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만담 : 라캉의 인용

아기들의 시야 : 라캉의 거울단계에 대해
18개월

라캉은 부실한 인용으로 악명이 높다. "세미나"의 경우엔 그래도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아니, 세미나에서 한 말에 어떻게 일일이 출전을 붙인단 말인가!") "거울단계" 같은 논문의 경우에는 변명의 여지도 없다.

볼프강 쾰러(Wolfgang Koeler, 1887-1967)는 독일의 실험심리학자로 베르트하이머, 코프카와 함께 "게슈탈트 운동"을 이끈 사람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부분들이 모여 하나의 형태(gestalt)를 이루는 과정을 연구했고, 실험 동물로 침팬지를 많이 사용했는데 그래서 "미국 심리학자들은 쥐와 비둘기, 독일 심리학자들은 침팬지"라는 농담이 생겨났다. 독일에서 게슈탈트 운동이 한창이던 때에 미국 심리학계는 행동주의자들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라캉의 당시에 프랑스에도 쾰러의 "Intelligenzprüfungen an Anthropoiden"이 번역되어 잘 알려진 심리학자였다. 라캉은 자신의 "거울 단계" 논문에서 "아기는 거울에 흥미를 보이지만 침팬지는 그렇지 않다"는 쾰러의 실험 결과를 인용하며 자신의 거울 단계를 지지하는 증거로 삼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내가 계속 지적해온 문제인데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은유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라캉 추종자들의 말과 달리 라캉은 심리학 실험을 바탕으로 자기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라캉은 쾰러 외에도 볼드윈, 뷜러, 왈롱 등이 수행한 실험을 자기 근거로 삼는다. 참고로 현재는 18개월과 동일한 실험에서 침팬지는 물론 보노보, 오랑우탄, 고릴라, 범고래, 병코돌고래, 유럽까치 심지어 비둘기까지 인간 아기와 동일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여기까지라면 라캉의 잘못은 쾰러의 말을 믿은 죄 밖에 없다. 문제는 쾰러가 실제로 한 말은 라캉과 정반대라는 것이다. 쾰러는 침팬지가 다른 동물과 달리 거울에 흥미를 보인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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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추판다 | 2008/11/17 11:18 | 트랙백 | 핑백(4)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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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Null Model : 생의학.. at 2008/11/17 19:17

... 한 편의 만담 : 라캉의 인용</a>에 달린 <a title="" href="http://nullmodel.egloos.com/1837038#7064565">덧글 참고로 이 분은 p라는 아이디로 열심히 덧글을 다시던 분이다. Commented by ... more

Linked at Null Model : 과학은.. at 2008/12/29 23:40

... 을 엉터리로 인용한다. 결정적으로 거울단계 개념 자체가 실제하는 발달상의 단계인지 아닌지조차 의심스럽다. (참조: 아기들의 시야 : 라캉의 거울단계에 대해, 18개월, 한 편의 만담 : 라캉의 인용) 그런데 라캉의 거울단계 논문 이후로 수 십년동안 라캉을 인용하는 족히 수 천은 넘을 '연구'들이 있었는데도 라캉의 주장은 불가침의 권위를 누린다. 거울단계가 ... more

Linked at Null Model : 라캉,.. at 2009/02/19 19:32

... 옳았다 (아이추판다) 이후에 작성한 라캉 관련 글들 라캉주의식 설명법?이상한 홍준기35년전대화와 존중인문학적 제어론 (2)아기들의 시야 : 라캉의 거울단계에 대해18개월한 편의 만담 : 라캉의 인용생의학/보건 저널인 Medline때려달라면라캉주의자들과 조중동라캉주의자들과 창조론자들전기장의 신호라캉주의자들에게 필요한 것서로를 바보로 만드는 짓거리 ... more

Linked at Null Model : 주디스.. at 2009/03/24 19:13

... 냐하면 페이지가 인용하는 대목은 파우스토-스털링이 인용하는 대목과 거의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딱 하나, 10%만 빼고. 아니 이런 신공은 라캉만 쓰는 줄 알았더니(한 편의 만담 : 라캉의 인용 참고) 덜덜덜. 버틀러가 인용했다고 밝힌 논문 셋을 모두 첨부해두니 한 번들 보시길. 혹시나 내가 못 보고 지나친 것이기를 빈다. ... more

