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데도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저의가 의심스러워진다.
저의
이런데도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저의가 의심스러워진다.
핑백
Null Model : 인문학적 제어론 2008-11-04 15:43:09 #
... 저의에서 노정태님이 단 댓글 중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창조과학같은 사이비 과학이 미국에서 판치는이유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 ... more
玄武 서식지 2호 : 오래된 문이과 논쟁의 예. 2008-11-08 01:28:28 #
... 정치과학자를 꿈꾸며: 나는 가끔 황우석이 그립다 [김우재] 황우석과 본회퍼: 서울비에 답하여 [김우재] 황우석과 박정희: 김우재님께 [서울비] 저의 [아이추판다] 인문학적 제어론 [아이추판다] 인문학적 제어론. [모기불] 공짜 밝히는 사회. [모기불] 과학과 철학은 대립하는가 [노정태] (계속 추가..) 사이엔지 ... more
과학과 철학은 대립하는가 « 텅 빈 해방공간 편지 2008-11-10 11:28:56 #
... 텅 빈 해방공간 편지 선언 글 목록 방명록 검색어 과학과 철학은 대립하는가 얼마 전 한 블로그의 인문학 공격성 글로 상처를 받은 적 있는데, ‘그 글은 잘못 짚었어.’ 하는 글이 올라와 반갑다. Categories: 하루마다 노드 하나 · Ta ... more
뭐가 필요한데? 설마 과학 제어론? « 텅 빈 해방공간 편지 2008-11-10 19:35:47 #
... 저의</a>를 향해 쓰는 글이다. 파인만은 맨해튼 프로젝트의 원자폭탄 개발을 술회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독일이 개발했을 것이라 얼버무렸다. 히로시마가 폐허가 됐을 때 그는 그가 즐기던 봉고를 연주하며 자축했다. 자기 학생까지 건드리고 세 번이나 결혼한 그 아저씨 여성 편력은 유명하다. 뭐 그래도 이 바닥에서는 다들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그리며 감탄하곤 한다. 불확정성과 코펜하겐 해석으로 유명하기 짝이 없는 하이젠베르크는 그를 추앙하는 몇몇 서적에선 ... more
덧글
보통 이런 반문이 가능하죠. 모든것은 공존해야 할겁니다.
쓰신 글도 정당한 논거가 있진 않죠. ㅋ
많은 이들에게 있는 인문학에 대한 환상도 그러한게 아닐까요? IMF이후로 취업이 힘들어지고 사는게 각박해지다보니 여유있을 때나 접하던 인문학책보다는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에 속하는게 오늘날 현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형이하학적이고 깊이도 없는 자기계발서 따위'가 인문학책을 압도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이고요.
독서가 쓸데없다거나 인문학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의 한계에 대해선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는 거겠죠.
인문학이라고 하는 단위가 서울대 단과대학의 이름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실 의문입니다만 어쨌든
저런 측면이 좀더 알려질수록 아이들이 인문학을 좀 멋지다고 생각할 것 같긴 하군요...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공학이든 다 자기 좋으라고 하는 공부일뿐...^^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창조과학같은 사이비 과학이 미국에서 판치는 이유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단의 '열심'을 제어할만한 인문학적 소양이 그 사회에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창세기의 창조 설화가 '우화'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아우구스티누스 시대부터 상식이 되어있습니다만, 그게 진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느냐 아니면 '현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의 유물'로 취급되느냐는 다른 문제죠.
한국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노빠'들이 '상식'을 운운하며 날뛰지만, 대체 그 상식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 대답다운 대답을 듣기란 어렵습니다. 물론 그에 대해서도 노예 소유주와 영국 부르주아들, 그 외 비도덕적인 사람들이 실컷 논의해놓은 바가 있는데, 그 모든 과거의 유산을 도외시하고 현재만을 사는 사람들은 설득되지 않는 무식한 자들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추판다님이 인신공격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거야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군요. 이만 쓰겠습니다.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단의 '열심'을 제어할만한 인문학적 소양"이라는 '인문학적 제어론'에는 인문학이 어떤 편향들에 대한 해독제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경우에서처럼 인문학 또한 충분히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맥락속에서 하신 말씀이 틀림없을테지만..
오늘 적잖이 당황하고 갑니다. 사실은 많이.
꼼꼼히 읽어보고 어떤 의도로 말씀하셨는지 알아보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치 않고, 안다해도 아이추판다님만큼 차분하게 글을 쓸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유감은 기원전 시대의 노예는 지금의 노예가 아니었고, 민주주의는 지금의 민주주의가 아니었다는 어렵지 않은 사실을 왜 아이추판다님께서 간과하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떠한 개념의 진정한 이해는 역사적 연원의 분석 없이는 얻어질 수 없다고 하였는데, 서로 다른 시공간을 동일선상에 놓고 의아한 결과를 도출하신 점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무언가 놓친 부분이 있었을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