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4 13:56

관찰불가능한 비결정론적 체계

마음은 오늘날 반과학주의자들에게 마지막 안식처와 같다. 반과학주의자들은 마음이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근거는 보통 두 가지다. 하나는 마음이 관찰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음이 비결정론적이라는 것이다. 마음이 정말 비결정론적인지는 좀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그렇다치더라도 이 두 가지는 반과학주의자들의 무식함의 증거일 뿐이지 마음이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관찰불가능한 비결정론적 체계에 대해 훌륭한 과학 이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양자역학이다.

반과학주의자들도 이 공통점을 알고 있었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들은 여기서 해괴한 '해석'으로 빠져든다. 앨런 소칼이 "소셜 텍스트"에 장난으로 냈던 논문의 제목이 "경계의 침범 : 양자 중력의 변형해석학을 위하여"였던 것은 이런 점을 조롱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걸 모르고 실어준 편집진만 바보가 됐지만.

심리학에서도 양자역학을 끌어오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뷰스마이어 등이 쓴 "인간 의사 결정의 양자 역학(Quantum dynamics in human decision-making)"이라는 논문이 그런 예다. 그런데 이 논문은 반과학주의자들이 늘상 하는 그런 방식과 달리 사실상 마음과 양자역학 사이에 어떤 억지스런 관계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냥 심리 과정을 모델링하는 데 양자역학에서 쓰는 수학적 기법을 써보자는 얘기다. 심리학에서 쓰는 많은 수학적 기법이 물리학에서 배워온 것이기 때문에 별난 일은 아니다.

엄밀히 얘기하면 심리학은 양자역학보다 기상학과 더 비슷하다. 일기예보가 자주 틀리는 건 물리학적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기상 현상의 배후에 있는 개별적인 물리 현상에 대해서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다만 그걸 다 합쳐놓았을 때 문제가 엄청나게 복잡해져서 다루기가 어려울 뿐이다. 마음의 경우도 비슷한데 우리는 신경 하나나 아니면 여러 개의 신경들이 이루는 망에 대해서는 상당히 자세히 알고 있다. 다만 그것들이 모여 두뇌를 이루면 문제가 복잡해질 뿐이다. 기상학보다 사정이 나은 점이라면 기상학자들에게는 지구가 하나 뿐이지만 심리학자들에겐 두뇌/마음이 60억개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상 현상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게 많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이 모든 걸 밝힐 수 있는 건 아니잖아?"라면서 천연덕스럽게 기우제를 지내진 않는다. 청와대에 있는 모 씨가 청계천에 가서 기우제라도 지낸다면 온갖 현학적 언어를 동원해 비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반과학주의자들도 자신들이 마음에 대해서 그렇게 구는 것만은 용납되어야 한다고, 아니 권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덧글

  • 2008/10/14 14:1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아이추판다 2008/10/15 01:42 #

    헤헤, 고맙습니다.
  • parxisan 2008/10/14 19:51 #

    심리학이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인가요?
  • 아이추판다 2008/10/15 01:42 #

    무슨 뜻으로 물어보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parxisan 2008/10/15 07:39 #

    제가 보기에는 이 글의 요지는 "마음이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심리학이 그걸 연구하는 것인데, 그게 맞는지 여쭈었습니다.
  • 아이추판다 2008/10/15 16:14 #

    맞습니다
  • 박성철 2008/10/15 09:43 #

    심리의 복잡성을 기상학에 비유한 부분은 아주 적절한듯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도 마음을 심리학으로 한정 짓는 것은 마음과 관련된 논점을 잘못 이해하신 것으로 오해 받으실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양진영이 감정적인 대립을 하기 보다 학자의 자세로 대화했으면 하네요.
  • 아이추판다 2008/10/15 16:15 #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이라서요..
  • 하얀까마귀 2008/10/20 23:23 #

    로저 펜로즈의 "황제의 새 마음"도 비슷한 예가 되겠네요. 양자역학을 들어 인간 두뇌를 모델링하는 인공지능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흐르는...

    조금 난해한 책인데 그래도 중간까진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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