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15 01:06

인지부조화 이론과 그 대안(2) 인지과학

인지부조화 이론과 그 대안(1)

인공신경망 중에 홉필드 네트워크(Hopfield network)이라는 것이 있다. 아래 플래시로 간단하게 해볼 수 있는데 TRAIN을 누르고 마우스로 칸들을 클릭해서 흰색과 검은색으로 패턴을 몇 개 학습시킨 다음 RUN을 누르고 원래 입력한 패턴과 약간 다른 패턴을 입력해보면 원래 패턴을 복원해준다.


예를 들어서 아래와 같이 A, B를 학습시킨 다음에 RUN을 눌러 A에서 점 몇 개를 지우고 입력해보면


짜잔~

홉필드 네트워크는 꼭 원래 학습한 것만 복원해주진 않는다. 아래처럼 X와 Y를 학습시킨 다음에 O를 입력해보면 X도 Y도 O도 아닌 해괴한 모양을 만들어낸다.




홉필드 네트워크의 원리는 단순하다. 이 네트워크는 점들 사이의 '관계'를 학습한다. 한 점이 까만 점일 때 다른 점도 까만 점이거나 한 점이 흰점일 때 흰점이라면 두 점의 관계는 양의 관계다. 반대로 한 점이 흰점일 때 다른 점이 까만점이라면 두 점의 관계는 음의 관계다. 새로운 입력이 들어오면 이렇게 학습한 관계에 최대한 부합하는 형태로 점들의 패턴을 바꾸어나가다가 더이상 개선할 수 없게되면 멈춘다. 위의 네트워크는 단순하기 때문에 거의 한 두 단계면 멈추기 때문에 그냥 순식간에 원래 패턴을 찾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인지부조화 얘기하다말고 갑자기 왜 딴 소리냐 싶겠지만 가만히 보면 인지부조화 현상과 비슷한 원리다. 앞서 말했던 전기 충격을 준 다음 지루한 토론을 듣고 평가하는 실험의 경우 실험참여, 전기충격, 토론평가 사이에는 아래와 같은 관계가 있다.




토론이 재밌다면 실험에 참여할만한 가치가 있고(양의 관계) 또 큰 전기충격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양의 관계). 하지만 전기충격을 받으면서 실험에 참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음의 관계).

다른 실험이라고 말하고 전기 충격을 주는 경우에는 전기충격과 실험 참여, 토론 평가 사이의 관계가 사라진다. 그대신 두 가지 실험 전체에 대한 평가가 생긴다. 그림으로 그리면 아래와 같다.




이런 모형을 제약 만족 모형(constraint satisfaction model)이라고 한다. 주어진 관계들을 일종의 제약 조건이라고 보면 이런 조건을 최대한 만족시키는 답을 찾아가는 방식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예로든 플래시처럼 이런 종류의 관계들을 계산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고 관계의 강도와 실험에 참여할 동기, 토론에 대한 평가, 전기 충격의 양 등을 적절한 수치로 입력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실험 결과와 거의 똑같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Shultz, T. R. &, Lepper, M. R. (1996). Cognitive Dissonance Reduction as Constraint Satisfaction. Psychological Review, 103(2), 219-240. 왼쪽이 실제 실험 결과, 오른쪽이 시뮬레이션 결과.


제약만족모형은 여러 가지 복잡한 제약 조건 속에서 사람들이 판단하고 추론하고 의사결정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널리 쓰이는 모형이다. 인지부조화 이론은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자기합리화와 자기기만에 빠져있다는 식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제약만족이론을 통해 모형화된 인지부조화 이론은 이런 현상이 특수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주어진 제약 조건 내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설명을 찾아내는 사고의 결과라는 것을 함의한다. 다시 말해 사고방식 자체가 비합리적이라기보다는 주어진 제약조건들, 이미 학습한 관계들, 상황의 특수성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인터넷에 경제 관련 글을 쓰던 사람이 구속되고 신상정보가 까발려지는 수모를 겪은 일이 있었다. 인터넷에선 이 사람을 두고 몇 가지 왈가왈부가 있다. 역시나 "음모다. 나의 미짱은 이렇지 않아." 뭐 이런 반응도 있고 "학벌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이런 반응도 있다. 그 사람 말 믿고 거액의 옵션거래라도 했다가 큰 손해라도 입었든지 아니면 어느 교수처럼 "국민의 경제교사" 뭐 이런 소리라도 했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인지부조화를 일으킬만한 무슨 일을 한 건 아니다.

