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인문학이 무엇을 제어해야 한다 또는 제어할 수 있다는 관점을 '인문학적 제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제어대상으로 손꼽히는 것이 아마 과학일 것이다.
이런 제어론에는 인문학이 '해독제'라는 발상이 깔려있다. 그런데 인문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그것이 과학 스스로 주장하는 것만큼 무색무취하지 않다고 비판하는 그 잣대를 인문학에 그대로 되돌린다면 인문학은 과학보다 더욱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이 조롱하곤 하는 프랑스 철학 특유의 문장에 대해 얘기해보자. 프랑스 철학의 옹호자들은 이런 '스타일'에 대한 집착이 프랑스 철학의 고유한 전통이며 프랑스 철학의 생산성을 가능케하는 특징이라고 변명하곤 한다. 이 변명을 받아들이더라도 이 '스타일'에는 아주 심각한 정치적 문제가 있다.
예전에 천규석이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라는 책을 썼을 때 이정우는 "프랑스어로 읽어보고 찌질대시지?"로 요약할 수 있는 신랄한 서평을 썼다. 이정우가 싸가지가 없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철학자들의 글을 제대로 읽으려면 프랑스어로 읽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그들의 '스타일'이 대단히 번역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거니와, 이 '스타일'은 프랑스 철학의 옹호자들이 말하는 대로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핵심 요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용과 스타일을 엮어버림으로써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프랑스 철학에 대해 논의할 자격을 박탈당한다. 그것도 그냥 조금 하는 수준으로는 안된다. 미묘한 뉘앙스를 읽어낼 정도로 잘하지 않으면 안된다. 네이처나 사이언스에서 매주 발행하는 파드캐스트를 들어보면 도저히 듣기 힘든 영어로 말하는 비영어권 과학자들의 인터뷰가 빠지지 않는다. 세계 수준의 학술지에 실릴만한 과학 논문을 쓰기 위한 영어 수준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스타일이 중요하게 되고 나면 역시 엄청난 프랑스어 실력을 갖추지 않고서야 저 바닥에는 낄 수 없다.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쯤되면 프랑스 철학에서 말하는 급진적 내용들에 대해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말하는데로 언어가 모든 것이라면 "그들의 언어"에 철저히 굴종할 것을 강요하는 철학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이 그렇게도 "서구-백인-남성-중산층의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해 마지않는 과학판에는 동양인이 버글거려서 "M.I.T.는 Made In Taiwan의 약자"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정작 철학판이야말로 "서구-백인-남성-중산층"의 전유물로 남아있다.
사정이 이쯤되고 보면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느니 과학에도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느니하는 '인문학적 제어론'에 대해서 "이쪽은 됐으니, 니들 앞가림이나 잘하라."는 말 밖에는 더 할 얘기가 없는 것이다.
덧글
과학쪽은 모르겠지만 인문학은 이상하게 유행이란게 있더군요. 프랑스 철학 유행은 이미 한물간것 같은 복고처럼 느껴지더군요.
제가 받은 인상은 그런것입니다. 프랑스철학중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상대방이 알아들을수 없는 철학'이라는 거죠. 그 문제 해결하지 않는 이상 프랑스철학이 갖고 있는 내제적 한계는 계속 지속될겁니다.
하지만 그 "어느 정도 유의미한 발견"을 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의 가치이고, 이 점에 대해 과소평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건 허풍에 가깝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과학이라고 현대사회의 제 문제(에너지라든가 환경이라든가)를 해결해줄 만능도구인 것은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학이 현대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줄 실마리가 됨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당장에 뭘 뚝딱 해결하진 못하더라도 점진적으로 밝혀나가 해결책을 제시할 테니까요. 인문학도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판다님 말마따나 독이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꾸준히 개선하며 부작용을 줄이고있는 약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어"의 의미를 "훈수" 정도로 제한한다면 인문학적 제어라는 것이 아주 그릇된 주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LHC 실험같은 걸 한다 하면 이게 시민들에게 도움이 될것이냐 하는 화두를 꺼낸 것인데 그건 이미 예산처에서 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걸 자기들이 하겠다는 거고 결국 그 시민운동의 목적은 과학계에서도 감투를 뽑아먹겠다는 것이었지만.
결국 인문학은 핑계고 학제간 공존이니 하는 논리를 끌어온 감투놀이에 불과했습니다. 제대로 된 인문학도라면 인문학이 정치놀음에 이용되는 현실에 개탄했을듯
과학에서는 소위 "창조과학"이 그릇됨을 과학의 방법론으로 논파할 수 있고 인문학에서는 종교와 사상에 대한 열린 자세가 어째서 필요한지를 설득할 수 있겠죠. 충분히 그렇게 읽힐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읽어달라고 쓴 덧글로 보이는데 어째서 이게 뜬금없는 대결구도로 바뀌고 있는 겁니까. "폭주하는 과학에 인문학으로 브레이크를 건다"는 식의 마인드를 지닌 이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관계없는 덧글과 연결해서 논의를 꺼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창조과학이 판을 치는 이유는 그들이 과학을 쌩판 무시하기 때문이 아닙니다(오히려 억지로 과학 비스무리한 궤변을 꾸밀 정도로 신경쓰고 있죠). 성경에 나온 구절 하나하나가 그대로 사실이어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네 믿음이 거짓이 되어버린다고 여기기에 저런 삽질을 하는 겁니다. 창조과학을 과학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물론 유의미한 일입니다만, 그래봤자 그들은 계속 억지를 쓰거나 새로운 사이비 이론을 들고나올 겁니다. "그래야만한다고 믿고있"으니까요.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단의 '열심'을 제어할만한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것은 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다, 창조과학 따위의 구라를 치지 않으면서 신앙을 지킬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소양" 말이죠.
