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의 시야 : 라캉의 거울단계에 대해

라캉은 여기서 분열을 봐요. 왜냐면 6~18개월 된 아이는 아직 자기 몸에 대해서 완벽하게 통제를 할 수 없는 아이입니다. 아직운동신경이 발달하지 못한 아이죠. 뭐 조금 일어서서 걸어 다니긴 하겠지만. 1년 정도 되면. 아직 완전하게 자기 몸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오히려 단편적인 운동자극과 감각에 덩어리 이런 것들이 아이의 신체적인 현실이라고 할 수 있죠.근데 거울에 비쳐진 모습은 완벽한 상으로 다가옵니다. 바로 이렇게 완벽하게 다가오는 상. 이상적인 이미지와 실제 거기에 도달하지못하고 있는 몸의 분리 간격. 이게 바로 거울단계에서 겪게 되는 경험이죠. 이게 아이는 어떤 식으로 겪게 되냐면 완벽한 이미지에대해서 굉장히 열광을 하고, 저게 나라는 것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김석, "개념으로 만나는 라캉" 中

이글루스에서 검색하다보니 아트앤스터디에서 하는 강좌를 녹취한 것 같은 글을 찾았다(녹취한 사람에 대해 뭐라 하고 싶은 건 아니기 때문에 출처는 명기하지 않았다). 나는 위의 문단이 도대체 어딜봐서 '철학적 대상'을 다루고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완벽한 상으로 다가온다.", "거울단계에서 겪게 되는 경험", "열광하고 안도"와 같은 문장들은 경험적 검증의 대상이다. 그런데 김석은(물론 라캉도) 아무런 근거 없이 저런 소릴 하고 있다.

아기들은 시야가 무척 좁다. 아래 사진은 18~20개월 유아들의 머리에 카메라를 부착해서 촬영한 것이다. 엄마의 시야와 비교해보라. 이렇게 시야가 좁은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애들의 몸 자체가 작아서 그렇고 또 하나는 애들이 물건을 눈 가까이 놓고 보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Yu, C., Smith, L.B., Christensen, M. & Pereira, A.F. (2007) Two Views of the World: Active Vision in Real-World Interaction . In D. S. McNamara & J. G. Trafton (Eds.) Proceedings of the 29th Annual Conference of the Cognitive Science Society (pp. 731-736). Austin, TX: Cognitive Science Society.

아래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baby mirror로 검색해서 찾은 동영상이다. 우리가 외출하기 거울을 볼 때는 거울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본다. 왜냐하면 거울에 가까이 붙어있으면 몸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김석이 인용하는 라캉의 주장대로 아기들이 거울에서 완벽한 자신의 신체상을 발견해서 열광하고 안도한다면 아기들도 거울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자기 몸 전체를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래 동영상에 나오는 아기는 반대로 행동한다.


검색된 동영상이 여럿 있지만 위의 동영상을 고른 이유는 다른 동영상은 처음부터 아기를 거울 바로 앞에 앉혀놓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직접 검색해서 보면 알겠지만 거울 바로 앞에 앉혀놓은 경우에조차 아기들은 허리를 숙여 거울 쪽으로 더 바짝 다가간다. 만약 자기의 완벽한 신체상에 안도하는 거라면 도대체 왜 자기 얼굴조차 볼 수 없는 거리로 다가가는 걸까?

라캉의 주장을 좀 더 자세히 검증하려면 오목 거울이나 볼록 거울처럼 상을 왜곡시키는 거울에 대해서도 평면 거울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스티커 사진 찍는 기계처럼 다른 상을 합성시켜서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실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실험을 해보지 않고서 저런 소릴 한다. 그러면서도 과학은 틀렸다고 말하지. 그럼 라캉은 무슨 신적 직관이라도 있어서 경험을 초월한 지식이라도 가지고 있는거냐. 거참 기괴한 인식론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라캉의 거울단계는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일종의 은유로서.." 뭐 이따위 변명을 늘어놓을 것 같은데 그럼 처음부터 아기들 얘기는 하지 말았어야지. 왜 얘네는 맨날 뻘소리해놓고 까이면 은유라고 발뺌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나도 '은유'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 좋아하시네. 너네는 그냥 쓰레기야.

by 아이추판다 | 2008/11/14 11:04 | 트랙백(1) | 핑백(4) | 덧글(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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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kabbala의 느낌
“왜 얘네는 맨날 뻘소리해놓고 까이면 은유라고 발뺌하는지 모르겠다.” (아이추판다)...more

Linked at Null Model : 18개월 at 2008/11/16 12:32

... 아기들의 시야 : 라캉의 거울단계에 대해 Michael Lewis와 Jeanne Brooks-Gunn(1979)은 영아의 코에 입술 루즈를 바른 다음, 영아를 거울 앞에 세워 자기의 모습을 알아보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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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들의 시야 : 라캉의 거울단계에 대해 18개월 라캉은 부실한 인용으로 악명이 높다. "세미나"의 경우엔 그래도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아니, 세미나에서 한 말에 어떻게 일일이 출전을 ... more

