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장의 신호

2071님의 "우리편 전문가"를 보면서 "발자국만 보아도 사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다."라는 표현을 보고 무릎을 탁쳤다. 내가 지난 1년간 라캉주의자들이 쓰는 댓글을 보면서 느낀 게 바로 그것이다. 이들에게는 한윤형님이 말한 "맥락에 맞지도 않는 전문용어(?)의 범벅", "논점이나 논거, 주장의 선후야 어떻든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고 얼마나 많이 아는지를 자랑하고 상대방을 까내리는 것이 한국적인 논쟁의 방식"이 매우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요즘에 내 블로그에 열심히 댓글을 다는 누가 "인간의 인식은 언어에 있는가 아님 전기장의 신호에 따른 반응인가"라는 게 문제의식이라고 한다. "전기장의 신호"? 이런 말도 있나? 뇌 활동을 가리키는 말 같기는 한데.. 그래서 구글에 검색을 해봤다.

"전기장의 신호"


그러면 그렇지. 혹시 한국어에만 없는 말인가해서 "signal of electric field"로 검색을 해봤다.

오오 76개나 있어. 그런데 brain을 같이 넣어보면 어떨까?

뭐 자기 나름의 독특한 표현을 쓸 수 있기는 한데 아무리 그렇다쳐도 뇌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뇌 활동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도 않는다. 다른 건 둘째치고 화학적 시냅스(chemical synapse)는 어쩔건데?

라캉주의자들의 문제는 자기들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과학과 어떤 구도를 자꾸 만들려고 한다는 데 있다. 하긴 과학하고만 그러는 게 아니지. 얘네들이 말하는 인간은 도대체 어느 별 나라 인간인지 잘 모르겠다. 자꾸 남더러 이걸 봐라 저걸 봐라 하기 전에 라캉주의자들은 기본적인 교과서라도 좀 보기 바란다. 하긴 기본부터 차근차근 공부할 줄 아는 애들이었으면 저런데 빠져들지도 않겠지만..

아 지겹다 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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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추판다 | 2009/01/24 20:17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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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miriya's me2.. at 2009/01/29 18:52

제목 : 미리야의 생각
라캉주의자의 댓글 // 아.. 진짜 후덜덜한듯.. 나는 저런거 보면 머릿속이 몽알몽알해지면서 스크롤 휙 내려버린다. 저 밑에 베른카스텔이라는 사람 댓글도 보고있으면 현기증이 난다.. 나는 논리 이전에 가독성이 더 우선한다.. 아아 읽기 싫고 모르겠다 ㅠㅠ...more

Linked at Null Model : 라캉,.. at 2009/02/19 19:32

... 학적 제어론 (2)아기들의 시야 : 라캉의 거울단계에 대해18개월한 편의 만담 : 라캉의 인용생의학/보건 저널인 Medline때려달라면라캉주의자들과 조중동라캉주의자들과 창조론자들전기장의 신호라캉주의자들에게 필요한 것서로를 바보로 만드는 짓거리 ... more

Commented by 별아저씨 at 2009/01/24 20:36
원래의 표현은 "발톱만 봐도 사자임을 알 수 있다"인데, 베르누이가 낸 변분법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익명으로 온 답안을 보고 베르누이가 말했다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사자란 뉴턴을 말합니다.

Commented by 알튀세 at 2009/01/24 21:07
아 이건 뭐야-- 꼬트리 잡기인가? 아 졸라 우숩다 ㅋㅋㅋㅋ 결국 이딴식으로 빠질줄 알았다. 내가 그건한 맥락은 정확히 맞은 거다. 아닌가? 아는척이라는건 소위 맥락에 맞지 않는 단어를 허풍으로 썼을때 나오는 개념이다. 근데 맥락에 맞는 것들을 쓰면 허풍이 아닌거지? 난 뇌 과학을 공부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규정상의 오류를 비판한다면 뭐라할 생각은 없다. 관심있는 논문 조금 끄적거리는 수준이니까.. 근데 이건 뭐-- 에효... 질이 떨어진다. 시냅스 정도를 꺼내놓고 교과서니 뭐니 개소리 하는건 뭔가? 왜? 뉴런과 수상돌기는 안 나오고? 앙? 아.. 논쟁 자체의 의미를 잃어 버렸다.

