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2 21:43

스트룹 효과는 어디에서 오는가 인지과학

스트룹 검사

근대 심리학의 창시자 분트의 제자였던 카텔은 1886년 그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빨강'이라는 글자를 읽는 것이 빨간색을 보고 '빨강'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빠르다는 사실을 보고한다. 카텔은 이것이 글자를 읽는 것이 색깔을 읽는 것보다 더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게 100년짜리 떡밥이라는 걸 그때 카텔은 알았을까?

카텔의 논문 이후 50년간 여러 연구자들이 카텔의 설명을 두고 반박에 재반박을 거듭한다. 그러다 1935년 스트룹은 색깔과 글자를 합쳐서 하나의 자극으로 만든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래서 파랑처럼 글자의 뜻과 색깔이 서로 불일치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본 것이다. 그 결과는 흥미롭게도 '파랑'이라고 글자를 읽을 때는 색이 간섭을 하지 않지만, '빨강'이라고 색깔을 읽을 때는 글자가 간섭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스트룹 효과(Stroop effect)라고 한다.

다시 50년이 흘러 1991년 맥클레오드는 스트룹 이후 50년간의 연구를 정리하는데 그가 인용하고 있는 논문만 물경 400편에 달한다. 논문 하나에 실험 두셋은 실리는 게 통례이니 스트룹 효과를 두고 이뤄진 실험은 최소 1천가지가 넘는다는 얘기가 된다. 참고로 맥클레오드는 응용 연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도 않았다.

이런 실험 중에 재미있는 것을 한 가지 인용하자면 이런 게 있다. 색깔과 글자 대신 그림과 글자로 자극을 제시해도 여전히 스트룹 효과가 나타난다. 예를 들면 사과 그림을보면 "사과"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그림에 '사과'라고 써놓으면 더 빨라지고(촉진), '책상'이라고 써놓으면 더 느려진다(간섭).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림이 쥐일 때 청와대'치즈'라고 써놓는다고 해서 더 많이 간섭을 일으키진 않는데, 그림이 손일 때 '발목'이라고 써놓으면 더 많이 간섭을 일으킨다. 다시 말해 의미상 연결된 단어라고 해서 더 간섭을 일으키진 않는데 의미상 같은 범주에 속하는 단어는 더 간섭을 일으킨다.

맥클레오드는 그 이전까지 나온 연구들을 종합해서 스트룹 효과에 대한 이론이 만족해야할 18개의 조건을 제시한다. 처리 속도의 차이에 대한 카텔의 주장은 이 조건들 중 15개 밖에 만족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카텔의 주장대로 글자가 색깔보다 빨리 처리되기 때문이라면 글자와 색깔의 자극제시시차(stimulus onset asynchrony. SOA)를 조작하여 간섭을 늘이거나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SOA를 조작해도 색깔이 글자 읽기엔 영향을 주지 않는 반면, 글자는 여전히 색깔 읽기에 영향을 준다. 게다가 글자가 색깔보다 빨리 처리되기 때문에 간섭이 나타난다면 글자를 먼저 제시하면 더욱 더 빨리 처리될테니 간섭이 더 커져야하지만 글자를 색깔보다 100밀리초 늦게 제시하는 게 200밀리초 먼저 제시하는 것보다 간섭이 더 크다.

카텔의 또 다른 주장은 글자를 읽는 것은 주의를 요구하지 않는 자동적(automatic) 과정인 반면에 색깔을 읽는 것은 수의적(voluntary) 과정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수의적(voluntary)' 대신 '통제적(controlled)'이라고 한다. 이 자동성 가설(automaticity hypothesis) 또한 맥클레오드의 18개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한다.

한 가지 예를 보자. "       파랑"과 같이 글자와 색깔을 따로 제시해도 크기는 좀 작지만 스트룹 효과는 나타난다. 그런데 "헐퀴        파랑" 뭐 이런식으로 아무 관련이 없는 단어를 추가적으로 제시하면 스트룹 효과의 크기가 줄어든다. 자동성 가설에 따르면 글자 처리는 주의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추가적인 단어가 있다고 해서 스트룹 효과에 영향을 주어야할 이유가 없다.

이 실험을 수행한 카네만과 Chajczyk(뭐라고 읽는지 모르겠다)은 자동성 가설을 완전히 버리는 대신 자동적 과정과 통제적 과정이라는 이분법을 버리고 모든 과정에는 자동적인 정도가 있다는 방식으로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다시 말해 글자를 읽는 것은 색깔을 읽는 것보다 자동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주의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가설은 다른 종류의 실험들과도 잘 일치하는데 비록 글자와 색깔이 있을 때는 글자에서 색깔 쪽으로만 스트룹 효과가 생기지만, 글자 대신 이상한 기호를 주면 색깔에서 기호쪽으로 스트룹 효과가 생긴다.

이러 수 많은 실험 결과와 가설들에 힘입어 스트룹 효과를 설명하는 모형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스트룹 효과가 발생하는 과정을 수학적으로 정교하게 기술해서 이 현상을 자세히 이해하고자하는 시도가 이뤄진 것이다. 앞에서 말한 처리속도 차이 가설이나 자동성 가설은 후기 선택 이론이라고 해서 모두 공통적인 가정을 포함하는 데 그 중에 하나가 반응 채널의 제한적 용량(limited capacity of response channel)이다. 설명하긴 좀 복잡하지만 수학적 모형 연구는 이런 가정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스트룹 효과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여기까지가 1991년까지 스트룹 효과에 대한 연구의 상황이다. 이후로도 사이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또 다른 실험들과 또 다른 이론들이 제안되었다. 내가 만든 스트룹 검사는 2003년 발표된 케인과 엥글의 연구에 바탕을 두는데 이들은 글자와 색깔 사이의 자동성 차이에 덧붙여 실행 통제의 실패 또한 스트룹 효과의 한 원인이라고 제안한다. 나는 이들의 주장이 그럴싸하다고 보았는데 실제로 축적되고 있는 데이터를 보면 이들이 수행한 실험 결과와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원인을 살펴보는 중이다. 하여간 이 문제는 또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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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8/10/13 10:3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아이추판다 2008/10/13 11:09 #

    네. 글자하고 색 이름하고 언어를 달리하면 스트룹 효과가 줄어든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스트룹 효과에 대한 후기 선택 이론을 지지하는 근거 중에 하나입니다.
  • Semilla 2008/10/15 03:55 #

    저는 '읽기(visual word recognition)'를 주로 공부하는데 이게 간단하게 '읽기'라고 도맷금으로 묶을 수 있는게 아니라서 저렇게 psycholinguistic이 촛점이 아닌 연구에서 자동적이니 어쩌니 하는 걸 보면 한숨을 푹푹 쉬지요. 반대로 attention을 주로 연구하시는 교수님은 저같은 사람들이 masked priming 같은 걸 쓰면 그 시각 정보 처리에 대해서 단순히 SOA manipulation만 가지고 time course를 재려고 한다는 데에 경악하시고요. 그래서 collaboration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 하하하하 2009/10/29 10:28 # 삭제

    Chajczyk는 폴란드 이름으로...카이찍, 크하이찍크 또는 하이직크 이런식으로 읽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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