Linked at Null Model : 과학은.. at 2008/12/29 23:40

... 름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여러 심리학자들을 엉터리로 인용한다. 결정적으로 거울단계 개념 자체가 실제하는 발달상의 단계인지 아닌지조차 의심스럽다. (참조: 아기들의 시야 : 라캉의 거울단계에 대해, 18개월, 한 편의 만담 : 라캉의 인용) 그런데 라캉의 거울단계 논문 이후로 수 십년동안 라캉을 인용하는 족히 수 천은 넘을 '연구'들이 있었는데도 라 ... more

Linked at Null Model : 라캉,.. at 2009/02/19 19:32

... 보며 II (5) (하늘빛마야)프로이트가 옳았다 (아이추판다) 이후에 작성한 라캉 관련 글들 라캉주의식 설명법?이상한 홍준기35년전대화와 존중인문학적 제어론 (2)아기들의 시야 : 라캉의 거울단계에 대해18개월한 편의 만담 : 라캉의 인용생의학/보건 저널인 Medline때려달라면라캉주의자들과 조중동라캉주의자들과 창조론자들전기장의 신호라캉주의자들에게 필요한 ... more

Commented by klutzy at 2008/11/14 12:39
파인만이 정신분석은 과학이 아니라 주술이라고 했던데, 정말 적절한 말.

과학이 아니라 그냥 철학이라 인정해준다고 해도, 인간에 맞지도 않는 가정 위에 서 있는 철학이 인간에 얼마나 맞을지도 의문이에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4 16:43
철학이 무슨 용가리통뼈도 아니고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Commented by p at 2008/11/14 14:45
유치한 마지막 문장하며 여전히 횡설수설의 극치군요. 우선 철학이랑 과학 두 영역을 혼동하는 건 아이추판다님인 듯 합니다. 철학의 목적은 자연과학처럼 현상 세계에 대한 지식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과학과 같은 기준으로 판단되는 영역도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든 누구든 어떤 철학자가 자연에 대해서 무식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그의 철학적 견해를 백날 비판해봐야, 그 철학자가 자기 견해를 통해 자연과학을 대체하려고 들지 않은 이상 별 의미가 없다는 얘기죠. 만약 님의 비판이 들어줄만한 것이 되려면, 라캉이 위의 거울 단계 이론을 가지고 자기 이론이 과학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어야 하죠. 그러나 라캉은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고, 그가 심리학에 대해서 비판한 부분은 저 부분이 아닙니다. 물타기 목적이 아니고서야 애초에 윗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모르겠군요.

라캉이 님이 인용한 저런 주장을 통해 자기가 옳고 심리학의 관찰 결과가 틀렸다고 주장했는지? 저 주장을 내세우며 철학이 과학을 대체하겠다고 주장했는지? 당연히 아니고 저 ‘철학’ 이론은 은유가 맞습니다만, 아무튼 갑자기 엉뚱하게 저런 얘기나 끌어오는 것이 논점과 대체 무슨 상관인지.

결국 중요한 건 라캉의 예시가 과학적으로 틀렸다 라캉의 과학 점수가 낮았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라캉 철학이 심리학의 어떤 부분을 비판했는가 하는 문제이고 그게 유효한 비판인가 아닌가가 문제죠.

신경심리학 얘기나 저런 실험 얘기를 끌어들여 심리학에 최대한 객관적 과학다운 광휘를 더하려는 님의 노력은 가상합니다만, 이래 가지고서야 자기 감정 분출을 위한 무의미한 소리들의 나열 밖에 되지 않습니다. 라캉이 심리학을 비판한 이상 애매하게 자연과학 전반 이야긴 관두고, 심리학이란 학문의 자연과학이자 사회과학으로서의 특성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를 해야 정당하게 논의가 전개되지 않겠습니까? 덧붙여 엄밀히 검증되지 않은 사회과학 이론들을 가지고 치료까지 하는 건 테라피하는 여러 심리학자들이죠.

누가 심리학에 대해서 유의미한 비판을 했는데, 그가 과학적으로 무지하거나 틀린 발언을 한 부분에만 매달리고 심리학의 (자연?)과학적 측면만 부각시키며 상대방더러 쓰레기라는 둥 입닥치라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간단히 말해 지적 사기극이고 쓰레기 같은 짓입니다. 홍준기가 비판하는 '과학'이란 단어가 자연과학만 의미하는 건 당연히 아닌 것 같은데, 실제로 심리학을 두고 보면 그것이 님이 내세우고 싶어하는 것처럼(그런 적 없다고 우기겠지만 ㅋㅋ) 객관적인 과학만은 아니다-상식 수준의 이해에도 상당히 기반을 두고 있다-맞는 비판 아닙니까? 왜 영국 대학에선 아래 같은 구분을 사용합니까?
인문학이 과학을 견제할 수 있는진 모르겠습니다만, 궤변을 두고 비판은 할 수 있습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4 16:44
이것부터 짚고 가죠. "6~18개월에 아기가 거울을 보고 자신의 완벽한 신체상을 발견하고 열광하고 안심한다"가 "현상세계에 대한 지식"이 아니고 "은유"란 말이죠?
Commented by p at 2008/11/14 16:59
이미 말했듯 과학과 철학은 엄연히 다르죠. 님은 그게 아직도 구분이 안가나요? 님처럼 그런 사실도 구분을 못하는 광신도가 아니고서야 그 문장을 문자 그대로 혹은 과학적 지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은유라는 거죠. 객관적인 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되 철학적 이해를 위해 통용되는 예시를 님은 뭐라고 부릅니까? 저 이야길 18개월 소아에 대한 지식을 넓힐 목적으로 읽는 사람은 없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불리한 지적은 죄 회피하는 네이버식 답변으로 일관하지 말고 제 질문부터 짚고 넘어가줬으면 감사하겠군요. 심리학의 모든 것이 자연과학적인 것마냥 애매하게 연막을 치는 것이 바로 라캉이 비판하고 싶어했던 부분일걸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4 17:19
> 라캉이 님이 인용한 저런 주장을 통해 자기가 옳고 심리학의 관찰 결과가 틀렸다고 주장했는지? 저 주장을 내세우며 철학이 과학을 대체하겠다고 주장했는지?

