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04 01:45

저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시민이었다. 아마 그는 노예 소유주였을 것이다. 플라톤은 민주주의에 반대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알렉산드로스는 재위 기간을 모두 전쟁과 정복으로 보냈다. 카이사르는 당대의 문장가요 교양인이었으나 갈리아에 대해서는 침략자였고 로마 공화정에 대해서는 독재자였다. 중세의 스콜라 철학자들 중 일부는 이단심문관이었으며 또한 마녀재판관이었다.  옥스포드와 캠브리지는 식민 통치를 위해 고전을 가르쳤다. 프랑스 철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하이데거는 나치였다.

이런데도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저의가 의심스러워진다.

핑백

  • Null Model : 인문학적 제어론 2008-11-04 15:43:09 #

    ... 저의에서 노정태님이 단 댓글 중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창조과학같은 사이비 과학이 미국에서 판치는이유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 ... more

  • 玄武 서식지 2호 : 오래된 문이과 논쟁의 예. 2008-11-08 01:28:28 #

    ... 정치과학자를 꿈꾸며: 나는 가끔 황우석이 그립다 [김우재] 황우석과 본회퍼: 서울비에 답하여 [김우재] 황우석과 박정희: 김우재님께 [서울비] 저의 [아이추판다] 인문학적 제어론 [아이추판다] 인문학적 제어론. [모기불] 공짜 밝히는 사회. [모기불] 과학과 철학은 대립하는가 [노정태] (계속 추가..) 사이엔지 ... more

  • 과학과 철학은 대립하는가 « 텅 빈 해방공간 편지 2008-11-10 11:28:56 #

    ... 텅 빈 해방공간 편지 선언 글 목록 방명록 검색어 과학과 철학은 대립하는가 얼마 전 한 블로그의 인문학 공격성 글로 상처를 받은 적 있는데, ‘그 글은 잘못 짚었어.’ 하는 글이 올라와 반갑다. Categories: 하루마다 노드 하나 · Ta ... more

  • 뭐가 필요한데? 설마 과학 제어론? « 텅 빈 해방공간 편지 2008-11-10 19:35:47 #

    ... 저의</a>를 향해 쓰는 글이다. 파인만은 맨해튼 프로젝트의 원자폭탄 개발을 술회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독일이 개발했을 것이라 얼버무렸다. 히로시마가 폐허가 됐을 때 그는 그가 즐기던 봉고를 연주하며 자축했다. 자기 학생까지 건드리고 세 번이나 결혼한 그 아저씨 여성 편력은 유명하다. 뭐 그래도 이 바닥에서는 다들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그리며 감탄하곤 한다. 불확정성과 코펜하겐 해석으로 유명하기 짝이 없는 하이젠베르크는 그를 추앙하는 몇몇 서적에선 ... more

덧글

  • 라임에이드 2008/11/04 02:42 # 삭제

    피타고라스는 수학자이자 (아마도) 노예 소유주이자 종교인이자 살해자(야사지만)일 것이고, 나치에는 하이데거도 있었지만 핵개발 등에 참여한 과학자도 많았지요.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학과 과학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에게도 저의가 있는걸까요?
  • 하늘선물 2008/11/04 03:03 #

    프랜시스 골턴같은 인물이나, 레이첼카슨이 쓴 침묵의 봄 이라든지, 제국지리학, 토착지식의 도용 등등등 이런데도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만'필요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저의가 의심스러워요.

    보통 이런 반문이 가능하죠. 모든것은 공존해야 할겁니다.
  • 아이추판다 2008/11/04 08:51 #

    말씀들 하신 건 피장파장이라고 할순있어도 '반론'은 안되죠.
  • Pelican 2008/11/04 09:18 # 삭제

    위의 덧글이 반론이 안 되는 만큼,
    쓰신 글도 정당한 논거가 있진 않죠. ㅋ
  • wholic 2008/11/04 09:50 #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윗분들 말대로 인문학만 필요하다는 거에 대한 비판인가요? 인문학이 필요없다는 건가요?
  • 아이추판다 2008/11/04 10:25 #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것하고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좀 다른 얘기죠.
  • 마키아벨리 2008/11/04 10:14 #

    많은 이들에게는 독서에 대한 환상이 있습니다. 독서를 많이 하면 공부를 잘하게 될거라는...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그런 환상은 공부하는 당사자가 아닌 지켜보는 부모들의 마음에 많지요. 당사자들은 현실속에서 독서만으로 문제해결하는 데에 한계를 느끼고 쪽집게 과외나 요점만 집어서 공부하는, 성적을 위한 공부를 더욱 선호하죠.

