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의 그림은 MIT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아델슨이 만든 '체커보드 착시'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왼쪽 그림에서 A와 B는 완전히 똑같은 색깔이다. 이것은 똑같은 색깔의 선을 덧붙인 오른쪽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못 믿겠으면 다운받아서 포토샵으로 확인해보라.
사람들은 흔히 이런 종류의 그림들을 인간의 인식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지를 나타내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의 의도는 반대다. 이 그림들은 인간의 인식의 정교함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물체마다 빛을 반사하는 정도가 다르다. 이것을 반사도(reflectance) 또는 알베도(albedo)라고 한다. 흰색 물체는 반사도가 높고, 검은색 물체는 반사도가 낮다. 우리는 눈을 통해들어오는 빛의 양으로 물체의 반사도를 알아내야하는 데 이것은 수학적으로 해가 무한히 많은 방정식의 형태를 지닌 문제다. 왜냐하면 (반사된 빛의 양) = (조명의 양)×(반사도)인데 (조명의 양)도 모르고 (반사도)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물체가 밝게 보인다고 해도 이것이 조명이 센 탓인지, 물체가 반사를 잘하는 탓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햇볓 아래 석탄은 검게보고, 한밤 중의 눈은 하얗게 본다. 이것은 우리의 시각체계가 눈에 비치는 장면 속의 여러 가지 정보를 바탕으로 물체들을 가능하면 일관된 방식으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낮이건 밤이건 눈은 눈이고 석탄은 석탄이다. 아델슨의 체커보드 착시에서도 시각 체계는 B가 어둡게 보이는 이유는 그림자 때문이라고 추론하고 B의 밝기를 A보다 높게 추정한다. 현실에 저런 체커보드가 있다면 시각 체계의 추정이 맞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시각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알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착시를 만들어낸다. 위의 그림도 그런 시도의 일환인데 우리는 위의 그림을 통해 시각 체계는 한 부분의 밝기를 결정하는 단순한 작업에도 다양한 맥락 정보(기둥의 그림자, 체커보드의 무늬 등)를 고려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증거를 하나씩 모아 시각 체계의 원리를 파헤쳐가는 것이다.
시각체계의 이런 능력은 조명의 밝기가 일정치 않은 세계 속에서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동물들이 진화에 의해 자연스럽게 갖게되는 공통의 능력이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함의를 얻을 수 있다. 첫째, 무의식적 사고라고 해서 비합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무의식적 사고는 의식적 사고로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복잡할 수 있다. 둘째, 이런 정교하고 복잡한 사고능력이 진화에 의해 선천적을 갖춰질 수 있다. 셋째, 이런 사고능력은 한 종 내에서 또는 종을 넘어선 수준에서 보편적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A보다 B가 밝다고 느낀다. 개, 소, 말, 닭도 물론 그렇다.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게슈탈트 심리학을 끌어온다. 그런데 쿤 자신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것은 그의 책 전체의 논지를 미묘하게 비튼다. 그게 뭐냐하면.. (to be continued. 재미붙였음. ㅎ)
덧글
비교대상이 줄어서인가요?
비슷한 이야기를 옛날에 미술 선생님한테 들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사람 눈동자의 흰자위라고 해서 절대 흰색이 아니다.'
역시 신기하네요
-네피
질문 있어요~
> 인간이라면 누구나 A보다 B가 밝다고 느낀다. 개, 소, 말, 닭도 물론 그렇다
개,소,말,닭도 A보다 B를 밝다고 느낀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안구-시신경-뇌의 구성(?)이 인간과 동일해서 그럴 거다라고 하는 건지 아니면 어떤 형태의 실험이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관심사가 "청지각체계"이다 보니 ^^;;*
근데 color perception은 선천적인 건 알고 있었는데, color constancy도 선천적이었나요? 저건 경험이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다음 학기에 visual perception 수업을 들으니 그 때 배울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