누가 "안드로메다는 해왕성 옆에 15.3 Km에 위치해 있는 소행성이다"라고 말하면 과학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아도 이미 과학을 대체하려고 시도하는 겁니다. 당연한 거죠?

자 답변했으니 다시 질문 갑니다.

첫째, 왜 하고 많은 예시 중에서 사실이 아닌 것 또는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것을 예시로 드나요?
둘 째, p님의 주장은 아기들이 실제로는 완벽한 신체상을 발견하지도 않고 열광하지도 않고 안심하지도 않는데 "신체적 현실이라고 할 수 있죠.", "거울단계에서 겪는 경험이죠."와 같은 표현을 쓰면서 '은유'를 한다는 말입니까? 다시 말해 저 문장들이 지금 은유를 말하는 문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장입니까?
Commented by p at 2008/11/14 18:05
6개월 된 아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거울을 보며 안도감을 느끼는지 아닌지 이런 부분은 어차피 성인이 알 수 없는 영역 아닙니까? 뇌를 촬영하면 알 수 있다고 말하려나요? 누가 어떤 동물이 어떤 상황에서 성취감을 느낀다는 말을 한다면, 그건 그 동물에 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부정하는 말입니까? 아니죠. 어차피 그건 은유일 뿐 과학적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한 묘사니까. 그런데 이게 소행성에 대해 틀린 소릴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죠? 심리학이 자연과학으로 딱 자리를 잡아서 6개월 애가 뭔 생각을 하는지도 다 알 수 있는 시대에 누가 저런 말을 했다면 모를까.

게다가 ('오히려 단편적인 운동자극과 감각에 덩어리'라는, 아이추판다님이 녹취한 건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인물이 녹취한 건지 뭔지 온전한 문장도 아닌 이 말은 무슨 말인진 모르겠지만) 아기가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 '신체적 현실'이라는 말이 과학에 반하는 표현입니까? 아주 재미나군요. 열심히 찾아서 다른 말을 따오시든가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4 23:53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죠. 여기서는 애가 완벽한 신체상을 발견하는지 안하는지, 안심을 하는지 안하는지를 지지하는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만 따지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본문에서 라캉과 그의 추종자들의 주장에 반하는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라캉 추종자들은 저 증거들을 뒤엎을만한 증거를 가져오면 되는 겁니다. 아니면 데꿀멍하든지.
Commented by dPIN at 2008/11/15 00:30
아이추판다님께서 올리신 article을 한번 훑어봤는데, 요지는 아이와 어른(부모)의 관점이 다르다에서 끝나더군요. "왜" 다른지에 대한 논의 없이 "라캉과 그의 추종자들의 주장에 반하는 증거를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낮은 시력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더 잘보기 위함이라는 가설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5 00:46
아기들의 시야가 좁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인용하고 출처를 밝힌 건데 뭔 딴 소리입니까.
Commented by dPIN at 2008/11/15 01:17
아이들의 시야가 좁다 (fact 1)--------->"아기들은 허리를 숙여 거울 쪽으로 더 바짝 다가간다" (fact 2)------->"도대체 "왜" .... 다가가는 걸까?"(research question) ----> 아마 시력이 않좋아서 자신을 더 잘 보려고 그럴 것이다. (hypothesis)

"아기의 시야가 좁다"라는 근거는 윗글에서 아직 가설수준에 불과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을 뿐인데, 왜 "라캉과 그의 추종자들의 주장에 반하는 증거를 제시"했다고 믿는지요?
Commented by p at 2008/11/15 09:49
그러니까 고양이가 어떤 상황에서 안도감을 느낀다고 주장한 철학자는 과학의 성과를 부정하는 주장을 한 것이므로, 고양이가 안도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증명할만한 실험을 해야한다는 거군요? 그리고 어떤 동물학자가 실험을 통해 '고양이는 안도감을 느끼지 않아!"라고 증명한다면 그 철학자는 쓰레기...ㄷㄷㄷ
계속 철학과 과학을 혼동하고 계시는군요.
더군다나 인간에 대해서 실험적으로 증명되지도 지지되지도 않은 수많은 가설들을 두고 무섭게도 테라피까지 하는 심리학자들이나 먼저 비판을 하고 싶은데요? 누구 하나 잡고 열심히 패면 못 팰게 뭡니까. 라캉은 충분히 비판의 여지가 있는 심리학자들이 온전한 (자연)과학인 마냥 권위를 내세우는 걸 못마땅했던 건데.. 아이고 여기서부터 또 무한 리피트~