예의 홍준기씨에겐 아무래도 과학의 세례가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만, 그 사람의 헛소리가, 인문학이 사람들의 "무지"를 타파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데에 크게 지장을 초래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홍준기씨의 경우가 노정태 님의 덧글과 연결되어서 과학 VS 인문학의 구도로 이어지는 맥락을 잘 모르겠고요. 혹시 인문학의 가치를 옹호하는 입장을 홍준기 류의 사이비 과학과 겹쳐서 보고있진 않습니까?
그나저나 아까부터 줄곧, 어째서 이 글에서는 뜬금없는 과학VS인문학의 구도가 튀어나오고 있느냐, 도대체 인용한 덧글하고 이 글이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을 드리고 있는데, 적절한 응답이 돌아오는 대신 계속해서 변죽만 울리고 있군요. 대답하고 말고야 주인분 마음이지만, 저는 말을 섞은 이상 상대방의 질의에는 되도록이면 성실히 답하는 것을 예의로 알며 유의미한 회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실 의사가 없으시다면 저 또한 판다님의 반문에 계속 응할 이유가 없겠죠.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인간이 하는 것이고, 그런 이상 본질적으로 그 학문을 하는 자들 자신에 의한 편향과 왜곡이 담기기 마련입니다. 지난 기간 과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은 모두 이런 관점에서 전개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통상적인 반응은 그런 비판들을 개인적 일탈에 대한 흠잡기나 과거지사 들추기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이런 반응은 옳았을까요?
과학에 적용될 수 있는 비판지점들은 인문학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고 오히려 더 문제적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고래를 관찰하는 것과 별로 상관없어도 그의 정치철학하고는 심각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우연히 일어난 일일까요? 아테네가 그리스의 패권을 차지한 폴리스가 아니었다면 과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요?
인문학이 본질적으로 합리적이고 반성적인 학문일 수 있다면, 과학 또한 그렇게 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더욱 그럴 수 있죠. 그렇다면 두 학문 간의 대화란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인문학이 그 자체로 오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 오점에 대한 자기 비판 위에서 과학과 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까는' 방식으로는 별로 얻을 게 없습니다.
"정작 철학판이야말로 "서구-백인-남성-중산층"의 전유물로 남아있다"고요? 그렇게 간단히 결론 낼 사항은아닌 듯 싶군요. 오히려 이곳은 점점 일본 중심의 동양 문화/관점에 매우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일회성 유행이 아니라서 쉬이 사그러 들지는 않을 것 같다고 보입니다.
어쩐지 인문학 얘기가 나오면 서양철학이 인문학의 대표로서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논의가 뻗어나가게 되는데, 현대사회가 서양문명을 기반으로 형성된 만큼 이는 일면 불가피한 측면은 있습니다만, 동양문명은 동양의 사상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고 이 영향력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한, 서양 중심적인 풍토는 궁극적으로는 극복되어야 할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인류 사상 전반을 포괄하는 통합된 철학계가 형성되길 바라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요원한 얘기겠죠.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생각하는 바를 논하는 학문인 만큼, 사람이 국적으로 갈리고 문화권으로 갈리고 자신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인문학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점을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각성을 넘어선 사상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고, 결국 인문학의 손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과학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과학 역시 (규칙으로 통제하고 있다고는 해도) 과학자라는 인간의 활동이며, 인간의 활동을 논하는 것은 결국 인문학의 영역이니까요.
반대로 과학 논문 같은 경우 언제까지나 그 핵심은 '메세지' 그 자체에 있지 인문학과 달리 그 전달 과정 자체가 전체의 중요성의 반을 차지하고 이런 일은 없지 않습니까. 아인슈타인이 대단한 명필이며 E=mc제곱을 매우 수려하고 멋지게 설명하면 좋지만, 대부분 수식으로 이루어지는 증명 자체가 유효한 한 그 가치 자체도 확실하니깐요. 괜히 수학은 전 세계의 공용어라는 소리가 나오는게 아닙니다. 전달 과정의 매개체가 무엇이냐, 그리고 그 전달 과정 자체가 전체에서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냐의 문제 때문에 저런 방법적 차이가 생기는 겁니다.
창조 과학이니 복음주의 기독교 괴변이니 이런 부류는 애초에 그 의도와 방향이 당장 현실에서 날뛰고 설치는 패거리 정치 집단들 주도로 학문의 탈을 쓴 이념에 가깝지, 원래 순수했던 학문 자체가 변질되었다고 보기에는 힘들기 때문에 이건 학계 내에서 단독으로 어찌 저찌 할 문제도,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우생학이 창궐했다 해서 근대 순수 과학계 자체를 부정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학문이 일치성을 강요 할 수 있는 도그마도 아니고, 학자들이 정치 하는 것도 아닌 한 (그건 문과 이과를 불문하고 누구도 보고 싶지 않은 꼴이겠지요) 저런 유사학문적 변태성은 학계가 얼마나 건강하던 튀어 나오는거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