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04 15:43

인문학적 제어론 유사학문

저의에서 노정태님이 단 댓글 중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창조과학같은 사이비 과학이 미국에서 판치는이유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단의 '열심'을 제어할만한 인문학적 소양이 그 사회에 부족하기때문이라고. 창세기의 창조 설화가 '우화'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아우구스티누스 시대부터 상식이 되어있습니다만, 그게 진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느냐 아니면 '현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의 유물'로 취급되느냐는 다른 문제죠.

이와 같이 인문학이 무엇을 제어해야 한다 또는 제어할 수 있다는 관점을 '인문학적 제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제어대상으로 손꼽히는 것이 아마 과학일 것이다.

이런 제어론에는 인문학이 '해독제'라는 발상이 깔려있다. 그런데 인문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그것이 과학 스스로 주장하는 것만큼 무색무취하지 않다고 비판하는 그 잣대를 인문학에 그대로 되돌린다면 인문학은 과학보다 더욱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이 조롱하곤 하는 프랑스 철학 특유의 문장에 대해 얘기해보자. 프랑스 철학의 옹호자들은 이런 '스타일'에 대한 집착이 프랑스 철학의 고유한 전통이며 프랑스 철학의 생산성을 가능케하는 특징이라고 변명하곤 한다. 이 변명을 받아들이더라도 이 '스타일'에는 아주 심각한 정치적 문제가 있다.

예전에 천규석이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라는 책을 썼을 때 이정우는 "프랑스어로 읽어보고 찌질대시지?"로 요약할 수 있는 신랄한 서평을 썼다. 이정우가 싸가지가 없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철학자들의 글을 제대로 읽으려면 프랑스어로 읽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그들의 '스타일'이 대단히 번역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거니와, 이 '스타일'은 프랑스 철학의 옹호자들이 말하는 대로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핵심 요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용과 스타일을 엮어버림으로써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프랑스 철학에 대해 논의할 자격을 박탈당한다. 그것도 그냥 조금 하는 수준으로는 안된다. 미묘한 뉘앙스를 읽어낼 정도로 잘하지 않으면 안된다. 네이처나 사이언스에서 매주 발행하는 파드캐스트를 들어보면 도저히 듣기 힘든 영어로 말하는 비영어권 과학자들의 인터뷰가 빠지지 않는다. 세계 수준의 학술지에 실릴만한 과학 논문을 쓰기 위한 영어 수준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스타일이 중요하게 되고 나면 역시 엄청난 프랑스어 실력을 갖추지 않고서야 저 바닥에는 낄 수 없다.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쯤되면 프랑스 철학에서 말하는 급진적 내용들에 대해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말하는데로 언어가 모든 것이라면 "그들의 언어"에 철저히 굴종할 것을 강요하는 철학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이 그렇게도 "서구-백인-남성-중산층의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해 마지않는 과학판에는 동양인이 버글거려서 "M.I.T.는 Made In Taiwan의 약자"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정작 철학판이야말로 "서구-백인-남성-중산층"의 전유물로 남아있다.

사정이 이쯤되고 보면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느니 과학에도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느니하는 '인문학적 제어론'에 대해서 "이쪽은 됐으니, 니들 앞가림이나 잘하라."는 말 밖에는 더 할 얘기가 없는 것이다.

핑백

  • 玄武 서식지 2호 : 오래된 문이과 논쟁의 예. 2008-11-08 01:28:28 #

    ... 정치과학자를 꿈꾸며: 나는 가끔 황우석이 그립다 [김우재] 황우석과 본회퍼: 서울비에 답하여 [김우재] 황우석과 박정희: 김우재님께 [서울비] 저의 [아이추판다] 인문학적 제어론 [아이추판다] 인문학적 제어론. [모기불] 공짜 밝히는 사회. [모기불] 과학과 철학은 대립하는가 [노정태] (계속 추가..) 사이엔지 같은 이공/과학계 압력단 ... more