Commented by b군 at 2008/11/17 12:36
라캉의 거울 논문(어디 실렸는지 모르겠지만.) 리뷰어나 에디터가 피어 리뷰를 열심히 안 해줬나보군요. 인용문을 저런식으로 달고 수정을 안했다면 보통은 리젝일텐데.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7 14:53
피어 리뷰가 있었던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Commented by bzImage at 2008/11/17 12:54
하지만 아이추판다님이 라캉의 떡밥을 계속 물고 계시니 다른 흥미로운 소재를 볼 기회를 계속 잃는것 같아 아쉽습니다 ㅠ_ㅠ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7 14:53
이건 요정도로 하고 다른 얘길 하죠. 저도 슬슬 지겨운지라..
Commented by 시노조스 at 2008/11/17 12:56
교주님의 말씀은 옳다능 사실 쾰러의 깊은 뜻을 라캉이 파악한거라능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7 14:55
"내가 입찰한 쾰러 상위입찰하지 마라"
Commented by kabbala at 2008/11/17 13:50
최근 포스트들이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한 영감을 주기도 하는 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7 14:56
"그건 오햅니다 크허허", "인용을 한 것이 아니라 격한 감정을 자신에게 드러낸 것 뿐.." 뭐 이런 거 말씀이십니까? ^^
Commented by 만담가 at 2008/11/17 18:18
그닥....라캉이 이 부분 틀린 모양이죠 뭐. 이게 철학과 심리학의 싸움인지도 모르겠고; 어차피 심리학 전공자 다수도 라캉 읽던데.

심리학 치료법을 주장한 학자들의 이론이 다 옳은 게 아니고, 틀린 것 있는데 부분적으로 차용하는 경우도 많던데요. 라캉을 좋아하거나, 심지어 치료하는 사람들(근데 이 사람들은 어차피 심리학 전공자거나 의사죠?) 다수도 라캉이 어떤 부분은 틀렸다는 거 압니다. 옳다고 생각되는 일부만 차용할 뿐이지. 아니고 틀린 게 증명이 된 부분까지 믿고 적용한다면? 국내외에 라캉 가지고 치료하는 의사가 꽤 많던데 참 무서운 일이죠? 게다가 심리학과 교수도 있고.

예를 들어 노스웨스턴 대학 Psychiatry and Behavioral Sciences과 교수 Richard Chessick은 자기도 라캉을 가르친다며 라캉을 가르치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하던데요. 틀린 부분은 거르고 치료에 필요한 부분만 가르치는 법과 전체 아웃라인을 죽 가르치는 법. 예를 들어 라캉의 거울 단계가 아닌 bridge metaphor를 치료에 적용을 하는 식으로. 이건 논문-철학이 아닌 심리학과 논문-도 있던데(이쪽도 별로 피어 리뷰가 쓸만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정보가 더 필요하시다면 인터넷과 책을 찾아보시고.

Chessick은 자기는 라캉의 일부를 치료에 적용하는 스타일이고, 예를 들어 Duquesne University의 심리학과 교수인 Fink는 라캉 이론을 전반적으로 가르친다더군요. Chessick 교수는 일부러 비지성적으로 글을 썼던 라캉의 주장들 다수가 어차피 '믿든지 말든지' 레벨이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라캉의 주장 일부가 의미있고 유용하다고 생각을 하는 모양이죠. 라캉을 가르치는 심리학과 교수 Chessick 교수나 핑크 교수는 거울 이론이 옳다고 우길까요? 궁금하군요.
아무튼, 아이추판다님 글은 헛발질을 볼 겸 정보도 얻을 겸 잘 보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klutzy at 2008/11/17 18:40
라캉 이론은 대체의학이었군요. 알겠습니다.
Commented by 만담가 at 2008/11/17 18:44
그런 식으로 따지면 심리학과 치료법 다수가 어차피 대체의학이죠? 심리학과에선 대체의학 논문도 쓰는군요. 저도 몰랐는데. 라캉도 대체의학이고? 흠. 알겠습니다.
Commented by klutzy at 2008/11/17 18:50
Fink 논문을 찾아봤는데 전부 psychoanalysis나 Lacan 관련이던데요? psychoanalysis 논문을 심리학과 논문이라고 하시는 거면 몰라도, 구체적으로 어떤 논문인지 밝혀주시는게 어떨까요.
Commented by klutzy at 2008/11/17 18:57
그리고 제가 대체의학이라고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론이 다 옳은 게 아니지만" 원전 전체를 여전히 "전반적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가끔 그 이론에서 결과적으로 옳은 게 한두개 나와도 그리 신기할 건 없는데 그렇다고 그게 그리 라캉/대체의학의 존위성을 살려주지도 못한다는 것이죠.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7 18:59
p님, 덧글 안달지도 모르신다더니 또 다셨군요. 어쨌든 떠나지 않고 계속 계시니 반갑습니다. 아이디 바꾸셔도 다 알아보니 걱정마시고요.

심리학 전공자 다수가 라캉을 읽는다는 망상은 또 어디서 나오신 겁니까? 금시초문이로군요. 아마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을 겁니다. Chessick은 심리학과 교수가 아니고 의대 교수죠. 그리고 그 많은 미국 대학 심리학과 중에 Duquesne에 있는 Fink 한 명 가지고 "많다"고 하시는 겁니까? Duquesne라는 학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심리학으로 유명한 학교는 아닌 것 같군요.

