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07 15:58

라캉주의식 오바질 유사학문

그렇잖아도 2009 대학 새내기 추천도서 때문에 어이없던 차에 간행물윤리위 3월의 읽을 만한 책을 보니 또 황당하다. 김상환이 3월에 추천한 책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다. 책도 별 문제가 없고 추천평도 큰 문제가 없는데 도입하는 문단에 아주 황당한 구절이 있다. (굵게 표시한 부분)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속담은 어떤 지각이론을 담고 있다. 그것은 시각이 청각보다 우월하다는 이론이다. 조금 더 비튼다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백 가지 말, 백 가지 설명이 하나의 이미지만 못하다. 백 가지 이야기도 어떤 시각적 이미지로 수렴되지 못하면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성을 물의 이미지에 담아 설명했다. 이것은 우리가 통상 근대성에 대해 가져왔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계몽, 이성의 빛 등과 같이 근대성을 표현하는 말들은 오히려 밝은 불의 이미지를 중심에 두고 있지 않은가.

(하략)

http://www.kpec.or.kr/Site/web/sub_frameView.asp?menuKMCD=KP0062&selKMCD=KP0068&BKNO=870

내가 라캉주의자나 그 부류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오바질" 때문이다. 이들의 오바질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라캉, 오오 라캉" 이러면서 무슨 '현자의 돌'이라도 발견한양 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줍잖은 이론 타령이다. 김상환이 새내기 추천도서에서 한 오바질이 전자라면, 3월의 추천도서에서 한 오바질은 후자에 해당한다.

사실 위의 문단에서 "폴란드 출신의.." 앞에 나오는 문장들은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성을 물의 이미지에 담아 설명했다. 이것은 우리가 통상 근대성에 대해가져왔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계몽, 이성의 빛 등과 같이 근대성을 표현하는 말들은 오히려 밝은 불의 이미지를 중심에 두고있지 않은가."만 해도 충분히 좋은 도입이다. 문단 하나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얘기가 따로 놀아서 글의 구성을 헤칠 뿐이다. 게다가 이 짧은 글 속에도 오류가 두 가지나 있다.

우선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즉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은 시각이나 청각하고는 별 관련이 없다. 여기서 대조되는 것은 문(聞)과 견(見)이지 청(聽)과 시(視)가 아니다.이 말은 전한 시대의 장군 조충국이 한 선제에게 전장(戰場)이 될 지역을 '직접' 보고 와서 전략을 상주하겠다면서 한 말이다(한서 조충국전). 다시 말해 이 속담은 간접 경험보다 직접 경험이 중요하다는 뜻이지 시각이 청각보다 우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민망한데 김상환이 속담에서 엉뚱한 '지각이론'을 끌어내고 다시 '비틀기'까지한 결론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시각은 청각보다 결코 우월하지도 않을 뿐더러 시각적 이미지가 백 가지 이야기보다 더 잘 기억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아래 그림을 보자.

언뜻 보기에는 아무 의미없는 그림처럼 보이지만 잘 보면 가운데서 약간 오른쪽에 개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왼쪽 위에는 나무와 그림자가 있다. 잠깐 화면에서 눈을 떼고 종이에 위의 그림을 '똑같이' 그려보자. 그리고 다시 비교해보라. 아마 비슷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와 나무, 그림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기억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실험에서 사람들은 그림을 그 자체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의 이야기를 기억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예를 들어 교실에서 칠판에 지도를 그려놓고 수업하는 교사의 그림을 보여준 다음에 잠시 후 칠판의 내용을 지도에서 수학으로 바꾸면 사람들이 알아차리지만 교사의 옷차림을 바꾸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교사의 옷차림은 그림 속의 '이야기'하고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에 해당하는 동영상(변화맹)을 예전에 올린적이 있는 데 한 번들 보시라.

또 다른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문자 두 개를 연속으로 보여주고 같은 문자인지 아닌지 버튼을 눌러 응답하게 했다. 예를 들어 A를 보여주고 좀 있다가 A를 보여주면 '같다' 버튼을 누르고 B를 보여주면 '다르다'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그런데 영어 알파벳에는 똑같은 '에이'가 대문자 A와 소문자 a 두 가지가 있다. 당연히 대문자 A를 보여주고 소문자 a를 보여주면 대문자 A를 보여주는 경우보다 반응시간이 더 걸린다. 다시 말해 시각적 차이가 판단 과정에 차이를 일으킨다. 그런데 이 차이는 단지 '2초'간만 존재한다. 무슨 말이냐하면 대문자 A를 보여주고 나서 2초 후에 소문자 a를 보여주면 대문자 A를 보여준 경우와 판단 시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를 두고 무양상적 부호화(amodal coding)라고 한다. 간단히 말해 대문자나 소문자같은 시각적 양상이 없어지고 의미만 남는다는 것이다. 오래 머무르기는 커녕 불과 2초, 그것이 이미지가 머무르는 시간이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 짧은 시간 내에 그림의 양상(modality)은 사라지고 의미있는 이야기만 기억에 남는다. 이것은 또 다른 실험으로 지지된다. 사람들에게 O-O 와 같은 간단한 그림을 보여주면서 '아령'이라고 말해준 다음에 좀 있다가 아까 본 그림을 정확히 그대로 그리라고 하면 거의 비슷하게 그린다. 그런데 '안경'이라고 말해주면 사람들은 O-O에서 가운데 직선을 곡선으로 그린다. 분명히 '정확히 그대로' 그리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결론적으로 김상환의 "백 가지 이야기도 어떤 시각적 이미지로 수렴되지 못하면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말은 완전히 틀렸다. 오히려 "어떤 시각적 이미지도 이야기로 수렴되지 못하면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해야할 것이다.

