, 버틀러도 마찬가지입니다. 페이지는 자신들이 조사한 사람들이 normal representative sex라고 했는데, 파우스토-스털링은 대체 그러면 애초에 그 사람들이 clinical case인지 알 리가 없잖냐...이런 겁니다. 그래서 버틀러는 지금 말하기를 Page는 이리저리해서 sex-determination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애초에 그 사람이 몇 명이나 조사했는지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추정하면 거의 인구의 10%는 좋이 성결정이 안 되는 사람들이겠다....라는 식의 뉘앙스로 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 10%는 불임인구나 염색체와 관련한 clinical case의 수로 추정한 게 아닐까...싶습니다만.)
저 문장 다음의 Hence....로 이어지는 문장도 그 사람들 주장이 그렇다, 이렇게 볼 수도 있고요.
그런데 버틀러의 그 다음 문단의 첫 문장은 바로,
"Unfortunately for Page, there was one persitent problem that haunted the claims made on behalf of the discoverty of the DNA sequence."죠.
그 후로는 계속 Page의 주장이 왜 유효하지 않은지를 위 논문들을 들어가며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파우스토-스털링의 논문도 페이지를 반박하면서 "나는 페이지를 공격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라고 endnote 6번에 약간 변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주디스 버틀러는 저런 "speculation" 자체에 동의한 적이 없죠.
두 줄 요약: 그런데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미 모기불님이 쓰신 얘기를 반복했다. (허탈.)
문제는 뉘앙스.
2) 제가 문제 삼는 건 "10%"라는 수치의 출처입니다
3) 인용이 아니라 버틀러 자신이 추산한 것이라면 근거가 있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