  • Null Model : 인문학적 제어론 (2) 2008-11-11 16:18:13 #

    ... 인문학적 제어론 과학과 철학은 대립하는가 (노정태님) '인문학적 제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문학'이란 그 자체로 옳고 바르고 합리적이며 다른 종류의 지식에 대해 교정적이라는 전제 ... more

  • 노정태와 이택광의 ‘밥그릇 투쟁’ | Revolt Science via heterosis 2014-05-27 05:14:58 #

    ... 인문학적 제어론</a>&gt;으로, &lt;과학은 철학과 대립하는가&gt;라는 자못 진지하고 또 진부한 구도로 흘렀다. 복잡해보이지만, 둘의 대립을 나누는 지평선은 단순하다. 아이츄판다는 라깡류의 비과학적인 프랑스 철학이 보란듯이 유통되는 현실이 못마땅하다. 노정태도 이에 완전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학문 서로 간의 존중을 요구한다. 서로가 과학자의 입장에서, 철학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학문을 변호하고 있는 것이다. 공격의 수위에서 언제나 아 ... more

  • 노정태와 이택광의 &#8216;밥그릇 투쟁&#8217; | Revolt Science via heterosis 2014-05-28 13:13:13 #

    ... 인문학적 제어론</a>&gt;으로, &lt;과학은 철학과 대립하는가&gt;라는 자못 진지하고 또 진부한 구도로 흘렀다. 복잡해보이지만, 둘의 대립을 나누는 지평선은 단순하다. 아이츄판다는 라깡류의 비과학적인 프랑스 철학이 보란듯이 유통되는 현실이 못마땅하다. 노정태도 이에 완전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학문 서로 간의 존중을 요구한다. 서로가 과학자의 입장에서, 철학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학문을 변호하고 있는 것이다. 공격의 수위에서 언제나 아 ... more

덧글

  • 송우일 2008/11/04 17:07 # 삭제

    말씀대로 스타일리쉬한 프랑스 철학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밑 글 댓글에 예로 드신 하이데거 역시 그의 학문 체계 안에 나치즘으로 빠지게 만든 무언가가가 있을 거구요. 과거에는 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데 인문학이 동원됐기에 인문학을 내세우는 '서구-백인-남성-중산층' 및 그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의 '저의'를 의심하는 것도 타당합니다. 제가 밑 글 댓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지금까지는 주로 인문학을 동원해 왔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불손한 정치적 의도와 기획에서 자유롭게 남아 있을 수 있는 학문이 앞으로 몇 개나 될 것이냐 하는 것이죠.
  • 산마로 2008/11/04 19:07 # 삭제

    영어권 주류 철학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는 한국 인문학계의 특수현상이 아닐까 합니다만... '생각의 지도'를 읽어보니 왜 그런지 꽤 설득력 있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겠더군요. 일본 철학계도 초기에는 실증주의,공리주의로 시작했다가 일본 전통사상과의 위화감 때문에 독일관념론 쪽으로 선회했다더군요.
  • 하늘선물 2008/11/04 19:32 #

    ...솔직히 말해서 아이추판다님은 프랑스철학이 우리나라 인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것처럼 들립니다. 이정우씨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그거 몇년전 이야기 아닙니까? 지금 철학공부하는 인문학쪽 애들만 보더라도 전부 실증주의 철학을 합니다. 대다수 과학철학을 비중있게 하구요.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과학쪽은 모르겠지만 인문학은 이상하게 유행이란게 있더군요. 프랑스 철학 유행은 이미 한물간것 같은 복고처럼 느껴지더군요.

    제가 받은 인상은 그런것입니다. 프랑스철학중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상대방이 알아들을수 없는 철학'이라는 거죠. 그 문제 해결하지 않는 이상 프랑스철학이 갖고 있는 내제적 한계는 계속 지속될겁니다.