그리고 아래 리플을 보니 좀 억울한데, 전 라캉이 과학적으로 옳다는 주장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 원래 리플은 라캉이 자연과학에 무지했다는게 포인트가 아니다, 과학과 철학은 영역이 엄연히 다르다,였죠. 라캉이 과학자가 아닌 이상 당연히 무지한 말을 할 수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철학의 영역에서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게 원 리플 얘기였죠. 맨 아래 q님 생각과 기본적으로 저도 같습니다만, 설마 제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지지한다고 자연에 대한 그의 주장도 지지하겠습니까?
이걸 계속 아래 유치한 논쟁으로 끌고 가는 건 블로그 주인장인데, 거기 말린 제가 울 라캉은 다 옳은 말만해써효 그러고 있는 걸로 비친다니...뭐^^ 전 그저 아이추판다님이 인용한 문장이 당연히, 영유아발달 교재의 한 부분이 아닌 철학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고 봤을 뿐입니다-_;
아이추판다님은 제 첫 질문과 지적을 죄 무시하고 사소한 데에 계속 집착하며 논의의 틀 자체를 엉뚱한 쪽으로 몰고만 가고 있으니, 생산적은 논쟁은 애초에 안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5 12:38
1. 고양이가 안도감을 느끼지 않는거죠. 그 '철학자'의 추종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양이는 안도감을 느낀다고 주장하고 다녀도 됩니까?

2. 물리학자 중에도 뭐 기(氣)가 과학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분이 있습니다. 심리학자들 중에 근거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헛소리하는 사람도 있죠. 그게 Physical Review나 Psychological Review에 실리는 주장도 아니고 학계에서 인정받는 얘기도 아니죠. 그리고 '쓰레기'라고 마찬가지로 까입니다. 걱정마세요.

3. 문제는 그런 근거없는 주장을 하는 심리학자들과 라캉주의자들의 주장은 똑같다는 거죠. 자꾸 철학이라고 주장하시는데 "아기들이 거울을 보면 안심한다"라는 명제 자체는 철학적 명제가 아닙니다. (1) 문장만 놓고보면 명백히 김석은 은유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2) 게다가 은유라고 해도 왜 하필이면 잘못된 사실에 비춰 은유하죠? (3) 은유가 아니라면 왜 사실처럼 떠들고 다닙니까?

4. 어떤 철학자가 "비타민 A를 많이 먹으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해봅시다. 이게 영양학 교과서에 실린게 아니면 ok라 이건가요? 철학과 과학의 영역이 다르다고 해도 철학자가 한 모든 말이 철학의 영역에 속하는 건 아닙니다. 철학자가 명백히 과학의 영역에 해당하는 말을 하고 그 추종자들이 그 말을 사실인 것처럼 떠들고 다닌다면 곤란하죠.

5. 게다가 라캉주의자들은 라캉 이론이 임상이론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건 도대체 어쩔건가요? 까이면 철학이라고 발뺌하고, 안까이면 임상이니 속편하네요.
Commented by p at 2008/11/15 15:40
1. 위에서 지적했듯이 계속 자연과학이랑 심리학을 섞으려는 예시는 좀 피해주십쇼. 쿤이 괜히 사회과학에는 패러다임이 없다고 한 게 아니죠. 기가 어쩌구 하는 물리학자의 이야기는 당연히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실험으로 엄밀하게 증명되지 않은 심리학의 이론들은 분명 심리학과에서 가르쳐지고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게 차이입니다. 테라피하는 걸 막지도 않죠. 영국대학에서 자연과학 사회과학 나눈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도 그 때문이죠.
그리고 또 반복하지만 라캉이 심리학에 대해서 비판한 부분은 바로 이런 부분이지, 위의 거울 이론가지고 심리학의 설명이 후졌다고 비판한 게 아니란 거죠. 그리고 꼭 그런 비판이 심리학이란 과학의 성장을 막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직 덜 여문 과학이 온전한 자연과학인 양 너무 권위를 휘두르는 건 문제가 있다는 얘기죠.

2. 이제 철학과 과학이 다르다는 걸 슬슬 좀 인정을 하시는 것 같기는 한데, 위에서 "님처럼 그런 사실도(철학과 과학은 다르다) 구분을 못하는 광신도가 아니고서야" 그런 말을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죠. 기본적 독해력이 모자라거나 과학을 넘어선 것에 대해 신비주의적 믿음을 가진 광신도가 라캉 이론으로 임상을 하면 그게 라캉의 책임이고 철학의 책임입니까? 철학과 과학을 구분을 못해서 6개월 아이가 안도감을 느낀다는 철학자의 말을 유아발달책의 한 페이지로 받아들이면 그게 온전히 철학자의 책임인가요? 물론 책임이 있긴 있다고 보고, 오해와 오용의 소지가 크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선 라캉은 자기 이론이 임상이론이라고 한 적이 없고, 라캉을 흥미롭게 여기는 다수 사람들도 그걸로 임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증명되지도 않았거나 말도 안되는 이론으로 사이비 과학 행세를 하려는 자들은 저도 질색입니다.