자 졸라 쉬운 문제다. 인간의 인식은 언어 즉 구조 또는 사회적 관계, 라캉의 언어로 상징계에 있는가 아님 뇌의 전기장의 신호 즉 뉴런에 활동에 있는가. 자 여기서 부터 시작하자. 당신이 거론할 말한 학자는 patrick haggard같은 학자들이다. 자 여기서 시작하면 되는 거다. ABC도 모르나? 자꾸 헤게논리 동원할래?

위 글에서 보여지는 헤게모니는 뭐냐, 뻔하다. 역시나 저번처럼 대립 관계를 잘난척하는 라캉주의자로 만들어 놓고, 그 대립관계를 지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심어주려고 개 뻘짓을 하는 거다. 낚일 사람들이 보인다. 이건 과학적 태도가 아니라, 언어적인 헤게모니 논리다. 이게 과학주의인가? 지나가던 개가 웃는다. 이정도 교양으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 낚았나? 이런게 바로 정치적인 태도다. 마치 빨갱이로 몇퍼센트즈음 먹고 들어가려는 우익단체들 말입니다. 답이 없지. 빨갱이라는데ㅋㅋ

주인장의 몇개의 버전을 훑어보면 비슷한 논리로 토론을 진행하고 있음이 보인다. 종교단체의 비 이성적인 태도나, 아님 몇몇개의 비 과학적인 언사들을 늘어놓고, 그 대립관을 절대화한다. 고로 이 구도 자체에서는 라캉주의는 그 자체의 사상적 문제보다, 오히려 주인장이 설정한 그 프레임에서 재단될 수 밖에 없는 거다. 왜 라캉은 없고 개소리만 난무하는가? 주인장의 저런 태도야말로 모든게 적대의 문제라는 정치학자 라클라우의 정확한 증명이 아니겠는가?ㅋㅋ

아예 라캉에 대해서 모른다고 스스로 실토를하는게 어떨가? 타자라는건 접근 불가능성에 의해서 판타지로 구성된다는 라캉의 가르침은, 주인장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꼴이다. 라캉에 대하는 모르는만큼, 그것에 대한 신비화 또는 이데올리기화하는 것은, 라캉주의의 문제의식 자체가 아닌가? 주인장에 말에 따르면 모른게 라캉 때문이다. 아 졸라 우숩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프로이트적 의미로 페어시붕(Verschiebung, 보통 정신분석학에서 ‘전치’로 번역됨)을 뜻하는 ‘대체’라는 말이다. 나치즘은 계급투쟁을 인종적 투쟁으로 대체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진정한 성격을 흐리게 만들었다. 공산주의가 나치즘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무엇이 변화했는가를 보는 것은 형식을 통해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서 나치의 이데올로기가 신비화된다. 즉 정치적 투쟁이 인종적 충돌로 화하며, 사회구조에 내재적인 계급적대는 아리안 공동체의 조화를 교란하는 이질적인 (유태인의) 육체들의 침입으로 환원된다.

슬라보예 지젝, -두 개의 전체주의The Two Totalitarianisms


즉 주인장에 유태인은 바로 라캉주의자인 것이다.
Commented by 알튀세 at 2009/01/24 21:09
이딴식이면 싹 지우고 간다. 재밌을거 같아서 심심풀이로 참여좀 했더니 블로거가 영 아니네--
Commented by 어부 at 2009/01/24 21:26
Commented by 알튀세 at 2009/01/24 21:55
자 이게 마지막이다. 주인장의 역겨운 태도를 보니 더이상 이 블로그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위에서 patrick haggard는 fMRI로 뇌의 단층촬영의 결과, 운동 원인이 내가 운동을 한다는 마음을 먹은것에서 나온게 아니라, 두뇌의 물질 변화를 통해서, 즉 자아라는 내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두뇌의 변화에 의해서 운동을 할 마음이 생긴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러므로 자아라고 불릴 나는 존재하지 않는 구성적인 것이라는게 연구의 결과다. 그러나..