    많은 이들에게 있는 인문학에 대한 환상도 그러한게 아닐까요? IMF이후로 취업이 힘들어지고 사는게 각박해지다보니 여유있을 때나 접하던 인문학책보다는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에 속하는게 오늘날 현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형이하학적이고 깊이도 없는 자기계발서 따위'가 인문학책을 압도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이고요.

    독서가 쓸데없다거나 인문학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의 한계에 대해선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는 거겠죠.
  • 아이추판다 2008/11/04 10:33 #

    고상한 삶은 좋은 것입니다만, 고상한 훈계는 들으면 열받죠. ㅎ
  • joyce 2008/11/04 11:05 #

    사실 철학='차카게 살자'는 아니니까요.
    인문학이라고 하는 단위가 서울대 단과대학의 이름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실 의문입니다만 어쨌든
    저런 측면이 좀더 알려질수록 아이들이 인문학을 좀 멋지다고 생각할 것 같긴 하군요...
  • silverbird 2008/11/04 11:11 #

    역시 아이추판다님은 까칠 대마왕...ㅎ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공학이든 다 자기 좋으라고 하는 공부일뿐...^^
  • 노정태 2008/11/04 11:55 # 삭제

    '좋은 나라'란 무엇인가요? 이명박이 생각하는 '좋은 나라'와 아이추판다님이 생각하는 '좋은 나라'가 다를 것 같은데요. 이런 간단한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문학의 고전에서 다루어진 논제들을 다시 훑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창조과학같은 사이비 과학이 미국에서 판치는 이유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단의 '열심'을 제어할만한 인문학적 소양이 그 사회에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창세기의 창조 설화가 '우화'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아우구스티누스 시대부터 상식이 되어있습니다만, 그게 진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느냐 아니면 '현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의 유물'로 취급되느냐는 다른 문제죠.

    한국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노빠'들이 '상식'을 운운하며 날뛰지만, 대체 그 상식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 대답다운 대답을 듣기란 어렵습니다. 물론 그에 대해서도 노예 소유주와 영국 부르주아들, 그 외 비도덕적인 사람들이 실컷 논의해놓은 바가 있는데, 그 모든 과거의 유산을 도외시하고 현재만을 사는 사람들은 설득되지 않는 무식한 자들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추판다님이 인신공격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거야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군요. 이만 쓰겠습니다.
  • 아이추판다 2008/11/04 12:18 #

    하이데거의 철학과 그의 나치 참여 사이의 관계가 단지 우연적인 것 또는 개인적 일탈에 불과한 것이었습니까?
  • 노정태 2008/11/04 12:39 # 삭제

    그렇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철학으로부터 곧장 나치즘을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에서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 아이추판다 2008/11/04 13:41 #

    부르디외는 "나치즘에 밀착하게 했던 정치적 윤리적 원리들을 철학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라고 비평한 바 있습니다. '승화시킨 것'이니 곧자 도출할 수 있는 관계는 아니죠. 그렇다고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단의 '열심'을 제어할만한 인문학적 소양"이라는 '인문학적 제어론'에는 인문학이 어떤 편향들에 대한 해독제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경우에서처럼 인문학 또한 충분히 '독'이 될 수 있습니다.
  • 세리자와 2008/11/04 12:57 #

    인문학이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오류는 아이추판다님이 지적하신 것 이외에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문학을 일종의 "오답노트"로 보는 시각은 유효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하이데거처럼 똑똑하고 교육많이 받고 독창적인 사상으로 존경받은 사람이 나치에 협력했다는 사실에서 뭔가 후대에 누군가 똑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지는 않을까요?
  • 아이추판다 2008/11/04 14:10 #

    저는 본문에서 말한 사례들이 '개인적 일탈'이 아닌 출발점 또는 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 산마로 2008/11/04 19:14 # 삭제