3. 라캉 추종자들이 까이면 철학이고 안까이면 임상이라고 우긴다고 하는데, 그 둘이 꼭 같은 무리리가 아니라는 걸 좀 기억하십시오. 자꾸 자신의 비판자들을 묶어서 두말한다 운운하는 건 님 편의대로 논의를 전개하는 것 밖에 안됩니다. 제가 언제 라캉 이론으로 임상하겠다는 리플이라도 달았습니까? 비판을 하려면 '철학을 임상으로 착각하는 자들'을 비판하시면 됩니다. 님이 어떤 철학도에게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품은 악의 때문에 얼간이들과 철학도를 묶어서 철학은 쓰레기라는 둥 떠드는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5 16:20
"라깡과현대정신분석학회 회칙 2조 (목적) 라깡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현대 정신분석의 이론과 치료요법을 연구함으로써 정신의학, 심리학, 문학, 문화학, 사회학, 사회복지학, 언론학, 문예 및 영화비평, 미학, 법학 등 학문의 지평을 비판적으로 포괄하고, 현대의 사상 흐름에 연계하여 인간과 문화의 분석을 위한 새로운 이론과 방법론의 창출, 나아가 정신질환의 치료기술의 개발에 기여하고자 한다."

홍준기와 김석은 각각 독일과 프랑스에서 라캉을 전공하고 온 사람들이고 둘 다 이 학회의 회원입니다. 그냥 회원도 아니고 홍준기는 현재 연구이사, 김석은 편집위원이죠. "까이면 철학, 아니면 임상"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같은 무리'가 아니라면 동명이인가 봅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5 17:00
기가 과학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모 대학의 물리학과 교수는 잘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학계에서 인정하는 건 아니죠.

APA, APS, PSP, CSS 또는 한국심리학회, 한국인지과학회 등 심리학 및 유관분과 학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중에 실험이나 또는 경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 논문으로 실린 사례가 있으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가장 방법론적으로 뒤쳐진 APA조차 실험자료가 없으면 논문 게재가 안됩니다. 그건 임상심리학이건 사회심리학이건 다 마찬가지죠.

심리학과에 근거없는 치료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라캉은 그보다 더한 짓을 해도 괜찮다는 겁니까?
Commented by p at 2008/11/16 02:18
"까이면 철학, 아니면 임상"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같은 무리'가 아니라면 동명이인가 봅니다?....는 대체 무슨 말씀인지. 지금 라캉 이론이 철학이라고 주장하는 제가 익명으로 리플을 다는 홍준기 혹은 김석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제가 위에서 철학과 과학을 구분을 못하는 자가 있으면 비판하라고 말했는데, 그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라면 그 사람들 비판하십쇼. 님이 위에서 한 것처럼 라캉 이론의 엉뚱한 부분을 짚어 라캉이 그 이론 가지고 과학에 맞선 것처럼 말하지 말라는 말이고, 님 자신도 그런 부류처럼 철학과 과학을 혼동하지 말라는 말일 뿐.

덧붙여 심리학자들이 한다는 그 경험적 검증이 얼마나 유의미한 것인지 문외한으로서 아주 진지하게 궁금하군요. 치료 기법이 수백개가 넘어가는 시대에 정신분석학이든 라캉 이론이든 치료가 되면 하는 거다. 라고 주장한 건 전에 아이추판다님을 비판한 적 있는 현장 임상심리학자의 말씀이던데요. 여러 심리학 치료법들의 효능 가운데 객관적으로 어느게 훨씬 더 옳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큰 차이가 없다는 거고, 그래서 두루 사용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 기법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그리 유의미하지 않다는 것이 그 현장 임상학자의 말이었는데, 틀린 겁니까?
어쨌거나 치료법이 400가지가 넘고 어느 것도 통계적으로 명확한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다니 사회과학이라는 거죠. 쿤이 사회과학에 패러다임이 없다고 한 건 여러 관점이 동시에 서로 argue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 아닙니까. there are no paradigms at all in the social sciences since the concepts are polysemic, the deliberate mutual ignorance between scholars and the proliferation of schools in these disciplines. 이러니 물리학과 심리학의 비유는 여전히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 그렇다고 제가 심리학이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건 당연히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아시겠죠. 또 반복하지만 여타 자연과학과 다르다는 것 뿐.

그나저나 이미 한 말 계속 반복하는 이런 논쟁 아주아주 지루하군요. 제가 재미없어서 답글을 안 달아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Commented by dPIN at 2008/11/14 15:06
문: "만약 자기의 완벽한 신체상에 안도하는 거라면 도대체 왜 자기 얼굴조차 볼 수 없는 거리로 다가가는 걸까?"

답: 그 이유는 자신의 모습을 더 잘 보기 위해서 입니다. 왜냐하면 아기들은 시력이 나쁘기 때문이에요. 생후 18~20개월이면 시력이 0.3 정도밖에 되질 않거든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4 16:48
가까이 간다 -> 자세히 보이지만 전체가 안보임.
멀리 떨어진다 -> 전체는 보이지만 흐릿하게 보임.

