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 남태평양에서 모래에 섞인 열매를 골라먹고 사는 원숭이들을 상대로 실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놈들은 태어나서부터 그냥 일일이 손으로 모래에서 골라먹는 게 일상이었기에 평소 불편하다는 생각조차 있을 리가 없었겠죠. 어느 날씨 좋은날. 한 문화인류학자가 주위에 살고 있는 원숭이들을 모조리 모아 놓고 직접 시범을 보였답니다. 열매와 모래가 뒤섞인 것을 한움큼 집어서 물속에 넣고 흔들어서 모래를 가라앉힌 후 남은 열매를 먹는 시범이었지요. 출처: 아시아경제
일본의 영장류학에는 서구와 다른 독자적 전통이 있었다. 하나는 개체마다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먹이 주기다. 이것은 원숭이들을 산에 사는 신성한 존재로 보았던 일본의 전통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서구의 연구자들은 동물들에게 개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이름을 붙인다든지 하는 번거로운 짓을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일본 연구자들을 따라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개체의 개성을 깊이 관찰하게 되었다. 반대로 이제는 일본 연구자들도 야생에 사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다.
어쨌든 (수 년 전이 아니라) 1950년대 (남태평양이 아니라) 일본의 코시마 섬에서 있었던 일이다. 코시마 섬에는 일본원숭이(Japanese macaque) 무리가 살고 있었다. 지금도 살고 있지만. (문화인류학자가 아니라) 영장류학자들이 (모래에 섞인 열매를 골라먹고 사는 원숭이들을 상대로 실험을 한 게 아니라) 그들의 연구 전통대로 이웃 농가에서 (열매가 아니라) 고구마를 사다가 원숭이들에게 먹이로 주면서 연구를 시작했다. 밭에서 캔 고구마를 바로 가져다 주었기 때문에 이 고구마에는 (모래가 아니라) 흙이 묻어 있었다. 아 물론 해변가에 놔뒀으니 모래도 묻었지만. 그러던 중에 (원숭이들을 모아놓고 시범을 보인게 아니라) 어린 암컷 원숭이 한 마리가 물로 흙을 씻어내고 고구마를 먹는 법을 알아냈다. 그러자 다른 원숭이들이 그걸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문화' 영장류학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이제는 당시의 영장류학자들도, 고구마를 씻어먹던 원숭이들도 다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 원숭이의 후손들은 여전히 고구마를 씻어먹고 있다. 그런데 진짜 재밌는 건 여기서부터다.
이 '코시마 섬의 고구마 씻어먹는 원숭이'가 유명해져서 관광객들이 몰려 들었다. 50년전 영장류 학자들을 안내했던 여관집 딸이 그 여관을 물려받아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데 내 기억으로는 이 여관에서 원숭이들한테 고구마를 사다 준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위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더이상 고구마에 흙이 묻어있지 않다! 그렇다. 저 고구마는 시장에서 사온 깨끗한 고구마다. 그럼 도대체 이 원숭이들은 왜 고구마를 여전히 씻어먹고 있는거냐?


p.s. 이 얘기에는 다양한 변종들이 떠돈다. 심지어 100번째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먹기 시작하자 다른 섬에서도 갑자기 이런 행동이 출현했다는 '괴담'도 도는데 당연 구라다. 여기에 대해서는 silverbird님의 백번째 원숭이,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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