  • 산마로 2008/11/04 19:38 # 삭제

    제가 알기로도 한국의 철학과 쪽에서 현대 프랑스철학이 주류라고 할 만한 적은 없었습니다. 좀 늘긴 했다 정도겠죠.
  • 산마로 2008/11/04 19:36 # 삭제

    한국의 인문학계는 ,'생각의 지도'에서 동서양의 차이를 분석적인 사고방식과 그렇지 않은 사고방식의 차이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분석적인 방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주 강하게 정치적이어서 존재론이나 인식론, 윤리학, 미학같은 비정치적 학문 분야도 정치와 관련해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합니다. 현대 프랑스 철학의 수용 양상에서 이러한 경향은 아주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좌파 지식인들이 좌파적 경향은 고수하면서 그 배경 철학만 갈아치우려는 양상으로 나타났지요.
  • 아이추판다 2008/11/04 22:32 #

    '한국의 인문학'처럼 거창한 얘기가 아닙니다. 제 얘긴 '인문학적 제어론'에 국한되는 얘기죠. 특히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제어론.
  • 하늘선물 2008/11/04 22:57 #

    아 그부분은 전적으로 아이추판다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 산마로 2008/11/04 23:01 # 삭제

    프랑스철학 유행이 한국의 인문학계에 국한된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라면 인문학적 제어론에 대한 반례로서 유효하지 않을텐데요.
  • .... 2008/11/04 23:11 # 삭제

    애초에 인문학이 과학을 "제어"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인문학이 과학에 대고 "이건 탐구해라 이건 하지마라"라고 할 것도 아니고, 과학자들이 내놓은 결과에 대해 "이건 이렇게 잘못됐다"고 반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과학적 탐구가 쌩판 몰가치적인 것은 아니니 이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유의미한 발견을 할 수는 있겠지만 이게 무려 "제어"씩이나 되는지는 의문스럽습니다. 잘 봐야 "훈수두기"정도겠죠. (훈수가 대개 그렇듯이 장기 두는 당사자들의 신경을 상당히 거스르는 듯)

    하지만 그 "어느 정도 유의미한 발견"을 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의 가치이고, 이 점에 대해 과소평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건 허풍에 가깝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과학이라고 현대사회의 제 문제(에너지라든가 환경이라든가)를 해결해줄 만능도구인 것은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학이 현대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줄 실마리가 됨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당장에 뭘 뚝딱 해결하진 못하더라도 점진적으로 밝혀나가 해결책을 제시할 테니까요. 인문학도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판다님 말마따나 독이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꾸준히 개선하며 부작용을 줄이고있는 약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어"의 의미를 "훈수" 정도로 제한한다면 인문학적 제어라는 것이 아주 그릇된 주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 Ha-1 2008/11/05 17:12 #

    그런 운동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모니터링 감시단을 구축해서 '시민단체'에서 과학을 '견제'하는...

    이를테면 LHC 실험같은 걸 한다 하면 이게 시민들에게 도움이 될것이냐 하는 화두를 꺼낸 것인데 그건 이미 예산처에서 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걸 자기들이 하겠다는 거고 결국 그 시민운동의 목적은 과학계에서도 감투를 뽑아먹겠다는 것이었지만.

    결국 인문학은 핑계고 학제간 공존이니 하는 논리를 끌어온 감투놀이에 불과했습니다. 제대로 된 인문학도라면 인문학이 정치놀음에 이용되는 현실에 개탄했을듯
  • AFHR 2008/11/05 08:50 # 삭제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사회적인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의아해한 경험이 많았는데 속시원한 글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인문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데이터나 통계, 혹은 수식으로 대변되는 과학적 정확성을 갖추었다기보다는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도 찾아보기 힘든, 말 그대로 말장난이라는 느낌을 받은 터라 더 그렇습니다. 그런 말장난이 으레 그렇듯이, 권력에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권력에 의해 이용되는 학문이라는 점도 제 인문학 혐오증에 기여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그 학문-전 매너리즘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만, 어쨌건 그 '학문이라고 불리는 것'은 권위자의 주장에 지극히 취약하고, 새로운 논의가 제기되기도 어려운 분야이니까요.
  • .... 2008/11/05 15:25 # 삭제