막장인데요?
Commented by dPIN at 2008/11/14 21:06
흐릿한 전체가 "완벽한 신체상"에 더 가까운지요? 저는 눈이 많이 나쁜 편이라 그 말에 동의되지는 않는군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4 23:42
'선명한 부분'이 '완벽한 신체상'이라면 거울이 왜 필요합니까. 아기들이 자기 손만 봐도 아주 좋아 죽겠군요.
Commented by dPIN at 2008/11/15 00:14
거울이 필요한 이유는 자신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볼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지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5 00:47
"오히려 단편적인 운동자극과 감각에 덩어리 이런 것들이 아이의 신체적인 현실이라고 할 수 있죠.근데 거울에 비쳐진 모습은 완벽한 상으로 다가옵니다."라는 대목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저게 지금 "얼굴이 안보인다"는 뜻인가요?
Commented by dPIN at 2008/11/15 01:24
"오히려 단편적인 운동자극과 감각에 덩어리 이런 것들이 아이의 신체적인 현실이라고 할 수 있죠" --> 글쎄요. 거울을 통해 감각적으로 인지되는 자신의 모습도 아기들에게 신체적인 현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5 01:32
김석(&라캉): 단편적인 신체적 현실과 거울에 비친 이상적 모습의 분리 간격
dPIN: 거울로 보이는 모습도 신체적 현실
Commented by 잘 보았습니다. at 2008/11/14 15:34
심리학으로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과학(자)과 인문학(자)의 갈등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게 되었네요.

앞선 글을 몇개 읽어보니 이런 갈등이 그 전부터 계속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보겠습니다. 댓글달만한 수준이 아니라서 눈팅만 해야겠지만요.

덧. 글쓴 김에 과학에 관한 글 하나를 링크하겠습니다.

블로그 제목을 보니 생물학 공부하시는 분 같은데 주인장님은 이런 시각에 동의하시는지요.

분야는 다르지만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다른 분들도 이런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http://heterosis.tistory.com/67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4 16:52
김우재님 블로그군요. 저는 딱히 할 말이 없고 다른 사람들의 시각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준식이 at 2008/11/14 15:54
엄허, 아이추판다님 갈수록 쎄지시는 듯. 근데 아기가 거울로 다가가는 건 완벽한 자기의 모습에 이끌려서라고도 볼 수 있지 않나요? 뭐 어느 쪽이든 실험도 없이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는 말씀엔 동의합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4 16:48
그러니까 다른 거울로 해봐야죠. 그게 완벽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재밌어서 그러는 건지.
Commented by dPIN at 2008/11/14 20:52
그러니까, 아기들이 왜 거울에 가까이 가는지 아이추판다님도 아직은 모른다는 건가요?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11/14 23:50
아이추판다님이 모른다는 건 상관없지요. 비판은 라캉이 '틀렸다'는 것보다 라캉이 자기 가설을 '검증'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향한 것이니까요.
Commented by dPIN at 2008/11/15 00:16
산마로님의 말에 동의합니다만, 제 논점은 아이추판다님께서 자신의 "흐릿한" 근거를 가지고 "선명한"주장을 하시는 데 대한 의아함입니다.
Commented by joyce at 2008/11/14 16:08
강렬합니다.^^
과연 읽으면서 '그걸 어떻게 알아?'라고 느꼈던 부분을 잘 집어 주셨네요.
몇 개의 어록만 기억에 남은 라캉이지만 애증이 있어서인지 관심있게 보게 됩니다.
주의자들이 아닌 라캉 자신이 어떻게 표현했는지 한번 들춰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4 16:56
그런 얘기가 너무 많아서요..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11/14 18:25
철학 전공한 사람으로서, 라캉이나 p님을 철학의 대표로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판다님이야 잘 아실테고 이 포스팅을 읽는 분들에게.
Commented by kimdan at 2008/11/15 08:45
neuroscience를 전공하는 어린 학부생으로서,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Commented by shaind at 2008/11/14 18:36
아마도 자신의 완전한 상을 거울 속에서 발견하는, "라캉의 상상의 세계 속의 아기"를 예로 든 것이겠죠.
Commented by 끝소리 at 2008/11/14 19:18
공감합니다. 라캉의 이론이 여기서 소개한대로라면 파인먼이 말했듯 주술이 맞네요. 하지만 혹시나 정신분석학이랑 심리학을 혼동해서 심리학의 연구 성과까지 무시당하지 않을까하는 노파심에 몇 자 적습니다.

대학 시절 인간의 인지 발달에 대한 과목을 재미있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인지 발달에 대해 우리가 아는 많은 부분이 아기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오는데, 짐작하시겠지만 말 못하는 아기들을 상대로 실험을 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 분야의 거장인 장 피아제도 아기의 반응을 잘못 해석해서 내린 결론이 후에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되기도 했습니다. 아마 아기의 시력을 고려하지 않아 잘못된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심리학자들은 아기들의 반응을 통해 인지 발달에 대한 객관적인 결론을 얻을 수 있는 여러가지 기발한 방법들을 개발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20세기 후반 이후 많은 연구를 통해서 아기의 인지 발달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혹시나 라캉이나 다른 정신분석학자들이 초월적인 직관을 통해 얻은 말도 안되는 결론 때문에 아기의 발달에 대한 내용은 모두 무시하지는 말아주세요.
Commented by q at 2008/11/15 00:18
접속하기가 싫어서 그냥 아무거나 생각나는대로 치는데, 이번에는 어쩌다 q로 썼군요.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제 생각은 p님의 견해로부터 p와 q 사이의 거리보다는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라깡주의자라면 라깡의 통찰 중에서 의미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다른 근거 위에 놓는 전략을 택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라깡주의자들은 라깡의 사고 경로를 따라서, 근거와 논리 위에서 그의 담론에 동의하게 된 것이라기보다는 그 결론적인 내용의 함의에 동조하기 때문일 듯 하거든요. 예를 들어, 이 문제에서라면, 타자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라깡의 통찰을 그 자신의 설명과 떼어서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더 생산적이 아닐까 싶어요. 아이추판다님의 단순함과 과격함에 때로 눈살을 찌푸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p님의 길은 갈 길이 못되는 듯 싶어요. "하지만 나의 라깡은 이런 걸 다 알았을 거야"라고 믿고 싶은 마음을 벗어나는 게 성숙한 길이 아닐까 싶거든요.