    하이데거 철학이 나치즘의 귀결이나 출발점이었다고 보는 것은 엄청난 발언인데요. 물론 그렇게 보는 의견들도 꽤 많고 저도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고 무관하다는 쪽의 의견도 강력한 논거들을 제시하고 있는 판국에 쉽게 단언하는 것은 비과학적 태도입니다. 부르디외 자신이 하이데거의 사상적 후계자라고 비판당하는 '68사상'의 입장에 따르면 부르디외도 일종의 전체주의 협력자일 수 있고, 저는 그런 혐의가 상당하다고 봅니다.
  • 세리자와 2008/11/04 14:25 #

    예를 들어 누군가 아이추판다님과 같은 문제의식은 "결국 맑스-레닌주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고 "인문학적으로 논증"한다면 그 진위를 떠나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송우일 2008/11/04 16:01 # 삭제

    위 문장에다 여러 학자들 이름과 각각의 학문 이름을 바꿔 대입(?)하면 비판에서 자유로울 학자와 학문은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 결국 인문학이든 과학이든 학문이란 이름을 걸고 혹세무민하려는 게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 아이추판다 2008/11/04 16:04 #

    아니죠. 플랑크가 나치에 협력한 거하고 하이데거가 나치에 협력한 건 전혀 다른 얘기거든요.
  • sieg 2008/11/04 16:11 # 삭제

    아니 플랑크가 나치에 협력했었나요? 제가 알기로는 협력이라기 보다는 '소극적' 저항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플랑크의 아들은 게슈타포에게 사살당하기도 했고...
  • 아이추판다 2008/11/04 16:29 #

    일제시대 군수가 '소극적 저항'했다고 친일파 아니랄 수 있나요.
  • LustShaker 2008/11/04 16:58 #

    이 포스팅에는 '인신공격의 오류'가 판을 치고 있네요^^ 아주 보기 좋습니다그려.
  • 산마로 2008/11/04 19:28 # 삭제

    위에서 든 사례들은 모두 인문학이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 한에서 인문학 옹호론 비판으로 성립합니다. 그런데 인문학 옹호론자들이 현대 사회의 문제에 정치적인 것의 의미를 강하게 투사한다고 볼 근거는 별로 없습니다. 물론 한국 인문학도들의 입장이 흔히 인문학을 정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입장은 비판 대상인 인문학 옹호론에 필연적으로 수반하지는 않습니다. 정치철학을 제외한 인문학이 정치적인 의미에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정치철학만 해도 현실 정치에 대한 응용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습니다. 명실공히 정치철학에 속할 롤즈 철학만 해도 롤즈 자신이 내세우는 정치적 입장을 그 추종자들은 거부하거나 수정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거든요. 사회주의자에서부터 반 복지국가론까지. 그쪽에서 유명한 사례는 보수주의자였던 헤겔의 영향을 받았지만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된 마르크스의 경우도 있지요.
  • 마치래빗 2008/11/10 03:32 # 삭제

    '인문학'이라고 통칭해서 재단하는 것 자체에 어느정도 폭력성을 느낍니다. ^^ 가끔 날카로운 논리에 혀를 두르곤 했었는데, 오늘은 그냥 허탈하게 웃고 갑니다.
  • 첫댓글 2008/11/13 03:38 # 삭제

    저기.. 음.. 아..저....
    물론 어떤 맥락속에서 하신 말씀이 틀림없을테지만..
    오늘 적잖이 당황하고 갑니다. 사실은 많이.

    꼼꼼히 읽어보고 어떤 의도로 말씀하셨는지 알아보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치 않고, 안다해도 아이추판다님만큼 차분하게 글을 쓸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유감은 기원전 시대의 노예는 지금의 노예가 아니었고, 민주주의는 지금의 민주주의가 아니었다는 어렵지 않은 사실을 왜 아이추판다님께서 간과하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떠한 개념의 진정한 이해는 역사적 연원의 분석 없이는 얻어질 수 없다고 하였는데, 서로 다른 시공간을 동일선상에 놓고 의아한 결과를 도출하신 점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무언가 놓친 부분이 있었을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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