    인문학을 "말장난"이라고 단언할 정도로 인문학을 잘 아시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인문학이 세상만사 다 해결해줄 마스터 키는 아니지만 계량화되지 않는 학문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할 만큼 시야가 좁은 분에게 "말장난" 취급당할 정도로 만만하진 않습니다. 과학을 쥐뿔도 모르면서 인문학으로 제어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과학을 배운 이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하찮아보이죠. 근데 그걸 잘 아시는 분이 어째서 반대의 경우는 생각치 못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 AFHR 2008/11/06 14:36 # 삭제

    계량화되지 않는 학문이 학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학문은 세계에 대한 유의미한 '해석'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귀에 걸어도 되고 코에 걸어도 되는 언어로만 이루어진 학문은 그다지 학문으로서의 정당성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권위자의 발언에 대한 단순한 '암기'밖에는 되지 않고요. 권위자의 말을 달달 외운다고 해서 뭔가 그게 공부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군요.
  • .... 2008/11/06 16:30 # 삭제

    유의미한 해석 = 계량화...논리실증주의의 부활입니까. 게다가 인문학을 "권위자의 발언에 대한 단순한 암기"라고 표현하다니 대화할 의미가 없군요. 가우스 법칙이나 뉴튼의 중력법칙을 외우고 익히는 것을 과학에서는 "권위자의 발언에 대한 단순한 암기"라고 부르던가요? 인문학이 수능 언어영역입니까? 달달 외우면 공부가 되게? 전 본디 이공학도에게도 인문적 교양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만, 이제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게 됐군요. 이공학도에게도 최소한의 인문학적 소양은 필요합니다, 자기 전공분야 외의 모든 것에 대해 침묵할 요량이 아니라면.
  • 로르카 2010/12/07 13:44 #

    간단하게 한 말씀만 드리자면, 인간과 세상은 계량화 되서 돌아가는게 아니라고 한마디만 던져 드립죠. 그리고 공격적 의도 없이 지극히 개인적인 인상을 말씀해 드리자면, 인문학의 주된 학문적 방법론이 암기라고 하신 시점에서 부터 귀하의 '인문학적 소양'이 고등학교 역사 수업이 전부일 거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습니다.
  • 하늘선물 2008/11/05 10:08 #

    사실 통섭이니 어쩌니 하는말들이 많긴 하고, 대다수 과학자들한테 인문학적 소양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말들이 많은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건 과학의 대한 정의를 무시하는 것이고, 과학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올수도 있죠. 따라서 아이추판다님께서 이왕 글 쓰시는거 과학이란 무엇인가? 부터 써보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그 과학이 무엇인지 안다면 인문학적 제어라는 말이 전혀 안나올테니 말이죠.
  • .... 2008/11/05 16:01 # 삭제

    그나저나 원글에 달린 노정태 님의 덧글을 보면 덧글을 단 본인은 "과학"을 제어해야한다는 말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더군요. 오히려 노정태 님의 덧글은 "무지"에 의한 잘못된 선택을 견제해야한다는 의미던데 이게 왜 인문학 VS 과학의 구도로 연결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무지에 대한 "제어"가 되지 않는다면 그건 이미 상아탑에 갇힌 죽은 학문이겠죠. 이 경우 오히려 과학과 인문학이 피차 협력해서 무지를 타파해야하는 상황인 거 아닌가요?

    과학에서는 소위 "창조과학"이 그릇됨을 과학의 방법론으로 논파할 수 있고 인문학에서는 종교와 사상에 대한 열린 자세가 어째서 필요한지를 설득할 수 있겠죠. 충분히 그렇게 읽힐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읽어달라고 쓴 덧글로 보이는데 어째서 이게 뜬금없는 대결구도로 바뀌고 있는 겁니까. "폭주하는 과학에 인문학으로 브레이크를 건다"는 식의 마인드를 지닌 이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관계없는 덧글과 연결해서 논의를 꺼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 아이추판다 2008/11/05 16:50 #

