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고 예쁘고 알 수 없는 뇌

기거렌처는 뇌영상 연구에 대해 다음과 같은 농담을 인용한 적이 있다. "연구자들이 뇌영상을 좋아하는 이유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좋아하는 이유와 같다. 비싸고, 예쁘고,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딱히 연구자들만이 아니라도 뇌영상은 확실히 우리를 매혹시킨다. 사람들에게 가상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에 대한 글을 읽게 하면서 한 집단은 글에 뇌 영상을 포함시키고 다른 집단은 포함시키지 않으면 뇌 영상이 포함된 글을 읽은 사람들이 연구 결과를 더 잘 믿는다. 아래 그림은 이 연구의 실험참여자들이 뇌를 촬영한 것으로 왼쪽이 뇌 영상이 포함된 경우, 오른쪽이 뇌 영상이 포함되지 않은 경우로 붉게 표시된 부분이 활성화된 영역..

이라는 식으로 뻥을 치는 것이다. 학습법이나 뭐 이런저런 유사심리학으로 사기쳐서 먹고 살려면 유용한 팁이다. 위의 사진은 점자를 읽을 때 시각장애인의 뇌 활성화 패턴이다.

사람들은 그냥 행동을 관찰하는 것보다 뇌를 관찰하는 게 뭔가 더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가 남들이 즐겁거나 화 난 걸 뇌를 관찰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듯이 마음에 대한 연구는 기본적으로 행동에서 출발한다. 뇌의 경우에도 결국엔 행동을 바탕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사람을 행동적으로 조작해 화나게 만든 다음에 뇌를 촬영해서 분노와 관련된 부위를 알아내는 식이다. 아무 것도 없이 덜렁 뇌만 가지고는 알 수 없다.

아예 행동없이 뇌만 가지고 A부터 Z까지 다 할 수도 있긴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C나 Java처럼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기계어로 바꾸는 과정을 컴파일, 그 역을 디컴파일이라고 하는데 신경 회로를 일종의 디컴파일해서 이 회로가 어떤 종류의 계산을 수행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 다시 말해 구조로부터 기능을 추론해내는 것인데 여기엔 큰 장벽이 있다.

예전에 어느 발표에서 듣기로 쥐의 뇌에 있는 신경회로 정보를 싹다 추출하면 그 용량 3페타바이트라고 했다. 1페타바이트는 1000테라바이트, 1테라바이트는 1000기가바이트. 즉, 3백만기가바이트다. 요즘 보통 가정용PC의 하드디스크 용량이 300기가바이트 쯤 되니까 PC 1만대 하드 디스크를 꽉채울 용량이고, 100Mbps 랜으로 최대 속도로 전송해도 10년쯤 걸릴 용량이다. 미국판 싸이월드라고 할 수 있는 페이스북에 사진이 100억장 올려져있는데 그 용량이 1페타바이트고, LHC에서 실험 4개를 하면 15페타바이트 정도 데이터가 나온다고 한다.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실험 데이터하고 쥐의 뇌 하나에서 나오는 데이터하고 분량이 비슷하다면 이건 감당하기 어렵다. 뭐 언젠가는 신경망을 스캐닝한 걸 바로 시뮬레이션 돌려서 행동을 예측하는 그런 시대가 오겠지만 당장은 좀 무리.

이런 계산적 장벽은 점점 생물학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고(분자생물학의 경우엔 이렇다고 한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생물학을 배우러 대학에 왔더니 컴퓨터만 배우더라" 뭐 이런 시대도 오지 않을까 싶다. (벌써 왔나?) 원래 기거렌처의 농담이 재밌다고 생각해서 쓰기 시작한 글인데 주제가 뭔지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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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추판다 | 2008/12/03 11:38 | 트랙백(2) | 핑백(3)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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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세리자와 박사의 괴수퇴.. at 2008/12/04 11:53

제목 : 이런저런
비싸고 예쁘고 알 수 없는 뇌 발로우가 한 말이라는데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비행이라는 행동에 대해 모른다면 날개라는 기관은 무척 이상해보일 것이다." 즉, 어떤 생물학적 기관에 대해 그 기관의 기능과 행동의 컨텍스트를 제외한 채 연구한다면 그것은 전혀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뇌연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예를 들어 뉴런이라는 세포의 행동, 뉴런들을 모아서 회로를 만들었을 때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비선형시스템이기......more

Tracked from blogring.org at 2008/12/14 15:44

제목 : 기거-으로 이어질 블로그링
기거-에 관한블로그를 요약한 것입니다....more

Linked at The race that kn.. at 2008/12/03 13:47

... p;Here and There Nothing to Sneeze At Scientific American Magazine - May 13, 2008 ● 참고글 : 비싸고 예쁘고 알 수 없는 뇌 by 아이추판다님 ... more

Linked at Null Model : 당신의.. at 2008/12/13 14:33

... 수 없다. 그 전에 두개골을 여는 것부터가 위험해서 사람한테는 곤란하다. 동물이라고 해도 관찰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이 모든 한계가 극복된다고 해도 비싸고 예쁘고 알 수 없는 뇌에서 말했지만 그 데이터를 계산하는 것 또한 난제다. 그러니 이런 mind-reading 기술은 범죄수사, 의료, 연구 등 여러 영역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겠지 ... more

Linked at solleo@den_type .. at 2009/02/10 10:58

... 영상을 전시하는 미술관 같은 곳에 갔다. 뇌영상 사진을 보면서 사실 가짜니가 자신이 전부 사기이고 뻥이었다고 털어 놨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다. 사실 예전에도 "비싸고 예쁘고 알 수 없는"을 읽고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데, 뭐 아무튼. 꿈 속에서는 좀 많이 허탈한 기분을 느꼈는데, BOLD랑 뇌활동이 "그래도 대충 비슷하다"는 가정이 이렇게 ... more

Commented by dhunter at 2008/12/03 11:56
한줄요약 : 승리의 짤방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2/03 22:07
그렇습니다
Commented by 가고일 at 2008/12/03 12:43
슬슬 기존의 컴퓨터 방식을 폐기해야 할 때가 됐는지도 모르겠군요....
양자컴퓨터를 만들던지...뇌 자체를 CPU로 쓰는 방안을 만들던지....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2/03 22:10
저쯤 되면 컴퓨터 이전에 전력부터 문제죠;;
Commented by Semilla at 2008/12/03 12:55
뭐.. clinical psychology phd 과정을 들으러 온 학생들 중에는.. ...자기가 왜 통계학을 배워야 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 psy d 과정을 들으러 갈 것이지...)

제 뇌 사진 갖고 싶은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fMRI 실험 대상이 못 되는게 한입니다..... 어느 교수님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악수하면서 오른손잡이인가를 체크하는게 버릇이 되었대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2/03 22:13
음 저는 제 뇌사진이 있습죠 --v
Commented by Semilla at 2008/12/04 03:12
부럽습니다!!!
Commented by silverbird at 2008/12/03 15:24
비슷한 이유에선지 요즘 생물학 분야에서 분산 처리에 관심이 많더군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2/03 22:21
데이터의 바다를 헤쳐나가려면 별 수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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