그렇게 한 가지 사례를 가지고 얘기하자면 미국 심리학과 Big 5 중에 하나인 MIT의 경우를 들어볼까요? MIT는 심리학과가 자연과학대학에 속해있습니다. p님의 지론이 아마 심리학이 자연과학이 아니라는 거였던가요? 거기 심리학과 연구시설에 MIT가 들인 돈이 2천억원이 넘죠. 노벨상 수상자를 거의 80명 배출한 학교가 미쳤나 봅니다. 참고로 MIT에는 라캉주의자는 커녕 정신분석학자도 없습니다. 이건 스탠포드, 프린스턴, 카네기멜론도 마찬가지죠. 확인은 안해봤지만 다른 상위권 학교도 비슷할 겁니다.

그건 그렇고 그럼 홍준기나 김석이 "믿든지 말든지" 레벨의 이야기를 가지고 지금 "철학"을 하겠다고 떠들고 다닌다는 건가요? 알겠습니다.
Commented by 만담가 at 2008/11/17 18:59
글쎄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라캉을 읽거나 강의하는 사람들도 라캉에 대한 비판 능력이 있으며, 주인장이 그렇다고 믿고 싶어하는 것처럼 교주 라캉 신봉자는 아니라는 말 뿐. 라캉 아웃라인을 전부 다 가르친다는 Fink 교수가 거울 이론을 진지하게 믿는지 궁금하긴 하군요.
Commented by 만담가 at 2008/11/17 19:04
만담가라고 하셨기에 바꿨을 뿐입니다^^ 알아보시니 감사하군요.

그리고 제 말을 완전히 곡해하니 웃을지 말지 모르겠습니다만...허허-_- 제 지론은 심리학이 자연과학이 아니라는 게 아니었는데요. 왜 거짓말을 하시는지? 영국 대학에서 심리학 학위를 자연과학과/사회과학으로 나누어서 준다고 말했고, 심리학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뉴로싸이콜로지 같은 것은 자연과학이라고 분명 말했죠. 당연히 뉴로싸이콜로지가 강세인 MIT는 심리학과를 자연과학과로 분류하겠죠?
Commented by 만담가 at 2008/11/17 18:57
U.S. National Library of Medicine에 가면 있습니다.

Lacan's practice of psychoanalytic psychotherapy.

Chessick RD.

Northwestern University, Evanston, Illinois.

Lacan's efforts in the psychoanalytic psychotherapy of patients with structural deficits aim at separating truth, desire, and ideals from each other so that the analysand is freed up to find or create the desire that gives him or her "joy." This paper presents Lacan's use of the "bridge metaphor" towards that purpose, and illustrates the application of Lacan's early concepts in actual clinical work.

PMID: 3434650 [PubMed - indexed for MEDLINE]

생의학/보건 저널인 Medline에 실린 논문이고.
Lacan 논문이라면 당연히 psychoanalysis 관련일텐데, psychoanalysis 관련 논문은 무조건 심리학과 논문이 아닙니까? 심리학과 교수가 쓴 논문이기도 해서 심리학 논문이라고 여겼는데, 만약 아니라면 제가 무식했군요. Fink 교수가 아닌 Chessick 교수의 글이죠.
Commented by joyce at 2008/11/18 00:09
아마 이 부분인 것 같은데요.

'Indeed, this act, far from exhausting itself, as in the case of a monkey, in eventually acquired control over the uselessness of the image...' (Ecrits, p. 93)

원숭이가 거울 이미지에 보이는 흥미는 (곧) 사라진다는 내용이군요.

있던 게 없어진다는 것이니 '원숭이는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8 10:14
정확히 말하자면 좀 더 긴데요 제가 지금 원문이 없어서 인용은 못합니다만 라캉이 인용하고 있는 그 대목은 쾰러가 침팬지와 다른 동물들을 대조하면서 '다른 동물'들을 설명할 때 사용한 문장입니다. 쾰러에 따르면 다른 동물들은 흥미를 금방 잃지만 침팬지는 '영원히' 잃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라캉은 이것을 뒤섞은 것이죠.
Commented by joyce at 2008/11/18 10:42
아 그렇게 된 것이군요.^^ 답변에 감사 드립니다.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인용 문장 전 단락에는 chimpanzee가 나오지만 여기서는 monkey라는 말이 나오는데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할까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8 11:04
맥락도 그렇고 라캉주의자들도 그렇게 봅니다. 쾰러가 연구한 것도 침팬지고요. 아니라고하면 라캉은 더 막장의 길로 가겠죠. 물론 현대 생물학에서는 침팬지를 원숭이(monkey)로 보진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예전에 한 번 쓴 적이 있습니다. http://nullmodel.egloos.com/1709058
Commented by joyce at 2008/11/18 11:35
혹시 이 노인네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게 아닌가 했는데^^ 아닌 모양이군요.
링크해 주신 글도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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