    제가 블로그에 여러 차례 언급했던 홍준기씨는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해서 저러는 걸까요?
  • .... 2008/11/05 22:18 # 삭제

    과학적 소양은 많이 부족해보이더군요. 문독이 오른 것 같기도 하고. 근데 홍준기씨에게 과학적 소양이 부족한 것이, 사이비를 타파하는 데에 인문학은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과 연결이 되나요? 아이추판다 님이 하고싶으신 얘기처럼, 인문학은 만능이 아닙니다. 아무래 책을 다섯 수레 읽어도 과학과 담 쌓았으면 사이비 지식만 쌓일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게 자동적으로 "그러므로 인문학은 무능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봅니다.

    창조과학이 판을 치는 이유는 그들이 과학을 쌩판 무시하기 때문이 아닙니다(오히려 억지로 과학 비스무리한 궤변을 꾸밀 정도로 신경쓰고 있죠). 성경에 나온 구절 하나하나가 그대로 사실이어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네 믿음이 거짓이 되어버린다고 여기기에 저런 삽질을 하는 겁니다. 창조과학을 과학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물론 유의미한 일입니다만, 그래봤자 그들은 계속 억지를 쓰거나 새로운 사이비 이론을 들고나올 겁니다. "그래야만한다고 믿고있"으니까요.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단의 '열심'을 제어할만한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것은 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다, 창조과학 따위의 구라를 치지 않으면서 신앙을 지킬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소양" 말이죠.

    예의 홍준기씨에겐 아무래도 과학의 세례가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만, 그 사람의 헛소리가, 인문학이 사람들의 "무지"를 타파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데에 크게 지장을 초래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홍준기씨의 경우가 노정태 님의 덧글과 연결되어서 과학 VS 인문학의 구도로 이어지는 맥락을 잘 모르겠고요. 혹시 인문학의 가치를 옹호하는 입장을 홍준기 류의 사이비 과학과 겹쳐서 보고있진 않습니까?
  • 아이추판다 2008/11/05 22:32 #

    성서문헌학도 인문학이고, 기독교 변증론도 인문학입니다. 복음주의 기독교는 인문학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 .... 2008/11/06 16:08 # 삭제

    원 덧글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성서문헌학에 대한 기초적인 교양이 있었으면 저런 삽질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의미로 읽힙니다만. 그리고 기독교 변증론은 보통 인문학이 아니라 신학의 범주에 넣지 않습니까? 인문학이 아무리 범주가 모호하더라도 그렇지, "모든 비과학=인문학"은 아니지 않습니까. 인문학이 왜 humanities인데요.

    그나저나 아까부터 줄곧, 어째서 이 글에서는 뜬금없는 과학VS인문학의 구도가 튀어나오고 있느냐, 도대체 인용한 덧글하고 이 글이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을 드리고 있는데, 적절한 응답이 돌아오는 대신 계속해서 변죽만 울리고 있군요. 대답하고 말고야 주인분 마음이지만, 저는 말을 섞은 이상 상대방의 질의에는 되도록이면 성실히 답하는 것을 예의로 알며 유의미한 회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실 의사가 없으시다면 저 또한 판다님의 반문에 계속 응할 이유가 없겠죠.
  • 아이추판다 2008/11/06 16:35 #

    ....님은 홍준기의 경우는 개인적 일탈, 기독교 변증론은 非인문학이라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홍준기의 경우는 그 자신이 무식한 탓도 있겠지만 라캉주의 자체에 들어있는 반과학적 요소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변증론은 적어도 중세철학에서는 중요한 이슈였고 그렇게 손쉽게 인문학에서 배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성서문헌학도 신학이지 인문학이 아닙니다.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인간이 하는 것이고, 그런 이상 본질적으로 그 학문을 하는 자들 자신에 의한 편향과 왜곡이 담기기 마련입니다. 지난 기간 과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은 모두 이런 관점에서 전개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통상적인 반응은 그런 비판들을 개인적 일탈에 대한 흠잡기나 과거지사 들추기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이런 반응은 옳았을까요?