적어도 정신분석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인문학자라면 그렇다면 한가지 의문을 느껴야할 지점이 있다. 왜 그렇다면 인간은 자아 즉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 냈는가. 하나님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 삼아야하 것은 왜 인간이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상정했느냐에 대한 언어적 사회적 통찰이다. 그러므로 슬라보예 지젝은 정신분석 자체의 묘미를, 예컨데 신경증의 원인이 유전자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나서라도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 존재는 대체 무엇이길래 인간을 그 자체로 존재하게 만드는가. 만약 라캉주의자들이라면, 이 존재야말로 인간의 고유한 본래적 특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존재라는 것은 단순히 모든것을 자신으로부터 소급할 그런 존재가 아니라, 사회와 자아간의 불일치, 모순, 결핍을 포착하고 다시 재정립하는 그 자체이다. 라캉에게 주체는 단지 영혼이 있다!라는 식의 종교적인 태도인게 아니다. 오히려 그 불일치를 서사적으로 메꾸는 그 자신, 그것이 바로 라캉적 주체이고, 분열된 주체의 핵심적인 통찰인 것이다.

고로 이걸 마치 데카르트적인 이원론으로 설명하는건 온당치 않다.

데카르트가 고기토즉 생각하는 나를 상정했을 때, 우리는 그에게서 아주 중요한 통찰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가 스스로 방법적 회의의 끝으로 접어들었을 때, 그 끝에서 근대 주체의 탄생이라는 혁명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현실과 나의 불일치를, 그 자체를 서사적으로 온전한 자신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주체 그 자신이다. 고로 주체의 탄생은 라캉이 미러 스테이지에서 설명했듯이, 상징계로 들기위한, 그 자체의 끈, 또는 서사적 자기인 것이다....

고로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의 운명이 유전자와 뉴런에 의해서 결정지어져 있다고 해도, 결국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존재로서 살게하는 것은, 동물이 가지고 있지 않는, 그러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힘이다.
Commented by 알튀세 at 2009/01/24 21:59
그리고 그 언어, 구조, 상징계를 철저하게 파려고 했던게 라캉이었다. 이 언어라는 것은 인간이 존재 자체로, 사회적 관계의 그물망으로 들기위한 것이며, 그것에 들기위해서 주체는 거세라는 과정을 거친다. 그 거세는 상징계에 들기위한 향유의 포기이며, 동시에 언어적 세계로서의 자신을 구성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정신분석, 특히 라캉 정신분석이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도파민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뉴런이 어떤 체계를 가지고 있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즉 무의식에 관한 과학이라는 라캉의 주장은, 바로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Commented by 알튀세 at 2009/01/24 22:00
http://blog.naver.com/musicjava?Redirect=Log&logNo=7659837

슬라보예 지젝 -유전공학에서 정신분석학으로-
Commented by 큐브 at 2009/01/25 03:59
그냥 아이추판다님 블로그에 가끔 들르는 사람이지만, 윗분 "이걸로 마지막이다"[...살라딘?] 라고 말하시는 것을 제가 최소한 두 번은 본 거 같네요. =P
Commented by 큐브 at 2009/01/25 04:03
..라고 말하고 이전 덧글을 찾아보니 다 사라졌군요.... on_
Commented by at 2009/01/26 07:40
알튀세 진짜 안습이네.. 창피한 줄 좀 알았으면.
Commented by asdf at 2009/01/26 09:59
저래놓고 '훗 내가 이겼다 낄낄낄' 이라고 자위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만 안구에 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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