사실 자연에서도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지죠. 쿤 외에도 과학철학자들은 많이 있었고 그들의 논의 중에서 그래도 들을 만한 것으로 "이론은 폐기되어도 개념과 명제는 살아남을 때가 있다"는 것이 있거든요. 종종 가설은 폐기되어도 측정값만 남기도 하고, 측정값이 폐기되어도 대담한 가설 하나가 살아남기도 하고.

어떤 누군가의 사상을 철학의 입장에서 지지하려고 한다면 짊어질 수밖에 없는 과제는, 그 사상에서 지키고 싶은 중핵적인 명제/개념/아이디어들을 변화되는 지식 속에서 재구성하고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걸 포기하는 인문학도는, 이미 학자가 아니라 '신자'가 되는 것 아닐까 싶어요.

그냥, 아이추판다님의 낚시에 걸려서 "한심한 인문학도"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싶어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그렇게 멀거나 다른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유치한 논쟁에 휘말리는지.

인문주의자이면서 과학주의자인, 그런 사람이 되자고 시작하는 공부 아니었던가요? ㄷㄷㄷ
Commented by 하늘선물 at 2008/11/15 19:27
나도 심심한데 아시스 난디처럼 과학을 까볼까....ㅡㅡa
Commented by q at 2008/11/15 22:50
아무튼 영양가있는 이야기로 돌아가기 위해서, 원래의 문제를 따져보죠. 아이추판다님의 저급한 논쟁의 세계를 벗어나면, 핵심은 라깡이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겠죠. 아주 쉬운 수준에서 말해 그는 '나'라는 것의 지위를 해체하려는 듯 보입니다. 유아의 사례를 들어 아이는 처음에 신체의 통일성을 지각하지 못하고 뇌는 신체감각을 산만한 감각적 신호로만 받아들인다는 거죠. 이게 첫 단계. 그 다음에 '거울 단계'라는 것을 통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가가 오는 거죠. 다시 말하자면

<내 내면의 감각에 의해 나 자신의 통일성, 동일성, 일체성등을 자각하는 것>이 아니라

<"거울"에 비친 상을 통해 "나"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라는 것.

그렇다면 이 "거울"이 만일 지시적인 의미에서 사용된 것이라면

1) 시각적으로 유아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을 '나'라고 인지하게 됨으로써 <자아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해 혼란스럽고 파편적인 감각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게 된다, 라는 것일 거고

그것이 비유적인 의미라고 한다면

2) 자신을 향한 타인의 반응과 행동이 "나"라는 존재를 상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비로소 "나"라는 정체성, 동일성, 통일성을 확보하게 된다

라는 것일 테죠.

만일 1번의 의미라고 한다면 거울이 전혀 없는 곳에서 산 아이라고 한다면 거울 단계를 거칠 수가 없는 거라는 의미일까요? 그렇다면 그다지 하나마나한 이야기 아니겠어요?

라깡주의자들 혹은 라깡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라면 "자아"와 "외부" 혹은 "타자"에 대해 이러한 종류의 아이디어가 갖는 의미와 함축에 대해 어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귀를 기울이는 것일 테고, 그렇다면 그런 아이디어가 (라깡이 언급하거나 전제로 삼고 있는 것의) 오류들로부터 구제될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요.

생산적인 논의란 이런 아이디어에 대한 것이어야 하지 아이추판다님처럼 "라깡" 그 자체를 치고 들어가는 건, 뭐 우리로 하여금 어떤 의미있는 고찰을 하게 한다기보다는 과학 정치를 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그리고 그다지 영양가없는 이야기의 반복적인 순환에 빠지기 쉽게 되는 거죠. 이런 논쟁으로 누군가가 생각을 바꾼다기보다는 그저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의 집단적 자위 행위가 되어버릴 뿐이랄까, 그런 느낌이에요.