    과학에 적용될 수 있는 비판지점들은 인문학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고 오히려 더 문제적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고래를 관찰하는 것과 별로 상관없어도 그의 정치철학하고는 심각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우연히 일어난 일일까요? 아테네가 그리스의 패권을 차지한 폴리스가 아니었다면 과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요?

    인문학이 본질적으로 합리적이고 반성적인 학문일 수 있다면, 과학 또한 그렇게 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더욱 그럴 수 있죠. 그렇다면 두 학문 간의 대화란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인문학이 그 자체로 오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 오점에 대한 자기 비판 위에서 과학과 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까는' 방식으로는 별로 얻을 게 없습니다.
  • Ha-1 2008/11/05 16:32 #

    몇년전 시민운동이 한창일 때 시민에 의한 과학기술 견제라는 화두가 한창 나왔었죠. P모신문 ㄱ모 기자를 필두로 지금 횡령사건으로 유명해지신 ㅎ연합의 ㅊ모씨라거나...
  • dPIN 2008/11/07 16:45 # 삭제

    전체적으로 글에서 세상구경한 경험이 별로 없다고 하는 군요.. 물론 "과학판에는 동양인이 버글거려서 "M.I.T.는 Made In Taiwan의 약자"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판국"일지는 몰라도 그들은 "서구-백인-남성-중산층의 관점"이 지배하는 미국의 MIT 학생일 뿐입니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입장에서 볼때, 한 마디로 동양인이 많을 뿐, 교육은 아직도 "서구-백인-남성-중산층"들의 교육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정작 철학판이야말로 "서구-백인-남성-중산층"의 전유물로 남아있다"고요? 그렇게 간단히 결론 낼 사항은아닌 듯 싶군요. 오히려 이곳은 점점 일본 중심의 동양 문화/관점에 매우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일회성 유행이 아니라서 쉬이 사그러 들지는 않을 것 같다고 보입니다.
  • 아이추판다 2008/11/07 17:03 #

    과학판에는 동양인이 많아도 전부 서양인 졸개에 불과하고, 철학판에서는 백인들만 바글거려도 동양 문화에 사소한 관심만 보여주면 서구적 관점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그것 참 편리한 비교군요.
  • .... 2008/11/07 19:48 # 삭제

    반면에 동양철학과 가면 동양인만 버글거리고 서양인은 찾아보기 힘들죠. 한국사를 연구하는 사람에는 압도적으로 한국인의 비율이 높으며 프랑스 문학 연구의 중심은 프랑스일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 중심적인 구도를 탈피하자"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서양철학에서 나온 관점이고, 기존의 자기 관점에서 한발짝 비껴서 보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과학이 서양중심적이란 점이 당장의 큰 문제라거나, 그래서 인문학이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듭니다만, 서양 인문학의 시도를 평가해주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쩐지 인문학 얘기가 나오면 서양철학이 인문학의 대표로서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논의가 뻗어나가게 되는데, 현대사회가 서양문명을 기반으로 형성된 만큼 이는 일면 불가피한 측면은 있습니다만, 동양문명은 동양의 사상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고 이 영향력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한, 서양 중심적인 풍토는 궁극적으로는 극복되어야 할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인류 사상 전반을 포괄하는 통합된 철학계가 형성되길 바라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요원한 얘기겠죠.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생각하는 바를 논하는 학문인 만큼, 사람이 국적으로 갈리고 문화권으로 갈리고 자신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인문학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점을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각성을 넘어선 사상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고, 결국 인문학의 손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과학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과학 역시 (규칙으로 통제하고 있다고는 해도) 과학자라는 인간의 활동이며, 인간의 활동을 논하는 것은 결국 인문학의 영역이니까요.
  • AFHR 2008/11/11 16:17 # 삭제

    인문학이 기본적으로 과학이 다루는 자연이라는 체계 내부에서 지극히 일부를 차지할 뿐인 인간의 활동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십니까? 과학자는 인간이지만, 과학자가 다루는 것은 자연입니다.
  • .... 2008/11/12 09:17 # 삭제