글을 마치기 전에 김상환이 라캉의 "세미나 11"을 2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추천하면서 쓴 글을 읽어보자. 김상환의 오바질이 이미 경지에 다달았음을 잘 보여준다.

무의식의 발견은 현대 인문학에 대하여 신대륙의 발견과 같다. 정신분석은 인문학의 아메리카 합중국이 되었다. 무의식의 대륙은 인문학의 다양한 혈통, 전통, 언어, 상품과 재화가 뒤섞이는 거대 시장으로 발전했다. 인문학의 근대와 탈근대는 무의식의 이론이 창조적 융합의 용광로로 거듭나는 시점에서 가장 명확하게 식별된다. 그것은 정신분석이 철학에 버금가는 분석의 능력과 종합의 역할을 획득하는 시점과 일치한다.
정신분석에 이런 위상변화를 가져온 거인이 자크 라캉이다. 그는 정신분석을 인문학 전체의 미래를 향도할 만한 전위 학문으로 재탄생시켰다. 라캉의 언어 속에서 재탄생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그 극적인 재탄생 과정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 책이 이번에 번역된 『자크 라캉 세미나 11권: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개념』이다. 국제정신분석학회(IPA)에서 파문을 당한 1963년 라캉은 이론적 홀로서기의 길로 나아갔고 구조주의자로 평가되던 자신의 과거와도 과감하게 결별했다. 이 책의 부제가 암시하는 것처럼 이런 새 출발은 정신분석의 원천과 토대에 대한 재검토 작업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드디어 이런 위대한 변신과 도약의 드라마를 잘 다듬어진 우리말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라캉 정신분석의 보물 상자를 누구라도 쉽게 열 수 있는 가슴 벅찬 순간이 왔다. 난해한 라캉의 문장을 자연스럽고 명료한 우리말로 옮겨놓은 번역자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라캉은 이 세미나를 전쟁터의 기지를 구축하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다. 이번의 책과 번역자들의 후속작업은 국내 정신분석 연구와 대중화에 수없는 승리와 진전을 가져올 항구적 기지의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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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준식이 2009/03/07 19:43 # 삭제

    킁.. 인문학 전체의 초석이라니.. -ㅅ-.. 아이추판다님이 말씀하시는 라캉주의자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보면 과학과 같은 다른 것의 권위는 부정하면서도 자기 이야기에는 대단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 같아요.
  • 2009/03/07 22:09 # 삭제

    비판 없이 글 읽는 사람들은 인용된 저딴 글 보면서 오오오~~ 할 겁니다. ㅋㅋㅋ
    갖다붙이기의 달인들 현학적으로 글쓰는 병맛 인간들.. 인문학 쪽에 많죠.
    딱히 일일히 지적하기도 귀찮고.
  • ghistory 2009/03/08 06:34 #

    인문학 전공자지만 철학 전공자는 아닌 제가 보니까 인문학의 다른 하위 분과들을 모독하고 무시하고 싶다는 선언으로밖에 안 보이는군요.
  • EE 2009/03/08 13:51 # 삭제

    Ghistory/서로 다른 근거를 기반을 둔 주장이 부딪치고 있는데 까지 않을 이유가 없죠. 공존할 수 없는 학제간의 논쟁인걸요. 그리고, 이 정도 비판가지고 모독이나 무시 같은 단어를 쓰시는 건 생리적 불쾌함에서 즉각적으로 튀어나온 오버로 밖에 안보입니다.
  • 아이추판다 2009/03/08 17:32 #

    ghistory, EE // 두 분이 가리키는 대상이 서로 다른 것 같습니다만..
  • ㅋㅋ 2009/03/09 07:11 # 삭제

    주인장님 대단하십니다... 열등감이 아주 대단하세요. 열등감으로 이루어진 나르시시즘이라고나 할까요? ㅎㅎㅎ
  • 흠좀 2009/03/09 19:14 # 삭제

    라캉주의자들은 이걸 열등감으로 해석하는군요.

    그건 그렇고 취업은 하고 사십니까?
  • 학생 2009/03/21 05:21 # 삭제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아령과 안경 실험에 대해 궁금해서 글 남깁니다. 안경이나 아령이라고 말해준 다음 얼마나 시간이 지난 뒤에 똑같이 그림을 그리게 했나요? 정확한 실험방법이 나와있는 문서나 관련논문을 웹에서 찾아 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안경을 그릴때도 가운데를 곡선이 아니라 직선으로 그리는 습관이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제가 그렇습니다^^;) 이럴 경우는 실험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가 않네요. 혹시 무양상적 부호화를 지지하는 또 다른 실험을 소개해주실 수 있는지요?
  • 아이추판다 2009/03/21 14:53 #

    지금 책이 학교에 있어서 자세한 얘기는 월요일에 따로 포스팅하겠습니다.
  • 혼琿 2009/06/27 10:51 #

    검색하다 들렀는데 블로그에 볼 게 많네요. ^^
    아이추판다님께서 비판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인문학자 주로 철학자에게 있는 것 같은데, 과학에서의 정립한 개념을 무리하게 고정해서 사변화하는 점을 지적하시는 것 같네요. 인문학이 요즘 시대에 뒤쳐지고 있어서 여기저기서 크로스오버하는 데 그걸 염두에 두고 공부해야겠습니다.
  • -_- 2010/01/07 23:35 # 삭제

    아아 김상환선생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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