여기서 제가 무슨 견해를 내놓으려는 건 아니고, 이 배울 것 없는 논쟁에서 한 가지만 묻고 싶어요. 아동 발달에서 "정체성" 혹은 "자아상"의 형성에 관해 <과학적>이거나 <실제적>으로 참고할만한 자료는 뭐가 있을까요, 아이추판다님? 혹은 라깡주의자라면, 그 문제에 대해서 어떤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나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1/15 23:30
2)와 같은 이야기는 라캉 이전에 이미 20세기 초반에 찰스 쿨리가 한 바 있습니다. 이를 looking-glass self라고 합니다. 사실이 아닌 얘기를 비유로 들어서 할 이유가 없어요.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11/16 00:07
조지 허버트 미드가 더 중요하지 않나요? 그리고 '나(자아)'의 지위에 대한 의심은 라캉 이전에도 이미 중요한 철학적 문제였지요. 라캉의 대답이 어떤 참신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라캉의 문제 제기는 고전적인 철학 문제의 반복에 불과합니다.
Commented by at 2008/11/16 14:38
앞으로 철학이란 단어 앞에 '개똥'을 붙이는 습관을 들입시다. 낄낄....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8/12/10 15:03
하하 대단하십니다. 뭐 거울이라는게 꼭 사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그렇다치고.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님은 개인마다 고유의 자기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있다면 그것이 언제 어떻게 생성되는지 듣고 싶네요. 그리고 사진 속의 저 아이도 자기 이미지를 갖고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그것의 생성 과정도 앞의 답과 같아야겠죠.
혹시 "답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넌 틀렸어!" 라고 하시는건 아니죠?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2/10 15:09
"거울이라는게 꼭 사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그렇다치고" -> 사물로서 거울에도 적용되지 않는 이론이 더 넓은 범위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머지는 발달심리학 교과서를 읽어보세요.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8/12/11 18:51
발달 심리학 교과서에는 몇세에 뭐가 되고 정도의 표면적인 설명만 있죠. 제가 원하는 것은 '왜, 어떻게' 입니다. 혹시 알고 있다면 요점만이라도 설명해주면 안되나요? 어디 찾아보라는 말 적을 시간에 말이죠.

은 유에 대해선 아무리 봐도 님이 귀를 틀어막는거 같아서 말을 삼가겠습니다. 라고 하면 님이 정말 귀를 틀어막는걸 보고 제가 이런 말을 하는걸까요? 기표와 기의엔 연관관계가 없다는건 아시죠? 기표가 아니라 기의에 주의를 기울여주세요. 그리고 분명히 전 '그렇다치고' 라면서 논쟁할 뜻이 없다고 밝혔는데 그것에 대해선 반론을 제시하고 정작 물어본건 어디 찾아보라니, 회피한다는 느낌이군요.

아 그리고 혹시나 말꼬투리 잡을까봐 말씀드리지만, 여기서 기의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말합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2/11 19:28
은유라.. 은유는 이런 거죠.

라캉: "징기스칸이 카이사르를 죽였다!"
판다: "뭔 개소리야. 둘은 시대가 달라."
지나가던 바보: "그럼 누가 죽였는데?"

알게 뭡니까.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8/12/11 19:47
발달 심리학 교과서에는 몇세에 뭐가 되고 정도의 표면적인 설명만 있죠. 제가 원하는 것은 '왜, 어떻게' 입니다. 혹시 알고 있다면 요점만이라도 설명해주면 안되나요? 어디 찾아보라는 말 적을 시간에 말이죠.

제발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2/11 19:59
표면적인 설명만 있는지 어떻게 아십니까? 읽어보셨나요?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8/12/11 20:16
제가 아는 것도 적고 그래도 님 블로그에 찾아온 손님인데 속 시원하게 설명 좀 해주시죠~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2/11 20:18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광지니 at 2009/02/02 01:52
아이가 거울을 가까이서 본것은 님께서도 말했듯이 아이의 시야는 무척 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었어도 가까이서 자신을 보기 위해서 거울 앞으로 다가 갔겠지요.
게다가 어른들이 외출전에 전신을 비추기 위해 거울을 멀리서 보듯 아이들도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편견이라고 생각되네요.
또 한가지 덧붙일것은 님께서는 저 아이가 거울을 통해 자신을 확인한후 열광하고 안도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권리가 없습니다.
Commented by 광지니 at 2009/02/02 01:54
라캉 역시 그의 의견은 진리가 아니라 주장입니다. 그의 이론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보편적인 것이 아니란 이야기지요. 그것을 받아들이고 말고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란 겁니다. 그러한 중요할것 없는 일반적인 가치에 열을 올리는 것은 히스테리가 아닌가 싶네요.
Commented by 1 at 2009/02/07 19:32
그 이론을 구성하는 토대가 허구라면 받아들이고 말고를 떠나서
개소리하지마! 라고 말할수가 있지 않나요?
Commented by ㅁㄴㅇㄹ at 2009/02/08 01:53
헐 여기서도 p라는 닉네임이 사용되고 있었군요

꽤나 겹친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작에 안쓰고 있기를 잘한듯 합니다.

이상 방문객의 뻘소리 였습니다~
Commented by 광지니 at 2009/02/14 10:56
그 이론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일뿐 허구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의 주장이 어느정도 진리에 부합할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어떤 주장에 대해서 근거를 이용해 반박하는 것은 서로가 발전할수 있는 계기가 되겠지요. 하지만 자기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인정하지 않으려하거나 무시하려하면 그것 만큼 편견에 둘러싸여있고 귀를 틀어막고 사는 불행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Commented by 바보멍청이 at 2009/05/26 14:17
이런 의문이 생기는 이유는..
ㅎㅎ

근본적인 공부를 하셔야겠네요.
철학도 사회학의 한 갈래라는 것을 이해하시고 막스베버의 Ideal type 에 대해 공부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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