    AFHR// 인문학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텍스트"에 대한 학문이고 과학이 밝혀낼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메커니즘"까지입니다. 그나마도 인간의 활동을 제대로 규명해낼 수 있을 만큼 밝혀진 것도 아니고, 설사 밝혀진다고 한들 그 많은 고려요소들을 어떻게 다 분석할 거냐의 문제도 있고요. 훗날 양자 컴퓨터든 뭐든 써서 라플라스의 악마라도 만들어낸다면 그때 가서 한번 고려는 해보겠습니다만, 여튼 지금은(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오래도록) 과학이 인문학을 대신하는 절대학문이 되진 못할 겁니다.
  • 로르카 2010/12/07 14:06 #

    예제가 좀 영 아니군요. 일단 특정 국가나 그 국가 출신의 철학, 문학 같은 작품들은 언어의 특성 상 절대 그 원문적 의미가 외국어로서는 일정 깊이를 넘어서 전달 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해당 언어에 능통한건 기본 전제로 깔고 들어가는 겁니다. 당장 제임스 조이스를 공부하고 분석하는데 현대 영어로도 지독히 어려운 판에 외국어로 번역 되서는 뭐 아무것도 제대로 전달 되는거 없습니다. 영문학을 예시로 들자면 번역의 질 자체가 대단히 높지 않은 한 번역서들은 근본적으로 "메세지"만 전달 되지 그 "메세지" 전달 과정에서 생기는 가치들과 정서가 대패로 써걱 써걱 잘리기 일쑤고, 그러한 언어적 미 자체가 가지는 소위 줄거리와 딸려 오는 가치들이 어찌 어찌 전달 된다 해도 원본의 접근과는 판이하게 다른 '로컬라이징'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뭐 간단하게 말해 미국인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 역사, 정서를 모르면 이육사 시의 강렬한 남성적 생동감을 제대로 느낄 수 없듯이 한국인도 영어와 미국 남부의 문화, 정서를 모르면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에서 묘사하는 남부 특유의 사회상과 정서적 요소를 제대로 음미 할 수 없다는 거지요. 인문학 자체가 文을 기반으로, 文을 통해 이루어지는 학문인데 그 文 자체를 모르면 그 한계가 명백하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과학 논문 같은 경우 언제까지나 그 핵심은 '메세지' 그 자체에 있지 인문학과 달리 그 전달 과정 자체가 전체의 중요성의 반을 차지하고 이런 일은 없지 않습니까. 아인슈타인이 대단한 명필이며 E=mc제곱을 매우 수려하고 멋지게 설명하면 좋지만, 대부분 수식으로 이루어지는 증명 자체가 유효한 한 그 가치 자체도 확실하니깐요. 괜히 수학은 전 세계의 공용어라는 소리가 나오는게 아닙니다. 전달 과정의 매개체가 무엇이냐, 그리고 그 전달 과정 자체가 전체에서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냐의 문제 때문에 저런 방법적 차이가 생기는 겁니다.

    창조 과학이니 복음주의 기독교 괴변이니 이런 부류는 애초에 그 의도와 방향이 당장 현실에서 날뛰고 설치는 패거리 정치 집단들 주도로 학문의 탈을 쓴 이념에 가깝지, 원래 순수했던 학문 자체가 변질되었다고 보기에는 힘들기 때문에 이건 학계 내에서 단독으로 어찌 저찌 할 문제도,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우생학이 창궐했다 해서 근대 순수 과학계 자체를 부정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학문이 일치성을 강요 할 수 있는 도그마도 아니고, 학자들이 정치 하는 것도 아닌 한 (그건 문과 이과를 불문하고 누구도 보고 싶지 않은 꼴이겠지요) 저런 유사학문적 변태성은 학계가 얼마나 건강하던 튀어 나오는거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검색

맞춤검색

메모장

야후 블로그 벳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