제약만족모형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살펴보자. 이 사건의 경우 사람마다 이명박에 대한 평가, 강만수 경제팀에 대한 평가,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 학벌에 대한 생각 등등의 인식과 이 인식들 사이에 기존에 학습된 관계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관계들을 최대한 만족시키는 형태로 인식을 수정한 결과가 음모론, 학벌무용론 등의 여러 가지 입장으로 수렴한 것이 현재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반응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지부조화 이론의 경우와 달리 제약만족모형은 직접 수치를 입력해가며 모형을 돌려보기 전에는 뭐가 어떻게 될지 짐작하기가 좀 어렵다. 원래는 한 번 돌려보려고 했는데 저 플래시 만드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써서 생략)

또 제약만족모형에서는 인지부조화이론과 달리 토론을 들은 후에 따로 전기충격을 준 경우처럼 직접적으로는 관계가 없지만 간접적으로 관계있는 인지들이 복잡한 동력학적 과정에 따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러다보면 이런 인지부조화도 아니고 뭣도 아닌데 뭐 어쩌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야릇한 반응도 나오고 그럴 수 있다.

써놓고보니 이 글도 '뭐 어쩌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반응'이긴 마찬가지군. 하여간 또 간만에 인지부조화라는 말이 나오길래 한 번 써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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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ull Model :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 2009-05-02 23:09:24 #

    ... 관점에서 설명하면서 여러 가지 사례들을 소개한다. 예전에도 한 번 얘기했지만 인지부조화를 자기정당화로만 보기에는 좀 문제가 있다. (인지부조화 이론과 그 대안 (1), 인지부조화 이론과 그 대안(2)) 어쨌든 재미있는 사례를 많이 소개하고 있어서 즐겁게 읽고 있는데, 위의 대목을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와 소개해본다. ... more

덧글

  • 피그말리온 2009/01/15 02:10 #

    제약만족모형 재밌네요.....
    음.....그러니까 어떤 부자가 병원에 실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평소 그 부자가 잘먹고 잘사는 모습에 관심을 가지던 사람은 급환이나 지병 같은걸 생각하고, 그 부자가 어떻게 돈을 모았을까 관심을 가지던 사람은 피습이나 사고의 가능성을 생각하는.......그런 정도로 이해되네여...ㅡㅡa
  • 준식이 2009/01/15 18:46 # 삭제

    2빠ㅋㅋ 유익했습니다.
  • feveriot 2009/05/02 23:58 # 삭제

    아이추판다님께서 쓰신 내용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은데 어떤 걸 참고하면 될지요?
    만드신 플래쉬의 계산 원리가 어떤 건지지도 참 궁금합니다 ^^;
  • 아이추판다 2009/05/03 00:24 #

    글 중간에 있는 Shultz & Lepper (1996)을 보시면 됩니다. 플래시의 경우엔 인터넷에서 Hopfield network를 찾아보시면 자료가 많이 있습니다. 홉필드 네트워크의 경우엔 조만간 한 번 포스팅을 하지요.
  • feveriot 2009/05/03 23:16 # 삭제

    답변 감사합니다. 신경망 모델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습니다 ^^;
  • 한단인 2009/05/03 04:45 #

    아..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에서 인지부조화 이론 부분 읽었을 때 말씀하신 예와 설명을 읽으면서 조금 이상어색(응?)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는데 (그게 다인가? 라는 느낌?) 그게 구체적으로 뭔지 정체를 알 수 없어서 '비전공자라서 이해를 제대로 못한건가 보다' 그랬지요. 그런데 그 느낌이 틀리진 않았던 거로군요.

    아참.. 제가 링크 신고를 여태 안한거 같군요. 올리시는 글들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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